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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6/20
    마더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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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5/20
    태안, 삼성, 토요일밤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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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2/03
    박원순강연회,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상상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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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1/17
    자본주의와 효도의 상관관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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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12/10
    buy nothing da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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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10/22
    비온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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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10/09
    자전거를 타기 너무 거시기하잖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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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9/30
    당신의 화장품, 안녕하십니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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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9/29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의 투성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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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9/19
    서울성곽길 걷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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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나이트

 

Mother night

커트 보네거트 지음

 

<어느 일부일처주의자 카사노바의 회고록>이 왜 '반전소설'에  나오는지 쓴 커피를 맛난게 마시는 느낌으로

이해하게 되는 문장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블랙유머'라는 단어의 사전적 이해를 넘어 실용 사용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책은 실험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기록에 담긴 실험,

즉 한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매혹시키는 자의식적인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비록 이 세상에 만족스러운 것이 전혀 없을지라도

몸과 마음을 다해 서로에게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p 174

 

"네 모습을 봐라! 맨손으로 악을 물리치려고 왔지만, 지금은 버스 옆구리에 치인 사람꼴로 비참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건 자업자득이다! 그리고 순수한 악을 물리치겠다고 전쟁을 일삼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꼴이 된다.

싸움을 벌일 이유는 많다.

하지만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자기와 함께 적을 증오한다고 상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

p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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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삼성, 토요일밤에

http://www.youtube.com/watch?v=34mM8RwRKqE

 

청계천 올로케 말고 '반쯤' 로케할 때, 촛불 1주년 즈음이라 전경들이 쫘악 퍼져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아이팟 이어폰 꽂고 미친척 춤춘 칡, 역쉬 자기는 우리만의 김완선이여~~ 에헤라디야.

많이 많이 봐주세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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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강연회,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상상력

오후 두시, 밖은 봄이 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핫초코를 가득 든 텀블러를 한 손에 들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평일, 오후의 거리를 걷기 위해 강연회에 갔다.

오후에 사뿐히 걷는 산책, 그런대로 기분좋은 매섭지 않은 2월의 바람, 강연회가 열리는 대학로의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

인간에게는,

나처럼 게으른 '고양이 형' 인간에게는 특히,

일주일에 하루쯤의 오후 산책과, 또 다른 하루쯤의 낮잠 시간(시에스타)이 필요하다.  (트에쟁!! 투에쟁!!! 쟁취!!!!)

 

오후 산책과는 비교도 안 되게 퀴퀴한 강의실이었으나,

강의를 들으면서 단체에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라는 아이디어도 생겨나고 짱짱하게 힘도 나면서 

뇌수에서 콜라의 탄소 거품이 터지는 것처럼 시원했다.

강의가 끝나고 화장실 거울로 얼굴을 보니, '빨간 볼'이 되어 있었다. 또, 혼자 흥분하고 좋아라 하고 있었등가. -_-  

 

그것은 단지 박원순이라는 '잘난' (꼬운 의미가 아니라 진심으로) 분이 보여준 여러가지 사례들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한 이야기는 주제가 투 머치 거시적인만큼 일반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NGO는 재정을 포함해 지속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며, 80년대 운동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아젠다와 소통방식을 개발해야 하고, 담론투쟁과 동시에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보여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나쁘다, 반대한다'에서 벗어나 영국의 재개발 지역 주민들의 사례처럼  지역 주민들 스스로 개발 회사를 차려 자기 지역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대항하기.         

또는 기업적 상상력으로 쌔끈한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생협처럼 농촌과 도시의 살림을 이어가면서,
수출지향적인 경제체제를 우리들 사이의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바꾸어가기.

이러한 노력을 '소호(소상인) 도시' 라는 프로젝트로 엮는 일본 지역처럼 지자체와 정부와 '적절한' 관계를 만들기.  

 

-처절하게 반성하고 지역으로 가는 것, 그리고 자본가 냥반처럼 말씀하자면 농촌은 '블루오션' -_-, 농촌과 접속하라.

