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얼거리다

from 돌속에갇힌말 2005/01/3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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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프리챌커뮤니티 다큐나루에 썼던 제작일지 중에서

 

 

1. 류미례가 나를 <엄마...> 촬영스텝으로 등록해서 아이디카드를 장만해줬는데도' 

    부산영화제에 못갔다

    서울을 맘대로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실 그 영화에서 내가 촬영한 장면은 스텝 스크롤이 올라가는 맨 마지막 장면에

    단 한 컷만이, 그것도 스틸로 들어가 있을 뿐이며

    하은이가 날마다 가는 놀이방에서 단 하루를 찍었을 뿐인데도

    번번이 스텝이라고 챙겨주는 게 고맙고 늘 미안하다

 

 

2. 이사를 앞두고 하드 디스크가 망가졌을 때

    과장 안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 디스크는 자막 작업을 위해서

    그리고 <돌 속에 갇힌 말>과 <금禁>마스터를 저장해두기 위해

    직접 용산에 가서 구입한 것인데

    편집본 프로젝트 파일들이 저장된 다른 드라이브에서 사고가 잦아서

    그것을 그대로 본체에 설치해서 사용하던 중이었다

    내 맘대로 설정을 건드리거나 함부로 만지지도 않았고

    컴을 잘 다루는 사람이 와서 점퍼 위치까지 세심하게 관찰해가며 달아준 것이다

    그래서 안심하고 수정을 했고

    '이제사 마스터를 출력하는구나'하고 

    export tape을 클릭하자 마자...사라졌다

    J드라이브였는데 그 안에 들어있던 모든 폴더들이 사라졌다

    표용수씨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거래하는 데이타복구업체를 소개해줬고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전문가들도 원인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했다

    열심히 해보기는 하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들에게 그 물건을 넘겨주고

    G와 H에 남아있던 최근 프로젝트 파일들을 끌어모으다가 이사를 했다

    오늘 그 하드디스크를 받았는데 마스터 파일의 절반만 겨우 살아났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말했다

    당신이 뭘 잘못한 게 아닙니다, 기계가 잘못된 것도 아니구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운이 나쁘다, 운이 나쁘다...그 말도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석 달동안 운이 나쁠 수가 있을까

 

3.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더라도

    잠시 마음이라도 달래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면서 냉정해지는 사람도 있다

    폭염 때문에 감기몸살때문에

    혹은 장염으로 체력저하로 밥을 못먹고 잠을 못잘 때

    상한 내 얼굴을 측은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련하게 일한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한때는 믿고 좋아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와주신 분들에 그 이름들을 다 새겨넣었다

    어쨌건 사람공부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니까

    나는 사람보는 눈이 정말 없다

    바보다

 

3. 새로 이사한 집은 사무실 짐과 내가 살던 집의 짐이 다 들어가지지가 않아서

   책장과 소파와 기타등등 많은 짐을 버려야 했다

   가져가기로 한 사람들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재활용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그들도 휙 둘러보더니 그냥 가버렸다

   충분히 5년은 더 쓸 수 있는데...

   동사무소에 가서 폐기물신청을 했더니 그 담당자가 그랬다

   요새는 물건이 하도 많이 나와서

   재활용센터에서도 값나가는 거 아니면 싣고 가지도 않아요

   우리도 이런 물건들 처리하느라 아주 골이 아픕니다

    언제나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가보다

    씁쓸하다

    스티커를 부착해놨는데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인지

    아니면 간밤에 비바람이 불면서 그 스티커에 적은 물품 목록이 지워진 것인지

    다른 것들은 치운 모양인데 소파가 건물입구에 덩그렇게 남아있다

    도로 가지고 들어갈까? 쳐다볼 때 마다 답답하다

    저 소파에서 여름을 세 번 났는데...밤샐 때 마다 나를 편안하게 쉬게 해준 친구였는데...

    처음 그것이 합정동 사무실에 들어오던 날 정말 기분좋았었는데...

    아쉽지만 하는 수 없다

 

4. 새 공간은 좋다

    따뜻하고 밝다

    사실...집을 옮길 때 마다 그 집이 마음에 든다

    집 보는 눈도 별로인데 그저 마음을 편하게 먹어서 그런걸까?

