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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schua님의 [일주일] 에 관련된 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베트남행은 나름 얻은 것이 많았다.

한 며칠 더 있었으면 좋았을 듯도 한데 그렇게까지는 바라지 않기로 했다.

조금씩 가는 거니까. 그리고 그만큼으로도 얻은게 있으니 그걸 소중히 정리하면 되니까.

음...대략 수동적 자기 긍정이군...여튼...정리하면

 

1.

통잠을 잤다. 아직 미루가 모유를 먹고 있어 밤새 한두번은 깬다. 딱히 모유 때문은 아닐때도 있다. 급격하게 성장하면 힘들어서 자주 깬다. 어떨때는 한시간 마다 한번씩 깰때도 있다. 혹은 이가 난다거나 혹은 열이 나서 아프다거나 하면 자주 깬다. 그렇게 16개월을 보내다. 혼자서 방을 쓰고 혼자서 밤에 잠을 자니...진정 잠을 잤다. 첫날은 어색해서 한시간반 마다 깨서 삼십분을 할일 없이 보내다 다시 잠을 청하곤했지만 그 이후로는 열두시 전후로 자서 아침에 일어날때까지 그냥 내리 잤다. 음...아기랑 자보지 않은 사람은 감이 잘 안오겠지만....참 만족스러운 잠을 잤다. 이것만으로 일하러 가서 휴가간 기분이었달까...이 시간에 상구백은 고생을 했겠지만. 음..

 

2.

이상하게 언제부턴가 외국에 나가면 꼭 일이 생긴다. 이번에도 일행들은 먼저 출발했고 난 나중에 출발했는데 내가 들어가는 날 일행들이 국내선으로 하노이에 있다 호치민으로 오니 그냥 공항에서 만나자고 했다. 공항이 작으니 그냥 오라고 했다. 무작정. 글고 체류비도 주니 굳이 준비해오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고...게다가 짧은 기간 동안 일만하러 가니 베트남에 대한 다른 정보도 챙겨가지 않았다. 여튼 그렇게 공항에 도착했는데 약간 연착해서 밤 10시 15분에 도착하기로 한 비행기가 11시가 다 되서 도착...짐 찾으면서 시간이 또 지체...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일행들이 잘 기다려줄까??? 여튼 짐 찾아 나오니 11시반이 넘었다. 음...한시간 반을 잘 기다리고 있으려나. 뭐 그런 생각을 하며 공항을 나섰는데...이런 이런 너무 사람들이 많은거다. 이 틈에서 일행을 찾을 수 있으려나...걱정. 근데 멀리 "domestic airport" 란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오마이갓. 내가 내린 공항은 국제선공항이고 국내선공항은 따로 있었던거다. 안그래도 만나기로 한 사람엑 물어봤었는데 뭐 작은 공항이니 그냥 걱정 말라는 답만 들었었다. 음...어쩐다. 설상가상 일행의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도 한국에 놓고 왔다. 음....뭐야 이거~~~

 

우선 숨을 고르기로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는데 택시 삐끼들이 사납게 달겨든다.

얼마를 부르는데 도통 몰겠다. 이쪽 물가를 모르니 게다가 1달러에 여기 돈으로 얼마나하는 지도 모르고 왔는데...아 내가 이렇게 대책 없이 살았나 싶기도 하고....멍해졌다. 다시 한번 숨호습을 하고 우선 시장조사를 하기로 했다. 호텔 주소를 적어 놓은 것이 있어 맘씨 좋게 생긴 사람에게 물어 봤더니 거기가 어딘지 안단다. 대략 30분 걸리고 10달러 달란다. 음...그렇군.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물으니 15달러. 에라~ 양심 없는 사람. 결국 처음에 물어본 사람에게 갔다. 우선 담배 한대를 빌렸다. 정신 좀 가다듬고 그 사람에게 물었다. 아기가 있냐고....참 뭔소린지... 근데 이상하게 그게 궁금했다. 그랬더니 식구가 일곱이란다. 그 말에 나도 아기가 있어. 그랬다. 그리고는 그 사람 차를 탔다. 차는 낡은 봉고같은 승합차였는데 차를 보는 순간 내가 잘못 선택했나 싶기도 하고 걱정이 되었다. 어디다 갔다 버려도 모르겠고 그래서 계속 말을 시켰다. 이런 저런....그러면 어디가 갔다 버려도 맘 안편하겠지 싶어서. 하여튼 별 머리를 다 굴린다. 여튼 호텔까지 오는데 딱 10분 걸리고 이건 도저히 10달러 거리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건 4~5천원이면 될 거리. 웃음이 나왔다. 차에서 내려 참 비싸다고 했더니 "friendship"  이란다. 그저 웃음만..돈을 건내고 악수를 했다. 그저 자정이 넘은 시간에 담배도 얻어 피우고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한 것에 안도했다. 근디~~~

 

 



일행이 호텔에 와 있거나 아님 예약을 해놨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없단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요....사정사정해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고 자는 상구백을 깨워 베트남의 있는 일행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다시 전화를 하니 일행들은 국내선이 연착을 해서 이제서야 공항에 도착했단다.

참말로....일행을 기다리기로하고 꽉찬 모유를 짜내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3.

다른 때보다 일은 수월했다. 사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던 일이다. 보고서용 촬영을 하러 간건데 것도 내가 가고 싶어서 제안을 했던 거도. 그러니 편하게 기록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좀 욕심이 났던 것은 이주여성 인터뷰건이었는데 국제결혼해서 한국에 왔다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여성들을 만나 그동안의 경과와 지금의 상황 그리고 그 사이에 심정들을 듣는 그런 인터뷰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전에 작업할때도 방글라데시에 갔던 것이 이주노동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던 기억이 있다.

다른 공기, 그것만으로도 그녀/그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을 조금은 바로 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걸 기대했었다.

 

연구원이 한 사람을 인터뷰하기로 하고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촬영을 할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건 연구원의 권한도 아니고 내가 하고자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녀가 오케이 한다고 해도 선뜻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러 온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같이 있을 수도 없었다. 그녀 얼굴 가득한 외로움. 거북이 등껍질 처럼 그녀 얼굴에 가득한 외로움. 그 모습을 대면할 자신이 안섰다. 그냥 난 다른 테이블로 가서 끼니를 때웠다.

 

나중에 연구원은 울면서 그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 짓을 더는 못하겠다고. 다른 사람 맘 헤집어 놓는 일은 다시는 안하겠다고.

 

그녀의 이야기는 먹먹했고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연구원의 아픔도 먹먹했다. 그리고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나도 먹먹했다.

 

돌아오는 길 피곤하고 답답한 공기 속에서 그 연구원과 이런 저런 한탄을 했다. 한국에서 구타당해 죽은 베트남 여성에 대한 뉴스가 나가 사람들이 공분해도 한국 대사관 앞에는 여전히 한국행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고. 끝없는 가난. 선택지가 없는 선택, 그런데도 개인의 삶이고 개인이 선택한 일이니 그안의 상처는 온전히 그녀들, 여자들의 것이라고.

 

연구원은 점점 예전 대학때 들었던 이야기까지 생각나면서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여성을 억압하는 지 문득문득 생각난다며 왜 그땐 몰랐는지 모르겠다며 울분했다.  여자들은 점점 똑똑해진다. 점점.

 

4.

점점 무거워진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카메라를 드는 것이 점점 무서워진다. 

 

다른 이야기도 쓰고 싶은데 역시 맘이 급한거지..얼렁 프리뷰해야혀!!!

글고 보니 명절 이야기도 있네...여튼 기달리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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