전라도닷컴은 광주 대인동 재래시장으로 사무실을 옮겼으며, 최근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오학년 아이들이

'무조건' 일주일 정도 농촌에서 지내고 오는 것이 정규 교과과정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또한 젊고 아직 일이 정해지지 않은 청년들이 지역에 내려가 마을조사사업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을 기록하기,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  

 

-'학생' 운동권이 사라진 시대에, 한탄하지 말고 모든 국민을 운동권으로 만들자는 선동.

그 동안 시민단체와 안 친하다고 여겨졌던 노년층, 은퇴자, 주부,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사업들을 만들기.

능력있고 시간있고 조금 다가가면 마음까지 생길 듯한 은퇴자들을 시민단체 활동으로 엮기.

(예를 들어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단체에는 은퇴한 광고업계 종사자가 재취업하여 단체들이 잘 못하는 영역인

홍보를 이끌어간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한강의 기적 세대들이 생을 정리하는 시기인 지금, 유산의 1% 기부받아서 공익활동에 쓰기.

 

이런 하나하나의 이야기보다는,

이런 것들을 함께 하고 이해하고 좀 더 나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서 옹기종기 강의를 듣는 그 분위기,

그런 운동을 오랫동안 해 온 박원순 아저씨의 '바닥을 모르는 낙관주의' 같은 것들이 좋았다.

"운동이 언제 쉬운적 있었는가.

나는 시민운동 하다가 밥 굶었다는 사람 못 봤다. 부부가 다 시민단체 활동가여도 '나름' 자알 살기도 한다.

그러니까, 바닥에서부터 운동을 하자. 대신 우리, 대안을 만들어서 이기는 운동을 하자."  

뭐, 변호사라는 자본을 가져서 그래,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시민운동을 통해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오고 하나의 사업을 궤도에 올리고 평생 좋아하고 자기 스스로 가치있다고 여기는 일을 열정적으로 해 온 사람만이 내뿜는 그 에너지가, 부럽고 좋았다.  

 

근본적인 대안이라기보다는 '시장' 체계 안에서의 용트림이라고 비판할 꺼리, 분명히 있다. 

지금의 환경건강운동이나 페어트레이드 운동이 결국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구분 짓기'로, 

더 좋고 더 건강하고 게다가 윤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착한 소비'가 문화적 소양을 갖춘 부자들 위주의 트렌드가 되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래도 뭐, 오늘 강연, 나는 좋았다.

'저소득층도 유기농을 먹을 수 있는 권리' 를 실현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고,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운동이다, 혹은 공익과 자선은 다른 것인데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자선만을 생각하니 공익활동을 늘리는 운동을 하자, 같은 것들 말이다.     

 

오늘 강의는 한번씩 먹는 보양식이나 얼굴에 하는 마스크 팩처럼 마음에 영양소를 공급해줘서,

요새처럼 옮길 집을 찾으면서 복덕방에 걸려있는 방값에 시렸던 마음이, 뭐 어때, 쯤의 뚝심같은 것으로 돌아섰다.

물론 방값은 꼭 있어야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리고 운동과 시민단체에게는 명분이 확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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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효도의 상관관계

오랫만에 친구들, 만났다.

나의 전 룸메들, 전전 룸메들, 그리고 그들과 내가 함께 살았던 불광동과 상도동을 둘러싸고 자기들도 덩달아 '룸메'마냥

그 자장 안에 머물렀던 친구들이 모두 만났다.

 

달순의 말대로 '마음 속 안면' 이 있는 우리들,

휴지 말대로 '설명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설득시키려 진땀빼고, 그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프리~'한 친구들,   

이혼 후에 홀로서기 하던 휴지와 (예전에는 혼자 죽는게 무섭다고 하드만,인쟈는 자기 환갑이 을매 안 남았다며

우리더러 그 날 재롱 좀 떨고, 자기 제삿날에 다들 모이라고 하네.) 