 

5.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 수는 없는걸까

   사람이 무섭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만나야지

   그러지 못한다면 다큐멘터리도 일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누구보다 심약하면서 겉으로만 야멸찬 듯 행동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이끌고가야만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2005/01/31 16:35 2005/01/3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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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농성장에서 영화상영하기

혹은

영화로 농성에 참여하기

혹은

현장으로 찾아가는 독립영화 시도해보기

..라는 작전은 일단 실패했다

 

 

 



(흑...계속보기, 기능을 사용하려다가 뒷부분을 날렸어요...

 기억나는 대로 다시 써보자면...)

 

12월 28일 낮

국보법철폐 국민연대의 한 분과 통화할 때

29일 수요일 저녁으로 예정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독립영화협회 배급담당자와 통화할 때

-날씨와 상황으로 인한 어려움

-국회 상황의 변동으로 인한 농성현장 분위기의 변화

-외부에서 시위를 조직하거나 다른 투쟁을 조직해야하는 상황

이라서 상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단 죄송했다

이 추위에 밥을 굶어가며 힘든 농성을 이어가는 그분들께

혹시 조금이라도 누가 되거나 폐가 된 것은 아닐지

동참하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던 건 아닌지

처음에 상영의사를 밝히면서도

억지로 농성단을 어떤 장소에 모이게 하거나

조금이라도 불편을 끼치게 된다면 안하는 게 좋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었다

어쩌면 그렇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아쉬웠다

이번 상영은 '영화를 본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바랄 수 없었고

모일 만한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단 한 사람이 보게 되더라도

지금까지의 복잡한 상황을 잊고 화면에 집중하면서

서로 공감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천막안에 모니터를 설치한다던가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쨋건

이번에는 너무 급하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상황에 대처할 별다른 경험도 없이 시작했던 일이니

상영이 불가능해진 것이 당연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에는

찾아가는 독립영화, 현장에 동참하는 상영회를 이루고 싶다

극장에서

영화제에서

온라인에서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누군가가 찾아와서 봐 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볼 수 있고

보고 싶어하고

같이 봐야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일하는 곳이나 농성하는 곳이나 공부하는 곳이나 쉬는 곳으로

찾아가서 상영하는 독립영화의 사례를 많이 남기고 싶다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여럿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립영화는

그래야 한다고 믿으니까


2005/01/05 12:50 2005/01/0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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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농성장에서 영화를 상영하자, 는 생각은

얼핏 떠오른 아이디어였지만

막상 전화를 하고

여기 저기 연락을 시작하면서

생각에 살이 붙었다

 

 

 


내 영화가 상영되지 않아도 좋았다

농성하는 분들이 보고싶은 영화를 꼽아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립영화가 지금껏

현장에 찾아가서

농성이나 파업에 참여하는 상영형식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궁금해졌다

 

개인의 노력은 여러 번 있었다

김미례 감독의 '노동자다 아니다'도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상영되었고

장애인 이동권을 다룬 영화 '버스를 타자'도 어느 농성장에서 상영되었다고 들었다

주현숙 감독의 '계속된다'도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말하는 여러 장소에서

상영되었다

그러나 독립영화협회의 적극적인 의지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제가 아닌 기간에

여러 영화를 시리즈로 상영하는 일,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이 아닌 곳에서

여러 감독을 참여하도록 권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춥고

상영조건이 열악한 농성장에서

체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관객들이 모이기 힘들다고 해도

찾아가서 영화를 틀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단 하루라도 현장에 동참하는 일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삶이보이는창에서 소개해준 김경란이라는 분과

처음 통화를 할 때는 서로 고마워했었다

그 후에

국보법철폐 국민연대의 김재윤이라는 분

독립영화협회의 김화범이라는 분과 통화하면서

성탄절을 전후한 주말이나

연말 즈음으로 날짜까지 좁혀가다가

'죄송하지만 여러 여건상 이번에는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농성장 외부에서 집회를 조직해야하는 일정이 계속 잡혀서

사람들을 모아서 상영을 하기가 힘들어졌고

아무래도 그 곳에서 영화를 튼다는 건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방법이 없지는 않은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걸까

묘한 합의 후에 막후 신경전과 여론조작에 열을 올리는

여당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분위기를 흐려놓았기 때문일까

알 수 없다

 

