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다큐'에 해당되는 글 70건

  1. 오마이뉴스의 관련기사 2005/05/30
  2. 2007. 5월 상영일정 2005/05/15
  3. 칭얼거리다 2005/01/31
  4. 딴지일보에 실린 기사 2004/12/15
  5. 대전 상영회 홍보문 2004/12/06
  6. 사건일지-3 2004/12/03
  7. 사건일지-2 2004/12/03
  8. 사건일지-1 2004/12/03
  9. 서운함에 관하여 2004/11/05
  10. 2004.5.27 200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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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58709

 

"스무살 일기에 쓴 약속 지켰어요"

구로구청투표함 밀반출 사건 다룬 다큐멘터리

<돌속에 갇힌 말>의 나루 감독

 

"당시 기억들이 악몽이었어요. 언젠간 영상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5년 만에 작업이 끝났네요."

지난 87년 12월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돌 속에 갇힌 말- 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사건>(이하 돌 속에 갇힌 말)을 제작한 나루(38) 감독의 첫 마디다.

지난 87년 12월 16일부터 18일까지 2박3일간 일어났던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사건. 시민과 학생들의 항의 농성 중 공권력이 투입된 사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다큐멘터리 영화 <돌 속에 갇힌 말>(70분).

이 영화는 2005년 제1회 안양변방영화축제(5월 22일)에서 서울, 부산, 대전, 원주, 광주 등 대도시 시민사회단체들의 '특별전'에 초청돼 각광을 받기도 했다. 또 6월 6일까지 열리는 인디포럼영화제에서도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6월 2일 상영).

또 지난 2004년 수원인권영화제와 10월 30일 서울선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또 지난 2005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와 인권영화제에 출품 공모를 통해서 심사위원들로부터 선정돼 상영되기도 했다.

지난 87년 6월 민중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 등의 내용을 담은 6·29 선언이 있었고 이후 12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당시 투표를 앞두고 구로구청에서는 부정투표함 밀반출 시도가 있었고 이에 대한 항의농성이 벌어진다. 나루씨는 대학생(87학번, 대학 1학년) 신분으로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하다 그곳에 합류해 현장을 생생히 목격했다.

"16일 오전 11시경 '부정투표함'이 구로구청 현관 앞에서 반출되고 있다'고 어느 아주머니의 제보가 왔어요. 당시 여의도 평민당사로 여러 차례 전화 제보가 왔다고 합니다. 당시 평민당원이던 박영환씨와 수명이 구로구청으로 달려갔지요. 이미 다른 두 대가 도주한 상태에서 봉고 트럭(서울 7다 7870)을 발견해 시민과 공정선거감시단원 등 40~50여명이 합세, 부정투표함 반출을 저지하면서 사건이 시작됐습니다. 구청 앞에서 줄을 지어 투표 차례를 기다리던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시위에 합세했지요."

당시 구로구청 3층 사무실에서 투표 위조 여부를 조사했던 시민, 학생들에 의해 투표함 1개, 투표 용지 1506개, 붓두껍 60개, 인주 70개, 손장갑 6켤레가 발견된다. 이 사실을 알려지자 항의 시위대는 계속 늘어 갔고 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군사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군사독재 정권이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에 대해 최루탄, 지랄탄, 백골단 등을 앞세워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게 진압했어요. 인권을 무차별적으로 유린했지요. 그런데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문, 방송 등 미디어에서는 사실 그 자체를 조명하지 않고 있고 '돌 속에 묻힌 말'들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영상을 통해 인권 탄압에 대한 실상을 제대로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루 감독이 17년 전에 쓴 일기장에는 이 사건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일기장에 "후에 이 사건을 영상으로 반드시 남기겠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 농성 사건이 있은 직후부터 94년까지 구로 지역에 대한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2호선 구로구청역(현재 대림역)에 내리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그 사건이 뇌리에 스쳐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남았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경찰만 보면 무척 놀랐고 창문이 없는 공간을 못 들어갔어요. 낯선 공간에 오면 비상구부터 찾게 됐어요. 구로라는 지역 자체에 대한 후유증인 셈이지요."

