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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채취 육체적 정신적 피해 국가책임 물어
35개 여성단체 ‘난자채취 피해자 신고센터’ 설립

윤정은 기자
2006-02-06 19:57:49


‘난자채취 피해자 신고센터’가 설립되어, 이번 달 말까지 가동된다.

2월 6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35개 여성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후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공동변호인단과 함께 “3월 중으로 피해 사례를 토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유경희 대표는 황우석연구팀의 연구용 난자채취에 관련해 “미즈메디 병원에서 난자채취를 받은 79명의 여성 중 14명이 과배란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한 여성의 경우 1차 채취 시 부작용이 발생, 입원까지 했음에도 2차 채취를 해 다시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여성단체들은 이날 이 소송을 진행하는 배경에 대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적합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연구자와 감독기관, 그리고 국가가 피해 후유증이 발생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며, “그 고통과 책임을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이 혼자 떠안고 있다”고 성토했다. 따라서 이 소송을 통해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을 침해해 온 사회적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생명윤리법) 상 관련조항 위반 사항 등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변 김진 변호사는 생명윤리심의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난 사례들을 언급하며 “생명윤리법 상 자기결정권 관련 조항 등 관련법 위반 사실과 그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김진 변호사는 “국가 이익 추구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충분히 정보를 얻고 스스로 자기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경시되어 온 점”에 대해 무엇보다 법적 책임을 묻는 동시에 “체계적이고 인권을 중시하는 관리시스템 마련을 촉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난자채취 피해자 신고센터’는 황우석 연구팀에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의 피해사례뿐 아니라 불임시술용 난자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후유증을 경험한 여성들의 사례도 접수할 예정이다. 피해접수기간은 2월 6일부터 28일까지 한달 동안 진행되며, 전화접수 또는 온라인 접수도 가능하다.

(02-736-8020, www.womenlink.or.kr/nanja.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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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9 12:32 2006/03/1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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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매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생명공학발달, 여성권리 ‘희생’대가인가


 

 윤정은 기자
 2005-11-08 04:50:55 

 

인터넷 상에서 난자 매매를 알선하던 전문 브로커들이 경찰에 의해 적발되면서 “세계에서 난자를 구하기 가장 쉬운 나라가 한국이다”라는 소문이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생명윤리법이 발효

된 지 1년이 다 지나가는 때에 경찰의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경찰의 이번 수사와 관련해 난자 매매와 배아줄기세포 연구과정에서 난자 사용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던 각계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이제 겨우 시작이다”라는 정도. 즉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난자 매매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뭐했나

 

난자 매매보다도 더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은 무엇보다 국가적으로 난자 채취 전반에 관해 여성의 몸과 인권에 대한 접근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또 배아줄기세포 연구과정에서 여성의 몸에서 추출되는 난자의 출처와 사용이 불투명하다는 점과, 생명을 다루는 의학계와 연구진들에게서 이에 대한 법적 혹은 윤리적인 책임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과 인권에 대한 심각할 정도로 낮은 수위의 인식은 그간 정부 부처와 병원 및 연구시스템에 의해 방조되거나 조장됐다는 것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그간 국내에서 시민사회단체들과 생명윤리학회 등은 줄기차게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배아 연구에서 사용된 배아와 난자의 실태에 대해서 조사하여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생명윤리법이 제정되어 2년이 되도록 배아의 생성 보관 현황에 대해 파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무관심으로 일관한 사이, 인터넷 상에서 공공연히 난자 매매와 수출이 이뤄지고, 이제 와서 한국 유명한 산부인과들에서 불법매매 난자들을 사용하여 인공수정 시술을 했다는 의혹이 일자 겨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상황이다.

 

이에 민주노동당 한재각 정책연구원은 안일한 보건복지부의 태도에 대해 지적할 뿐 아니라 나아가 “생명윤리법에는 난자와 정자의 매매를 금지하는 조항만 있다”며 “인공수정 전반에 대한 관리 규제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이 없는 점”을 들어 생명윤리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환경센터 정은지 부장 또한 “산부인과 병원들이 관여한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현 생명윤리법 상 처벌 부분에서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현재 불임 클리닉들이 보유하고 있는 잔여배아 등에 대해 조사 관리하고, 인공수정의 허용 범위나 시술의사와 병원의 자격 등을 규정할 수 있는 인공수정관련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점을 설명했다.



불임클리닉과 배아줄기세포 연구와의 커넥션

 

특히 울산의대 구영모(의료윤리학과) 교수는 “난자 매매에 대해 사회적으로 떠들썩한데 황우석 교수팀이 연구에 사용했다고 밝히는 난자의 숫자는 총 427개다. 황우석 교수는 여성들이 물질적인 대가 없이 순수하게 기증에 의해 난자공여가 이뤄졌다고 하는데, 참으로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여성의 몸과 인권”에 대해 언급하며 이에 대한 인권적, 윤리적 접근 없이 이뤄지는 한국 배아줄기세포연구와 의료계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 동안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 배아줄기세포 연구기관과 대형 산부인과 간 모종의 커넥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서 배아줄기세포연구와 관련한 실태조사에 착수하고, 이들 연구가 적절한 절차를 거쳐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는 올해 7월까지만 해도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 없다”고 답변했다.

 

지난 달 27일 민노당 발표에 따르면 올해 7월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승인신청 판정을 받은 배아연구계획들 27개를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사용되었거나 계획 중인 배아는 2천485개며, 난자는 727개다. 이들 연구에서 주요한 곳은 4곳. 민노당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배아연구기관들과 한국에서 전문불임 클리닉으로 알려져 있는 산부인과 병원들과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의 박세필 박사 연구팀이 2001년 12월부터 시작한 연구에는 총 485개의 배아가 사용될 계획이다. 이 중 71개 배아의 출처는 다름아닌 전문불임 클리닉으로 알려져 있는 마리아병원이다. 또 차병원의 정형민 교수(포천중문대) 연구팀은 2015년까지 10년간 2천개 배아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배아를 제공할 기관이 확인되지 않았다. 민노당 발표에 따르면 배아 제공은 “차병원으로 추정”된다.

 

세번째는 검토보류 판정을 받은 미즈메디 노성일 원장의 연구팀이다. 국내 유수의 산부인과 병원으로 알려진 미즈메디 병원의 노 원장 연구팀은 올해부터 3년간 총 300개의 난자를 사용해서 연구를 진행하려고 했다가, 보건복지부로부터 ‘검토 보류’ 판정을 받았다. 미즈메디 병원은 불법난자 매매와 관련 여부가 있는지 이번에 경찰이 수사에 나선 4개 병원 중 한 곳이다.

 

마지막 네번째 연구기관은 바로 황우석 교수 연구팀으로, 2004년에 242개의 난자를 사용했고 2005년에 185개의 난자를 추출하여 사용했으나 “자발적인 난자 기증”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난자 출처와 난자 기증자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고, 난자 기증자에게 제공한 동의서 양식 사본조차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여서 계속적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정옥(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씨는 한국에서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연구기관과 불임클리닉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산부인과들이 ‘여성의 건강보다는 임신과 출산 관련해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비판했다. 또 이것은 “이전의 국가와 병원시스템에 의해 여성의 몸이 통제되어온 가족계획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황우석 교수팀을 비롯하여 배아줄기세포 연구기관들이 사용하는 난자의 출처와 절차가 불투명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연구되는 “배아줄기세포주들은 생명윤리법 시행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난자나 배아의 출처를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민노당 한재각 연구원은 지적하고 있다.

 

과배란, 몸에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 남길 수 있어

 

이처럼 우리 사회는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의 몸과 인권에 대해 전혀 고려를 하지 않고 있다. 난자의 사용과 관련해 이 문제가 여성의 인권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무관심한 실정이다. 여성의 몸과 질병을 다루는 산부인과 병원들에서조차 의료윤리가 의심되고 있는 상황은 충격적이다.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추출하는 것에 대해 영동세브란스 병원의 서경 산부인과 과장은 “여성들이 과배란 유도 호르몬 주사를 맞을 시 부작용으로 난소과자극증후군이 초래될 수 있고, 심할 경우에는 사망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난자 채취를 위해 난소에 주사바늘을 삽입하는 것으로 인해 “시술이니까 출혈과 감염 우려도 있다”며, “한국에서는 한 번에 10개 이상의 난자를 추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여성의 몸에서 과다하게 난자를 추출했을 시 여러 후유증과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외국에서는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동의한 사람들이 과배란을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을 때는 의사들과 전문가가 난자 기증자들에게 충분히 사전에 이런 사항들을 설명하고 숙지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팀의 경우, 2004, 2005년 2년 간 34명의 여성들로부터 427개의 난자를 제공 받았지만 난자 기증자에게 받아야 하는 동의서조차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번 경찰 수사에서 난자 매매를 위해 과배란 촉진 호르몬 주사를 맞은 한 주부가 난소과자극증후군을 호소한 경우가 언론에 의해 드러났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팀에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했다는 여성들의 현재 건강상태와, 연구팀이 사전에 여성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는지 여부, 그리고 자발적인 동의 절차를 거쳤다면 보관되어 있어야 할 난자기증자들의 동의서까지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현황은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빼내는 것이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동안 국가와 관련의료계, 그리고 관련연구진들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국가 경쟁력의 도구로, 연구목적으로, 돈벌이용으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들의 몸에서 추출한 난자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 임신 목적 외에 동의 절차가 제시되지 않은 채 연구 등의 다른 목적에 사용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임신이 목적인 경우에도 여성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지 따져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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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9 12:29 2006/03/1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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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판적 열광이 “한탕주의” 과학 낳아
     
‘인간배아연구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서 제기

정이은 기자
2005-08-30 00:15:26


지난 두어 달 간, 세간에서 황우석 교수는 ‘최고 과학자’ 이상으로 주목 받았다. 배아복제 줄기세포의 연구 성과에 대한 찬사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해 보도하는 언론으로 인해 그는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다. 심지어 황우석 교수 팀의 연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기를 드는 일까지도 신드롬의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읽혀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황우석 교수의 배아복제 줄기세포의 연구 성과가 지닌 함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과연 줄기세포의 연구 결과가 ‘혁명’이고 ‘획기적 성과’일까. 지난 25일 생명공학감시연대 주최로 열린 토론회 ‘인간배아연구, 이대로 좋은가?’는 지금까지 황우석 교수에게 쏟아진 찬사들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자리였다.





