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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3호>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함께 만듭시다!] 내 사랑 민주노조를 넘어서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건설하자!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함께 만듭시다!]

 

내 사랑 민주노조를 넘어서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건설하자!

 
민주노조가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노조만 바로세우면 그래서 그 민주노조운동에 동의하는 제세력들을 모아낼 수 있다면 노동조합만으로 현실의 계급투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던 시절도 있었다. 이 생각은 옳았는가?
 
지나온 역사는 그것이 옳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의지가, 정신이 옳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라 불리는 운동의 한계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옳지 않은 방침이었다.
 
첫 번째로 그 운동의 한계를 보여준 것은 바로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에 동의하였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였다.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조직체였고 운동이었다. 우선 그 운동은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과 같은 몰계급적인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전국적인 선진노동자 결집체를 형성하여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기 위하여 분투하였다. 하지만 현장조직대표자회의 운동은 노동조합을 전제로 하는 현장조직운동의 자기내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당연한 귀결로 그 운동은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을 결정하여야 하는 시기마다 조직적인 분열을 거듭하였고 결국 해소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IMF와 김대중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진행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은 그 공격의 성격이 총자본의 총노동에 대한 자본축적의 재편을 위한 공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원인에 대한 공격이 아닌 결과에 대한 방어에만 머물러 있음으로 인하여 전 계급적인 반격과 반격을 넘어서는 공세를 취하지 못하였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벌어진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이후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요구하였다. 그 반성은 현재의 노동조합운동만으로는 기간의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를 지키기는커녕, 노동자 자신의 생존권마저도 지켜낼 수 없다는 뼈저린 반성 이였다. 그리고 일련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의 패배는 민주노조운동 진영 전반의 연쇄적인 후퇴와 양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과를 놓고 싸우는 노동조합 운동이 아니라면, 이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에 대하여 싸워야 한다면 어떤 운동이어야 하는가? 문제는 개별자본 마저도 자본주의 체제의 연관 속에서 노동에 대한 공세를 취한다는 것이며, 현재의 착취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전체 자본가 계급의 기획과 의도 속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저들의 공세가 이러할진대 우리의 창끝은 어디를 겨눠야 하는가? 현재의 현장통제와 조직력의 와해, 제반권리의 후퇴, 일상적인 구조조정의 진행 등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이러한 제반의 문제를 야기하는 지금의 체제를 바꾸어내는 투쟁을 전개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투쟁은 늘 다람쥐의 쳇바퀴처럼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계급정치를 통해서만이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바꾸어낼 수 있다. 계급정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당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 당은 어떠한 당이어야 하는가? 자본주의의 문제를 개선하면 된다고 하는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과 같은 의회주의 사민주의 정당인가? 아니다. 당은 자본주의를 근본에서부터 갈아엎는 사회주의 노동자 당이어야 한다.
 
노동자에게 자본주의는 고쳐 쓸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노동자에게 자본주의란 오직 그것의 폐절과 새로운 세상의 건설외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어낼 첫 걸음,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만이 지금의 우리 노동자에게 오직 유일한 대안이다.
 
이제 우리는 민주노조 사수와 건설을 넘어서 노동자계급의 정당, 노동자계급의 사회를 건설하기위해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나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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