이것이 영화를 만들게 된 개인적인 동기가 되었다. 하지만 사건 당시 공권력의 인권 유린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의지도 이 영화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경찰과 백골단이 시위대를 에워싸고 집단적 폭력을 행사했어요. 울분이 치밀었어요. 그 사건을 방송이나 신문이 보도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알리지 않았지요. 지금도 잘 알려지지 않았구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나루 감독은 17년 전 일기장에 적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는 99년 12월부터 2004년 9월까지 5년간에 걸쳐 촬영을 했다. 이 기간 동안 백방의 노력으로 자료를 수집했고 6mm 캠코더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관련자를 인터뷰했다.

"당시 뿔뿔이 흩어져 있는 관련자를 만나기 위해 전국을 돌아 다녔습니다. 기차와 고속버스, 마을버스를 번갈아 타며 오지까지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났지요."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시 보도됐던 뉴스를 방송국에서 개별적으로 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촬영해 놓고 방송하지 않았던 부분을 구하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당시 서울대생인 이상빈씨가 그 현장을 촬영했는데 막상 그를 만나 보니 촬영한 테이프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노력 끝에 80년부터 독립영화를 제작해 온 '서울영상집단'에서 그 테이프를 구할 수 있었지요."

87년 12월 한달 동안 방송국에서 보도한 분량만 테이프 40개를 샀다. 나루 감독이 촬영한 테이프만 170개가 넘는다.

"작업 과정에서 20살 때 일기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무서운 현장의 생생한 기억들이 일기장에 잘 표현되어 있더군요. 글보다 영상으로 표현해야 사람들이 구체적이고 더 직접적으로 와 닿기 때문에 영화를 촬영하게 됐지요. 일기장도 많은 참고가 됐어요."

그는 영화 촬영을 하면서 제작비가 없어 프리랜서 방송작가(2002년까지)로 일하면서 신문, 잡지, 인터넷에 글을 기고해 원고료로 제작비를 마련해야 했다. 심지어 반전단체나 결혼식까지 찾아다니며 비디오 촬영을 해주기도 했다.

나루 감독은

나루 감독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사당동에서 자취하면서 대학 생활을 했다. 구로지역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대학 시절 공정선거감시단에 자원해 활동하다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밀반출사건을 겪게 됐다. 이후 한겨레문화센터 VJ과정을 마쳤고, 아카데미에서 영상 편집도 공부했다. <오마이뉴스>가 창간되기 이전인 2000년 2월 17일 <오마이뉴스> 창간 시험판에 '캠코더 아줌마의 커밍아웃'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리기도 했다.
"돈이 생기면 카메라를 사고 또 생기면 렌즈와 편집기를 사고, 다음 프라이포드와 오디오를 사고 이런 식으로 5년 동안 장비를 구입해가면서 촬영을 하다 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돌 속에 갇힌 말>의 제작 일지를 인터넷 커뮤니티(www.freechal.com/87goolo)에 구체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돌 속에 갇힌 말>에서 구성과 편집은 혼자서 소화했지만 촬영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분들의 이름은 영화 엔딩 타이틀에 밝혀 놓았다. 영어자막 작업을 해서 외국 영화제에도 출품할 거라고 밝힌 그는 앞으로는 여성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2005/05/30 13:38 2005/05/3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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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경성대학교 소강당 5월 6일(목) 저녁8시, 5월8일(토) 오후 4시

   

2. 구로노동자문학회

    5월 11일(수) 저녁 7시30분

 

3. 제1회 안양변방영화축제

     5월 22일(일) 오전 10시 30분

 

4. 인권영화제

    홈페이지 http://sarangbang.or.kr/hrfilm/2005hrfilm/

    상영일정표 http://sarangbang.or.kr/hrfilm/2005hrfilm/program_time_table.php

    5월 23일(월) 오후 4시

 

5. 인디포럼

   홈페이지  http://www.indieforum.org/2005/main.php
   상영시간 : 5월 28일(토) 저녁 6시 
               6월 2일 (목) 오후 4시30분

 

영문자막 작업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추가 번역을 해주신 허혜경님과

미디액트에서 이틀동안 밤새 수고해주신 손이레님께 감사드립니다

2005/05/15 22:44 2005/05/15 22:44

칭얼거리다

from 돌속에갇힌말 2005/01/3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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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프리챌커뮤니티 다큐나루에 썼던 제작일지 중에서

 

 

1. 류미례가 나를 <엄마...> 촬영스텝으로 등록해서 아이디카드를 장만해줬는데도' 