“과연 무엇이 발전인가” 물어야

조주현 계명대 교수(여성학과)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크게 여성, 국가, 초국가적 성격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한국에선 유독 국민국가적 논의가 주도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경제발전, 치료 받고자 하는 환자의 권리, 국가경쟁력 제고, 국가 간 ‘경쟁’ 등이다.

조주현 교수는 이런 논의 속에 생명 윤리에 입각한 목소리가 무시 당하고, “여성의 몸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자원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과연 무엇이 발전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GDP만을 국가경쟁력의 최우선적 지표로 삼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명진 성공회대 강사는 언론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과학 언론은 과학 지식을 전달하고 그것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짚어준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황우석 교수 팀의 연구를 둘러싼 언론 보도는 논의 구도 자체를 협소하게 만들고 왜곡시켰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김명진 강사는 국내 언론이 “외국에서 찬사를 보냈다”에 부합하는 내용들만 발췌해서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황 교수의 연구가 내포한 윤리적 쟁점들을 제대로 짚지 않은 채 ‘과학 대 윤리’라는 대립구도를 내세워, 이른바 ‘발목 잡는 윤리’ 이미지를 고착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의 이런 태도가 과학자들로 하여금 한탕주의 연구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서구 과학자들이 열광한 ‘진짜’ 이유

김씨는 또 사실 서구 과학계가 이번 연구에 열광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말하며, “줄기세포의 유도만으로는 난치병을 고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 언론은 “황 교수가 난치병 치료의 획기적인 가능성을 제시해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고, 서구 과학자들이 이에 열광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는 ‘배아 파괴’라는 윤리적 우려 때문에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다고 한다. 김명진씨는 “이런 상황에서 돌연 서구 과학계에 모습을 드러낸 ‘이방인’인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지렛대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한 서구 과학자들의 ‘칭송’은 자국 정부에 규제 완화의 압박을 가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의 일환으로 한 번 ‘꺾어’ 듣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김씨의 의견이다.

김명진씨는 이어 한국에서 주목 받지 못한 외국 언론의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실제 치료법으로 도입되려면 수 년 이상이 걸릴 것이고, 아예 그런 가능성이 도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는가 하면(네이처 5월 26일자), “배아줄기 세포의 임상 시험 ‘시도’->‘치료 성공’이 아니다”(사이언스 6월 10일자)라는 연구자들의 예측을 소개하며 환자들의 기대가 과도하게 높아진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김씨는 또 난자 공여 문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황 교수가 ‘줄기세포의 역분화’를 이용한 인공난자 연구를 차기 과제로 삼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인공난자 연구는 아주 먼 미래의 실낱 같은 가능성”이라고 비판했다.

난자 출처 의혹 풀리지 않아

한편, 구영모 울산대 교수(의과대학)는 지금까지 제기되어 왔던 난자 출처에 대한 의혹을 분석했다. 황우석 교수는 한국의 난자 기증자들이 돈을 받지 않았고 병자들을 돕기 위한 바람과 국가적 자부심에서 난자를 제공했다고 밝혔지만,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의혹을 더 가중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구영모 교수는 “난자 기증자 명단에 실험에 참여했던 박사 과정의 여성이 포함되었다는 <네이처>의 의혹과 관련해서도 황우석 연구팀의 윤리성을 문제 삼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는 ‘난자 기증자나 그녀의 가족, 친척, 지인 어느 누구도 이 실험으로부터 이득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윤리 규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실험을 통해 이미 직업상 혜택을 받은 셈이라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휴직했고, 연구팀의 2005 <사이언스> 논문 공저자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밝혀진 바 대로 난자 채취는 매우 큰 고통을 수반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합병증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구영모 교수는 “채취 과정에서의 잠재적 위험들이 난자 기증자들에게 충분히 설명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여 자발적으로 동의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04년에 <네이처> 기자가 황우석 교수에게 난자 기증자에게 제공한 동의서 양식을 보여주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 교수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구 교수는 이에 대해 “동의서 양식의 공개는 난자 기증자의 프라이버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 날 토론회는 여성의 권리와 생명 윤리를 아예 논외로 한 ‘배아복제’ 관련 담론에 대해 비판하고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명진씨는 “지금 필요한 것은 줄기세포 연구의 혜택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맞추고, 이에 근거해 해당 연구의 가능성과 한계, 문제점을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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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기사를 보시려면]  난자의 출처 묻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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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9 12:19 2006/03/1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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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의 출처 묻는 이유는
     -생명공학기술, 여성인권 침해우려


 윤정은 기자
 2005-06-14 05:37:10 

“한국에선 생명과학 기술에서 여성의 몸과 인권에 대한 논의가 부재하다.”

(하정옥/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최근 한국 사회에서 소위 “부시 대통령을 보기 좋게 한방 먹인”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 성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과학기술에 의해 난치병을 극복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해준 ‘영웅’ 황우석 교수에 대해 국민들은 고무됐고, 황우석 교수팀이 이룬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어떤 행동도 용납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 종교계가 반기를 들었다. 천주교 정진석 대주교가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두고 ‘살인’에 비유하며 반대했고, 곧바로 생명윤리와 과학기술에 대한 논쟁으로 치닫고 있다. 종교계의 생명윤리 대 난치병 치료를 위한 생명기술. 인터넷 상에는 네티즌들은 찬반 양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여기에서 당장 시급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종교계가 주장하는 인간복제 가능성에 대한 논쟁만이 아니다.

 

 





“난자를 구하기 가장 쉬운 나라”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연구는 전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또 한편 전세계 생명과학 기술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황교수가 “어떻게 그 수백 개의 난자를 구할 수 있었는가”였다. 이미 국제적으로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가 난자의 출처 문제를 두고 연구자의 윤리성을 의심하는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국내적으로는 ‘한국생명윤리학회 치료용 인간배아복제 연구윤리 특별위원회’가 지난해 5월 22일 서울대 황우석 교수를 상대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위원회는 “생명과학기술은 국제적으로 확립된 생명윤리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황교수 연구의 불분명한 과정 상의 문제점을 들어 “성실한 답변을 기대한다”며 질문서를 보낸 바 있다. 질문서의 내용은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 실험 연구비, 연구 심의를 제대로 받았는가 등이었는데, 이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황교수 연구에 사용된 난자는 정확히 그 수가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242개의 난자를 누가 제공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네이처>지가 인터뷰할 당시 자신이 난자를 제공했다고 밝힌 박사과정의 여성연구자는 국내외적인 윤리성 시비가 붙자 영어를 제대로 못해서 잘못 말했다며 말을 바꾸었다. 황교수 측은 이후 이 연구에 동의하는 간호사들이 난자 제공자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입증할만한 기증자와의 서면동의서나 기타 증거물을 제시한 적은 없다. 과연 황교수 측이 밝힌 것처럼 '자발적인' 16명의 난자 공여자들로부터 242개의 난자가 나왔을까?

 

이 말이 사실이라면 평균 1명당 15개의 난자를 채취한 것이 된다. 한 사람이 15개 난자를 제공하기 위해선, 자연적으로는 여성의 몸에서 한 달에 하나씩 배란되는 난자를 과배란촉진 주사를 맞아 한꺼번에 다량의 난자를 배란되게 만들어야 한다. 약 열흘 동안, 하루에 두 번씩, 거르지 않고 꼬박 맞아야 하는 이 호르몬 주사를 통해, 10일 동안 한 명의 여성이 생산하는 난자 수는 3~10개 정도다.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했다는 여성들은 시험관 아기를 얻으려는 불임여성들도 맞기 힘들어한다는, 거기다가 몸에 위험하기까지 한 과배란제를 맞으며 “난치병을 고칠 과학기술”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했다는 얘기다. 과배란제의 위험성은 세계적으로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의 한 병원 연구진은 난자기증자들이 암 발생 위험이 높고, 연구결과 60건 이상의 암 발생 사례를 분석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불임전문병원이 채취한 난자들의 행방은?

 

난자의 출처는 여성인권과 생명과학 기술 절차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간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지적을 해 온 김병수(홍익대 강사)씨는 “여성의 난자를 구하기 가장 쉬운 나라가 한국이다. 외국에선 난자를 구하지 못해 실험이 포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몇 년 전엔 난자 매매를 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벤처기업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불법임에도 난자를 구하기 쉬운 한국사회 구조를 개탄했다.

 

한편 하정옥(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씨는 “한국에서 생명과학 기술은 불임클리닉의 확장이라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하씨는 한국처럼 시험관아기 시술이 많은 나라에서 “전문불임 클리닉으로 유명해진 서울의 불임전문 병원들도 보고가 불규칙하고, 시술보고 시스템이 허술하게 이루어져 중앙 기록관리가 없다”는데 문제 제기했다.