농성의 취지와 의지가 부디 관철되기를

농성에 참여한 분들이 더 이상 건강이 악화되지 않기를

 

 

2005/01/03 16:49 2005/01/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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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 날씨에

매스미디어에선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대한 공익광고가 넘쳐나는 가운데

밥을 굶어가며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분들이 있다

 

가족과 따뜻한 집에서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간에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주노동자 인권문제, 그리고 각종 정치적 사안들로 인해

사적인 모든 것을 유보하고 거리에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 출장과 상영회 일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여의도를 지나치면서도 마음만 아팠지 함께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 전화를 했다가 문득

거기서 영화상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각종 영상물을 제작해서

영화제작비를 마련하거나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우리로서는

지금 당장 단식에 참여하기는 힘들어도

뜻을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방금 독립영화협회 회원인 한 사람과 통화를 해서

여의도 농성현장에서 영화상영을 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인권탄압에 관계된 영화는 많다

동참할 감독들도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늘 우리들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위해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와 소외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단 며칠 만이라도

같이 영화를 보면서 서로 마음 훈훈해지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독립영화인의 농성참여 프로젝트

여의도에서 영화틀기

출발!

 

2004/12/23 12:07 2004/12/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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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여성문화이론연구소 자료실

http://www.gofeminist.org/Board/Content.asp?TxtCode=23271&Page=1&BoardCode=Board002

 

 

노라 옥자 켈러 <종군위안부 ( 1997)>

 

 

 

전지구적인 제국주의와 가부장적 식민압제 및 남성주의적 민족주의의 물결이 거셌고 거센 20세기, "아무런 이름이 없던" ("no name") "제3세계" 여성의 원혼들이 태평양을 건너와 딸들을 홀리고 그 딸들의 독자를 홀린다. <여성전사>의 작가 맥신 홍 킹스턴(이 사람은 확실히 대단한 작가다. 적어도 아시아계 미국 문학에서는 비포/애프터 킹스턴이라 할 만허니)이 "이름을 빼앗긴 채 자살해 간" 고모의 원혼이 떠돌지 못하게 글쓰기로 고정하여 달랬던 것처럼, <종군위안부>의 작가 노라 옥자 켈러도 떠도는 여성원혼들을 "고이" 떠돌게 냅두지 않는다.

킹스턴이 자기 고모의 혼령에 홀렸던 것처럼, 켈러도 어느날 하와이에 일본군 성노예의 참상을 증언하러온 황금주 할머니의 증언에 "홀린다." 글쓰기를 통해서 켈러도 한판 "굿"을 벌이며 비체화된 여성들의 원혼을 "달랜다." 이 텍스트를 "쉽사리" 큰 단어들로만 이야기한다면,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여성억압(일본군 성노예는 한마디로 저 유태인들이 맨날 산업화하고 기억하려고 열라 애쓰는 사건의 용어를 빌어쓰자면, "성적인 홀로코스트"라 할 수 있겠지)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겠지만, 참으로 복잡한 것이라 차라리 봉합하고자픈 욕구가 솓구쳐 온다.

어쩌면, 아니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젠더화된 억압(억압이란 기본적으로 젠더 억압이며 중층결정의 양식 또한 젠더화 양식이다) 하에서, 여성들에게 글쓰기는 한 판의 "굿"이자 (약한자의 강한?) 무기이며, 그러한 것으로서 글쓰기는 자신과 타자들을 치유하는(이것땜시 모한티는 벨훅스와 트린을 열라 까지만. 여성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가정을 의문시하지 않는 본질주의적이라고) 샤먼적 힘이 있는 것이라는 진부한 진리를 <종군위안부> 역시 예증한다. 켈러의 책은 여성의 몸이 가장 끔찍한 류의 비체가 되는 방식이 섹슈얼리티를 통해서라는 점 역시 드러낸다. 오, 휴/우매니티여, 섹슈얼리티여!

