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그대-박향미

from SHOUT! 2004/11/2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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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소주 한 잔'이라는 공연이 있었다

그 자리에 가기 전까지는 몰랐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를 위한 콘서트였다

'돌속에갇힌말'에 음악을 맡았던 지은언니가 가자고 해서

얼떨결에 따라나선 자리였다

 

최근에 나는 어쩐지 쑥스러워서

집회나 토론회, 콘서트 같은 데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다

누가 같이 가자고 해도 오랫동안 망서리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갔다

내가 움직였던 이유는 오로지 그 사람

'박향미' 때문이다

 

작년 겨울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지은언니와 그는 꽃다지에서 함께 일했던 선후배이자 친구다

그런데 그가 첫 독집앨범을 내고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지은언니는 그가 사라진 지 일년만에

동해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필요할만한 물건들을 챙겨서 차에 싣고 떠났다

그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던 시간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그저 옆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 여행에 내가 동행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대학로 소극장에서 노래하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되자 마자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에게 빚이 있었다

 

그 날 동해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시디 한장을 건네주었다

사인도 해주세요, 라고 말하자

나루 언니와 좋은 인연이 되길, 이라고 적어주었다

그리고 그 시디는

내가 영화 한 편을 간신히 편집하는 동안

든든한 응원가를 들려줬다

 

태어나서 가장 힘겨웠던 지난 여름

선풍기를 종일 틀어놓고 땀띠가 돋은 온몸을 긁어가며

봐도 봐도 낯선 '프리미어'와 씨름을 할 때

몇 번이나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을 때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던 파일들이 날아가 버렸을 때

나는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를

눈 앞에서 생생하게

그가 직접 부르는 걸 듣고 있자니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소름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다가

눈물을 감출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제가 서울을 떠나 동해에 있던 2년동안

   좋은 일과 안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떡두꺼비같은 딸을 하나 낳았다는 것이고

   안좋은 일은...그곳에서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하다가

   오해를 받고 왕따가 되었다는 겁니다...

   항상 옆에 있어서

   그게 너무 당연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동지들, 친구들이 제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저를 위해서 불렀습니다

   전에는 제가 여러분에게 노래로 힘을 드렸다면

   이제는 제가 여러분의 힘을 받고 싶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어떤 모임에서 독립한다는 건

한편 기쁜 일이지만 한편 착잡한 일이다

그는 꽃다지가 고향이고 거기서 행복했겠지만

아름답지 않은 추억들도 많을 것이고

우여곡절끝에 독집앨범을 만들었을 것이다

 

힘들게 만든 앨범을 제대로 홍보해보지도 못하고

혼자 객지로 떠나 혼자 아이를 낳아야 했던 일도,

그 아이와 함께 그 곳에서 투쟁현장을 찾아 노래를 하고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다가

상처만 안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된 과정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으리라

 

그런 그가 허리까지 닿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휘날리며

다시 무대에 섰다는 것이

그리하여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다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당신은 그의 노래를 들어보았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주저앉지마라'

 

혹시 그 노래를 구할 수 있다면 덧글 달아주세요

그리고 멋진 가수 박향미의 노래를 꼭 들어보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삶의 그늘과 그 그늘을 지워내는 시퍼런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당신도 분명 가슴이 두근거릴걸요

 

* 이 글을 작성한 뒤로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를 기획했습니다

   관련된 다른 글들과 작업과정은 또 다른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http://blog.jinbo.net/shout/ 

  

2004/11/25 19:04 2004/11/2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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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던 그는

서운했던 것 같다

이제사 인터넷을 뒤져보고 안건데

여러 신문사와 기자들에게 <돌 속에 갇힌 말>을 소개하고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몰랐다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팔다리가 덜덜 떨렸고

마이크를 놓칠것만 같아서 자꾸만 손을 등뒤로 감췄다

맨 마지막 질문 외에 다른 질문들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도 않고

내 답변 따위는 아예 기억나지 않는다

참으로 무책임한 감독이 아닌가

그런데 맨 마지막 질문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노코멘트'라고 대답한 것이다

출연자가 얼굴을 가려달라고 부탁한 상황에서 턱 아래쪽만 촬영한 화면이 있는데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고 움직이는 걸 민첩하게 따라잡지 못해서

여러 번 얼굴이 노출되었다

출연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내용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대답하기 난처하니까 나는 그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그 때부터 진행하시던 분의 표정이 달라졌다

 

대화를 마치고 손님들과 한참 인사를 나누다가

뒤늦게 극장 문을 나설 때

담배를 피우던 그는 나를 보자 마자 호통을 쳤다

'수많은 대중 앞에서 감독이 윤리적으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정말 실망이다...'

