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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3호> [강령 논쟁] 트로츠키의 이행기강령의 문제의식

 

[강령 논쟁] 트로츠키의 이행기강령의 문제의식

 
1938년에 4인터의 강령으로 제출된 트로츠키의 이행기강령을 보면, 먼저 최소강령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개량적 요구라는 규정은 트로츠키의 독단이다. 최소강령은 기본모순과 주요모순간의 관계에서 주요모순에 해당되는 과제로서 인민의 절박한 요구, 따라서 정권이나 체제와의 대결에 이르게 될 고리로서 제기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축적체제가 필연으로 하는 비정규직 철폐라든지, 중동에서 독재정권의 퇴진과 민주정부의 수립 등의 요구가 그것이다. 절박하고 본질적인 요구를 매개로 하는 투쟁에서 대중을 단결과 투쟁으로 이끌 수 있고, 이러한 투쟁을 매개로 정권과 체제의 본질에 대한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점에서 최대강령으로 이어줄 가교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최소강령의 문제의식에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행기강령을 보면 물가임금 연동제, 기업비밀공개와 노동자에 의한 산업통제, 민간은행 몰수와 신용체제의 국가관리, 개별기업집단의 몰수와 같은 경제적 요구와, 공장위원회, 정당방위대, 노동자민병대, 노동자계급의 무장, 노동자 농민의 정부, 소비에트(평의회)처럼 요구라기보다는 투쟁의 특정한 형태나 조직틀을 강령적 요구로 제출하고 있다.
 
우선 앞의 경제적 요구가 정권이나 체제와의 절박한 투쟁에 나설 수 있는 요구인지가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서도) 의심스럽다. 쌍차투쟁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구조조정반대의 요구는 전체 노동계급에게 절박한 투쟁요구로서 정권과 체제에 대한 투쟁으로 이끌 수 있는 요구이지만, 산업통제나 비밀공개, 은행몰수 등과 같이 노동자계급이나 진보세력이 권력을 잡아야만 실행할 수 있거나 진보적인 의미가 있는 조치는 최대강령적 요구로 최소강령이나 가교로 기능할 이행강령의 성격이 결여되어 있다. 케인즈주의자들이 이미 수용했던 물가임금 연동제나 신용체제의 국가관리와 같은 요구가 어떤 투쟁의 고리나 가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할 것이다.
 
또한 이행강령에는 정당방위대와 같이 당연한 실천만이 아니라 공장위원회, 노동자평의회와 같이 이중권력 상황 속에서 유지될 수 있는 형태나 노동자민병대나 무장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가 최고강령을 욕구하거나 실천하는 사전학습의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가교라는 것이고, 혁명을 위한 전투력의 사전양성이라는 의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를 이행강령에 꼭 넣고 선동하고 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1920년대 초 이탈리아 북부에서 공장을 점거하고 공장평의회 혹은 소비에트를 건설하는 운동이 휩쓸었다. 그러나 자본가 권력을 최종적으로 타도하지 못함으로써 운동은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권력의 장악을 초점에 놓고 실천한 것이 아니라 평의회라는 형태에 대한 집착 즉 운동을 위한 운동이 좌파세력을 말아먹고 무솔리니의 등장을 도왔다. 지금도 튀니지는 세력이 온존한 군부와 임시정부 그리고 노동자계급(지역노조)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운동 간의 이중권력 상황에 놓여있고, 그간의 투쟁이 독재자의 하야와 집권당의 해산이라는 성과가 있음에도 군부의 힘은 여전히 온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여러 사업장이나 지역에서 공장위원회나 평의회를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군부의 무력화를 선동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대중의 요구와 투쟁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중권력 시기를 전후하여 좌파는 과도한 주장과 행동으로 대중 속에서 고립되지 않으면서 나아가 반동들의 반격의 틈을 주지 않으면서 투쟁을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 초점이지, 투쟁의 결과로 쟁취되는 형태가 이행요구로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업기밀의 공개나 노동자 통제 역시 절박한 요구가 아닌 개량적 요구로서 이중권력의 시기 투쟁의 초점을 잃어버리고 김빠지는 슬로건이 되기 쉽다. 대중은 미리 연습하지 않아도 투쟁 속에서 혹은 권력을 쟁취한 후에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자신들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들이 예행연습을 위해 중요하다는 이유로 이행요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계적 발상이다. 3살 때 걷기 연습을 안 시켜서 8살 때 못 걷는 경우는 없다. 점거나 파업이 심각한 상황이 되면 자위대나 정방대는 강령에 넣지 않아도 만든다.
 
이처럼 트로츠키의 이행기강령에는 최소강령의 의의를 파악하지 못한 채, 혁명적 격변기에 나타나는 전술과 조직형태를 가교의 역할을 할 실천강령으로 격상시킴으로서 투쟁에 기여는커녕 장애가 되는 단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박석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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