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안치며

식물성의 저항 2006/04/19 11:41
지금 아랫집에는 쌀이 넉넉하다.
김치성이 고생한 덕분에 팽성 농민들이 힘들게 가꾼 쌀이 당도한 것이다.
황새울에서 거둬들인 백미와 흑미.
그 나락 한 알 한 알에는 내가 아는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땀도 한 방울 한 방울 들어있을 것이다.
 
집에서 밥을 지을 때 나는 백미와 흑미와 보리를 넣는다.
오래 그렇게 짓다보니 이제는 척 보기만 해도 각각의 비율을 얼마씩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힌다.
흰쌀만 넣고 밥을 짓는 법은 없는데, 그것은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고, 그저 흰쌀만 먹으면 단순할 것 같아서 좀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어서 흑미도 사다 넣고, 압맥도 넣고 했었다.
그렇게 먹다보니 흰쌀로만 지은 밥보다 혼합으로 지은 밥이 더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쌀이 넉넉하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이것을 난 6년째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내가 사는 집에는 조그만 쌀독이 있다.
쌀독에서 쌀이 점점 줄어들면 내 안의 근심은 점점 커간다.
쌀독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불안감은 증폭되어서 안정적으로 활동을 하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저 쌀독을 다시 채울 수 있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그만큼 쌀은 내게 소중하다.
쌀 한 톨은 내 피 한 방울만큼 소중하기에 나는 어디서건 밥을 먹을 때 결코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쌀이 있으면 그것이 평화다.
이것은 내가 몸으로 얻어낸 진리다.
배부른 것, 그래서 마음놓고 활개치며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 말고 더 무엇을 바랄 수 있으랴.
쌀을 얻지 못하는 비참함은 그 자체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내팽개쳐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지금 아랫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밥을 안치며 나는 쌀이 있어서 평화로움을 느끼고, 그 평화가 황새울에서도 올 가을까지 쭉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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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9 11:41 2006/04/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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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진 2006/04/19 12:19 Modify/Delete Reply

    맞아요. 혼밥이 너무 좋아~ 특히 흑미가 잔뜩 들어간 쫄깃쫄깃한 밥!!

  2. 비대칭 2006/04/20 17:16 Modify/Delete Reply

    아랫집은 뭔집이야?

  3. 2006/04/20 17:17 Modify/Delete Reply

    응, 서대문에 올 일이 있으면 전화해라, 직접 보여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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