현재는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 15조에 따라, 배아생성의료기관으로 지정 받은 의료기관은 정자나 난자를 채취할 때, 정자제공자나 난자제공자에게 “배아생성의 목적과 배아 보관 및 폐기에 관한 사항, 임신 외의 목적으로 잔여배아를 이용할 때 동의” 여부를 서면으로 남겨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는 서면동의가 없었다. 유명한 불임전문 병원인 마리아 병원 관계자는 이 사실을 인정하며 “지난해까지는 받지 않았지만 현재는 법에 의거해 체외수정 시술을 원하는 불임여성들에 한해서 서면 동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차병원에서 지난해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은 한 불임여성은 “당시 서명한 수술동의서에서는 그런 것을 묻는 항목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불임전문병원들이 보전하고 있는 잔여배아는 10~50만까지 추정된다”고 한다. ‘생명윤리안전에관한법률’이 올해 1월 발효되기 전까지 불임전문병원들에 의해 채취 보관 중이던 난자들이 어떻게 보관되고 다른 용도로 이용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 동안 이 부분에 대해 처벌할 법도 없었을 뿐더러, 데이터에서도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발전, 여성인권보장의 틀 위에

 

황교수 연구에서 난자 출처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은 아직 명쾌하게 밝혀진 바 없이 말 그대로 의혹일 뿐이지만, 우리가 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적 감시망이 허술한 상황에서, 여성의 몸에서 채취된 난자들이 과학기술의 미명 하에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공학 발전을 경이로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난자 채취가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은 쉽게 간과되어 버린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김선욱(이대 법학과) 교수는 그간 생명공학의 발전이 “여성의 몸과 여성의 재생산 기능과 밀접

한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남성으로 구성된 과학, 의료기술분야, 윤리분야, 법 분야 등의 논의에서 여성의 경험과 관점은 별로 고려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생명공학과 관련한 정책은 특히 “여성인권의 침해가 없도록 이에 대한 윤리적, 법적 논의가 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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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9 11:48 2006/03/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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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의 쾌거와 여성의 몸
     - 난자 이용한 줄기세포 배양


 윤하 기자
 2004-02-15 23:56:37 

 

며칠 전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보도 중 하나는 우리나라 연구진이 ‘인간의 난자’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이 성공으로 지금까지 불치병인 당뇨나 치매, 그리고 심장병, 이식이 요구되는 여러 난치병들이 완치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그러나 보도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현재 수준은 그저 인간배아를 가지고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지, 이것을 각종 질병치료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줄기세포가 어떤 기관으로 분화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성공을 확신할 수도 없으며, 그것의 실험을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기간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한편, 이 보도에 대해 즐거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려의 목소리들 또한 높았다. 참여연대와 시민과학센터는 이들 연구자들이 얼마나 윤리적인 고민들을 했는지를 문제 삼으면서 앞으로 실험에 필요한 난자와 수정란을 둘러싸고 발생될 수 있는 매매와 불법적인 거래의 위험성을 예고했다.

 

나 역시 이들의 의견에 철저하게 동의한다. 이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난자는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될 것이다. 난자 산업, 그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아무리 기증에만 의존한다는 원칙을 정한다 하더라도, 이 실험을 위해 필요한 무수히 많은 난자를 구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난자를 사길 원할 것이며, 난자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가난한 여성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국여성들이 아니라면 국내의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이나 다른 가난한 국가의 여성들이 이 실험의 난자 판매자가 될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미 제 3세계 여성들을 실험재료로 이용한 바 있다. 서구에서 사용허가가 나지 않은 주사용 피임약(ICs)이나 발암가능성이 있어 판매 금지된 피임약들이 제 3세계 여성들을 대상으로 실험된 것은 유명한 일이다. 더군다나 난자를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면 다양한 수술과정 중 난자를 도둑맞는 일조차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판적인 기사들, 그 어디에도 이 연구가 얼마나 여성의 몸을 함부로 다루고 있는지를 거론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듯이 연구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여성들의 난자’다. 난자의 핵을 떼어내고 환자의 체세포를 난자에 주입하여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이 연구 속에서 난자는 더 이상 여성들의 몸의 중요한 신체기관이 아니다. 난자는 하나의 실험도구일 뿐이며, 체세포를 배양하는 “생식물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나는 이번 생명공학의 쾌거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새로운 생식기술 하에서 여성들의 몸은 하나의 온전한 대상도 되지 못한 채, 떼어내고 검사하고 재조합하고 팔아먹고 빌려주거나 혹은 실험에 쓰이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말했던 독일 에코페미니트인 마리아 미스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녀의 의견이 좀 극단적이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지금 그것이 너무나 분명한 현실이라는 것에 놀라고 있다.

 

생명공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극단적이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의 몸을 함부로 다루는 과학적 기획을 철저하게 거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를 ‘꼴통페미’라고 부르더라도 우리의 몸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꼴통’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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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9 11:41 2006/03/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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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윤하 기자
 2003-06-26 18:07:29 

 

 

지난 주, 영국에서 난치병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의 부모들이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공수정을 통해 동생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어난 아이의 몸을 이용하면 소년
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어린 아이가 투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참 잘된 일이다. 그리고 조직세포가 거의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이식
하는 방법 외에 달리 치료법이 없는 난치병의 경우, 이 방법은 현명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지만, 이러한 순진한 생각 속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
다. 나는 이 보도를 보며 ‘완벽한 아이’를 향한 인간의 경주가 시작되었다는 인상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유전의 모든 비밀이 밝혀진 것은 ‘게놈지도’가 완성되면서
부터다. 인간에 의해 유전정보가 모두 파악됨으로써 문제가 있는, 즉 난치병나 결함이 있
다고 판단되는 유전정보를 태어나기 전에 재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재조작
된 인공 수정란을 어머니의 몸 속에 넣으면 10달 후에는 유전적으로 완전한 아이를 출산하
게 된다. 요즘 생명공학이 관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그동안 백혈병이
나 혈우병 등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병들을 출생 전에 치료해 건강한 아기를 얻을 수 있다
고 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파생될 문제들은 너무나 심각하다. 우선 생명공학은 생명을 창조하고 키우는 역할을 해왔던 여성의 자궁을 이미 만들어진 아이를 그저 키우기만 하면 되는 용기로 전락시킨다. 아이를 만드는 것은 의사들이며, 여성들의 자궁은 만들어진 태아를 잘 키우면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결국,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임신과 출산 등 여성 고유의 일은 여성들의 손을 떠나 의사들에 의해 관리될 것이다.

 

아울러, 더 많은 병의 치료와 생명공학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실험들 속에서 난자나 여성들의 몸은 마치 실험도구처럼 함부로 취급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오늘날의 고도의 과학기술에도 불구하고, 인공 수정된 수정란은 어머니의 자궁 속이 아니고서는 어디에서도 키울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어찌 ‘난자 판매’나 ‘자궁 임대’ 같은 일이 자행되지 않겠는가? 결국, 이러한 생명공학은 여성들의 몸을 실험도구로 전락시키고 상품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 생명공학의 기획은 인간의 존재를 하찮게 취급하는 반생명주의를 담고 있다. 이번에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경우는 몸의 무언가를 나눠줘도 그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듯 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심이 이렇듯 소박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간이나 심장 등 하나밖에 없는 기관을 이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인 어린 자식, 부모 또는 애인이 있다면 이런 장기를 이식시켜 줄 아이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는 장기를 이식시켜 주고 어떻게 될까? 결국 철저히 장기 이식만을 목적으로 하는, 소모품이 될 아이들의 탄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벽한 아이에 대한 소망 속에서 우리는 변형된 ‘우생학’적 의식을 본다. 병도 없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조금도 흠이 없고, 게다가 외모도 수려하고 지적으로도 뛰어난, 소위 ‘완벽한 아이’의 추구는, 결국 정신적 또는 신체적으로 불편을 가진 사람들, 유전병을 앓고 있거나 유전적 요인에 의해 불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또 특정 병에 걸릴 가능성을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게다가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들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우생학적 사고를 본다. 따라서 이런 출산기획이 보편화된다면 ‘완벽한 아이들’ 외에 순전히 어머니를 통해 태어난, 유전적으로 조작을 거치지 않은 아이들은 마치 불량품처럼 취급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과학은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애시당초 과학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요즘은 어쩌면 이 둘은 끝까지 함께 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도덕성은 과학과 비타협적으로 싸우지 않고서는 지켜질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대, 과학과 비타협적으로 싸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인류는 어쩜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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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9 11:36 2006/03/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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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다른팀 연구제동…황교수 업보?
 

[세계일보 2006-01-05 03:06] 
 

  
 
지금부터 7년여 전인 1998년 12월, 인간 체세포 복제로 4세포기까지 배양했다는 경희대 의대 연구팀의 발표로 국내외 과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대한의학회는 황우석 교수와 문신용 서울대 의대 교수를 포함한 4명의 실사팀을 파견했고, 이들은 ‘기술 홍보용’이란 지적과 함께 실험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대한의사협회가 윤리문제마저 제기하면서 이 연구팀은 추가 실험을 포기해야 했다.

 

4일 과학계에 따르면 줄기세포 논란과 관련, 서울대 특별조사위원회의 최종 결과발표를 수일 앞두고 일종의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 7년 전 논란이 또다시 회자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실사팀에 참여했던 황 교수가 지금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검증받는 상황을 ‘부메랑’에 빗대기도 한다.

경희대 의대 이보연 교수(산부인과)는 “실험은 2명에게서 난자 6개를 얻어 체세포 복제를 수행, 이 중 1개 배아가 4세포기까지 진행됐다”며 “(난자) 제공자로부터 잉여난자를 연구용으로 사용하겠다는 승낙서도 받았고, 8세포기까지도 가능했겠지만 윤리논란을 감안해 중단했다”고 기억했다.

 

같은 대학 김승보 교수(산부인과)는 “당시 실사팀이 무슨 목적으로, 또 무슨 근거로 실사를 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때는 물론이고, 현재 황 교수와 문 교수, 노성일 이사장이 갈라선 것도 줄기세포 연구 주도권 다툼 탓이 아니냐는 게 개인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의대 연구팀의 시도는 비록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배아복제 연구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의사협회가 ‘질병 예방과 치료, 건강증진 등 인류의 복지향상을 위한 생명복제 연구는 허용하되, 인간복제나 수정 또는 체세포 이식 이후 14일이 지난 인간배아 연구는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생명복제연구지침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황 교수를 포함한 생명과학자들에게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공개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황 교수는 경희대 실사 직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복제는 좋은 기술이지만 인간에 적용되면 인간의 존엄성, 개체의 독특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사회적인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보는 이 발언과 자못 대조적이다.