    부산영화제에 못갔다

    서울을 맘대로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실 그 영화에서 내가 촬영한 장면은 스텝 스크롤이 올라가는 맨 마지막 장면에

    단 한 컷만이, 그것도 스틸로 들어가 있을 뿐이며

    하은이가 날마다 가는 놀이방에서 단 하루를 찍었을 뿐인데도

    번번이 스텝이라고 챙겨주는 게 고맙고 늘 미안하다

 

 

2. 이사를 앞두고 하드 디스크가 망가졌을 때

    과장 안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 디스크는 자막 작업을 위해서

    그리고 <돌 속에 갇힌 말>과 <금禁>마스터를 저장해두기 위해

    직접 용산에 가서 구입한 것인데

    편집본 프로젝트 파일들이 저장된 다른 드라이브에서 사고가 잦아서

    그것을 그대로 본체에 설치해서 사용하던 중이었다

    내 맘대로 설정을 건드리거나 함부로 만지지도 않았고

    컴을 잘 다루는 사람이 와서 점퍼 위치까지 세심하게 관찰해가며 달아준 것이다

    그래서 안심하고 수정을 했고

    '이제사 마스터를 출력하는구나'하고 

    export tape을 클릭하자 마자...사라졌다

    J드라이브였는데 그 안에 들어있던 모든 폴더들이 사라졌다

    표용수씨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거래하는 데이타복구업체를 소개해줬고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전문가들도 원인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했다

    열심히 해보기는 하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들에게 그 물건을 넘겨주고

    G와 H에 남아있던 최근 프로젝트 파일들을 끌어모으다가 이사를 했다

    오늘 그 하드디스크를 받았는데 마스터 파일의 절반만 겨우 살아났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말했다

    당신이 뭘 잘못한 게 아닙니다, 기계가 잘못된 것도 아니구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운이 나쁘다, 운이 나쁘다...그 말도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석 달동안 운이 나쁠 수가 있을까

 

3.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더라도

    잠시 마음이라도 달래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면서 냉정해지는 사람도 있다

    폭염 때문에 감기몸살때문에

    혹은 장염으로 체력저하로 밥을 못먹고 잠을 못잘 때

    상한 내 얼굴을 측은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련하게 일한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한때는 믿고 좋아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와주신 분들에 그 이름들을 다 새겨넣었다

    어쨌건 사람공부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니까

    나는 사람보는 눈이 정말 없다

    바보다

 

3. 새로 이사한 집은 사무실 짐과 내가 살던 집의 짐이 다 들어가지지가 않아서

   책장과 소파와 기타등등 많은 짐을 버려야 했다

   가져가기로 한 사람들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재활용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그들도 휙 둘러보더니 그냥 가버렸다

   충분히 5년은 더 쓸 수 있는데...

   동사무소에 가서 폐기물신청을 했더니 그 담당자가 그랬다

   요새는 물건이 하도 많이 나와서

   재활용센터에서도 값나가는 거 아니면 싣고 가지도 않아요

   우리도 이런 물건들 처리하느라 아주 골이 아픕니다

    언제나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가보다

    씁쓸하다

    스티커를 부착해놨는데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인지

    아니면 간밤에 비바람이 불면서 그 스티커에 적은 물품 목록이 지워진 것인지

    다른 것들은 치운 모양인데 소파가 건물입구에 덩그렇게 남아있다

    도로 가지고 들어갈까? 쳐다볼 때 마다 답답하다

    저 소파에서 여름을 세 번 났는데...밤샐 때 마다 나를 편안하게 쉬게 해준 친구였는데...

    처음 그것이 합정동 사무실에 들어오던 날 정말 기분좋았었는데...

    아쉽지만 하는 수 없다

 

4. 새 공간은 좋다

    따뜻하고 밝다

    사실...집을 옮길 때 마다 그 집이 마음에 든다

    집 보는 눈도 별로인데 그저 마음을 편하게 먹어서 그런걸까?

 

5.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 수는 없는걸까

   사람이 무섭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만나야지

   그러지 못한다면 다큐멘터리도 일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누구보다 심약하면서 겉으로만 야멸찬 듯 행동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이끌고가야만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2005/01/31 16:35 2005/01/3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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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공지]역사의 현장에서 과거를더듬어보자

 

2004.12.15.수요일

딴지 편집국
 

12월 16일. 이 날이 무슨 날일까?

