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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꼭 보내야 하나..?

사교육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그래도 나도 사람인 이상 속 쓰리는 일은 있지 않겠나. 사교육이 계급을 재생산하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문득 묻고 싶다. 그럼 우리는 돈 많은 애들만 갈 수 있는 대학, 그리고 자본주의적 인간형만을 키우고 있는 요즘의 대학을 보면서도 '대학 가지 마라!'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까?


입에 풀칠하기 위해 내가 나가는 학원은 수강료가 꽤 비싼 편이다. 학원에서도 그걸 알기 때문에 너무 많은 강의를 들으려고 욕심내는 학생들에게는 적당히 시간을 조절하는 법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오늘, 한 학생이 전화를 했다. 수업을 들을까요..말까요..하고 묻는 전화였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학생과 그 학생의 부모가 부담하게 될 수강료 때문에라도 선뜻 수업을 들으라고 말하기가 민망했다. 그런데 그 학생의 태도는 '대학에 붙을 수만 있다면 이깟 투자 정도'랄까. 수강료 따위는 이미 그 학생과 부모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농담으로 '일찍 태어나서 대학 가길 잘했지'하며 웃고 지나가곤 했지만, 그 고액의 수강료를 '대학 가기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은 투자'라고 생각하는 요즘 수험생들에게 대학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엘리트주의의 문제점을 누누히 지적하고 있는 운동권들도 사실 대학 졸업장이 가져다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지 않나? 그리고 대학 졸업장의 혜택을 버리면서 살라고 타인에게 과연 말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들에게 '너 왜 대학가니?'라고 쉽게 물을 수 있을까? 졸업장 따먹기..이외의 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던 내 대학생활을 곱씹어 봤음에도, 나는 그 비싼 수강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 학생에게 '학원 다닐 필요없다'라고 단호히 말해주지 못했다. 대학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게 네 인생에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냐고 묻지도 못했다. 하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설픈 학원 선생이 학생에게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 어설픈 학원선생, 자기 합리화를 위해 사교육을 공격하기 보다는 대학교육 정상화를 먼저 부르짖으련다. 졸업장 따먹기 대학은 이제 없어졌음 좋겠다. 그래서 나도 당당하게 학생들에게 저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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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과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

■ 공통점 ─ 무사안일주의. 공무원주의(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중 대사) ─ 일이 곧 생존 이유를 설명하는 것 ■ 차이점 ─ 일의 목적이 공무원 보다는 분명함 ─ 일의 동인은 돈이나 철밥그릇 때문보다 내 정치적 판단이 우선 작용. ─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없는 것. ■ 결론 ─ 공무원 셤이냐, 올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가늘고 길게 수명을 연장하되, 일의 중요성과 효율성을 고려하게 되는;; ....이런 포스팅을 하는 나도 참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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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오해?

이런 말 하면 무식하다/무례하다 욕 먹을지 어떨지..암튼 내 블로그니까 솔직하게 털어놔보자. 동성애자들에게 '언제, 어떻게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알게 됐어요?'라고 질문하는 것은, 참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질문이 때로 중요한 의미를 담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동성애자임을 확인'하는 것은 내가 (이성애자인)남들과 다른 상태를 확인했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도플갱어가 아닌 이상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똑같지 않고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꼭 다른 점을 언제 확인했냐..고 묻는게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도 현실이라는게,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차별이라는게 있어서 사실 동성애자들 스스로는 무척 조심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돌 날아올것을 뻔히 알면서 몸을 드러내는 사람은 용기있는 자가 아니라 무모한 자다. 때와 장소를 가려가면서 용기를 내보여야 하는 법. 또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쨌든.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나는 아직 내 성적 취향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는 거다. (이쯤에서 돌 던질 사람들 몇몇 있겠지만.. 뭐 솔직히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니까..)


