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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20호>노동자정치세력화! 그 역사와 현재, 대안

 

노동자정치세력화! 그 역사와 현재, 대안


96·97 총파업의 염원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96·97 노동자총파업은 노동자정치세력화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서겠다는 정치적 독립선언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세를 몰아 노동자계급은 97년 대선에서 노동자 독자후보(권영길 후보) 운동을 전개하였고, 2000년에는 노동자정당인 ‘민주노동당’을 건설하였다. 
 

물론 민주노동당 창당 과정을 주도한 노선은 의회와 제도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을 정치세력화의 내용이자 목표로 삼는 ‘의회주의 노선’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 문제점이 분명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건설은 보수야당(자본가계급의 정치 분파인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에 머물렀던 노동운동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민주노동당 국회 입성
실종된 노동자정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에 근거해 급성장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이 국회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운동(진보정당 운동)은 노동자 계급정치(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며 노동자를 정치의 주체로 세우는 정치)와 점점 더 멀어졌다.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여당)의 4대 개혁입법활동의 뒷꽁무니만 따라다녔다. 2006년 ‘비정규악법과 노사관계로드맵 저지’ 투쟁 국면에서는 현실적 차선책이라는 이유로 비정규보호법(비정규악법)안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수정안에 합의했다. 정권과 자본이 비정규직 확산의 책임을 ‘대기업·정규직 이기주의’ 탓으로 돌리는 대공세를 진행할 때, 민주노동당은 자본과 정권의 논리에 휘둘렸다. 정규직의 양보와 시혜에 기초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라는 ‘사회연대전략’을 제출한 것이다. 2007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는 민주노동당이 ‘친기업당’이라고 발언하는가 하면, 민주노동당 당대표는 예전 노사정 야합을 한 한국노총 지도부를 비판한 것에 대해 사과하였다. 모두 표를 의식한 행보였다.
 

동시에 대중운동 내에서는 자신의 힘(투쟁)으로 요구와 권리를 쟁취하기 보다는 국회의원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대리주의 정치(의회정치)가 노동자정치를 대체해 갔다. 이는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의 배타적 지지방침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당원들은 선거 때 몸대도 돈대는 정치활동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민주노총은 조직의 정치투쟁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은 방기한 채,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모든 걸 대신하는 대리주의를 양산하였다.
 

그 결과 2007년 대선 전에 이미 현장에는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냉소가 퍼져나갔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조합원의 지지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참패한 것은 이러한 민주노동당 활동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MB정권의 등장과 진보대통합운동
 

2007년 대선 직후 민주노동당은 대선 패배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을 거쳐 민주노동당-진보신당으로 분당되었다. 동시에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되면서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집권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런데 MB집권시대가 열리면서, 광범한 ‘착시’와 ‘망각’현상이 노동자민중운동 내에 팽배해졌다. MB 정권에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제 권리가 대거 파괴된 것은 2008년 말부터 본격화된 미국 발 세계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자본과 국가권력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계급적 분석을 대신한 것은 절대 악인 MB라는 감성적 인식이었다. 그 결과 MB집권시대만 끝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양 얘기되었다. 김대중·노무현정권 시절에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계급적 본질과 행태는 잊혀졌고, 민주주의와 노동자민중의 벗으로 칭송되었다.
 

그 결과, 반MB를 위해 김대중·노무현의 후계자들(민주당, 국민참여당)과의 공공연한 연대가 노동자정치를 대체했다. 선거 때마다 야당에 대한 신비판적 지지론인 ‘민주대연합’이 노동자정치의 대세로 정착하였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방침 → 진보정당과 민주당·국민참여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한 민주당·국민참여당 후보로의 단일화 → 민주노총의 민주당·국민참여당 후보 지지’라는 경악할 만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편,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제기한 ‘진보대통합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진보정당의 분열이 현장을 분열시키고 있고, MB에 맞선 진보정치세력의 단결이 절실하다는 것이 근거였다. 통합운동은 민주노총, 진보양당(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중운동을 포괄하면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9.4 진보신당 당대회 부결, 9.25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국민참여당 참가에 대한 부결로 당 통합을 통한 진보‘대’통합운동은 좌초하였지만, 여전히 통합진보정당이 노동자정치의 대안인양 왜곡되고 있다.

 

진보통합운동, 노동자정치의 우경화와 파탄을 보여줄 뿐
 

문제는 통합진보정당 건설운동이 이전부터 진행된 노동자정치의 ‘우경화’와 ‘탈계급화’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10년의 역사가 보여준 문제점들, 즉 의회주의 정치세력화와 노동자정치의 실종, 배타적 지지방침이 가져온 폐해에 대해선 눈감은 채, 계급성을 탈각한 ‘묻지마 통합’만이 살길이라 압박했다. 민주노총과 양대 진보정당이 통합정당을 만들기 위한 합의 내용(5.31합의와 8.28합의)을 보면, 통합진보정당의 목표는 ‘2011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확보,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교체’로서, 자본가정당인 민주당·국민참여당과의 선거연대를 공공연히 표방하고 있다. 이는 통합진보정당의 목표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역량의 강화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자, 진보통합당이 민주대연합의 쌍생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이,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까지 통합진보정당에 참가시키려 했다. 자본가정당과 하나의 당을 만들겠다는 경악스러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를 위한 사전준비로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이라는 민주노동당 강령조항까지 삭제했다. 민주노총은 국민참여당 참가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고 사실상 침묵했다. 9.25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국민참여당 참가가 부결되었지만 2/3에 육박하는 숫자가 찬성했다. 국민참여당 참가에 반대한 세력들 다수는 국민참여당과의 선 통합에 반대했을 뿐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진보정당운동의 우경화를 심각히 보여준다. 이는 총·대선 승리를 위해 통합정당의 덩치를 키우는 게 목표가 된, 노동자정치의 왜곡과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의 끔찍한 귀결을 말해주는 것이다. 통합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더욱 우경화된 진보정당일 것이고, 노동자정치의 실종만을 보여줄 것이라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대안은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길찾기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일치시키려는 탈계급적 정치, 의회 진출과 집권이라는 목표 아래 노동자 계급정치를 왜곡하고 파탄내는 의회주의 진보정치는 노동자계급의 대안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올곧게 대변하고 실현하며, 의회진출과 집권을 위해 노동자정치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노동자대중을 투쟁과 정치의 주체로 세우면서 자본주의 모순을 완전히 극복하는 정치적 전망과 대안을 세워야 한다. 사노위가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이 현 시기 노동자정치의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사노위만의 과제가 아니다. 노동자정치운동의 우경화를 막아내고자 하며, 노동해방을 염원하는 모든 동지들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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