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와 6학년 2반 그리고 용산

평화가 무엇이냐 2009/02/13 15:34

- 기자인 친구에게 보낸 응원의 편지-

 

안녕하세요.

조약골이에요.

 

오늘은 길동초등학교에 다녀왔어요.
졸업식이 있다고 해서 최혜원 선생님 응원하려고 6학년 2반 교실에 갔더니, 졸업식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면서 1년간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해주시고는 한 명 한 명 꼬옥 안아주시더군요.
부모님들이며, 학생들이며, 취재진에 이 광경을 지켜보는 카메라들까지 복작복작거리는 작은 교실에 최혜원 선생님의 밝고,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어요.
이윽고 아이들에게 모두 졸업장을 나눠주신 선생님과 아이들이 '평화가 무엇이냐'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마지막이라는 느낌.
어쩌면 저 사람들과 다시는 같이 이렇게 따뜻한 자리에 모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정든 곳을 억지로, 강제로 떠나야 한다는 서러움.
애써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북받쳐오르는 감정들.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나는 반드시 돌아올테니까, 다시 그리운 학교로 돌아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수업을 할 날이 꼭 올거야 라는 다짐을 가슴 속으로 꾹꾹 누르면서 평화가 무엇이냐를 불렀겠지요.
저도 그 옆에서 기타를 치면서 조용히 가사를 읊조렸어요.

 

평화가 무엇이냐의 가사는 아시다시피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라고 시작하죠.
최혜원 선생님과 6학년 2반 동무들은 '학교에서 쫓겨난 선생님이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라고 바꿔서 노래를 부른답니다.
저는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 노래가 6학년 2반 반가라고 해요.
그 노래 중간에 나오는 '랩'을 다 외우는 아이들도 있다고 최혜원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참 반가웠어요.
최소한 이 아이들이 자라서 나중에 운동권의 명망가가 되거나 권력서열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더라도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 같은 짓을 저지르는 일은 않겠구나 하는 그런 희망이랄까요.

 

그런데요, 혹시 오늘 길동초등학교 6학년 2반 졸업식 풍경에서 혹시 어떤 장면이 연상되지 않으세요?
맞아요.
저는 자연스럽게, 대추리가 떠올랐어요.
벌써 2년 전이죠.
2007년 3월에 대추리 농협창고에서는 평택 농민들이 935일간 벌여온 촛불행사가 마지막을 맞이했었죠.
'우리땅을 지키기 위한 팽성주민 촛불행사 935일째를 여러분들의 힘찬 함성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던 김택균 사무국장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아요.

 

그날도 대추리 농협창고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과 취재진들로 북새통이었죠.
마지막이라는 느낌.
아마도 저 사람들과 다시는 같이 이렇게 따뜻한 자리에 모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정든 땅을 집을 눈 앞에 두고 억지로, 강제로 떠나야 한다는 서러움.
애써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북받쳐오르는 감정들.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나는 반드시 돌아올테니까, 반드시 그리운 고향땅으로 돌아와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을 것이라고 주민들과 두 손 꼭 마주 잡은 맹세를 가슴 속으로 꾹꾹 누르면서 평화가 무엇이냐를 불렀어요.
저도 그 옆에서 기타를 치면서 지킴이들과 신부님과 함께 목청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강제로 쫓겨나야 할까요?
국가의 명령이니까?
교육감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으니까?
내가 평생 힘들게 가꿔온 생명의 땅이 무기를 만들고 전쟁훈련을 하는 곳이 되는 꼴은 차마 볼 수 없다고, 그저 죽는 날까지 농사를 짓다가 고향에서, 이미 두 번이나 쫓겨난 적이 있던 그 고향에서 뼈를 묻고 싶다던 소박한 소망은 포크레인과 철거용역 그리고 전투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고 말았지요.
아직 3년차가 채 되지도 않은 젊고 곧은 선생님의 목을, 아이들에게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고 해서 서울시 교육감은 단칼에 내려치고 말았지요.

 

어제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용산 철거민 학살 촛불문화제에 갔었습니다.
저 역시 무주택 세입자인데, 제가 사는 곳도 아마 올해안에 시행인가가 나고 관리처분인가가 나서 철거용역이 들이닥칠 것 같아요.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없이 떠나야 할까요?
마이크를 부여잡고, 솔직히 분노밖에 남지 않은 메마르고 피폐한 감정으로 악을 쓰듯 구호를 외치고 저는 노래를 했어요.
그 자리에서 듣게 된, 망루를 쌓고 올라갔던 철거민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렇게 대추리 농민들의 피맺힌 절규와 똑같을까요.
오랫동안 살아온 정든 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대추리에도, 길동초등학교 6학년 2반에도 그리고 용산에도 있다는 것이 참 괴롭더군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이 왜 반복되어야 할까요.

 

경찰에 두들겨 맞고 개처럼 질질 끌려나오는 한이 있어도 내 발로는 못나겠다고 대추리 농민들도, 용산 철거민들도 이야기했어요.
최혜원 선생님도 오늘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그 발걸음 하나하나를 어떻게 떼지 못하고 결국 우시더군요.
그건 눈물이 되어 서럽게 밀려오는 피와 땀이었겠지요.

 

오늘 우리는 가진 것도, 힘도 없어서 계속 이렇게 짓밟히고 빼앗기고 억눌리고 있어요.
절망스러운 것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거에요.

 

이런 세상에서 기자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드세요?
****에 매일 여러 차례 들어가서 저는 기자님이 쓰는 기사들을 읽으며 그래도 힘을 조금씩 낸답니다.
힘내시고, 앞으로도 정의가 살아 있는 좋은 기사들 계속 써주세요.
아마 그럴수록 권력과 재벌은 그런 기사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겠지요.
절대로 굴하지 마시길.
제가 힘이 없어도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부르며 이곳저곳 가는 이유도 그래서에요.
저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기사들이 계속 나와야 하는 것처럼, 그들의 심장에 비수처럼 날아가 깊숙하게 꽂히는 노래들을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그 노래들이 마땅히 불리워야 할 곳에서 부르기 위해서에요.
내가 지면 정말 끝이니까.
계속 지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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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15:34 2009/02/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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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9/02/18 13:35 DELETE

    Subject: 2.18 벌써 이틀째.

    퍼질러져 놀고 있다. 예전에는 놀 때 만큼 맘이 편할 때가 없었는데, 이젠 뭐 쫌 놀아볼라 치면 맘 한 구석이 묵직해진다. '짤린 주제에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 때문이겠지? 덕분에 오랜만에 퍼질러져 컴퓨터도 하고 블로그도 꾸미고 하는데도 괜히 똥 묻은 개마냥 어쩔 줄을 모르고선 '뭘 해야 하나, 뭘 해야 하나,' 하고 고민 중. 이것도 일종의 강박.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할 일은 많은데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선물로 받은 조약골님과..
  2. Tracked from 2009/02/18 13:45 DELETE

    Subject: 2.18 벌써 이틀째. 조약골, 별음자리표님 노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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