세상에는 자기 똥 닦을 줄 아는 인간과 그걸 남이 해결해줘야 하는 여섯살 이하, 이렇게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며

여섯살 날 성현이를 '이류 시민' 취급하던 철 없던 비혼, 금자와 기묘,

그런 금자와 기묘 VS 성현이 사이의 묘한 기류를 쿨하게 내버려 두던 성현이 엄마, 오정,

그들과 한 건물, 같은 층에 있는 옆 집에 기거하는 죄로 수시로 살림을 약탈당하던 '박사 부부' 미물과 앙,

(살림 뿐이냐, 여름에 그 집에서 어쩌다가 에어컨만 켰다 하면 우루루 몰려가 바로 거실 점령.) 

그리고 그 집의 게스트들, 조, 하영, 달순, 민영.   

 

아직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뇌 속에서 세르토닌이 마구 분비되면서 행복지수가 팍팍 올라간다.

 

휴지는 요새 미국의 미혼모 지원재단의 한국인 코디네이터로서 일한다.

이혼한지 5년도 넘은 휴지더러 매해 신년 덕담으로 "조신하게 *서방을 기다리면 곧 돌아온다"는 말로 휴지를 환장하게 만들고

"인류학이 학문이냐, 아들이냐 키워라"는 말로 휴지의 존재를 깔아뭉개던 그 아버지께서,

요새 그녀를 월남전에 나가 장렬하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달러를 벌어들이는 '역군의 용사' 취급을 하신다.

 

해외 재단에 고용되어 외쿡인과 솰라솰라 하면서 달러로 월급 받고,

'경박스런' 장사도 아니고 '학문'해서 그걸 바탕으로 '좋은' 일 하는 딸년이 마구 자랑스러워진 게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살아생전 한 번은 이럴 때도 있는 거지라고 넘어가기에는,

그렇기에는, 정말이지 촌스러워서 짜증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이혼하고, 보따리 시간 강사하고, 자투리 번역에 프로젝트 하고, 어린 친구들과 함께 살고, 그럴 때도 지금의 휴지였고, 하는 일은 까놓고 보면 다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인데,

버는 돈의 액수가 달라지니 이혼도 뭐고 다 정리된 거다. 역전.

그래서 요새 휴지는 '후지는' 효도 이빠이 하고 있다. 그래서 술 먹고 '마음 속 안면'이 있는 친구들 앞에서 부모에게 화 낸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라면 내가 또 휴지에게 질 쏘냐.

자식이 자기 삶을 감당하다면, 자유의지로 그것을 선택하고 책임진다면, (최저임금을 받아도 내가 받는 건데 왜 그러시는지,참)  

그 선택이 부모가 보기에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지지는 못해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인정하는 것이 

다 큰 자식과 부모 사이의, 어른과 어른의 관계이거늘,

나에게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자체를 부정하는 우리 부모와의 관계 때문에,

집에 전화하는 것도 나에게는 부담 팍팍이다.

사랑한다는 말로 인간 사이의 예의가 사라진 관계, 가족.

나도 알고 있다,

이것을 뛰어넘어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은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던지, 아니면 시장에서 인정받아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어오던지,   뭐 둘 중 하나다.

자기들 잘 먹고 살라고 그런거 아니고, 정말이지 나를 사랑하여 하도 걱정되어 그러는 것이 50% 이상인 것도 알겠다.

한데 그 감당, 당사자인 휴지와 내가 하는 거다. 독거노인 돼서 '그 때 부모 말 들을걸' 하는 것도 다 우리 몫이다. 

찌질한 인생보다 더 갑갑한 게, 그럴까봐 부모에 대한 죄책감에 짓눌려 하고 싶은 거 못하는 거다, 라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이런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를 다시 한번 못 박은 것은 휴지 아버지의 한 마디였다.

휴지가 너무 자랑스러운 나머지, 2009년 새해 덕담으로 휴지더러 정말 '좋은'일을 한다면서

"적어도 미혼모들은 깨끗하지 않는냐, 이혼한 사람들처럼 서류가 더럽지는 않다""라고 가라사대.