"혹시.. 레즈비언이세요?" 혹은 "애인이 여자분이세요?" 혹은 "이성애자라고 확신하세요?" 까지.. 근 한 달 사이가 아니었어도 꽤 여러번 들었던 얘기라 별로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 그 전에 그런 얘기들을 들었을 때도 맨 처음 한 번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당황했던 것 같지 않다. (물론, 내 취향이 아닌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질문했다고 느꼈을 때는 예외.. ^^;) 글쎄, 성적 취향이라는 것은 내게는 상당히 묘한 부분이라서, 당장 어느 한쪽으로 꼭 정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사실, 스스로는 거의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 쪽이긴 하지만(이성과 노는 행태를 보아하니..) 매력적인 동성들에게 정신팔려본적이 없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어떤 동성때문에 건강까지 해칠만큼 미쳐있었던 적도 있었고... 사실, 나한테는 내가 이성애자이건 동성애자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면, 그래서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내가 예민해지는 것은, 내가 동성애자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이성애자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반응을 고민해본적은 당연히 없었는데, 동성애자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반응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참..이런 고민을 하는 내가 솔직히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사실인걸 어쩌나. 고민되는걸. '저 레즈비언 아니에요'라고 딱 잘라서 말해야 할지 어떨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날 아는 사람들은 '에이..애인있잖아~'하는 반응을 보이고, 모르는 사람들은 '한 번 잘 고민해보세요'라고 충고하지만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나는 못 느껴봤고... 지금의 애인이 이성이 아니었다면 지금만큼 잘 지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닐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예전에 어떤 사람이 말해준 '같이 자고 싶은 성(性)이 나의 성적 취향을 말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충분치 않은 것 같다. 특히 연애관계라는 것이 상대방을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동류의식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면 사실 생물학적 성이 상대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기도 한다. 내가 이성애자건 양성애자건 뭐 그건 별로 상관없겠지만, 나는 그냥 가끔 내게 던져지는 질문에 대해 좀 더 담담하게 반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왠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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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가장 보기 싫은 메일.

[SPAM]도, [광고]도, [긴급대출상담]도, [노모자이크] "오빠~" 따위의 메일도 아니다.


[속보] ***활동가들 전원 연행! [속보] ***농성장 침탈 위기! [속보] 동지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등의 메일들. 성람재단, 대추리, 평화행진, 활동보조인제도화.... 매일매일 연행소식에 농성장 침탈소식이 전해진다. ..젠장. 한번도 제대로 못가봤는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소리때문에 아무래도 제 명에 죽긴 틀렸다. + 나라가 어찌 될려구 이러누..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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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평택 대추리, 도두리 강제철거가 코 앞에 다가왔다. 평화를 택하는 행동 동참 호소절규를 들으면서 평상심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평상심..우리에게 언제 평상심을 유지할 만한 때가 있기는 했었나..?? 사랑하는 친구의 득녀 소식을 들어도, 예쁜 조카의 결혼 소식을 들어도, 맘 놓고 편하게 기뻐하기는 다 글러먹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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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 운동 전문단체 이전에..

다섯병님의 [프라이버시 운동 전문단체가 필요하지 않을까?] 에 관련된 글.

* 이 글을 쓰면 모 단체 모 활동가는 "저 색히 또 저 얘기.."라고 반응할거 같은데;; ㅋ 우선, 전문단체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동의합니다.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아 잘 정리할 수 있을지, 앞뒤가 맞는 말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그래도. 1. '정보화는 기술적인 문제이다'라는 편견에 맞선 생각들 저야 정보운동에 대해서 아는 것이 워낙 일천한지라 잘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최근의 웹 2.0에 대한 이야기나 블로그를 통한 네트워크, MS독점에 저항하는 여러가지 활동들은 정보운동진영에서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라고 보여집니다. 단순한 유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사이버라이프를 적극적으로 생산해내는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사실, 일방향적으로 컴퓨터와 사이버에서의 활동을 도구적 측면에서만 활용하는 것 만으로는 정보의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판단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운동의 방식이 단순하게 선전물을 뿌리는 것에서 문화제나 공연으로 발전해서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 처럼 기술 역시도 초보적 도구로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전선동 혹은 생활의 일부로서 기능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2. '프라이버시 운동'? 마치 '한미FTA와 평택은 샴 쌍동이다'라는 추상적인 구호처럼,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소중한 권리'라는 말 역시도 추상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FTA의 문제와 평택의 문제를 구체적인 운동에서 쉽게 연결시키고 있지 못한 것 처럼, 리니지 사건때처럼 개인정보를 도용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했지만 어떠한 움직임으로 조직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었죠. '운동'과 '프라이버시'라는 권리개념을 어떤식으로 접목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들이 여전히 필요할 것이구요. 저는 다섯병님이 언급하신 EPIC이나 PI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IPLeft의 활동과 프라이버시 운동 전문단체의 활동은 차이점이 있을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의 지재권 관련 활동이 '재산권'이라고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프라이버시 운동이 갖는 모호함에 대한 어떤 설정이나 규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3. 전문단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문단체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인권운동이 요구받고 있는 상황(노동권, 환경권, 여성권등 사회에서의 제반 권리들이 '인권'으로 해석되면서 모든 운동을 인권운동으로 치환시키는 경향)들 처럼 정보운동 역시도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들이 현실적인 사안(노동자감시, CCTV등)들로 불거지면서 그만큼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사안별 네트워크들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운동들을 전개하면서 프라이버시 문제는 전체 정보운동 사안에서 한 단계 뛰어넘어야 할 과정처럼 인식된 측면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감시와 관련한 프라이버시 사례들을 해결하는 것이 노동자감시네트워크의 전체 활동이 아니었던 것 처럼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사안을 집중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프라이버시 운동'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기 보다는 다종다기하게 펼쳐지는 사안에 대한 해결방안을 만들어내는데 급급했다는 느낌입니다. 4. 그래서 어쩌자구? 어쩌긴요. 다섯병님이 몇 년 기다려보다 없으면 직접 만드신다고 했으니 기다리죠. :p 다만 그 몇 년간 우리가 뭘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일뿐. - 아.. 너무 비겁했나? ( '')a + 암튼, 다섯병님의 이 포스트가 반가워서 트랙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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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운동한다는 것