 

고작 20개월 후인 2000년 8월 황 교수는 “인간 배아 줄기세포 직전까지 이르는 체세포 복제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고, 2004년과 2005년 잇따른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2006년 현재 그는 논문 조작과 난자 윤리, 나아가 줄기세포 진위까지 의심받으며 학자로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segye.com

 

 

2006/01/06 01:50 2006/01/0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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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입각에 대한 언론보도 중에서 몇 가지

 

*프레시안 <유시민 보건복지장관에 반대하는 세가지 이유>

 

*오마이뉴스<국민들은 유시민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프레시안<몸 낮춘 유시민, 비판을 마음에 새기고 일하겠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2&article_id=0000023263§ion_id=100&menu_id=100

 

*프로메테우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권 부적격>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121&article_id=0000002416§ion_id=100&menu_id=100

 

2006/01/05 18:49 2006/01/0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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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여인’이 신음한다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 자발적으로 난자 기증했던 한 미혼여성의 충격
과배란 후유증 호소에 홀대하던 그들, 제공자 선의까지 무너뜨릴 줄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차라리 하루가 다르게 속속 밝혀지는 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때마다 “설마 그럴 리가….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뀌겠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난치병 환자들의 ‘구세주’로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해져만 갔다. 끝내 <사이언스> 논문이 철회되면서 ‘줄기세포 선구자’는 ‘나라 망신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환자 맞춤형 세포 치료제는 실현 가능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2004년 <사이언스> 논문으로 0.01%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2005년 논문으로 1%의 희망을 가졌던 환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몸과 마음의 상처는 환자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12월21일 위아무개(27)씨는 황 교수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황 교수와의 ‘인연’은 난자 기증을 하려고 연구실에 연락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통화를 시도할 때마다 황 교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답신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날이 바뀌어도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울분을 토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간 난자가 무엇에 쓰였는지에 대해 한마디 들으려 했을 뿐이다. 가족조차 모르게 진행한 일이 과학적 진실 앞에서 너무나 초라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에 출석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에 연락을 주시기 어렵겠죠. 설령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해도 저 같은 사람에게 마음을 쓰기 힘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상처받은 것은 난치병 환자들이 감내해야 할 아픔의 터럭만큼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국보급 과학자의 절박한 호소에 가족 몰래





△ 황우석 교수는 난자 기증 여성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위아무개씨가 지난 12월21일 진료를 받으려고 강남 미즈메디병원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니까 위씨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1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위씨의 손에 <나의 생명 이야기>라는 책만 잡히지 않았어도 처절한 아픔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황 교수는 ‘배아 줄기세포를 통한 재생의학이 난치병 극복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치료용 복제를 이용해 환자가 스스로의 유전물질을 이용해 당뇨병을 치료하는 췌장세포나 손상된 척수를 복구하는 신경세포 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여성의 난자가 필수적이라는 데 있었다. 이전에도 배아 줄기세포의 놀라운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국보급 과학자’가 난자의 필요성을 전하는 절박한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가 의학적으로 과장됐다고 밝혔다. 이들의 뒤늦은 고백에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배아 줄기세포를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많다는데 제가 병원 수술대에 누울 때까지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위씨가 난자를 기증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환자에 적용되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한 상황에서 환자 치료를 위한 연구를 시작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했다. 언젠가 자신의 난자를 이용한 연구가 밑거름이 되어 배아 줄기세포가 다양한 종류의 세포로 분화돼 환자의 체내에 주입될 수도 있다는 희망사항은 위씨의 발걸음을 서울대 수의대 황 교수 연구실로 향하게 했다.


정보없이 미혼녀가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사실 위씨는 다른 난자 기증자하고는 사뭇 달랐다. 집안에 맞춤형 줄기세포 치료제가 필요한 사람도 없었고, 난자 매매로 급전을 마련해야 할 처지도 아니었다. 단지 대학을 휴학하고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외삼촌 내외를 간병하면서 환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한 달여 동안 경험했을 뿐이다. 더구나 위씨는 출산 경험은 차치하고 결혼 근처에도 가지 않은 미혼녀였다. 그런 직장 여성이 황 교수 연구실을 찾은 것은 뜻밖의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황 교수를 만났을 때 이것저것 꼼꼼히 따지셨어요. 혹시 여성단체에서 난자 수급 과정의 문제를 밝히려 함정을 파놓으려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였죠. 그러다가 안규리 교수를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기증자가 환자와 혈연관계가 없을 때’라고 표시된 난자 기증 동의서에 서명했어요.”

그것으로 연구 목적의 난자 기증에 관련된 준비는 마무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 교수 연구실에서 마련한 난자 기증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었다. 지난 2001년 인간 배아 줄기세포 추출을 시도해 배반포 단계까지 진행시킨 미국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만 해도 난자 기증자를 ‘24살에서 32살 사이의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제한했다. 게다가 난자 기증자들의 심신이 건강한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심리 검사와 감염성 질병 등을 포함한 건강 검진을 했다. 이런 기준이 위씨에게 적용됐다면 자발적인 난자 기증자가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임을 염려해야 하는 미혼인데다, 동의서 작성 2년 전부터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위씨는 난자 기증 절차를 밟았다. 황 교수를 통해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지난 1월23일 강남 미즈메디병원에 도착한 위씨는 노 이사장을 만나 간단한 진찰을 받았다. 국내에서 불임 치료 전문가로 꼽히는 노 이사장의 진료는 미혼인 위씨를 불편하게 했다. “나름대로 연구에 보탬이 되려고 기증자를 눕히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질 내부를 쑤시는 듯했다. 노 이사장이 ‘올해 1, 2월에 난자 기증자에게 금품 제공이 있었다’고 밝혔는데 내가 거기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공정가격’인 150만원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난자 매매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아주 기분이 더러웠을 것이다.”

실제로 위씨도 난자 기증 과정에서 합법적인 ‘금품’을 제공받았다. 노 이사장에게 받은 것은 아니다. 난자 기증 동의서를 쓰는 날 안 교수에게서 교통비 명목의 실비로 현금 30만원을 받아 영수증 처리한 것이다. 시술비는 직접 받지 않고 미즈메디병원 부담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설마 시술비를 받지 않은 것을 두고 금품 수수 운운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따지고 보면 30만원은 교통비도 되지 않았다. 난자 생성을 촉진하는 ‘과배란유도제’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이동에 불편을 겪어 한동안 흔들림이 심한 버스 대신 택시를 타야 했다. 게다가 난자 흡입술 이후 몸고생을 하면서 들어간 치료비를 생각하면 ‘짜디짠 실비’였을 뿐이다. 만일 위씨가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를 기대했다면 수천만원을 준다 해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 위씨는 난자 기증을 위해 수술대에 오른 뒤 크고 작은 고통을 겪었다. 위씨는 자신의 진료기록부를 보고서야 29개의 난자가 채취된 것을 알았다.



어쨌든 위씨는 난자 기증자로 전문의를 만나서 과배란 유도제를 투여하기 전에 각종 검사를 받았다. 여러 검사라 해서 심도 있는 검진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혈액과 소변으로 10여 개 항목을 살펴봤을 뿐이다. 그것도 1차 검진에서 특정 수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오자 병원 의료진이 “난자 기증을 시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다른 항목을 추가해 재검진을 실시했다. 생리가 불규칙한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없는 여성이라면 과배란 유도제로 인한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는 게 의료진의 생각이었다. 다음날(1월25일) 특이사항이 없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과배란 유도제 투여가 시작됐다. 위씨는 나머지 9일치 약제를 받아서 돌아온 뒤 난자 흡입술을 받기 전날까지 집에서 투여했다.


난자를 무려 29개나 내놓다


“과배란 유도제를 투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복부 팽만감이 나타나고 열이 심했다. 그래도 의료 기술의 진전을 위해 누구라도 감수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참아냈다. 난자 흡입술을 받으려고 수술대에 오르기 전까지 부모님을 비롯한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그만큼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맹목적인 확신만 있었던 것이다.” 난자를 무려 29개를 내놓고 수술대에서 내려왔다. 서서히 의식이 들면서 숨쉬기가 힘들고 배가 불러왔다. 이내 설 연휴가 시작됐지만 고향에 내려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명절 때 내려가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연휴 첫날 안 교수에게 고통을 호소해야만 했다. 연일 야간까지 하는 근무 여건에 과배란 후유증이 심각해졌다. 병원에 가서 고통을 호소했지만 의료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무리 난자 기증자로서 ‘임무’를 마쳤다지만 병원 쪽의 홀대는 위씨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설 아침을 병원에서 맞았는데 “적당히 쉬었으면 돌아가줬음 좋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해 서둘러 퇴원 수속을 밟아야 했다. 이날치 위씨의 진료 기록에는 ‘안규리 선생님 통화 뒤 입원 원함. 휴식을 위해 입원함’이라고 적혀 있고, 12일치에는 ‘다리와 배가 불편하다. 외음부가 부어 있음. 초음파상 난소는 5cm 커지고 복수는 많이 줄어듦’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정리됐다. 그리고 2월17일에 ‘진료 기록 복사해 한양대로 보냄’이라고 적혀 있는데 한양대 기관윤리위원회의 검증은 어떤 절차로 이뤄졌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설령 위씨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다 해도 난자 기증 동의서 한 장이 대신했을 뿐이다.