행정학 박사이신 휴지 아버지께서는 서류상 빨간 줄 없이 '깨끗한' 미혼모들은 충분히 도와줄만 하다고 판단하셨던 것.

그래서 엉겹결에 요새 효도하고 있는 휴지, 신년 밥상머리 앞에서 외쳤다.

"아버지, 저도 깨끗해요, 깨끗해!"

 

자본주의와 효도의 상관관계, 거 무섭다 해도

뛰어넘지 못한 선, 결국 있는 거였다.

그래서 신년 밥상머리에서 아버지 말씀에 '버럭'하면서 불효를 저지른 휴지처럼, 나도 부모가 원하는 효도는  어찌해도 도리 없다는 신념만 얻었다. 주발이는 '노친네들, 어쩔 수 없어, 니 맘대로 살어'라고 도장 팍팍 찍었다.

 

김어준 말대로,

부모의 기대가 정당하든 않든, 그에 부응치 못한 거, 미안해 하는 건, 옳다. (나도 충분히,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에게 갖춰야 할 건, 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 그리고 애틋한 연민이다. (건투를 빈다_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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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 nothing day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buy nothing day)

 

 

올해 11월 25일은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었다.

이 캠페인은 1992년 캐나다의 벤쿠버(Vancouver)에서 테브 데이브(Ted Dave)가 시작하여,

나이키에 버금가는 '대항 상표'를 만들겠다며 스니커즈 예약판매도 했었던 

애드버스터지(Adbuster)가 국제적으로 띄웠으니, 벌써 15년이 넘었다.

이 단체는 무더기로 빈 카트를 끌고서 대형 매장을 빈둥빈둥 돌아다니면서

돈 한푼, 찌라시 종이 한장, 플랑카드 한장, 안 쓰면서 '바이 나씽 데이'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그 뒤에는 벽보 붙이니라 전단지를 찍어댔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라스 러미스, 녹색평론사)를 밑줄 치면서 읽어왔던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마저

겨울은 춥고, 단체 기부금은 영 끊기고, 월급은 간당간당해지고,

하여, 마음이 스산해지는 80년 만의 경제 위기에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전셋값이 안 오르는 것과 자동차가 안 팔리는 것 외에는 위로할 코딱지도 없습니다요.

 

게다가 경제위기가 소비 위축을 가져와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 그악스러운 상황에서

호주 총리는 보너스를 주고 우리의 명박씨는 유가 환급금이라는 돈을 풀어 내수 소비를 진작시키려 한다.

낭비는 안 좋은 것이라고 성경에도 나와있는데, 이제는 개신교 장로님도 돈을 쓰라신다. 

'저축해야 나라가 산다'는 새마을 정신은 '소비해야 일자리가 생긴다'라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올해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모두들 경제가 성장하니 않으니, 정말이지 풍요롭지 않다고 대답하는 시기에 '안 사야 한다고'  스스로를, 그리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

또한, 어쨌든 강요로라도 소비를 줄여야 하는 이 시기야말로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을 '덜 우아' 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좀 덜 쌈박하되, 겉멋은 소금에 절인 배춧잎처럼 푹 죽어버린.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자발적 소박함을 외치는 것마저도 

부러울만치 쿨한 '문화 청조자들'을 넘어설 수 있도록.

지금까지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대개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블라, 블라, 블라 들이었다.       

 

 

기술발달로 인해 1950년 이후 지금까지 생산성은 400% 이상 향상되었다. 50년대에 40시간 일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11시간만 일해도 가질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40시간 씩 일한다. 바꾸어 말하면, 50년대보다 400%씩 더 많이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도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경제학'에 나온 것처럼 만성 질병으로 병상에 누워 고액의 이혼청구소송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400%의 효율로 경제성장률을 증가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 더 많이 써서 이 속도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려면, 지구와 건강을 망치는 수밖에 없다. 에너지 효율성 개선과 환경친화적인 기술이 60억 인구의 욕구와, 총 에너지의 80%를 사용하는 선진국 인구의 400% 늘어난 소비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버다. 기술이 다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친환경 기술로 전환하는 과정마저도 많은 에너지가 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이 필요하고 불면증을 달랠 약을 산다. 마구 생산되는 유해물질로 인해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간성화를 낳고, 일상생활 속 유해물질들이 암 발병률을 높인다. 농약도 많이 생산되고 제초제도 많이 뿌려지고 PCB도 많이 버려진다. 우리는 이것들을 다 몸으로 앓아야 한다.