뎡야핑님의 [.] 포스트 일부분에만 살짝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글.

워낙 끈기나 지구력이 딸리는 편이라, 한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해내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건 가끔 도움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도움이 될 때라면 아무래도 여러 운동을 접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와 관련해서 인권 감수성을 좀 더 구체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이겠고, 독이 될 때라면 아무래도 '이 일도 내 일, 저 일도 내 일'하면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주제에 전전긍긍 발만 동동 구르며 스스로를 타박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첫째여서 그런지, 기묘하고도 말도 안되는 책임의식만 높은 편이다. 윤리적/도덕적 기준을 능력 이상으로 높게 잡고 있는 것인지, 어떤 사안이든 스스로 아무런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소위 '혁명을 꿈꾸는 운동가(-ㅠ-;; 토하겠삼)'로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일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데도 나는 나 스스로를 슈퍼우먼 컴플렉스 환자로 쑤셔넣는 셈이다. 만약 모르는 문제에 대한 연대 요청이 들어오면 내가 알게 될 때까지는 그 사안을 회피한다. 마치 그 연대 요청을 한 단체나 활동가들로서는 이런 행태(-_-;;)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대신 운동 해 달랬냐고?) 나도 연대 요청을 하면서 누가 내 분야의 활동을 대신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뎡야핑님의 포스트를 보면서 나는 얼토당토 않은 내 도덕관념에 대해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의 당위성을 선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수 많은 사진들(윤금이씨 사건 사진이나 효순/미선씨 사건 사진들)과 관련한 논쟁을 하면서 나는 약간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진들 속의 피해자는 여성/어린이의 약자였으므로 나는 마이너리티의 입장을 고려하는 듯한 입장을 내세우기가 훨씬 쉬웠다. 그런데 뎡야핑님은 '다같이 괴롭자고 연대하는게 아니라 다같이 즐겁자고 연대하는 것'이라는 말 한마디로 내 고민을 잠재웠다.


내가 묵던 호텔 건너편은 전부 빈민가였다. 아침에 호텔 창문을 열면 빈민가 사람들이 일제히 하천으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내 천박함을 드러내자면, 나는 그 사람들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쇼핑하는 것 역시도 괴로웠다.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몇 배의 가격을 높여 부르는 모습에서 나는 어렸을 때 악다구니 쓰며 살아왔던 엄마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 (말로만 들었었지만) 행상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런 점 때문에 '이 가난한 사람들'과 가격 흥정을 하고 쇼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누가 내 얘기를 듣고 말했다. '너 진짜 위선자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위선'이라는 말이 내가 아는 그 단어인지가 의심스러웠다. 그 사람은 행복의 질을 생활의 질과 동일시 해서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나와, 수해기금 몇푼 내면서 '국민의 고통을 함께 하자'는 권력자들과 다를게 뭐냐고 물었다. 그 말이 맞다. 즐겁게 운동한다는 것,은 내가 운동을 덜 한다거나 내가 가진 신념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좀 더 건강한 상태로 운동을 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아무리 착한척 '위선'을 떨어봐도, 나 역시 영구기관이 아닌 이상 나 스스로를 움직일만한 동력이라는 것은 꼭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 동력이 바로 '즐거움'일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분노, 동정만으로 운동은 지속되지 않는다. 즐거운 기억은 오래 지속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힘든 기억을 잊기 위해 즐거운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내 일상과 운동이 즐겁지 않다면, 나는 아마 운동이 가져다 주는 삶의 무게와 투쟁의 무게에 짓눌려 결국 아무것도 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이상한 윤리와 도덕에 옭아매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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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되었다.