각종 여성질환으로 지금도 병원 신세


지금까지 보고된 과배란 후유증의 대표적 사례로는 빈혈이나 나팔관 염증·복막 감염·간 기능 저하·폐 응고 등을 꼽을 수 있다. 심할 경우 난소암 위험이 높아지고 불임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지만, 국내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해마다 난자 흡입술이 1천여 건이나 이뤄지는 대형 병원이 있지만 대체로 최후의 임신 수단으로 선택하기에 불임의 인과관계는 따지기 어려웠다. 위씨는 복수가 차서 배가 3인치가량 늘었다가 원상태로 돌아갔지만 지금껏 각종 여성 질환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게다가 체중이 난자 흡입술 이전보다 7kg이나 줄기도 했다. 위씨 같은 미혼의 난자 기증자는 불임 가능성을 추적 조사해야 할 것이다. 만일 난자 기증의 임상적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만든다면 미혼여성 항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 "제 고통이야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겠지만…." 미혼여성인 위씨는 난자 기증을 위해 처음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그렇다면 위씨의 난자는 어떤 경로를 밟은 것일까. 지난 5월 황 교수가 영국 런던에서 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을 때 위씨는 급성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으로 응급실 신세를 지면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온 황 교수는 전화상으로나마 위씨에게 “이번 연구에 선생님이 많은 공헌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위 선생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황 교수는 185개의 난자 가운데 31개를 배반포로 분화시키고, 여기에서 11개를 줄기세포로 확립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른다면 위씨의 난자에서 줄기세포가 2개쯤 확립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잘해야 배반포로 분화됐을 것이고, 아니면 사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언젠가 황 교수는 위씨에게 체세포 핵이식 과정을 비롯해 배반포에서 줄기세포를 꺼내 배양하는 실험의 전 과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끝내 그런 날은 없었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실험실 문턱을 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공동 연구자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모습에 인간적 아픔을 느끼는데, 실험 장면까지 거짓이었다면 마음이 갈래갈래 찢겨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했는지조차 모르게 됐다. 당분간 산부인과 치료를 받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만 마음에 입은 상처는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다. 왜 그렇게 과학적 속임수를 써가면서 서둘렀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일이었는데….”






“백의종군보다 더 큰 결심을”



난자 기증 여성이 황우석 교수에게 띄우는 편지


황우석 교수님께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아직도 제 눈에는 병상에 누워 계시던 교수님의 까칠한 모습이 선합니다. 어떤 언론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미지 연출’에 능란하신 분이라는 것도. 눈문을 비롯해 연구 성과의 상당수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도 저는 여전히 교수님, 아니 선생님이라 부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무엇이 언제부터 왜 이렇게 엇갈려버린 것일까요. 생명에 관한 순수하고 맹목적인 열정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던 제 믿음은 이제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빈 껍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교수님의 어떤 말로도 이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죠.

저는 사실 교수님이 난자 수급 문제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자리에서 ‘백의종군’ 하겠다고 밝히셨을 때 누구보다 반가웠답니다. 그동안 연구자로서 본연의 모습보다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것 같은 교수님의 행보를 보면서 안타까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겸손과 성실로 무장한 듯 보였던 교수님이 명예욕에 사로잡혀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의 주인공이 되시다니요. 제 충격과 상심은 이루 말로 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난치병 환자들이나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참담한 감정은 인간적인 신뢰가 깨어지는 아픔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더구나 제 소중한 난자들을 채취해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 데 사용한 것인가요? 저는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지만 바로 이런 것이 생명이구나, 하면서 살붙이에 대한 정이 무엇인지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답니다. 제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자부심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 난자를 기증하면서부터였기 때문에 이후에 어떤 고통과 후유증도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기꺼이 제 작은 생명을 내어주었는데 그 생명의 온기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적지 않은 여성들의 피와 눈물은 정녕 이대로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요? 난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도요?

본질을 호도하는 언론의 보도와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발뺌하기에 바쁜 관련자들의 모습도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합니다. 교수님, 이제라도 좋으니 진실된 모습으로 쓰러진 신뢰를 조금이나마 일으켜주세요. 잘못을 시인하고 백의종군보다 더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줄기세포 연구에 혼신을 다해 성과를 거두어주세요. 그것만이 저와 다른 많은 이들을 그리고 교수님을 살리는 길입니다.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 마음만은 꼭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2005년 12월23일

난치병 극복을 기원하며 난자를 기증한 여성


2005/12/31 00:26 2005/12/3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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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아래글의 출처

*참고:브릭:http://bric.postech.ac.kr/

          브릭의 소리마당:http://gene.postech.ac.kr/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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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인터뷰 당사자가 Bric에 공식사과를 했습니다]

 

http://www.ddanzi.com/new_ddanzi/199/199in_01.asp
(트래픽 초과때문에 접속에 장애가 있을 수 있음.)



 

당사자가 빙빙 돌리지 않고 그냥 정확하게 문제되는 부분에 있어서 사과를 합니다. 보기 좋습니다.

 

근데 딴지일보의 멘트가 짜증나는군요. 인신공격성 멘트를 그대로 실어서 결과적으로 물의를 빚은데 대해서 연대책임을 질 생각은 안하고 사과문 게재에 "통탄을 금치"못하고나 있으니...

총수가 이런 말을 합디다.

 

"사태가 발발한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없다."

 

도대체가 딴지가 말하는 "현장"의 실체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인터뷰 당사자가 단지 전공이라는 것 외에 어떻게 "현장"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지요? Bric에는 황우석 시기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토론한다 이건가? 참, 기가 막힘.


* * *

- 사 과 문 -

1. 생물학 논문의 상당수에 과장 또는 조작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전달상에서 심각한 오해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다른 많은 곳에서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시는 많은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진실성이 명예이자 생명인 과학에서 어떻게 조작이 이뤄질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 도중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표현을 과도하게 하였습니다.

 

2. 내용은 전적으로 개인으로서의 의사표현이었으며, 어떠한 단체나 집단도 대표하고 있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행여 이 문제로 인해 마음 상하신 분이 계시다면 다시 한번 깊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3. 브릭 및 여타의 커뮤니티에 대해 근거없는 비방 표현을 담고 있음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이 역시 대화 과정에서 어떤 커뮤니티든 그 모든 내용을 전부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대화가 그렇게 흘러가 버렸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사과 올립니다.


2005/12/29 00:24 2005/12/2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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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출처 관련 복지부와 정치권 ‘책임’ 물어
     
최순영, 유승희 의원 “정치인들 반성해야

윤정은 기자
2005-12-27 03:14:26

 

약 한달 간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대한 진위공방이 서울대 조사위의 중간발표로 “황우석 교수팀 2005년 논문 조작”이라고 일단락 지어졌다. 그러나 아직 최종 발표가 남아있고, 2004년 논문 등 이전의 연구 조작 및 난자출처에 대한 의혹과 사실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밝혀야 할 산적한 의혹들이 한두 개가 아닌 지금 상황에 벌써부터 “황우석 교수를 믿어주자”는 섣부른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공방의 과정에서 진실 규명보다는 황우석 교수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던 정치인이 아직 조사도 마치지 않았는데, “난치병 환자의 꿈, 바이오산업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황우석 교수에게 다시 “연구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난자기증운동 붐 조성한 언론과 정치권 질타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은 이 발언을 한 손학규 경기도지사에 대해 “의혹을 은폐하고 진실을 왜곡하려는 처사”라며 “사회지도층으로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 동안 여론을 호도하던 정치인들이 황교수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술책이라는 것이다. 이어 유승희 의원은 “국가 예산이 들어갔기 때문에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비롯해서 감사원에서도 조사를 해야 하고, 계좌추적 및 검찰 수사도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 또한 최근 성명을 통해 “보건복지부가 난자 출처 의혹 및 연구원 난자제공 과정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고 입장 표명을 했다. 특히 최근 미즈메디 노성일 이사장이 실토한 “1000개 난자 제공” 사실을 언급하면서, 난자 및 시술현황에 대해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와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의 책임을 물었다. 연구의 윤리성을 심의할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그간 “난자 출처를 심의했으나 별 문제가 없다”고 한 부분에 대해 “직무유기”라고 규정하고,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규모, 출처, 제공과정의 윤리성과 적법성 여부 등을 면밀히 조사해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27일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과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실 주최로 여성의원들이 모여 “국정조사를 통해 황우석 연구의 난자 제공 과정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여성의원들은 “무비판적으로 영합했던 정치권의 과오가 국민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유감을 표했다. 또, “난자 제공 과정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보다 난자 기증 운동 붐을 조성하는데 기여했던 언론과 일부 정치권은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난자기증재단 이사로 참여한 여성의원들

26일, 그 동안 여성들을 대상으로 “연구 목적 난자를 기증하도록 홍보 역할을 해왔던” 여성의원들 중 난자기증재단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과 진수희 의원,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의 입장에 대해 듣기 위해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송영선 의원실은 “앞으로 난자기증재단 이사회가 곧 있을 예정”이라며, “(송 의원이) 아직까지는 어떤 입장 표명이 없었다”고 밝혔다. 진수희 의원실은 “난자기증재단 활동은 황우석 교수 연구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며 “상황이 이렇다 하더라도 생명나눔의 취지가 훼손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장향숙 의원실에서는 “(장 의원이) 이사의 직책인줄 몰랐다”며 “난자기증재단 홈페이지에 이사로 올려져 있다면 확인해봐야 한다”는 다소 당혹스러운 답변을 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에 난자기증재단은 별다른 공식적 설명 없이 홈페이지에 게재된 ‘재단을 이끄는 사람들’에서 이사들의 이름과 약력을 일제히 삭제한 상태다.