총수 생일도 아니고(비슷하긴 하다) 편짱이 첫 빠굴 뛴 날도 아니며 뒤져보면 이 날이 기념일인 사람은 부지기수일테지만 딴지에서 공지하는만큼 뭔가 전국민적인 버라이어티 기념일은 틀림없겠다.

 

힌트 하나 주까? 전재산 29만원의 채권제일주의자께서 워낙 위대(胃大)한 보통사람이라서 집안에 사과상자가 가득한 No통에게 구국의 결단을 하사하시어... 갖은 부정으로 친구 하나 대통령 만든 날 되시겠다.

 

감히 부정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사건. 구로구 주민의 투표의사와는 무관하게 쌩!뚱!맞!은 투표함이 몰래 옮겨지다가 딱 걸려서 온동네 사람들이 대략 1만명 이상 모여서 시위를 하던 사건. 일명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시위농성사건'이 있던 날이다. 명백한 부정의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싸웠건만 결국 살인마를 대통령이 되고 그 위대한 사과상자의 시대를 열어제꼈던 날.

 

구로구청이 난리가 났는데도 일체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만큼 극심한 보도통제 속에서도 제대로 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마음만으로 뭉쳤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잡아 가두었던 폭력. 폭력. 폭력. 그러나 비단 그 폭력은 몽둥이 뿐이었을까?

여기에 의문을 던진 인물, 그 진압의 현장에 있었던 당시 19세의 소녀는 1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사건. 애써 기억을 잊으려 노력하던 사람들을 찾아찾아 절대로 잊지 말라고, 그 억압과 폭력과 내분을 기억하라고 전달하고 있다.

 

무릇, 역사의 현장에서는 숙연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숙연해지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야... 원래는 12월 16일에 맞춰서 구로항쟁의 기사를 실으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사보다도 시청각 교재가 될 작품하나 소개해올리는 코-너 되시겠다.

 

12월 21일 구로구민회관 오후 7시

 

무려 540석! 자리없다 걱정할리 없으나 무료인 관계로 연말 특수가 예상됨. 게다가 선착순 00명에게는 멋지구리한 포스터를 말아준다. 그리고 궁금한거 있으면 감독한테 직접 물어볼 시간도 있다.

 

혹여 80년대 폭력에 희생된 사람이라면 0순위 강추! 폭력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1순위 강추! 폭력의 경험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설레발이 길었다. 일단 예고편 함 때려 보신담에 내일 16일 퇴근길에 무료로다가 역사의 기억을 더듬는 경험들 함 해보시라. 이하는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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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본문에서 빠트린 상영 주최단체

 

      진보생활문예지 삶이보이는 창

      구로시민센터

      구로건강복지센터

       서울남부 민중연대

       민주노총 남부지구협의회

       민주노동당 구로갑.을.금천 지구위원회

 

     

2004/12/15 22:48 2004/12/1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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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다큐멘터리 '돌 속에 갇힌 말' 상영
- 주최 : 민주노동당 대전광역시당 문화예술위원회(준)
- 일시 : 2004년 12월 13일(월) 19시
- 장소 : 근로자복지회관 2층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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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16일
6월 항쟁 이후 직선제를 실시했던 대통령 선거 당일
서울 구로구청에서 부정투표함 밀반출 사건이 벌어진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돌 속에 갇힌 말

(70분 / 다큐 / 기획.연출.제작: 나루)

2004 인디다큐 페스티발 국내신작전 상영작
2004 수원인권영화제 상영작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일 오전 11시 20분
서울시 구로을구 투표소에서 의문의 트럭 한 대가 발견된다
선거관리위원의 동행없이 투표함을 옮기려던 타이탄 트럭,
거기에 실린 봉인되지 않은 투표함,
그 투표함을 가리고 있던 종이박스들...
노태우 당선을 위한 부정선거 사례가
이미 전국적으로 발견되던 그 때
인근 주민과 학생들, 공정선거감시단, 평민당 당원들이 모여
사흘 밤낮으로 항의농성을 벌인다
이 영화는 그 날 그 사건을 복원한다
자료화면과 인터뷰를 통해
17년만에 되살아난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사건'
그리고
그 사흘간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씁쓸한 증언들 사이로
농성에 참여했던 감독의 기억도 담겨있다
감독은 또 한 사람의 생존자로서
이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했으며
이제 그 기억에서 자유로와지기를 바란다

