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관계를 없애자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6/07/02 02:48

현현님의 [성폭력, 말하기] 에 관련된 글.

성폭력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내가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은 100인위 활동 때문이었다.

밤을 새가며 성폭력 피해사례들을 자세히 읽으며 반성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내가 앞으로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가 깊이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점 때문에 지금도 100인위 활동을 했던 사람들과 특히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알려준 성폭력 생존자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그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얼마나 더 많은 성폭력이 버젓이 자행되고도 묻혀졌을까, 그래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진보란 무엇인가'를 이토록 절실하게 알려준 실천행동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나 역시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한다고 할 때 비단 남을 향해, 사회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칼날을 가부장제와 군사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로 점철된 일상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것에 하루하루 물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향해 벼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추리, 도두리에서 국가가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폭력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내가 저지르는 폭력을 용인한다는 것은,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비판하는 어떤 활동가가 자신보다 약자인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폭력의 경우 그 근저에는 권력관계가 있다.

보통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위계질서에 길들여져, 또는 그것에 잘 적응하면서 그 굴종의 서러움을 견뎌내고 군림의 달콤함을 맛보기 시작한 사람들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오랜 활동의 결과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상대로 보지 않고 열등한 존재로 보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권력중독은 니코틴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보다 더 심하다.

나이를 따지고, 서열을 따지고, 호봉을 따지고, 급수를 따져서 관계에 차등을 두게 된다.

이것이 이미 성폭력의 시작이다.

어떤 자가 상대방을 어떻게 마음대로 요리해도 괜찮다고 마음 먹을 때 이미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요건이 마련된다.

그렇지 않고 가해자와 똑같은 인권을 가진 인격체로 피해자를 인정한다면 성폭력은 일어날 수 없다.

성폭력 가해자는 성폭력을 저지를 때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해버린다.

 

이것은 비단 성폭력에만 국한된다기 보다 거의 모든 폭력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은 동등한 관계를 깨뜨리고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해버리는 것이라고 나는 정의를 내린다.

그래서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서 나는 사람들이 동등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것은 권력관계를 없애나가는 것,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모든 관계들을 없애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폭력을 근절시키는 운동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운동이고, 가장 중요한 운동이며, 가장 일상적인 운동이다.

 

아쉽게도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아직도 성폭력이 만연해있다.

그 매일매일을 폭력 없는 평화로운 나날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든 치열하게 자신과, 제도와 그리고 위계적인 관계와 투쟁해야 한다.

이것이 누구든 차별에 저항하는 비폭력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다.

'권력관계를 없앨 수 있을까?'라고 묻지 말자.

일상의 삶에서 (성)폭력의 원인을 없애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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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2 02:48 2006/07/02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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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현 2006/07/02 08:08 Modify/Delete Reply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가해자였던 순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 이라는 피해경험이
    너도 한번 당해봐라, 라는 가해욕망으로 꿈틀거리기도 하거든요
    행동으로 직접 그렇게 하진 못해도
    말로, 표정으로 상대방을 위축시킬수도 있구요
    그러다가 피해가 또 다른 피해를 부르는 악순환이
    생기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상의 모든 폭력 없애기, 그래서 참 어렵지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지고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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