서울대 조사위의 최종 발표가 결코 이번 사태의 끝이 아니다. 논문 조작에 관련된 조사가 끝난 다음에도 그간 제기된 의혹들을 철저히 규명하고, 여론을 호도하던 정치인들과 책임을 방조한 정부 기관과 인사들에 대해 책임을 분명히 묻는 조사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론을 조장하고, 진실을 은폐하려던 언론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 www.ildaro.com

[이어진 기사를 보시려면]  지금 해야하는 질문은 무엇인가
 난자 관리하는 법률 제정되나
 황우석 교수가 장애인의 유일한 희망?
 세계 여성건강권 기준 떨어뜨린 한국
 외국의 ‘난자기증’ 정책 비교
 ‘난자 모으기 운동’ 문제있다
 난자매매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비판적 열광이 “한탕주의” 과학 낳아
 난자의 출처 묻는 이유는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2005/12/28 23:54 2005/12/2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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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reenreview.co.kr/archive/80KangYanggu.htm



과학기술의 덫에 갇힌 언론

   강양구


   지난 11월 과학기술부는 황우석 교수에게 2005년에 265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개별 과학자에게 지원하는 금액으로는 파격적인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이런 과학기술부의 방침은 민주노동당 등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이런 파격적인 지원에 당연히 따라야 할 공식적인 선정 과정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번 지원은 ‘이종간 장기이식’, ‘인간배아 복제 연구’ 등 첨예한 윤리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연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이런 ‘정당한’ 지원철회 요구는 언론과 정부로부터 묵살당했다.1)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민주노동당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무서운 것이 없어 보이던 민주노동당의 한 ‘스타 의원’도 황 교수에 대한 문제제기를 ‘자살골’에 비유하며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일도 있다. 지난 11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의원들이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황우석 교수와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의원들이었다. 일부 의원들은 황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보조석에 앉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평소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없어 하는 의원들의 모습을 염두에 두면 ‘진풍경’이었다. 그날 강연회에서 황 교수는 매우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연구에 쓰인 난자를 어떻게 얻었는지, 여성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난자를 기증했는지”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이 황 교수를 불편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언론에서는 ‘과학기술과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황 교수의 모습만이1)보도되었다.2)

  잠시 살펴본 것처럼 2004년은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기자들에게는 아주 ‘보람찬’ 한해였을 듯싶다. 진보, 보수 구분 없이 전 언론사 과학기술 담당기자들이 황우석 교수를 ‘스타 과학자’로 만드는 데 나섰고, 그 결과 그는 전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과학기술 담당기자들이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슈를 만드는 것이 드문 현실을 감안한다면 기자들로서는 뿌듯했을 법도 하다. 물론 인간배아 복제 실험이라는 감히 다른 나라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미국의 과학잡지《사이언스》에 게재한 황 교수의 능력(?)이 그 바탕이 됐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모두가 한목소리로 황우석 교수와 생명공학 띄우기에 나설 때, 명색이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한없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황 교수나 생명공학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과학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는 ‘반(反)과학기술주의자’라는 비난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1년 가까이 지내면서, 언론이 과학기술을 보도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이 글은 이런 개인적인 고민의 결과물이다.



  과학기술 보도, 어디로 가는가

  최근 들어 언론의 과학기술 관련 보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과학기술이 삶에 주는 큰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이런 관심의 증가는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관심의 증가와 함께 언론의 과학기술 관련 보도에 대한 문제점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보도가 양적으로는 늘었지만 그 질은 여전히 낮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과학기술 보도의 질에 대한 비판은 보통 ‘전문성의 결핍’에 대한 지적으로 모아진다. 과학기술자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기자를 만나는 일이 제일 싫다”며 언론과의 접촉을 기피하고 심지어 경멸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과학기술 보도에는 아주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비전문가인 기자들이 과학기술 연구를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 보도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서는 흔히 언론의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 강화’가 중요한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과학기술자들뿐만 아니라 언론 스스로도 이것에는 깊은 공감을 표시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과학기술 분야를 오래 담당해온 기자들이 아예 ‘과학기술 전문기자’를 자칭하며 과학기술만 담당하는 게 큰 추세로 자리잡았다. 더 나아가 일부 언론에서는 전문인력을 기자로 채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미〈동아일보〉의 경우 총 10여명의 이공계 출신 석사 졸업 이상자를 과학기술 담당기자로 뽑아 잡지와 신문에 배치했고,〈중앙일보〉와〈한겨레〉에서는 의사를 공채해 의료분야를 전담하게 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 근본적인 의문을 품어봄직하다. 도대체 과학기술 보도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인가? 대개 언론은 과학기술 시대에 과학기술(자)의 목소리를 잘 대변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과학 기사의 배포를 위해 최초로 만들어진 통신사인 ‘사이언스 서비스’가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래 언론은 지속적으로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3)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보도가 지향하는 것도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언론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수록 과학기술(자)과 대중의 거리가 가까워졌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중은 과연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에 대해서 과거에 비해서 더 호의적인가? 이에 대해서 긍정적인 답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갈수록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그 불신의 정도를 정확히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최소한 그 추이를 짐작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그 한가지 방법으로서 대중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영화 속에서 과학기술이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지 살펴보자. 영화 속에 비친 과학기술 이미지를 계속 추적해온 한 과학기술 학자는 “영화 속에 비춰지는 미래사회의 모습은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의 전망이 우세하며, 과학자의 이미지 역시 이타적이고 선하기보다는 사악하고 미친 과학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한다.4) 상업적인 영화들이 대중들의 정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제작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영화 속 과학기술 이미지는 대중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근본적인 우려와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중은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져올 미래를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지적도 살펴보자.《코스모스》,《콘택트》등의 저자로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평생을 ‘과학기술 대중화’에 노력해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책인《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미국에만 국한해 볼 때 ‘과학기술 대중화’는 실패했다고 단언하고 있다.5) 대중들이 현대 과학기술에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접근하기보다는 오히려 현대 과학기술이 부정하는 ‘사이비 과학’이나 ‘반(反)과학’에 더 경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이건의 완고한 ‘과학주의’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그의 지적을 언론의 과학기술 보도와 연관해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비록 세이건이 ‘과학기술 대중화’가 실패한 한가지 원인으로 언론의 상업적 접근을 지적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언론은 훨씬더 일찍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졌고, 그 질도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과학기술자의 성과를 언론 또는 대중에게 매개하는 세이건과 같은 훌륭한 과학 저술가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이런 미국에서도 과학기술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은 현대 과학기술이 주는 여러가지 ‘확신’들에 반감을 갖고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는 현실, 이 현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상황에서 ‘전문성 강화’라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해법인가? 언론의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 강화가 언론과 과학기술자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대중과 과학기술자 사이의 거리는 오히려 더 멀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과학기술 보도의 현실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론의 과학기술 보도의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 언론사 과학기술 담당기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보도의 특징을 크게 다음과 같은 네가지로 요약했다. ‘최초’의 힘, 경제적 관점, 애국주의, 재미있는 ‘이야기’.6) 이 네가지는 사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보도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과학기술 보도의 특징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먼저 기자들은 그 속성상 끊임없이 ‘최초’를 좇는다. 특히 항상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 주목을 받는 과학기술 영역의 경우 이 ‘최초’가 더욱더 힘을 발휘하는 분야이다. 기자들은 “이런저런 자연의 비밀이 국내에서 처음 규명됐다”, “이런 구조의 물질이 개발되기는 이번이 세계 처음이다” 등의 의미를 과학기술 연구를 보도할 때 찾고자 한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특별히 주목받아 미국의 과학잡지《사이언스》에 실린 것도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복제 줄기세포를 추출해냈기 때문이다.

  한편 과학기술이야말로 현재와 미래의 경제성장 동력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과학기술 보도의 큰 특징이다. 보도내용 가운데는 “이것이 실용화 또는 상용화하면 수입 대체효과는 ○○○억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이 분야의 미래 세계시장은 ○○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등으로 연구결과를 경제가치로 환산하는 표현이 빈번히 등장한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대해서도 각 언론들이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는 것은 “10년 후 황우석 교수 연구가 우리나라를 먹여살린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민족주의가 힘을 발휘하는 우리나라에서 ‘애국주의’가 과학기술 보도의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과학기술 선진국에서 해내지 못한 일을 우리나라 과학기술자가 해냈다는 사실은 과학기술 연구 자체보다 더 대중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언론보도에서 “태극기를 꽂고 왔다”는 제목이 등장한 것은 과학기술 보도의 ‘애국주의’를 가장 선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7)

  과학기술은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보도되기도 한다. 최근 각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과학기술면이나 국제면의 과학기술 기사에서 특히 이런 보도를 찾기 쉽다. 이 경우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하면서 도래할 장밋빛 미래가 은근히 제시되곤 한다.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을 정복할 길을 열었다”는 식의 보도 역시 이런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여기서 제시한 과학기술 보도의 네가지 특징은 과학기술이 언론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과학기술이야말로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과학주의’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사회와 비교적 무관하게 발전하며 그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 사회의 발전 방향을 결정한다는, ‘기술결정론’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런 통념이야말로 과학기술 보도를 재구성하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사실 이런 생각은 유럽의 근대 계몽주의 시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적어도 과학기술에 대한 접근만을 놓고 봤을 때 언론은 아직 18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세가지 특징

  언론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계몽주의 시대의 과학주의 한계 안에 갇혀 있는 것과 달리, 정작 현대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세기 현대 과학기술은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현대 과학기술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 특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이 글의 과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가장 중요한 특징 세가지를 포착할 수는 있다.
  

  (1) 자본의 힘

  우선 과학기술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국가는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고, 그것과 관련한 자원을 배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미 과학기술에 대한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자본이지 국가가 아니다. 단적으로 2005년도 정부의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7조원 정도지만, 삼성의 연구개발 예산은 삼성전자 4조 8,000억원을 포함해 총 7조 3,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다른 기업들의 연구개발 예산을 넣으면 자본이 주도하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은 정부의 그것을 압도한다. 더구나 정부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 7조원의 상당 부분은 기업의 연구개발 예산이 쓰이는 분야를 보조하거나, 그것과 경쟁하는 용도로 쓰일 게 뻔하다. 과학기술 영역의 경우에는 국가와 자본의 시각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학기술에 자본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과학기술 연구 현장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8) 미국의 경우 과학기술 연구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은 기업의 막대한 후원에 의존하게 되면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변화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생명공학처럼 이윤추구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는 장려되는 반면 생태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여러 분야들은 지역사회, 환경 등을 고려할 때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심지어 유전자조작 작물(GMO)을 생산하는 초국적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대학의 경우 GMO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가 제약을 받게 됐다.

