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람.은.취.약.하.다.

우리 동네 마트에 손으로 만들어서 파는 두부 가게가 생겼는데

두부를 사랑하는 나는, 그 뜨끈뜨끈하고 말캉한 두부가 뽀얗게 뽑아져 나오는 광경이 너무 좋다.

그 놈들은 고이 봉지에 쌓여 바코드가 붙는데 이런 식이다.

 

미국산 콩 두부 1,000원, 국산 콩 두부 1,780원.

 

그러면 나는 WTO 홍콩 시위도 선명하고, 두 농민의 영정도 아직 채 가시지 않았지만,

아니 그래서 한 세 번쯤 고민하다가 1,000원짜리 두부를 사 든다.

 

이런 선택쯤이야 맨날 맨날 마주치지만, -_-;;;;

사귀는 사람과 1,000원 짜리 두부를 집어드는 심정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참 난감하다. (스위리, 미안해! 자기가 1000원 짜리 두부가 되다니!)

 

나는

여우가 뜨끈뜨끈하고 말캉한 두부가 뽀앟게 뽑아져 나오는 광경보다,

그 두부들보다

백만배나 더 좋은데,

하루키식으로 말하자면

봄날의 새끼곰보다 더 좋은데

 

여우는 '시위해서 차 막혀'라고 지랄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더라도

네이버에 블로그를 만들어도 진보넷에 블로그를 만드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고,

성매매 이야기를 하다가 '선택'이라는 단어를 들먹여서 나를 엿먹이기도 하고 (죽었어! 여우!!!)

맨날 그 뭐시냐,

'선진국' 냄새를 푹푹 풍기는 단어들로 사람을 벙찌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다... -_-;;;;

한마디로, 여우는 '교육받은 선진국 중산층'의 띠거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예를 들어 나보고 열공해서 어서 빨리 'contribute to the world' 를 하라고 말하는 식이다. 

(무슨 노래 가사 쓰냐 -_-;;;)

 

여우는 '엠네스티'나 '그린피스'에 다달이 기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건전한 시민정신'을 증명하고는 하며,

여봐라, 라는 태도는 아니더라고

자신의 'contribution'에 나의 부비부비 칭찬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여우는 어쩔 때 보면 '맥락없이 뛰어노는 자유주의자'로서, 아주 교양도 넘치시게 말하고는 했다.

"채식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개인의 선택 나름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를 위해서 야채요리를 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고기요리를 하는 것이

세상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아주 'generous'한 방법인냥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많지만, 좋은 점도 많으므로 나는 자본주의를 지지한다"는

말도 하고 (오메오메!)

쿠바 여행시 쿠바에서 발견되는 야리꾸리한 광경을 자신의 의견을 증명하기 위해서

열심히 인용했다. "저런 점 때문에 사회주의는 실패한 것이 아닌가..." 쩜쩜쩜.

그래서 나는 여우의 북미식 '건전한 시민정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장실에서 똥 끊고 나온 사람처럼 영 찝찝해지면서

 

여우, 랑 사귀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 묻게 되는 것이다.

 

 

  

 

 

 

 

 

 



영, 허접스럽지만

엄마아빠가 설에 올라왔을 때 내려갈 차표를 사주지 못하는 주머니 사정의 민망함과 미안함,

둘둘 치킨을 지나갈 때마다 코를 킁킁거리다가 깜딱 놀라는 새가슴,

해면 생리대를 쓰거나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는 것,

뭐 이런 것들, 이런 것들,

채식을 시작하고, 여성노동자회에서 반상근으로 일하면서 삼십만원을 받고,

뭐 이런 것들, 말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선택'했는데

...

나는 여우를 보려 가려고 비행기표값을 모으기 위해서

방학이 끝나면 여성노동자회를 그만 접기로 결정해야 했다.

 

 

 

그래서 '미워 죽겠다, 여우' 라는 식의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여우가 이틀 전에 쓴 메일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나도 너랑 같이 채식할까봐'

 

정말이지,

뜬금없는 말이었다.

 

나는 여우에게 채식을 해 봐, 라는 말은 커녕

여우가 먹고 있는 고기를 한번도 쬐려본 적도 없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저 나에게는 채식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블라블라~' 야, 라고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내 취향을 존중해줘, 라는 식의 정말 소심하고 가소로운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울엄마처럼 "너는 고기를 먹어야써, 그래서 건강해져"라고 사골국물을 들이미는

일이 벌어지면, 여우고기라도 먹고싶어질까봐 미리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여우는

자기가 많이 변했으며, 많이 변하고 있고, 많이 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냥, 어린 왕자가 된 기분이 들어서 -어린왕자와 여우 ^0^

아주 행복해졌다.

 

여우와의 관계가

어쩔 수 없이 1,000원짜리 미국산 콩 두부를 사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그 두부를 가지고

맛난 두부튀김을 해 먹을 때처럼,

마구마구 포만감을 주고 있다.

 

여우가 또 나를  똥 끊고 화장실에서 나온 것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시츄에이션 ^^)

나는 여우가 너무 좋아 죽겠으니

잘 해 봐야 쓰겠다.^^

더군다나 하워드 진처럼 말처럼 사람은 취약해서, 매력적인 존재가 아닌가.

여우는 오십 삼년 동안 고기를 먹다가 처음 채식을 하겠다고 하는데 말이야^0^

 

"그러나 교조가 붕괴되면 희망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자라난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개방적이고,

그들의 과거로부터 현재의 행동을 정확히 유츄할 수 없으며,

우리 모두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태도에 취약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취약성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모든 종류의 가능성을 낳긴 하지만, 취약성의 존재 자체는 흥분되는 일이다.

그것은 단 한 사람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되며, 어떠한 생각의 변화도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될 수는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p 252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