80년대를 상징하는 '돌'
그 속에 갇혀버린 우리들의 '말'
<돌 속에 갇힌 말>은
지금, 당신에게도
머리와 가슴과 온몸이 기억하고 있으나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은 없었냐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묻고 있다

2004/12/06 20:44 2004/12/06 20:44

사건일지-3

from 돌속에갇힌말 2004/12/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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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 8-9페이지)

 

*87년 12월 18일

 

00:00

서울시장 염보현 진압예고 전화. 위기설 퍼짐. 경찰은 부정투표함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농성해산만 요구.

 

00:35

시민, 학생 약 2,000여명 "부정선거 규탄대회" 계속 진행.

 

00:40

소규모 국지전에서 2명의 부상자 발생.

 

01:50

"우리는 왜 농성투쟁을 감행하는가"라는 성명서 채택. 불법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전·노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최후까지 농성투쟁을 계속한다는 내용을 결의.

경찰은 전경차 약 70여개 배치.

 

02:50

선관위, 구로갑구의 개표를 을구에서 한다고 발표.

 

05:00

백골단, 경찰서에서 구청쪽으로 자리 이동.

 

06:30

구청 오른쪽 첫 방어선을 시민, 학생(우리측) 불지름.

 

06:35

전투경찰, 백골단이 지랄탄을 난사하며 전면 공격 개시

 

06:45

구청 밖의 규찰대 저지선 붕괴. 구청 청사 안까지 경찰병력 난입하기 시작. 투쟁 동지들 옥상과 지하실로 퍼짐. 순식간에 5층까지 진압당함. 시민, 학생들 연행되기 시작.

 

07:00

고척 1, 2동, 개봉 2동의 부정투표함 탈취당하여 을구 개표소로 이동됨.

 

07:20

쇠파이프를 든 백골단 옥상 1차 진입 기도. 옥상투쟁 동지들 필사의 각오로 투쟁을 전개하여 격퇴해 버림.

 

07:40

소방차, 앰블런스 집결, 전경들 구청 앞 사거리 등 주변 차단.

 

07:50

구청 밖에 운집한 시민들, 전투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1.5km 밖으로 밀려남. 투표함 옥상으로 이송. 강제진압시 분신하겠다고 함.

 

08:00

고가사다리차 3대 동원, 투신대비용 매트리스 설치. 옥상에서 100여명의 동지들 계속 투쟁. 옥상과 그 아래층에 화재 발생.

(당시 옥상에 있던 한 분의 증언에 의하면, 창고에서 신나가 발견되었고 이를 이용,

 옥상으로 통하는 출입문에 불을 질러 백골단의 진입을 막아보려 했다. 다른 분의 증언으로는 농성가담자들이 직접 방화하는 것은 목격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화재발생에 관한 동기와 목격담이 엇갈리고 있다.)

 

08:15

옥상 계속 화재. 옥상의 투쟁동지들 독재타도 구호, 애국가 제창 소형 태극기 흔듬. 바깥 시민들 이에 호응하여 '최루탄을 쏘지 말라'고 외치자 경찰, 무차별 최루탄 난사. 등교하던 고교생에게도 무차별 구타.

 

08:17

구청 밖의 시민들에게 최루탄, 지랄탄 난사하여 대부분 해산 당하거나 퇴각. 고가사다리차 동원하여 옥상에 물뿌리며 진압시작. 옥상 투쟁동지들 중 수명 투신.

(투신한 이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고 투신을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08:35

옥상에서 계속 투쟁 중. 투표함을 안고 분신하겠다고 함.

 

08:40

옥상에서 기왓장 계속 투석, 거리 주민들 '최루탄을 쏘지 마라' 등으로 호응.

 

08:44

잘 훈련된 백골단, 옥상에서 살인적 진압 시작, 직격탄 발사, 쇠파이프 등으로 무차별 구타. 투쟁동지들 최후까지 기왓장을 던지며 항쟁하다가 모두 진압당함. 항거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도 무차별 구타 후 연행함.