  과학기술 연구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관행이 사라진 것도 큰 문제다. 우선 기업들이 연구를 설정하는 데 깊숙이 개입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과학기술자 사이에 연구 과정에서 얻은 여러가지 정보를 공개하는 전통적인 관행이 사실상 중단됐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연구와 관련된 비밀을 지킬 것을 과학기술자에게 요구하고, 이를 승낙할 때만 연구비를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상당수의 과학기술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들도 다른 실험실보다 더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내, 기업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은 현재의 과학기술 연구를 ‘전쟁’으로 인식한다. 이기면 막대한 ‘부’가 약속되는. 과학기술 연구를 전쟁으로 인식하는 한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관행이 설 자리는 없다.

  이렇게 기업이 깊숙이 개입한 과학기술 연구의 성과는 고스란히 기업의 것으로 귀결된다. 영국의 노벨상 수상 생물학자인 존 설스턴은 영국 쪽 책임자로 10여년이 넘게 참가한 ‘인간 유전체(게놈) 프로젝트’를 회고한 책에서 이런 현대 과학기술의 경향을 통렬히 고발한다.9) 현대 과학의 최전선에서 연구를 수행한 그의 다음과 같은 얘기는 이 시대 자본이 주도하는 과학기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세기에는 과학과 인간성 사이에 균열이 있었다…더욱 좋지 않은 것은 개발과 탐구가 단기 이윤을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향후 4반세기의 이익을 위해 개인, 기업과 국가가 광적으로 성급하게 서로 경쟁하도록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이다…거대한 초국적기업은 이제 국가보다 더 강력해졌다. 도처에서 그들의 힘을 확인할 수 있고 특히 부자 나라의 수도에서 집중적으로 로비를 하는 경우, 그 힘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우리는 지금 개인 소유권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공공의 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유전자 시대의 적들》385, 400, 403쪽)
  

  (2) 무너지는 과학기술자

  과학기술 연구가 그 기반부터 기업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학기술자 공동체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현실은 암담하다. 현대 과학기술의 두번째 특징은 과학기술자 공동체가 이미 ‘자기비판을 통한 쇄신’과 같은 ‘반성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우선 과학기술 활동이 분화되고 개별 분야의 전문성이 심화되면서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검증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초끈 이론’이라는 물리학의 최신 이론이 있다. 우습게도 우리가 접하는 이 ‘초끈 이론’은 최소한 두 단계의 중개 과정을 거친 것이다. ‘초끈 이론’에 대한 최고의 권위자들이 내놓은 논문을 이해할 수 있는 과학자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초끈 이론’에 대한 최초 논문을 해설하는 2차 논문이 나온 뒤에야, 과학 저술가나 언론이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최초 논문의 똑같은 진술에 대해서 2차 논문들조차도 상이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최초 논문의 진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놓고 과학자들끼리 논란을 벌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긴 했지만 현대 과학기술의 전 분야에 걸쳐 이와 같은 검증의 어려움이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과학기술자들은 의도적인 기만행위에 나서기도 한다. 연구결과에 대한 과학기술자 공동체 내의 검증이 어려워진 현실을 틈타 그 결과를 조작하거나, 다른 연구를 표절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2002년 과학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던, 물리학자 얀 헨드릭 쇤의 논문조작 사건일 것이다. 독일출신의 30대 초반의 물리학자인 쇤은 1997년 미국의 벨 연구소에 자리를 잡은 뒤 약 4년여에 걸쳐 약 100여편의 논문을 쏟아내며 동료 물리학자들을 흥분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4년여에 걸친 쇤의 연구는 모두 날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아무리 애를 써도 쇤의 실험을 재연하는 데 실패한 몇몇 과학자들이 실험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결국 쇤이 데이터를 날조하는 방법을 통해 연구결과를 조작해왔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과학계는 수차례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저명한 연구소에서 실험 관리가 허술하게 이루어졌다는 점,《네이처》,《사이언스》같은 유명한 잡지에도 쇤의 조작된 연구가 25편이나 실렸다는 점 등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이들 연구소나 유명 과학잡지들이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기업으로부터 관심을 끌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성과에 목을 매면서 과학기술 연구의 검증을 소홀히 한 것이다.10)

  사실 이런 기만행위는 오히려 부분적인 문제이다. 이미《네이처》나《사이언스》같은 유명한 과학잡지들조차도 초국적기업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2002년에 있었던 ‘GMO의 유전자 전이’ 연구에 대한《네이처》의 미심쩍은 태도일 것이다. 버클리대학의 대학원생이자 환경과학자인 데이비드 퀴스트와 그의 지도교수인 멕시코인 생물학자 이그나시오 차펠라는 멕시코의 유전자조작 옥수수의 유전자가 인근 농장에서 재배되는 토착 종자에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2001년 11월에《네이처》에 보고됐고, 2002년 4월에《네이처》에 게재될 예정이었다. 만약 이 논문이《네이처》에 발표된다면 그 파장은 매우 컸을 것이다. 하지만《네이처》는 이 논문을 싣는 대신 그것을 반박하는 두편의 글을 게재했다.《네이처》가 GMO를 생산하는 초국적기업의 압력 때문에 이런 무리수를 뒀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네이처》에 실린 반박 글의 저자들이 모두 버클리대학에, GMO를 생산하는 초국적기업 노바티스의 막대한 지원금을 끌어오는 데 직접 관련된 인물이라는 사실만이 진실을 짐작케 할 뿐이다.11)《사이언스》역시 만만치 않다.《사이언스》는 2003년 1월에 생명공학 기업인 몬산토의 후원을 받고 있는 과학자 로저 비치가 쓴 GMO 지지 글을 게재해 큰 물의를 빚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소개한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업과 과학기술자 사이에 일종의 유착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때로 자기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연구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한다. 쉘과 같은 석유 메이저들이 지구온난화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해온 것은 그 단적인 예다. 과학기술자들이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받는 것을 넘어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도 이런 유착관계에 해당된다. 신약의 부작용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주식을 갖고 있는 기업의 주가가 떨어질 것을 감수하면서 부정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데는 큰 이해갈등이 따를 것이다.
  

  (3) 되돌릴 수 없는 현대 과학기술

  앞에서 살펴본 현대 과학기술의 두가지 특징이 다분히 현상적인 것이라면, 지금부터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 본질에 관계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대 과학기술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그 효과 자체가 되돌릴 수 없다는 큰 특징을 갖는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생명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 또 이 세가지를 극적으로 결합시켜주는 정보통신(IT) 기술의 발달은 과학기술자 스스로도 그 결과를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과학기술자의 불안감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 빌 조이의〈미래에 우리는 왜 필요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이다.12) 2000년 4월에《와이어드》에 발표한 이 글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토론을 촉발시키고 있다. ‘IT업계의 현자’로 칭송받는 과학기술자이자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창립자인 그는 이 글에서 “생명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의 결합이 가져올 미래 과학기술이 결코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이 세가지 기술이 ‘인류의 절멸’에 이르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을 묵시론적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그는 대신 과학을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달라이 라마의 “타자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과 같은 강력한 윤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빌 조이의 글이 현대 과학기술의 압도적 영향력과 그 돌이킬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과학기술자 내부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면, 최근 국내외 지식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는 현대 과학기술의 힘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특히〈한겨레〉에서 계속 연재하고 있는 ‘인문의 창으로 본 과학의 풍경’에서 보이는 인문·사회과학 지식인들의 모습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유전자 복제’를 놓고 황우석을 만난 뒤 글을 쓴 왕년의 ‘진보적 지식인’ 이진경 교수는 단연 돋보인다.13)

  이진경 교수는 황우석 교수에게 끊임없이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인위적인 변이’가 가능해졌다면, 이제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변이’의 가능성을 봐야 한다”는 식의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심지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황우석 교수에게 실망했는지 “생물학 자체가 충분히 정치적인 것이 됐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하지만 이진경이 몰랐을 뿐이지 현대 과학기술은 그 공공성 때문에 처음부터 충분히 정치적이었다. 현대 과학기술은 그 영향의 범위가 국지적이고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 복제 연구와 같은 최신의 과학기술 연구는 처음부터 그 공공성 때문에 매우 정치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대부분의 현대 과학기술이 그 연구개발 재원을 시민들의 세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왔다는 점이나 공공성을 갖는 과학기술 연구에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과학기술 활동을 ‘탈정치화’하려는 시도들이야말로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당장 황우석 교수 역시, 글머리에 언급한 것처럼 2005년에 세금 265억원을 지원받을 예정이다.

  이진경 교수가 과학소설(SF)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이런 현대 과학기술 활동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이해가 결여된 탓으로 보인다. 사실 이진경 교수뿐만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의 글에서 과학주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런 무비판적 태도야말로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다르게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반(反)과학기술’이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무관심과 비판적 성찰의 부재이다.



  현대 과학기술에 포섭된 언론

  앞에서 거칠게나마 현대 과학기술의 세가지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언론은 과학기술의 변화된 모습을 예의주시하고 이런 세가지 특징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는가? 변화된 과학기술의 모습을 공론화하고 이에 대한 사회의 대응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자극했는가? 오히려 현실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한가지 두드러진 예를 살펴보자. 앞에서 물리학자 얀 헨드릭 쇤의 과학 기만행위를 소개했다. 그런데 이런 역사상 최대의 과학 기만행위가 국내 언론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주 흥미롭다. 황우석 교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평소 우리나라 언론들이 ‘맹신’하는《네이처》나《사이언스》는 2002년 10월 초 머릿기사로 쇤의 기만행위를 다루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언론은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의혹이 제기된 시점인 그해 6월에〈중앙일보〉에 한번 보도되었고, 기만행위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된 9월 말에〈동아일보〉에 짤막한 기사가 실렸을 뿐이다.〈연합뉴스〉가〈뉴욕타임스〉를 인용해 꽤 긴 기사를 송고했지만 언론들이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은 것도 의아한 일이다. 언론들이 쇤의 기만행위를 몰랐을 리는 없다. 쇤의 기만행위를 다룬《네이처》에 같이 실린 말라리아 모기의 유전자 판독에 대한 기사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대서특필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쇤의 ‘조작된 연구’가 나노기술에 대한 환상을 품게 하는 데 크게 일조해 왔다는 점이다. 2002년 말은 우리나라가 나노기술개발촉진법을 제정하는 등 전세계적인 ‘나노기술 열풍’에 본격적으로 편승하던 때였다.