내수 진작을 위해 당선되자마자 명박씨는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없앴다. 커피숖마다 일회용컵이 마구 쓰이고 이런 일회용 플라스틱들은 태평양을 떠돌다가 폴리머로 광분해된 다음, 유해물질을 흡착한다. 플라스틱 폴리머를 먹이로 착각한 바다 생물들은 그것을 먹고 죽어서 발견되거나, 오염된 채로 시장에서 팔린다.

 

반면 경제위기가 닥치자 '본때없는' 근본적 생태주의자가 쌍수들어 환영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택 건설이 줄어들어 캐나다의 곰 열대우림 숲(the Ancient Bear Rain Forest)에서 벌목이 줄어들고 있다.

회색곰 (grizzly), 엘크, 늑대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북미에서는 카풀, 자동차 공동소유, 대중교통 및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 경제위기의 시기에 삼천리 자전거의 주가가 오른다는 소식이 있는데 확인은 못 해 보았다.우리의 삼천리, 달려라~ 룰루)  아르헨티나에서는 노천굴(strip mining) 광산이 문을 닫았고, 캐나다의 알버트(Alberta) 주에서는 타르 샌드  개발계획이 보류되었다.

 

경제성장이 되면 우리는 풍요로워 지는 것 같은데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고 말이다. 소득 1만 5천불이 넘으면 그 이상의 소득은 행복지수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구는 망가지고 취약자들은 환경성질환과 암으로 고통받는다.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1933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50시간의 노동 시간을 40 시간으로 단축하였다.

행복지수를 측정하면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불행하게 나오는 실업자들이 득시글한 시기에,  주당 10시간의 노동시간을 줄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도록 했다. 그리고  노동자는 40시간의 노동을 통해, 돈이 아니라 인생을 채우는 수많은 '쓰잘데기없는 것들'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 결국 효율성이라고 절대 없는 사랑, 관계, 슬로우 푸드, 추운 겨울 이불 속 게으름 같은 것들이 인생을 사금파리처럼 반짝반짝하게 해준다.  

대공황의 삼엄한 시대에 하루 10시간의 노동이 8시간의 노동으로 대체되었다.

2008년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단 하루의 쇼가 아니라 8시간의 노동을 6시간의 노동으로 대체하는 운동을 통해서

반소비를 통한 행복한 날들을 맞았으면 좋겠다.

물론 물가가 요로코롬 오르는데 최저임금을 낮추려는 황당 시츄에이션 속에서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 그 단어 자체로 잔인하지만서도 말이다.    

 

이 글은

http://www.theecologist.org/pages/archive_detail.asp?content_id=2005 을 번역한 후, 조금 의견을 더한 것이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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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다

비온다. 오늘 하루 종일, 그리고 지금 이 밤.

 

4월부터 11월까지 밖에서 키우는 식물들은 거의 손이 안가도

자연이 다 키워준다.

나는 무용지물이고 -_-;;; 알아서들 '쑥쑥이'가 되어간다. 특히 여름.

그 놈들은 밖에만 있었을 뿐인데 여름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담뿍 자라서 겨울에 안으로 가져다놓으면,

실내공간을 다 잡아먹는다.

 

그런데 요새 비가 안와서 한 동안 직접 물을 주는 '손'이 되었다.

손바닥만한 땅뙈기도 아니고 화분 몇 개 키우는 나도 이런데

농사짓거나 흙을 가까이 느끼거나, 혹은 목이 타서 힘들었을 식물들은 오죽했을까.

