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구멍

from 돌속에갇힌말 2005/06/1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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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을 먼저 읽으시고...

 

 

1.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제대로 협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사실 지금 이런 저런 뒷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비겁한 일이다

    안다, 아는데 자꾸만 화가 난다

   

2.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처음부터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부터 만들어놓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임을 거론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자신이 책임을 질만한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3. 갑과 을의 관계라는 것은

    그것이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어쨋거나 '을'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설정하게 되어 있다

    일을 시작하고 끝맺는 주체는 오로지 '갑'인 것이다

   

4. 5년동안 작업을 하면서 단 한번도

    이것이 방송을 통해서 소개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떨결에 테잎을 보낸 것이 잘못이다

    맨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얼마를 받게 되는지, 어떤 조건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보다 치밀하게 확인했어야 했다

    다음에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몇 마디라도 끄적거리지 않을 수 없다

   

5. 돈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비굴해질 수 있는지 확실히 알았다

    내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였지만

    그들에게는 단지 선택의 문제였다

    

6. 그들 말대로 단지 운때가 나빴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부사정과 외부 사정을 동시에 고려해야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내부 사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앞으로 다른 감독들에게 미칠 여파를 걱정하면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내 입장은 그저

    개인의 자존심 문제로 치부되거나

    불편한 '잔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프로그램, 언제 없어질 지 모르는데

    독립다큐멘터리를 하나라도 더 틀어주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 감독은 왜 이렇게 말이 많은가 하고 오히려 섭섭해했을 지도 모른다

 

7.  입장의 차이, 라는 것은 종종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업종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시각 차이 정도에서 그친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8. 당당하지 못했다, 치밀하지 못했다고 아무리 반성하고 후회한다고 해도

   이 씁쓸한 구멍을 메울 방법이 없다

   어느날 갑자기 공중에 들어올려졌다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듯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거대한 조직 앞에서 할 말이 없다

 

   

2005/06/10 11:43 2005/06/10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