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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6호> 피임약 재분류 방안,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사회적 논란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6월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대신, 이미 지난 40년간 별다른 문제없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사전피임약을 갑자기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해, 엄청난 사회적 논란이 벌어졌다.
일부에서는 피임약 논란을 두고 의․약사 간 이권 경쟁에 따른 나눠주기식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낙태를 반대했던 일부 종교단체들과 의료인들은 ‘생명권을 부정’한다며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고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보장을 주장하며 피임약 이용을 쉽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달라지는 피임약 정책
 

사실 피임제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원칙없이 갈지자 행보를 거듭해왔다. 이는 국가의 인구정책에 의해 규정받기 때문이다. 인구정책은 여성을 출산도구로 인식해왔기 때문에 여성의 임신·출산 결정권과 건강권은 국가 정책에서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예컨대 얼마 전까지 인구정책에 따라 낙태를 사실상 허용했던 정부 정책은 최근 몇 년 사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국가 차원의 낙태단속을 벌인다. 피임약 역시 마찬가지다. 1960~70년대에는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보건소에서 무료로 나눠주기까지 했다. 그러다 국가의 인구조절정책 중단과 IMF 경제위기 이후 예산 삭감을 이유로 콘돔 및 피임약의 무료공급 사업을 중단했다.
30년이 넘도록 국가가 무료공급하기도 했던 사전피임약을 갑자기 부작용 문제를 근거로 여성의 건강권을 위해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그것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전피임약의 부작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44년간이나 의사 처방 없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방치한 것인가?

 

 

피임약 정책, 여성의 건강권과 결정권을 보장하라
 

이번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제대로 가시화되고 있지 못하다. 이번 재분류 과정에서 식약청은 과학적(?) 근거와 외국 사례를 토대로 안을 냈다고 한다. 하지만 피임약 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피임을 둘러싼 여성의 불평등한 경험이며, 여성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 여성의 건강권과 결정권이다. 왜냐하면 피임에 대한 책임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모두에게 있지만 피임약을 사용하는 주체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제약자본의 이윤, 의약사의 전문성과 독점권 유지가 우선 고려대상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쉽게 살 수 있었던 약이 의사 처방을 받아야 하는, 건강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문의약품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의 권리만큼 임신을 중단하거나 피할 권리 또한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피임약 정책은 단순한 의약품 차원의 전문성과 과학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여성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구조를 바꿔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의 건강권과 결정권 보장이 우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민중들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공의료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그 속에서 여성·남성 모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하고 확실한 피임제가 보급되면 된다.
이 관점 아래서 바라봤을 때 피임약은 여성이 그 사용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낙태와 피임문제 모두에서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 권리다.


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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