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밥, 궁색한 살림

식물성의 저항 2006/01/24 13:22
요즘 밥을 해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친구의 이메일을 받았다.
난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끼는 내가 직접 밥을 해먹는다.
해먹는 것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기도 하지만 밖에 나가면 먹을 것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있는 반찬을 꺼내고 버섯을 굽거나 두부를 부쳐서 밥과 먹으면 된다.
 
밥이야 전기밥솥이 하는 것이니까 나야 밥과 흑미와 보리를 적당히 넣고 물을 맞춘 다음 전기만 꽂으면 된다.
아, 전기를 꽂고 '취사' 버튼을 반드시 눌러야 한다.
오늘은 밥을 하는데, 뭐가 바빴는지 그 취사 버튼을 누르지 않고 전기선만 꽂아 두었다.
결과는?
당근 낭패지 뭐.
전기만 꽂아두면 보온 모드로 지속되기 때문에 밥이 충분히 열을 받아 제대로 익지는 않고, 완전히 설익은 상태가 된다.
이런 밥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한다.
 
물을 끓여서 밥을 넣고 죽처럼 해먹기도 하는데, 젠장 맛이 없다.
김치국을 넣고 볶아 먹기도 하는데, 제길 맛이 별로다.
채식라면을 끓일 때 국물에 아예 밥을 같이 넣고 2-3분 더 끓여보지만 그 설익은 떨떠름한 맛은 없어지지 않는다.
 
전기밥솥에 물을 더 넣고, 다시 취사 버튼을 눌러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버튼은 다시 보온 모드로 돌아와버리고, 밥은 거의 그대로 제대로 익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결국 그냥 참고 3끼는 이런 밥을 먹는다.
다행히 설익은 밥을 먹어도 내 위는 탈이 나지 않고 잘 소화시켜준다.
 
지금 쓰고 있는 전기밥솥은 5년전 내가 독립을 할 때 친구가 몇 년간 쓰던 것을 얻어온 것이다.
내 세간살이가 거의 대부분 그렇게 얻어온 것들이지만 그래도 난 이 전기밥솥이 해주는 밥맛에 길들여져서인지 밥맛이 더 찰지고 뛰어나다는 압력솥으로 지은 밥이 특별히 더 나은지 모르겠다.
이 밥을 먹어본 친구들은 밥맛이 별로라고 했지만 난 이 맛에 큰 불만을 느껴본 적이 없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또 다행이다.
궁색한 살림에 내 입맛마저 까다로웠다면 이미 난 거덜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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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4 13:22 2006/01/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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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wa 2006/01/24 16:10 Modify/Delete Reply

    하루 한끼를 해드시다니 우왕!

  2. 2006/01/25 14:16 Modify/Delete Reply

    게으르게 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3. 자작나무 2006/01/25 21:13 Modify/Delete Reply

    그게요, 게을러도 잘 안되는게 있거든요..ㅡ,.ㅡ

  4. 까마귀 2006/01/27 19:19 Modify/Delete Reply

    설익은밥! 먹는것 거부하고 싶엇어요!

  5. 디온 2006/03/27 03:39 Modify/Delete Reply

    이보게. 그런 밥은 압력솥에 넣어 물을 조금 붓고 가스렌지에 올리면 다시 매끈한 밥이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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