박래군 아저씨, 래군 형, 래군 선배, 박래군 선생님......암튼 형이 석방되었다. 그제 밤에는 형이 석방되고 나서 새벽녘까지 뒷풀이를 하느라 집에 못가는 꿈을 꿨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석방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했었는데 오늘은 정작 다른 친구에게 석방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러고 보면 형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다. 대체 정형화된 자기 방식이나 고정된 생각이라고는 없는 사람인 것 처럼 보인다. 아니, 물론 원칙은 있다. 모든 인권활동가가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원칙. "약자의 눈으로"라는 원칙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원칙이 쉽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철저한 약자가 되기는 어렵다. 어느 순간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타인보다 한 가지쯤은 더 권력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 발상하게 된다. 형이 그렇다. 형은 남성이고, 경험이 많고, 나이도 많다. 그리고 기혼자이고, 소위 정상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기도 하고, 채식도 하지 않고, 그리고 또.....뭔가 있겠지. 그런데 항상 가늘고 길게 살 수 있는 상황들을 늘 포기하며 간다. 지문날인 안하겠다며 수감기간동안 영치금도 못받았다 하고, 불러주는 곳 많고 편한 일도 있을텐데 이동중인 차안에서 쪽 잠을 자면서도 늘 거리로 뛰어나가 있거나 포크레인 위로 올라서있다. 나는 지문을 찍으라시면 찍어줄거고, 거리로 나가라 하면 다른 일 핑계를 댈 것이고, 포크레인 위에 올라가라면 다가올 폭력의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하잘것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나에 대한 자신감 없음이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다른 활동가들을 모욕하게 될 것이므로.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 일을 핑계로 "약자의 눈으로"본다는 원칙을 방기하고 있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형은 내가 자꾸 잘못 살고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다. 특히 나는 아직 부당한 것에 맞서기에는 안정욕구가 너무 강하다. 그런데 형은 그게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자꾸 이야기한다. 달변이 아닌데도 그 말에 넘어가는 내가 바보인건지, 아니면 정말 형 말이 맞는건지 알 수 없다가도, 나중에는 형 말이 정말 맞다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참 사람 힘들게 만든다. 래군형이 나왔다. 수염도 못 깎은 까칠한 얼굴 때문에 맘이 아프다. 아마도 얼굴을 보면 '지저분해 보인다'면서 깔깔대고 웃어 넘기겠지만, 혼자서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만큼은 살짝 눈물을 보여도 되겠지. 형이 내 얼굴을 보면서 '나 봤으니 감격했지? 울어!'라고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혼자서 몰래 울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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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공감할 때.

다섯병님의 [자기 성찰의 방법] 에 관련된 글.

"활동가로서 경력과 경험이 많아지는만큼, 미리 결과를 재단하거나 관성적으로 활동하는 경향도 많아진다. (중략) 주변 활동가들의 고민들을 통해 현재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사람이 스스로 초심을 잃지 않고, 언제나 성찰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에게 자극이 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두는 것이다." 다섯병님의 글을 보며 공감한 것은 스스로 성찰할 때라고 느끼기 때문일거다. 자신에게 자극이 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두고 있지만 늘 그에 대해 부담스러워 했을 뿐 성찰하려고 하지 않았던 내 모습을 반성하면서. 자기 성찰의 방법을 알았으니 이제 실천하는 것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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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2차 협상 잇따라 취소

한미 FTA 2차 협상 잇따라 취소 그러나, 한미FTA 2차협상 결산 뭐. 투쟁은 계속 되어야 하겠지.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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