(조원봉씨의 증언에 의하면 직격탄에 맞아 부상당한 학생이 있었으며, 이 학생을

 후송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본인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여

 병원으로 후송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04/12/03 08:41 2004/12/03 08:41

사건일지-2

from 돌속에갇힌말 2004/12/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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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 8페이지)

 

*87년 12월 17일

 

12:40

투표함을 밀반출하려 했던 사람을 붙잡아 공개 기자회견 가짐.

 

17:30

16일 밤 구청에서 농성을 하고 나온 구로지역 주민(반장) 허기수씨(41)가 부정선거에 항의 분신 기도,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나 중태라는 소식 들어옴.

 

18:00

문익환 민통련 의장 이하 간부들 농성현장에 와서 지지 격려.

 

20:00

시민 약 6,000여명이 운집한 상태에서 "선거무효화를 위한 서울지역 투쟁위원회" 발족. 이번 선거를 원천적 부정선거라 규정하고 선거무효화와 독재타도를 위해 범국민적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

 

23:00

구청 앞 4거리와 구로경찰서 앞의 바리케이트를 중심으로 간헐적인 접전을 벌임.

2004/12/03 08:39 2004/12/03 08:39

사건일지-1

from 돌속에갇힌말 2004/12/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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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수록하는 사건일지는 1988년 4월 20일 발간한 <제5.5공화국과 구로항쟁>이라는 책을 기초로 하였으며, 인터뷰 결과 엇갈리는 부분이나 보완된 점은 괄호안에 기록한다. 이 책은 구로항쟁 이후 결성된 '구로구청부정투표함밀반출 항의투쟁중상자양원태후원회''구로구청부정투표함밀반출항의투쟁피해자가족협의회''구로구청부정선거항의투쟁동지회'등의 모임에서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자료집 본문 첫 내용, 7-8페이지)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밀반출 항의투쟁 일지

 

11:20

 

"부정투표함이 구로구청 현관앞에서 반출되고 있다"고 어느 아주머니께서 제보.

(당시 여의도 평민당사로 여러 차례 전화제보가 왔었다.)

당시 평민당원이던 박영환 외 수명이 구로구청으로 달려가 이미 두 대가 도주한 상태에서 서울 7다 7870 봉고트럭을 발견. 시민, 공정선거감시단원들 4~50여명이 합세하여 부정투표함 반출을 저지.

(구청앞에서 줄을 지어 투표 차례를 기다리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세하였다,)

 

13:30

 

구청 3층 사무실에서 투표위조 여부를 조사하던 시민 학생들에 의해 투표함 1개, 투표용지 1506개, 붓두껍 60개, 인주 70개, 손장갑 6켤레 발견

(박영환씨 등 몇 몇 증언에 의하면 투표함이 발견된 차량안에서 투표용지와 장갑 등이 발견되었다고 함)

 

16:00

 

공정선거감시인단, 평민당, 민주당, 선관위장 등 관련자들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염.

선관위장은 부정투표함 반출에 대해 자신이 지시내린 바 없다고 발표. 붓두껍, 인주 등은 10월 27일 국민투표시 사용한 것이라 변명하였으나, 발견 즉시 백지에 찍어본 결과 선명히 찍혀나왔음.

(구로을구 선관위과장 강실원이 기자회견과 집회 시 비합리적인 변명을 계속하였다.)

 

18:30

 

선관위원장, 부정투표함 반출이 불법임을 시인.

(이 시각, 국내 방송사 중 유일하게 부정선거 사례를 사실 그대로 방송하던 기독교 방송국은 기관원에 의해 방송이 중단되었으며 방송국 내부에서 농성중이던 학생들이 선배들의 연락을 통해 구로구청으로 이동했다. 방송국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전경과 경찰이 학생들을 폭행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19:00

 

"평민당원이 합법적인 투표함을 탈취하였다"고 중앙선관위 성명 발표 이후 운집한 시민, 학생 5천여명이

'선거무효,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부정투표함 즉각 개봉 및 당국의 공식적 해명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21:00

 

서울시 선관위원장의 "구로을구 개표를 타지역 개표가 끝난 후 개별 개표하여 부정여부를 가리겠다"는 전화옴.

 

22:00

 

구로구청 마당, 도로까지 1만여 시민들이 운집. 주민대표, 공정선거감시단, 학생대표, 지역대표 신부 1인 등으로 농성지도부 구성. 규찰대를 조직하여 농성장 주변 경계. 운집한 시민 1만여명은 '선거무효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부정투표함 즉시 개봉을 요구.