(참고루, 이 비체, 크리스테바가 말한 비체란 초국가적이고 다문화적이며 문화사 자체가 가장 강력한 설명틀이 되는 우리 시대의 종속화 양식이다. 미국 안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렇다. "법적으로는 느그들도 "우리" 국민이긴 헌데 문화적으론 외국인이여/'우리 것이 아니여'(alien)"함시롱 싸가지 없이 하이픈을 붙여 한국곕네 아프리카곕네 하는 하이픈화의 정치학. 이것은 또한 포용하면서도 배제하는 포용/억제(containment)의 술수이기도 하다. )

자원했던 (자원할 때도 너부리는 이미 후회할 것을 예견했었다......아아! 너부리의 욕망은 언제나 절제를 모르고 그리하야 언제나 후회와 부담을 무릅쓰는고야 마는) 발제 준비를 해야지만, 이 켈러의 "허구적" 이야기에 왜 그리 불편시련 것일까.... 마고약도 아닌 이 책은 가슴의 살을 후벼파고 도려낸다. 20세기 판 말뜻 그대로의 하트 오브 다크니스.

이 책은 픽션이고 문학적 재현일 뿐이다...하고 여러 번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하지만, 일본군 성노예의 역사! 진실!은 그저 (일본 정부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되풀이했던 대로) "과거지사"가 아니다. 이 문제는 전지구화의 압력하에서 점증적으로 악화된 채 갱신되고 있는 (초국가적) 민족주의라는 현금의 문제와도 복잡하게 교직되어 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문학적 재현인 이 소설은 허구와 역사의 경계를 흐뜨러 뜨리고 우리에게 "불편"하라고 강요한다. 또한 이런 것으로서 이 책은 재현 일반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또한 내가 왜 한국계 여성 미국인 문학 작품을 학위 논문에 한 장이나 그 이상을 할애하고자 하는 개인적 문제도 생각하도록 강제한다.

20여개의 한국 페미니스트 조직이 만든 정대협의 줄기찬 운동/교섭으로 90년대 들어서야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그나마 어느 정도 사람들의 인식에 들어왔다. "진지한" 켈러의 이 책도 분명 이런 물결에 편승, 가세, 공헌했겠지만, 조지고 부시는 텍사스 주의 한 대학원 수업에서 읽자니 참으로 묘한 심정이다. 어찌보면 지정학적으로 구체적인 이 문제를 우리시대의 미국의 생활, 문화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런 일도 있었구나....쯧쯧...." 역사의 참상과 차이의 문제들이 대학 제도를 통해서 (이내 또 시들어갈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며) 담론적으로 "소비"되고, 출판 시장을 통해서 문화적으로 "소비"되는 이 미국에서, 텍스트 곳곳 너무나 한국적인 문화적 기호들이 지뢰처럼 박혀있고 한국/동북아 주체들에게 더욱 더 반향과 공명이 많을 이 텍스트에 문학 연구자로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어떤 참신한 언어와 새로와보이는 형식에 담아 "저들"과 나 자신을 위협할 것인가?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보편주의적 글로발 페미니즘에 저항하지만, 동시에 글로발 페미니즘의 우산 하에서라야 읽혀지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너부리는 "잘놀고"(playful), 해러웨이가 말한 "아이러니"의 불경을 일삼으며 재미를 좋아하고(fun-loving), 때로 탈젠더로 가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

그란데, 이 책은 이런 너부리의 발목을 잡는다.

20세기 후반들어 페미니즘은 지역, 국적, 인종, 성적 지향, 계급, 문화 등의 갈래를 따라 핵분열을 일으켜 왔다. 포스트구조주의가 차이들의 복권에 상당히 이론적 힘을 실어준 것 같지만 (철학자들은 항상 세상이 (자기들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고 믿는 바보들이다), 실상 이런 차이들의 핵분열은 차이들을 위계적인 사유에서 절단탈구시켜 다르게 구성배열하고자 하는 다른 삶들이 자신들의 욕망과 힘을 가동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켈러가 어머니-딸을 중심으로 소설을 썼던 것은 아마도 이런 차이의 핵분열(켈러는 이 핵분열의 가장 비체적인 뇌관을 재현한다)을 어머니로부터 딸들에게 전해지는 여성들 공동의 자산, 유산으로 삼을 필요성이 있으며, 그 역할을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위임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주 진부한 또 하나의 페미니즘 상식이 나온다: 재현이란 (알고보면 사이비인) 보편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sympathy)이자 "감정이입"(empathy)이니.

