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노위 주간 초점>폭등하는 기름값, 그 대책은?

폭등하는 기름값, 그 대책은?

 

 

폭등하는 기름값, 배를 불린 정유사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기름값이 폭등하고 있다. 휘발유값이 리터당 2천원을 넘어섰다. 경유값도 1천9백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유가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소비자들이 고유가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화물운수 노동자들은 직접비용 60%를 차지하는 살인적인 고유가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해서 4월 23일 건설노조와 화물연대가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고, 유류세 폐지,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등 공동 요구안을 발표하면서 총파업을 포함한 시기집중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그런데 정유사들은 배를 두둑히 불렸다. 작년 한 해만 SK에너지는 1조 2,300억, GS칼텍스는 2조, S-OIL은 1조 6,0000억, 현대오일뱅크는 6,174억 원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남겼다. 4월 12일 한국거래소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10대 재벌 상장사 중 2010년보다 영업이익이 증가한 곳은 4곳, 그 중에서도 SK그룹이 영업이익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유가상승으로 인한 사상최대 매출 및 영업이익을 올린 에너지관련 계열사 덕분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4월 19일 고유가 대책을 내놓았다. “석유제품시장이 정유4사(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의 수직 계열화된 유통구조로 경쟁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기존 4개 정유사 독과점 형태의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경쟁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한 ‘석유제품시장 경쟁촉진 및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소비자단체들은 유류세 인하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과연 어떤 대책이 맞는 것인가? 그리고 고유가 시대를 맞아 노동자민중들은 등골이 휘는데, 정유사들은 왜 계속 배를 불리는 것인가?

 

민간독점자본의 정유사 지배와 정부의 친자본 정책이 고유가를 불러

 

최근의 고유가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그러나 고유가 추세는 원유의 특징(석유를 대체할 대체 에너지원의 취약함)이나 수요의 지속적 확대에 있지 않다. 4월 19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의 고유가 추세는 원유 파생상품 시장의 투기적 수요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부르주아 지배세력조차 ‘투기’를 고유가의 주요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미국발 세계공황의 직접적 계기가 된 전세계 금융투기자본은 공황 이후 각국 정부의 양적 완화정책과 맞물려 새로운 투기처로 원유시장으로 몰렸다. 이것이 국제적 고유가를 낳고 있는 근저적 원인이다.

 

그런데 국내 기름값 행진은 국제유가 상승 외에 다른 요인까지 결합되어 있다. 그 결과 국내 유가는 국제가 이상으로 치솟고 있는데, 이 근저에는 무엇보다 ‘국내 민간정유사의 독과점 구조’가 있다. 한국의 정유사는 서로 짜고(담합해) 석유제품 가격을 높게 유지하면서 소비자를 지갑을 털어 폭리를 취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국제유가가 오르거나 환율이 급등할 때면 바로 유가인상을 서두르고, 반대일 경우엔 그만큼 국내 가격을 내리지 않는 수법(유가의 비대칭성)을 쓰는 한편, 담합행위를 통해 막대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여러 차례 정유사들은 정부(공정위)로부터 담합행위가 적발된 바 있다. 2007년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4대 정유사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액은 2,400억원으로 추정되었다. 2011년 5월에도 공정위는 주유소 확보 경쟁을 제한하기로 담합한 4개 정유사에 4천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그런데도 유가의 비대칭성과 정유사의 담합은 끝나질 않는다.

 

정부의 환율정책 역시 한 몫하고 있다. 정부는 수출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2008년 이후에도 고환율정책을 실시했고, 이것이 원유 수입가를 높이면서 국내 유가 및 물가폭등을 부추키고 있다. 그 결과는 정유사를 비롯한 소수 수출대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취하지만, 대다수 노동자민중(소비자)은 고유가를 비롯한 고물가에 허덕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유산업의 민간독과점 구조 형성 과정

 

한국 정유산업의 독과점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한국의 정유산업은 정부가 1962년 설립한 대한석유공사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1980년대 초 정부는 석유공사 민영화를 결정하고, 선경그룹에 유공을 넘기게 된다. 그 결과 재계 순위 10위권 밖에 머물던 선경은 단번에 5대 재벌로 뛰어올랐고 공기업이었던 유공은 사기업인 SK가 된다. 더불어 1960~70년대를 거치며 정부의 지원과 특혜 아래 호남정유(현 GS칼텍스), 경인에너지(SK인천정유), 한·이석유(에쓰오일), 극동석유공업(현대오일뱅크)이 성장하면서, 국내 정유업계는 독과점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한편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류 제품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은 1990년대 들어 급속하게 변하게 된다. 1997년 유가가 완전 자율화되면서, 정부 규제없이 시장(기업)이 유가를 결정하는 완전자유화 체제로 바뀐다. 이는 1990년대부터 불어닥친 자유화·규제완화정책의 일환이었는데, 시장을 통한 유가 결정은 유가를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정부의 선전과 다르게 정유사들의 담합을 통한 고유가만 불러왔다.

