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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28호>민주노총 중집이 강행 결정한 정치방침을 현장에서 무력화시키자

민주노총 중집이 강행 결정한 정치방침을 현장에서 무력화시키자

 

지난 2월 8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대의원대회의 안건 사항인 선거방침을 강행처리하였다. 핵심 내용은 대의원대회에서 제출된 사업계획에 속한 선거방침이다. 중집의 강행 처리는 다음과 같은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에 속한 선거방침을 분리하여 정치방침과 함께 안건화 된 배경을 정면으로 뒤집는 행위다. 반MB의 정치질서 속에 실종된 노동자계급정치의 상황에서 2012년의 정치방침, 선거방침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민주노총 중집이 자신의 권한으로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둘째, 민주노총 중집에서 결정된 “反MB 反FTA 1:1구도형성(야권연대)”은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을 전제하는 것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후보를 지지하는 것과 같은 계급적 혼란과 분란을 만드는 것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셋째, 민주노총 중집에서 결정된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투표”는 사실상 노동자정당이 될 수 없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나 다름이 없는 것으로, 민주노조운동을 탄압하였던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나 다름이 없다. 피어린 투쟁의 역사와 열사의 정신을 모두 배신하는 행위이다.

 

민주노총 중집은 끈질기게 야권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선거구도와 정치구도를 조장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노총과 다를 바 없는 정침방침인데, 이러한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김대중 노무현이 집권한 시기에 대한 반계급적 해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기 많은 열사와 노동탄압 그리고 노동악법이 형성되었음에도 노동조합 고위 간부에게는 ‘좋았던 시절’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 출신의 고위 간부가 직접적으로 행정기관이나 의회에 진입하였던 시기일 뿐 아니라, 실제 일상적으로 제한적 수준이나마 정부 또는 여러 기관과 거래 또는 협상이 가능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시기 자본의 탐욕이 정부로 인해 절제되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98년 이후 대자본의 독점 및 집적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자본의 수탈 양상이 격화된 것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것은 노동조합 고위 관료에 대한 태도가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노동조합 고위 관료는 적당한 수준에서의 자기 정치력 박탈과 노동에 탄압과 자본의 수탈을 동일시한다. 즉 자신들의 정치력의 복원이 현장을 살릴 수 있다는 망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고가 바로 김대중 노무현 집권 시절에 누군가의 언급과 같이 ‘투쟁의 근육’을 쇠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투쟁의 근육’이 쇠잔해지다보니 이명박 정권의 탄압이 현장에서는 그 파괴력이 더욱 크게 나타나거나,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전임자 임금금지와 복수노조의 교섭창구단일화로 인해 현장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는 소위 ‘민주진보정부’시기에 집권여당이 가장 줄기차게 주장한 내용이다.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자의 투쟁 의지와 실천을 무력화하는 중요한 기제였던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MB만 아니면 된다는 미신적 수준의 정치 관념으로 인해 1:1 구도(야권연대)라는 발상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이는 87년 이후 노동자계급 스스로를 정치주체화하려는 노력에 족쇄역할을 하였던 비판적 지지의 망령의 부활이다.

현장에서는 질문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인가? 집권여당의 재집권을 방치하자는 것인가? 힘이 없으면 현실을 인정하고 연대/연합해야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이 집권해서 깽판치면 그때 또 싸우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동지들 생각해보라! 투쟁과 정치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꾸로 스스로 노동자계급의 주체성을 상실하는 것 역시 하루아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꾸준한 우경화의 결과가 통진당을 만든 것이고, 꾸준한 투쟁의 방기가 정치를 위탁하게 한 것이다. 때문에 현재 해야 것은 스스로의 주체화이다. 현실의 투쟁의 확대와 깊이가 MB뿐 아니라 이름만 바꾼 또 다른 MB를 막아내는 것이다. 현실 선거에 개입이 필요하다면 노동자의 요구를 가진 자본주의 자유주의 분파와 손잡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후보를 만들면 된다. 늘 국회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제도정당들은 고집하지만, 계급투쟁이 사그라졌을 때 정치는 국회에만 있는 것이다. 계급투쟁이 고양되는 순간 정치는 여의도를 벗어나 현장과 거리에 있고, 실제 한국사회의 주요한 변화는 그러하였다.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그동안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대의마저도 저버린 결정이다. 현장에서 이 정치방침을 무력화시키지 않는다면, 민주노총의 정치는 한국노총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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