(지역대표 신부 1인은 구요비 신부님으로 밝혀짐)

 

 

2004/12/03 08:39 2004/12/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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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던 그는

서운했던 것 같다

이제사 인터넷을 뒤져보고 안건데

여러 신문사와 기자들에게 <돌 속에 갇힌 말>을 소개하고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몰랐다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팔다리가 덜덜 떨렸고

마이크를 놓칠것만 같아서 자꾸만 손을 등뒤로 감췄다

맨 마지막 질문 외에 다른 질문들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도 않고

내 답변 따위는 아예 기억나지 않는다

참으로 무책임한 감독이 아닌가

그런데 맨 마지막 질문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노코멘트'라고 대답한 것이다

출연자가 얼굴을 가려달라고 부탁한 상황에서 턱 아래쪽만 촬영한 화면이 있는데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고 움직이는 걸 민첩하게 따라잡지 못해서

여러 번 얼굴이 노출되었다

출연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내용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대답하기 난처하니까 나는 그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그 때부터 진행하시던 분의 표정이 달라졌다

 

대화를 마치고 손님들과 한참 인사를 나누다가

뒤늦게 극장 문을 나설 때

담배를 피우던 그는 나를 보자 마자 호통을 쳤다

'수많은 대중 앞에서 감독이 윤리적으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정말 실망이다...'

나는 할 말이 없었고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폐막식을 하던 날

입장하기 몇 분 전,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더 호되게 지적했다

'영화는 잘 봤는데 만든 사람은 너무 실망스럽다'

'유시민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없다'

'유시민같은 정치적인 인물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회피하고 지나치게 방어적이다

 유시민같은 사람보다 더 나쁘다'

'나중에 강의할 때 참고자료로 사용하고 싶은 영화였는데

 감독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바뀌려고 한다'

'감독과의 대화를 100회 이상 진행해봤고 당황스런 경험도 많았지만

 이번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다'

'그리고 대화를 마치고 나서 어떻게 나한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느냐'

'뒤풀이 하러 가면서 같이 술 한잔 하자는 말도 못하냐'

'나도 당신만큼 성깔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휙 사라졌다

 

그의 표정과 어투에서 흥분상태가 느껴지고

너무나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어서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아마 그는 그 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보다 더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 대해 너무 실망했나 보다

하여간...여러모로 서운했던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지적을 받을만 했다

지적을 좀 받아야 한다, 나처럼 서툰 사람은...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영화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단 한번, 단 30분만에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를 가지고

나에 관해, 한 인간에 관해 그렇게 규정해도 되는 것일까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격한 표현을 사용했을 뿐일 거라고

아마 다음에 다시 만나면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일단 내가 잘못한 거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지만

마음이 아프다

 

2004/11/05 15:26 2004/11/05 15:26

2004.5.27

from 돌속에갇힌말 2004/05/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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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27.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렸던 글

당시 추적60분에서 지하철 기관사들에 관한 내용을 방영했고

나는 [돌속에갇힌말] 막바지 편집을 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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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외상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혹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유족은 물론이고
기관사들도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자신이 몰던 기관차에 치어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은
간접적인 살인의 기억을
뇌 세포 깊이 새겨놓는 것이다
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은
딱 사흘 간의 휴가를 얻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해서
대부분 병가를 내고 며칠 더 쉬거나
아예 휴직계를 제출하고 1년 이상 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쉬다가 복귀해도
사고가 났던 역에 진입할 때 마다
고통스러워서 식은 땀을 흘린다고 한다

소리만 들으면서 책을 읽다가
기어이 텔레비젼을 껐다

내게 유일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87년 12월 16일이다
1차 시사를 간신히 마치고
어서 어서 뒷부분을 더 붙여야 하는데
아침마다 강제진압 장면이 담긴 테잎을 틀다가
그냥 끈다

잠이 안와서 한밤중에 다시 일어나기도 하고
새벽에 눈이 떠져서 출근하기도 하는데
여전히 테잎을 보기가 두렵다

마쳐야 한다
마쳐야 한다
직면하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그 그림자를 안고 어찌 살려고...
그러면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본다


 

2004/05/27 03:06 2004/05/27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