  이처럼 오늘날 언론은 현대 과학기술의 변화된 모습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과학기술 담당기자들은 정부, 기업, 외국의 과학기술 관련 잡지들에서 보도할 거리들을 찾는다. 이들 정부, 기업, 외국의 과학기술 관련 잡지들이야말로 앞에서 살펴본 현대 과학기술 활동의 변화를 선도하는 핵심 행위자들이다. 언론은 이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공고화, 재생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론은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보도함으로써 현재 진행되는 생명공학 연구의 방향을 시민들이 수긍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 분야에 정부의 예산이 더 많이 투입되도록 한다. 또 언론은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을 긍정적으로 보도해 비판적 접근을 차단한다. 물론 언론의 보도는 기업의 주가를 높이고 자본에 대한 과학기술의 예속을 더욱더 가속화한다. 언론을 통해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기존 과학기술의 구조는 더욱더 단단해지고 발전 속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언론은 기존 과학기술의 방향과 다른 흐름을 철저히 보도에서 배제한다. 지역사회, 인권, 환경 등을 고려한 과학기술은 그런 흐름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소중한 성과들도 언론에서 배제돼 아예 사회적 공론화의 기회를 잃는다. 그 결과는 너무나 명백하다.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구성원들이 합의만 한다면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 수준으로도 충분히 실현가능한 ‘사회적으로 유용한 과학기술’이 계속 포기된다. 이미 1960년대 말 영국 루카스 항공의 노동자들이 간파했던 것처럼 “소리의 속도보다 빨리 가는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정교함을 가지고 있지만 혼자 살아가는 노인들을 체온저하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간단한 난방체계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는” 현대 과학기술 시대의 역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1969년 루카스 항공 노동자들은 비용감축을 위해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려는 경영진에 맞서 그때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시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들은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협력해 그때까지 그들이 만들었던 전투기 엔진이 아닌 150개의 혁신적 제품을 설계하고 그중 일부를 시제품으로 내놓았다. 여기에는 저렴한 의료기구, 저연료 엔진, 도로?철도 겸용 버스, 태양 집열장비 등 인권, 환경, 지역사회의 필요를 고려한 제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1970년대 10여년 동안 진행된 이 계획은 경영진에 의해 거부되었고, 결국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이 해고당함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만다.)14)



  ‘전문성 강화’, 대안이 아니다

  언론이 현대 과학기술 구조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인식하면 앞에서 품었던 의문이 어느정도 해결된다. 왜 언론이 대중들에게 과학기술을 더 전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대중과 과학기술(자)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는가? 언론의 과학기술 보도가 대중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변화상을 대변하고 심화시키는 역할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언론의 과학기술 보도에 대한 대안으로 언급되는 ‘전문성 강화’가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현 구조에서 언론이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곧 정부, 기업, 과학기술자의 이해관계에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잘 갖춘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즉 정부, 기업, 과학기술자들이 생산하는 여러가지 기사거리들을 더 잘 받아쓰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그 전문성의 정체인 것이다. 이 경우 언론은 전문성을 강화할수록 기존의 과학기술을 둘러싼 구조를 더 단단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미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 복제 연구결과가 나온 이후 5월,《네이처》는 ‘한국의 줄기세포 스타들, 윤리적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황우석 교수의 난자 획득 경위, 기관심사위원회(IRB)의 통과 문제,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공동저자로 포함된 경위에 대한 의문 등 여러가지 윤리적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프레시안〉,〈한겨레〉,〈동아일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들은《네이처》가 제기한 윤리 문제의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짧은 설명을 붙인 후 바로 황우석 교수의 반발과 해명을 그대로 싣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네이처》가《사이언스》의 경쟁지이고 특종을 놓쳤기 때문에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를 훼손시키려 한다고 크게 보도했다.〈프레시안〉을 제외한 전 언론이 식물학자인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논문의 공동저자로 포함된 것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정부에 흠집을 내는 기사라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던 일부 보수 언론들도 이 대목에서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소한 이번 건에 관한 한 언론들은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과학기술계의 이해관계에 완전히 동일시한 셈이다.15)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과학부에서 정치부로 옮긴〈뉴욕타임스〉의 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과학기술계와 거리두기의 어려움을 고백한다. “정치 관련 기사를 쓰니 예전에 과학기사를 쓰던 때보다 훨씬더 자유롭게 느껴지더군요. (과학부 기자가) 과학계로부터 거리를 두기란 매우 어렵죠. 지금은 내가 지닌 기자로서의 타고난 감각을 동원해서 대통령에 관해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과학부에 있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16) 황우석 교수 연구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와 일부 언론의 조심스러운 문제제기가 나오자마자 일제히 “황우석 죽이기가 시작됐다”고 나선 과학기술 담당기자들 중에서 이런 고백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가지 덧붙이자면 언론이 이렇게 과학기술 핵심 행위자들의 충실한 대변자로 자처할수록 장기적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언론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은 기자들이 ‘받아쓰기’도 제대로 못한다고 불평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기자들보다도 훨씬 ‘전문적 능력’을 갖춘 과학기술의 대변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10여년 사이 기자들보다도 훨씬더 정확하게 최신 과학기술 연구의 성과와 의미를 짚을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기자들보다 더 쉽게 대중들에게 이것을 중개해주는 과학 저술가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고 언론은 결국 그들의 목소리를 싣는 공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상당수의 과학기술 담당기자들은 과학기술자들의 말을 받아쓰는 수준으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비판적 과학 저널리즘’의 조건

  이제 긴 글의 결론을 맺을 때다. 지금은 언론의 과학기술 보도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선회가 필요한 때다. 과학기술 시대에 언론이 해야 할 일은 현대 과학기술 활동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그것의 사회적 영향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그 감시와 성찰의 결과를 대중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언론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비판적 과학 저널리즘’의 상이다.

  언론이 이런 역할을 맡고 나설 때 오히려 요구되는 것은 과학기술자-정부-기업의 시각이 아닌 전혀 다른 전문성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시민적 전문성’이 필요한 것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거나 과학기술과 관련된 기존의 행위자들(과학기술자, 관료, 기업가 등)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조망하고 과학기술 보도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회학자 넬킨은 이미 1990년에 미국 언론의 과학기술 보도를 분석한 후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언론은) 과학 활동이 내포하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함의들,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성격, 그리고 인간사에 적용되었을 때 과학이 보여주는 힘뿐만 아니라 그 한계까지를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17) 이것은 기자들이 항상 추구해야 할 사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 대담한 해석, 비판적 탐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요구’라고 볼 수도 없다.

  녹색평론사가 주최하는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의 첫번째 강연자로 나선 일본의 토다 키요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교양으로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교양’, 두가지를 강조했다.18) 우리나라의 언론이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비판적 교양을 가지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는가? 바로 이것을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계속해서 과학기술의 사제들(과학기술자, 관료, 기업가)의 시종이나 나팔수 역할만 한다면, 결국 성난 시민들이 몽둥이를 들이댈지 모를 일이다.



1) “‘황우석 수백억 지원’ 놓고 과기부-민노당 격돌”,〈프레시안〉2004년 11월 16일.
2) “‘난자’ 질문에 분노하는 황 박사”,〈여성신문〉인터넷판, 2004년 12월 1일.
3) 도로시 넬킨〈과학과 언론보도〉,《대중과 과학기술》김명진 편저, 잉걸, 2001, 155쪽.
4) 김명진〈영화 속에 나타난 과학기술 이미지〉, 2004년도 한국과학기술학회 후기 학술대회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 자료집, 한국과학기술학회, 2004년 12월 4일;〈대중영화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대중과 과학기술》잉걸, 2001.
5) 칼 세이건《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상헌 옮김, 김영사, 2001.
6) 네가지 특징은 이 글을 참고했다. 오철우〈과학과 언론의 소통 가능성〉, 2004년도 한국과학기술학회 후기 학술대회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 자료집, 한국과학기술학회, 2004년 12월 4일.
7) “‘인간복제, 설계도’ 황우석 교수, ‘미 생명공학기술 고지에 태극기 꽂고 왔다’”,〈동아일보〉2004년 2월 9일.
8)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과학기술 연구 현장에서 관찰되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미국 대학을 중심으로 인상적으로 서술한 다음 글을 참고. 에이열 프레스·제니퍼 위시본〈닫힌 대학〉,《시민과학》통권 제29호,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2001년 7월.
9) 존 설스턴 · 조지나 페리《유전자 시대의 적들》유은실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
10) 쇤의 기만행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리는 다음 글을 참고. 김명진〈과학계를 강타한 ‘역사상 최대’ 기만행위 사건〉,《시민과학》통권 제41호,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2002년 11월.
11)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리는 다음 글을 참고. 프레드 피어스〈멕시코 옥수수 스캔들〉,《시민과학》통권 제39호,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2002년 8월.
12) 빌 조이〈미래에 우리는 왜 필요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녹색평론》통권 제55호(2000년 11-12월호).
13) 이진경 “자연을 거슬러 자연을 꿈꾸다”,〈한겨레〉2004년 11월 15일.
14) 마이클 쿨리〈루카스 항공에서의 협동계획〉,《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송성수 편역, 녹두, 1995.
15) “‘황우석 교수 연구, 윤리적으로 문제있다’ 파문”,〈프레시안〉2004년 5월 7일.
16) 넬킨, 같은 책, 165쪽.
17) 넬킨, 같은 책, 166쪽.
18) 토다 키요시 · 김종철 대담〈환경과 평화의 세기를 위하여〉,《녹색평론》통권 제73호(2003년 11-12월호);“미국의 패권은 오래 못 간다”,〈프레시안〉2003년 10월 1일.



2005/12/19 18:14 2005/12/19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