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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7
    ‘외부세력’과 언어정치
    PP

‘외부세력’과 언어정치

‘대전발 영시 오십분.’ 이전에 가끔 부르던 대중가요 노랫말이고, 이종기 감독이 1963년에 만든 영화의 제목이다. 언뜻 생각하면 ‘대전발 영시 오십분’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대전에서 떠나는 열차의 고유한 이름이다. 고유명사라면 지시 대상이 고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는데 과연 ‘대전발 영시 오십분’ 차도 그러한가?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연발착으로 꼭 밤 0시 50분에 출발하지 않을 수도, 객차 수가 일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이는 표현과 지시대상의 관계가 수시로 바뀐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대전발 영시 오십분’에 일정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에 따르면 ‘대전발 영시 오십분’의 의미는 ‘대전발 열시 십분’이나 ‘부산발 여섯시 삼십분’ 등과 차이가 있어서 생겨난다. 언어의 의미는 지시대상보다는 언어체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속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다. 

 

의미가 언어체계에서 나온다는 생각은 언어가 대상, 세계, 현실을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될 수 있다.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라는 언어표현이 지시대상을 소환하여 존재케 하는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담론이론’이라고 불리는 한 부류의 언어이론이 여기에서 형성되었다. 담론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독자적인 물질적 효과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 세계와 현실을 구성하고 주체들을 호명한다. 특정한 담론에는 특정한 형태의 주체들만 등장하게 되어 있다. 의료담론에는 수만, 수십만의 개인들이 등장해도 ‘의사’, ‘환자’, ‘간호사’, ‘가족’, ‘간병인’ 등 소수의 주체형태로 분류된다. 

 

파업담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끝난 쌍용차 사태에서 보수언론은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간 사람들을 ‘외부세력’으로 불렀다. ‘외부세력’은 여기서 보수언론이 장악한 파업담론에서 등장하는 하나의 주체형태이다. 언뜻 보면 ‘외부세력’은 쌍차노동자들과 무관한 세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담론이론과 비판적 언어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외부세력’의 의미는 파업담론에 의해 전제된 ‘내부세력’이라는 또 다른 주체형태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 정해진 지시대상을 가져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담론이 갖는 효과이다. 진보세력은 자신이 ‘외부세력’이 아니라는 주장만으로는 ‘외부세력’의 의미를 파괴하기 힘들다. 의미는 현실의 진실과 무관하게 언어작용, 담론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담론상의 공격에 대해서는 그래서 담론상의 응전이 필요하다. 파업담론이 지배할 때는 담론 지형 자체를 바꿔야 한다. 담론정치, 언어정치라는 새로운 차원의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실천에서 밀리면 우리는 계속 ‘외부세력’으로 호명될 될 것이다. 

강내희 | 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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