나는 할 말이 없었고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폐막식을 하던 날

입장하기 몇 분 전,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더 호되게 지적했다

'영화는 잘 봤는데 만든 사람은 너무 실망스럽다'

'유시민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없다'

'유시민같은 정치적인 인물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회피하고 지나치게 방어적이다

 유시민같은 사람보다 더 나쁘다'

'나중에 강의할 때 참고자료로 사용하고 싶은 영화였는데

 감독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바뀌려고 한다'

'감독과의 대화를 100회 이상 진행해봤고 당황스런 경험도 많았지만

 이번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다'

'그리고 대화를 마치고 나서 어떻게 나한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느냐'

'뒤풀이 하러 가면서 같이 술 한잔 하자는 말도 못하냐'

'나도 당신만큼 성깔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휙 사라졌다

 

그의 표정과 어투에서 흥분상태가 느껴지고

너무나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어서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아마 그는 그 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보다 더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 대해 너무 실망했나 보다

하여간...여러모로 서운했던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지적을 받을만 했다

지적을 좀 받아야 한다, 나처럼 서툰 사람은...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영화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단 한번, 단 30분만에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를 가지고

나에 관해, 한 인간에 관해 그렇게 규정해도 되는 것일까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격한 표현을 사용했을 뿐일 거라고

아마 다음에 다시 만나면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일단 내가 잘못한 거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지만

마음이 아프다

 

2004/11/05 15:26 2004/11/0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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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일랜드‘의 강국(현빈)의 직업은 보디가드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지켜주며‘ 살아간다. 그는 가족의 죽음으로 정신병을 앓던 중아(이나영)와 결혼했고, 사회 부적응자나 다름없던 재복(김민준)에게 보디가드 일을 가르쳐주면서 그의 사회적 자립을 책임지며, 에로영화 배우였던 시연(김민정)을 경호한다. 그는 ’아일랜드‘의 주인공중 유일하게 사회의 주류에 속해있고, 그 위치를 통해 자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이 이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중아를 ’불쌍해서 사랑‘했다가 ’사랑해서 불쌍‘해져 결혼하는 것이 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그래서, 강국은 친남매지간일수도 있는 중아와 재복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서로를 지켜줄 힘도, 사회적으로 용인받을 수도 없다. 그가 누군가를 지켜주며 ‘참는‘ 것에 익숙해져도 그건 참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재복은 강국이 죽을때까지 중아를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강국은 중아가 재복과 ‘잤는’지 궁금해하고, 재복에게 ‘수준’이 안된다며 화를 낸다. 강국의, 그리고 ‘아일랜드’의 ‘난해한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 강국은 사회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지만, 그와 ‘사회’가 아닌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의 ‘세계’에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왔을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일랜드’는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벗어나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마저 선택을 요구한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대화못지않게 수많은 독백으로 ‘타인’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시청자에게 직접 털어놓고, 드라마는 강국과 중아의 결혼생활이나, 재복과 중아가 서로 만나고 사랑하는 과정같은 일련의 ‘사건’들 대신 그것들로 인해 새롭게 생겨나고, 균열이 일어난 각자의 관계들에 주목한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게 된 사람이 기존의 제도를 벗어나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랑하게 된 사람마저 당신의 ‘섬’안에 들어왔을때 그들과 또다른 섬을 만들 수 있는가. ‘아일랜드’는 우리가 ‘관계’를 맺기 위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고 그 가치관속에 숨어있던 '사람'들 각자의 삶을 모두 감싸안는다. 내 곁에 없는 수많은 ‘정상’의 ‘타인’들과 함께 살 것인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어쩌면 ‘미쳤다’고 해도좋을 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그들만의 ‘섬’에 들어갈 것인가. 아마 강국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는 중아와 재복을 이미 ‘사랑’할뿐만 아니라, 스스로 ‘쓰레기’처럼 살지 말라고 했던 시연마저 사랑하게 될테니까. 자신만의 관계속에 있는 ‘사람’을 잃는 것이 두렵다면, 그것은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이다. 진정한 사람간의 관계와 소통은 사회가 아니라 서로의 ‘비정상’적인 면마저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섬을 만들때 가능한 것이니까. 이미 ‘네멋대로해라’를 통해 ‘네멋폐인’의 섬을 만들었던 인정옥 작가는 강국을 통해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아일랜드’에서 살고 싶다면 이해하지말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그래서 ‘네멋대로해라’는 ‘매니아’ 드라마였고, ‘아일랜드’는 '컬트‘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하면 될 뿐이다.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2004/10/24 14:20 2004/10/2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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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엄마가 그랬다