 

게다가 이에 대한 정부대책이란 게 고작 공정위의 독과점 조사 및 고발 정도다. 이 조차 실효성이 없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을 볼 때 거듭 확인되고 있다. 정유사는 적발되더라도 과징금을 납부하고 이를 다시 소비자가에 전가하면 됨다. 그래도 소비자는 이들 정유사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기름값이 오를 때마다 정부는 담합에 대한 벌금 부과 조치 등을 취하지만 거대민간 정유사의 담합행위를 통한 막대한 폭리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유가는 ‘사회적 통제’ 없이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인 에너지 부문을 함부로 민영화한 결과 나타난 폐해인 것이다.

 

빗나간 처방전 1 - 삼성의 진입 허용과 경쟁 촉진

 

고유가가 지속되자 최근 정부가 범부처 합동회의를 통해 고유가 해법을 내놨다. 정부는 4월 19일 ‘석유제품시장 경쟁촉진 및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기존 4개 정유사 독과점 형태의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경쟁 활성화를 통해 고유가를 잡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석유제품시장에 정유4사 이외 신규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정유사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따른 불공정행위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SK에너지, GS칼텍스, 에스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가 과점하던 던 국내 정유시장에 ‘삼성토탈’이 신규 사업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알뜰 주유소, 석유 전자상거래, 혼합석유 판매 활성화’ 등을 통해 정유사의 주유소에 대한 유통 및 지배구조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유류세 인하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유류세 인하나 유가보조금 정책은 유류소비 추가 증대와 유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22일 기획재정부는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통구조 개선과 경쟁 활성화 등 시장친화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정부의 고유가대책 기조가 무엇인지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런 정부대책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알뜰 주유소, 석유 전자상거래, 혼합석유 판매 활성화’ 등은 정유사의 자율적 참여와 협조없이는 활성화되기 힘들다. 이미 독과점 체제를 형성하면서 담합을 통한 고유가와 국내 주유소의 90%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정유사들이 가격인하를 위한 자발적 참여와 협조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하늘에서 별따기다. 실제 기존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고 있는 알뜰주유소는 실제적인 가격 인하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석유제품 유통가격을 투명화하겠다며 야심차게 개설한 석유현물 전자상거래시장도 3월 30일 개장 이후 18일까지 거래일 동안 총 거래건수가 고작 20여건(하루 평균 1.5건)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기름값 인하를 위한 경쟁체제를 만들고자 또하나의 재벌인 삼성의 진입을 알뜰주유소 기름 공급이라는 명분으로 허용한 것이다. 삼성그룹이 '노른자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유산업에 당당하게 진출하게 된 것이다. 삼성토탈이 알뜰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면서 향후 국내에 주유소를 직접 설치해 운영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게다가 알뜰주유소 확대 등으로 인한 휘발유 가격의 인하폭은 리터당 30~40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여, 휘발유 가격의 2%가 채 안 된다. 결국 정부의 고유가대책이란 삼성의 정유시장 진출과 경쟁활성화라는 전형적인 친삼성·친자본 정책일 뿐이다.

 

빗나간 처방전 2 - 유류세 인하

 

유류세를 내리는게 답이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맞는가?

한국납세자연맹은 고유가 원인이 유류세라며 인하를 강력 촉구하고 있다. 유류가격의 절반 정도가 정부의 세금이며, 정부정책들의 실효성 논란 탓에 단기적으로 국내 유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유류세 인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주유소협회도 정부의 유류세 인하를 강력히 주장했다. "진정한 고유가 대책은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유류세 인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런 주장은 언뜻보면 쉽고 간단한 방법처럼 보인다. 게다가 자본에게는 특혜를 주면서 세금을 통해 노동자민중의 호주머니를 터는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정당한 면도 있다. 그러나 이 대안은 고유가의 책임을 국제유가와 유류세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는 정유사의 이해와 일치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소수 독점자본의 정유산업에 대한 지배 그 자체를 문제삼지 않고, 유류세를 핵심원인으로 제기하는 것은 의도와 다르게 정유자본의 폭리문제를 전혀 건드릴 수도 해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안은 정유사 국유화와 민주적 통제

 

유가를 시장의 수요와 공급체계에 맡길 경우, 고유가 문제를 자본간의 경쟁구조 강화로 해결하려 할 경우, 현재와 같은 고유가로 인한 노동자민중의 피해와 정유사의 폭리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뀔 수 없다. 석유제품 원가를 전혀 공개되지 않는 정유사, 담합을 통한 폭리를 취하는 정유사의 지배구조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 노동자와 민중이 기름값 폭등에 근심이 늘어가도 정유업계는 유가 급등의 부담을 사회에 전가시키는 구조를 끝내야 한다.

 

정유사들에게 기업정보(비밀)를 철폐(공개)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담합을 통한 정유사의 폭리 전액을 환수하고, 환수된 전액을 유가 인하 및 보조금 지원으로 사용해야 한다. 나아가 거대장치산업이자 기간산업인 정유산업을 소수 자본의 배를 불리는 산업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을 위한 산업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최근 수년째 만성적인 에너지난에 빠진 아르헨티나 정부가 십여 년 전 민영화시켰던 석유회사를 다시 재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한 것처럼 말이다.

 

국유화에 그쳐서는 안된다. 국유화된 정유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국유화된 정유산업에 생산-유통-소비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통제체제를 도입함으로써, 고유가와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끝장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