켈러의 아키코/순효 앞에서, 페미니즘 한다는 우리 역시, 또한 "잘들 놀고있는" 미국판 포스트모던 페미니즘들이 여성 섹슈얼리티, 몸을 살아숨쉬는 여성들의 피와 살, 육체적 삶의 현실에서 따로 떼어 관념적인/담론상의 차이의 항으로 만드는 작태에 적극적으로 공모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베카는 알게 된다. 자기 엄마가 겪었던 문제는 봉합해서는 안 되는 점이라는 점을. 순효의 녹음테잎은 위계적으로 봉합해도,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자 하는 (알고보니) 주체인 여성의 욕망과 삶이 그 위계적 봉합선을 넘어서고 튿어낸다는 것, 그리하야 딸들에게 봉합하지 말고 튿어내어 리좀적 주체가 되라는, 살아서는 주체됨을 부정당했지만 증언으로 주체임을 증명한 바로 그 산 주체, 허구상 "우리"를 끊임없이 "홀려대는" 유목적 원혼의 절규였던가. . .

이렇게 쓰고 나도,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왜 일본군성노예의 고통스럽고 끔찍한 역사를 다시 기억으로부터/증언으로부터 불러내어 쓰는가? 그리하여 왜 이토록 나를 불편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가?

차학경은 <딕테>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지금 그 모든 것을 부활시키냐고? 과거로부터. 역사를, 그 오래된 상처를. 오래된 감정을 또다시 말이다. 똑같은 어리석음을 다시 사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 지금 그것을 명명함으로써 다시는 망각 속에 잊혀진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라고 (원서, 33).

"위안부"질 당하느라 생긴 몸, 그리하야 정신의 상처를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트라우마라 할 수 있는데, 트라우마란 일종의 "정신은 죽었으나 몸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하게되는 그런 패턴"을 지닌 행동을 하게 된다. (혹자는 이것이 전일본군성노예였던 할머니들이 무당이 된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아까 앞서 말한 종속화의 양식으로서 비체를 일본군 성노예라는 "성적 홀로코스트"의 경우와 연결해보자면, 이 비체를 문학적으로 재현했을때 사회적 침묵시키기(치욕과 민족의 자존심! 말끝을 흐리며 하는 이제와서...라는 레토릭에 숨은 끈질기게스리 남성주의적 민족주의(여기서 여성은 나라요 민족이다)의 욕망)를 초과하는 "말하고자 하는 욕망"(서발턴은 정말로 말할 수 있고 말한다! 보라, 저 할머니들의 증언을! 매주 교회가듯 꼬박꼬박 참여하시는 수요집회를 보라! 단지 우리가 듣지 않고자 무의식적인 척함시롱 싸가지 없이 고의적으로 안들으려 할뿐....)은 때로 유령적 형상으로 드러낸다. 왜 유령이냐고? 문학적 재현상 바로 그 초과/잉여를, 그 모든 구속과 억제, 억압을 뛰어넘는, <주체>로서의 행동*교섭능력과 욕망, 요구를 어떤 합리성과 정확성으로 재현한단 말인가? (<서발턴연구회>처럼? 글쎄....)

"배제와 비가시화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유령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다 (7) . . . 이 이야기들은 재현상의 실수를 고치지도 아니하며, 기억이(즉 역사가) 우선적으로 생산되었던 조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미래를 위해서 대항기억을 향해간다"(Avery Gordon 22)

트라우마로 남는 몸, 그리하여 정신(pschy)의 상흔들은 유령처럼 출몰하는데, 이 때의 유령은 행동*교섭능력, 욕망을 지니고서 무언가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유령들이다. 켈러가 <종군위안부>에서 불러들이는 일본군 성노예의 유령적 출몰에서 우리는 이 출몰하는 유령들이 "피해자"였던 성노예의 지위에 의해서 부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목도한다. 비유적으로 죽은 아키코/순효는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온 세상에 대고 소리질러 고발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신의 "훼손된" 몸과 정신을 긍정하고자 하는 행동*교섭능력을 가진 유령적 인물이다. 유령은 실제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이며(not actual but real) 물질적 효과를 불러온다.

이 살아있는 유령들에게는 공식 역사가 숨기는 아카이브가 있는데, 트린 민하는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세계 최초의 아카이브 혹은 도서관은 여성들의 기억이었다" (Woman Native Other, 112)

 

----------------너부리

 

 

 

2004/12/22 21:05 2004/12/22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