-애가 왜 그렇게 애살이 없냐

애살, 이란 말은 경상도 사투리인데

오기+승부욕+의욕+의지+기타 등등...으로 해석하면 되려나

특히 애살이 부족했던 건 체육과목이었는데

철봉도 뜀틀도 달리기도 피구도 너무 못해서

국민학교 1학년 때 전교에서 딱 한 사람, 나 혼자

체육에서 미'를 받았던 전설(?)을 남겨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

나는...누구와 경쟁하거나 눈 앞에서 바로 바로 점수를 따야하는 일에서

늘...너무 느리고 너무 자신없어 한다

해보기도 전에 포기한다

천천히 공부해서 찬찬히 이해하는 일은 느릿느릿 해내는데

곧바로 움직여야 하는 일에는 젬병이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완성했다

이렇게 아프고 외롭고 허탈하고 부끄러운 일이 될 줄 몰랐다

시작하기 전에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일이다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애살이 없었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70분짜리 영화 한 편을 마쳤다는 것 만으로도 기특한데

그것만으로도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없는 작업, 이를테면 음악이라든가 컴퓨터 그래픽이라든가

편집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등을 옆에서 척척 해결해준 사람들에게는

나라는 사람이 감독으로서 부족한 게 너무 많은 모양이다

마스터 테잎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질책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아팠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하지만 그동안 시간은 그냥 흘러만 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 많은 사건 사고들이 그저 스쳐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머리에서 가슴에서

옹이도 만들고 뿌리로도 뻗어가서

나중에 뭔가 조금 더 푸릇푸릇한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

새 이파리 같은 것이 돋아나게 되지 않을까

 

87년 대통령 선거 당일

구로구청에서 모여 2박3일동안 열심히 부정선거 항의농성에 참여했던

이름모를 많은 시민들과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준 사람들과

그 사건을 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 분들 덕분에 이 어리숙한 한 사람이

감독이 되었고

감독이 되느라 열병을 앓으면서 삶이 얼마나 팍팍한 것인지 다시 배웠고

결국 혼자서 다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아직 못났고

앞으로도 못난 인생을 엮어갈 테지만

그래서 기대했다가 실망한 분들께는 너무 너무 죄송하지만

그래도 저, 천천히 이 길을 가겠습니다

한꺼번에 실망하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천천히 실망하세요

이 길에서는 저,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께요

 

하여간

드디어 한 편 완성했습니다

모든 것 다 접고, 그냥

축하해주세요

 

 

 

 

2004/10/18 10:25 2004/10/18 10:25

2004.5.27

from 돌속에갇힌말 2004/05/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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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27.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렸던 글

당시 추적60분에서 지하철 기관사들에 관한 내용을 방영했고

나는 [돌속에갇힌말] 막바지 편집을 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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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외상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혹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유족은 물론이고
기관사들도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자신이 몰던 기관차에 치어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은
간접적인 살인의 기억을
뇌 세포 깊이 새겨놓는 것이다
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은
딱 사흘 간의 휴가를 얻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해서
대부분 병가를 내고 며칠 더 쉬거나
아예 휴직계를 제출하고 1년 이상 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쉬다가 복귀해도
사고가 났던 역에 진입할 때 마다
고통스러워서 식은 땀을 흘린다고 한다

소리만 들으면서 책을 읽다가
기어이 텔레비젼을 껐다

내게 유일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87년 12월 16일이다
1차 시사를 간신히 마치고
어서 어서 뒷부분을 더 붙여야 하는데
아침마다 강제진압 장면이 담긴 테잎을 틀다가
그냥 끈다

잠이 안와서 한밤중에 다시 일어나기도 하고
새벽에 눈이 떠져서 출근하기도 하는데
여전히 테잎을 보기가 두렵다

마쳐야 한다
마쳐야 한다
직면하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그 그림자를 안고 어찌 살려고...
그러면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본다


 

2004/05/27 03:06 2004/05/27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