 

도시에서 자란 나로써 '날이 가물다'라는 것을 몸이 기억하는 것이 용하다.

반짝반짝하는 관계들만큼이나 반짝반짝하는 날씨맑음을 좋아하는 나인데도

오늘 비가 와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오월에 키운 상추 이파리, 쫄면을 해 먹으면서 슥싹 따다 먹었다.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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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기 너무 거시기하잖아!

직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갔다 하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제일 자전거 타기를 좋아라 할 때는

한적한 일요일 아침, 집에서 마포 서강도서관까지 마구마구 달려갈 때이다.

음하하, 마구마구라고 해봤자 10분거리.

햇빛은 반짝, 일요일 아침 일찍 거리엔 나 홀로 자전거,

깨끗하고 친근한 도서관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귀여운 책님들.

 

그런데 우리집에서 서강도서관을 거쳐 상수역까지 가는 거리의 물리적 환경이 좋지 않다.

언덕은 물론이고 계단과 육교가 첩첩.

차도를 무서워하여 웬만하면 차도로 안 나가는 나지만

계단이 가로막은 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나가야만 한다.

옆으로는 차들이 씽씽, 너무 무섭다.

'즐거운 불편'이란 책에서 자전거 타고 다니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난 지은이 아저씨가 생각나서 불안하고 초초하다.

그런데 한참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가 나처럼 차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척하니 만났다.

아무래도 다리가 힘드셔서 가파른 계단은 못 올라가시고 좀 위험해도 차도를 택하셨나보다.

 

자전거쟁이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고 노약자도 마음껏 걸어다닐 수 있도록 보행자 도로가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물론 나의 한 가지 소원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가늘고 길게 이 서울의 여기저기 곳곳에 물꼬를 트는 것!!

 

 

 

  

 

 

옆의 차도는 별로 언덕이 심하지 않은데 인도의 계단은 마구 가파르다.  도로 쪽에 할아버지가 가만히 걸어오시고 계신다.

 

 

 

그 가파른 계단을 지나오면 코 앞에 육교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앞 뒤로 첩첩산중이다. 차들은 씽씽 잘만 지나간다.

차가 없는 나는 조금 억울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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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화장품,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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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할 수 없는 것들의 투성이

"소설가 까뮈가 좋아하는 풍경은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전철 안, 노석미의 스프링 고양이,194쪽, 바로 이 부분을 읽다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마음 속에서, 쿵 소리가 났다.

 

정다운 무관심,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 잠시 서울에 올라오신 부모님을 역시 '잠시'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잠시'가 그저 영겁의 시간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내고 그 사이사이  언제 갈 수 있을지 시계를 보고 속으로부터 치미는 짜증을 참다가 조금 내어도 보았다가, '이러면 안되지'쯤의 마음으로 짬짬히 감정노동도 하였다.

 

아빠는 내게 이력서를 좀 써 보라고 하였다.
나는 언짢은 표정으로 "전 지금 다니는 곳이 좋아요"라고 했다.
친척들의 결혼식에서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자식이라고 해서
내 직장을 내가 계속 다닐지 말지 간섭받아야 하냐구요.

 

엄마는 "아, 너보다 4살 어린 **도 결혼했는데 우리 딸은 언제나 결혼할랑가"
라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중얼거렸다.

엄마, 엄만 도대체 미적 감각이 있냔 말이요,

6쌍의 쌍쌍구리가 동시에 한 예식장에서 찍어내듯이 결혼하는, 이 촌스럽고 공장같은 곳을 보면

하루쯤은 결혼식 생각이 진절머리 날텐데.

 

엄마와 아빠는 의젓하게 취직해서 자기 몫의 차를 몰고온 어린 친척들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언젠가 아빠는 말했었다.

"내가 너한테 바라는 바는 단지 부모가 서울나들이라도 오면 니가 니 자동차를 끌고 나와 부모한테 서울 귀경을 시켜주는 것이다"
서울로 대학과 대학원을 꼬박 보내준 부모에게 참 미안했다.
그래도 새삼스럽게 무슨 서울 귀경이란 말이더냐. 
부모님이 젊은 언니, 오빠 시절에 오랫동안 서울에 사셨던 것을 내 다 알고 있다

.

내가 힘든 것은,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에 '정다운 무관심'을 보고 눈물이 났던 것은,
그들이 그저 짠, 해서였다.
그것조차 못 해주는 자식으로 미안해서였다.
자식의 '그것'조차 인정해주지 않고 끝까지 자기 식대로만 사랑하려는 부모가 미워서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단지 그들의 허영심 때문이 아니란 것을 알아서였다.

엄마는 잠시 입원해있을 때
죽을 병도 절대 아닌데 괜시리 죽을 사람처럼
자기가 죽으면 내가 자식 중에 제일 불쌍해서 어쩌냐고 했다.
반지하방에 사는 부동산 제 6계급의 막내딸이자 아파도 (돈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정서적으로 돌봐줄 '남편'이 없는 '노처녀'.

 

우리는 잘못 사랑하고 있다.
이토록 사랑받고 사랑하는데 우리 사이에는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의, 이해받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투성이, 난무난무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의 투성이가 그저 '레밍턴 스틸'과 '전국노래자랑' 같은 것이면 좋겠다.

내가 어릴 적 우리집은 텔레비가 한 대였는데 같은 시간에 하던 레밍턴 스틸과 전국노래자랑 때문에

엄마 단독 전선 vs 언니와 나의 연합 전선이 치열하게 맞붙었었다. 난 지금도 전국노래자랑 BMG가 싫다.

 

'정다운 무관심'이 우리 사이에 조금이라도 흘렀다면,
엄마의 '객기부리기용' 자식은 될 수 없다해도
내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나 얼마나 행복한지 말할 수 있을텐데.
아플 때 누구보다 날 잘 돌봐줄 것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난 많이 사랑받고 있고 많이 사랑하고 있다, 는 것을 알면
엄마에게 조금은 위로가 될 테니까.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것보다는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의 투성인채로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고 오는 길은
쌍팔년도 신파극처럼 나도 짠헸고 그들도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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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길 걷기

반짝반짝한 날씨, 친구들과 서울 성곽길을 걸었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여행’이라는 책 제목처럼

그 다음날 근육통으로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마저도 뭐 어때, 가 될 만큼 행복했다.

 

 

모두들 일요일 아침

한성대 입구역에서 만나서

오르막길에서도 친구들과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천천히, 의 속도로 서울 성곽길을 걸어보시아요!

 (물병, 편한 신발, 사과 한 알 ㅋㅋ, 신분증-들어갈 때 필요해요)

 

‘오후가 흐르는 숲’이 성곽길 앞뒤, 안팍에 솔솔 녹아있다.

 

 

부암동 쪽으로 내려와 맛난 만두집도 들리고(콩국물에 들어있는 채식만두도 있어요:-)

환기미술관에 들려도 좋아요.

우리가 갔을 때에는 김환기씨가 부인에 보낸 그림편지가 한가득 있어서 마음도 너무 따뜻했다.

 

 

서울의 아름다운 길들, 이렇게라도 오롯이 남아있어 좋다.

 

 



 

 

내 전 룸메 휴지와

빈집의 채식모임에서 만난 스웨덴인 이다와, 이다의 친구 일본인 료우타

모두 인류학 전공이라서 우리들끼리도 별일이람시롱 깜딱 놀랐다.ㅎㅎ

성곽길을 둘러보고 있다.

 

 

성곽길 주변의 작은 집

 

 

사진 찍는니라 모두들 바쁘다.

 

 

돌계단에 둘러싸인 크은 나무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N타워, 그리고 옹리종기 건물 너무 많은 서울

가운데 훵하니 난 도로는 광화문,  그 곳

 

 

부암동 쪽으로 내려와 만두집 가는 길

Life is suddenly...

 

 

한적한 환기미술관, 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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