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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영화의 처음과 끝은, 제자와 스승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유치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어쩐지 뽀다구나는...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르키는 것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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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은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어보았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두 시간 여 동안 그야말로 간지가 좔좔 흐른다.

영화를 뒤덮고 있는 검은색, 남자들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손동작 볓 번이면 양복에 구김도 가지 않은 채 적들을 해치울 수 있다. 그리고 희고 작은 컵에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아가씨가 문을 열어주는 일식집에서 고급회를 먹고 최고급 검은 세단을 타고 다니지.

뒤로 갈 수록 힘이 좀 딸린다는 건 인정하지만, 난 사실 이 영화에 반했다. 이런 뽀대나는 영화가 너무 오랜만이라, 너무너무너무 반가웠으니까.ㅎㅎ 이런 내용으로 이런 간지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김지운씨도 멋쟁이.

이병헌이야 뭐 내내 멋있는 척하며 온갖 폼 다 잡으니 그렇다 치고,

이 영화의 진짜 맛은 간간히 나와주시는 다른 남성분들이신데,

특히 에릭의 간지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사라고는 전화 목소리 뿐이지만, 그가 나오는 몇 초간 나는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등장한 인물이기도 하고.

궁예 아저씨 스타일은 목소리에서 최고봉을 달리시고, 마지막 이병헌이랑 라 돌체 비타 앞에 서 있을 때 아주 간지나신다.

 

 

무엇보다 황정민씨 캐릭터가 제대로인데, 지금까지 봐 온 역할 중 최고로 어울린다. 순박하고 어리숙하고 그런 거 보다 백사장 역할이 진짜 딱. 이다. 그리고 노래도 정말 잘 하신다! ㅠ.ㅠ

노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야 뭐 많은 사람들이 좋지 않다 할 수도 있으나, 음악만은 정말 좋다. 특히 황정민상이 부른 노래. 으아~ 직인다. (밑에서 플레이하면 들을 수 있음~ 달콤한 인생, 이라고 노래할 때 내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정말이다.)

 

어쨌든 나로선 간만에 매우 러블리한 영화를 만난 셈이다. 이리 간지 좔좔 흐르는 검은색 느와르를 어찌나 기다렸던가..

 

 

+)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말이 많았었던 것 같다.

개봉 했을 때 보지 못해서 뭐가 뭔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여기저기 이 영화에 관한 글들을 보니,

영화의 끝에 나오는 이병헌의 쉐도우 복싱 장면을 놓고,

영화 전체는 이병헌의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더라.

오히려 난, 그 장면이 달콤한 꿈 같았는데. 그래서 슬펐는데 말이지...

 

 




A Honeyed Question


 
검은 풍선을 입술에 대고


고갤 떨군 채 스텝을 밟네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는 음악은


비정한 내 피를 또 다시 흐르게 하네


유혈이 낭자한 밤에 타버린 살의 내음새


햇살이 선명한 낮에 달콤한 너의 살 냄새


벚꽃이 흩날릴 때에 모든 게 멈추면 좋겠네


심장이 터져 근사한 양복 얼룩지면


아무도 모르게 흐르는 강에 띄워줘


유혈이 낭자한 밤에 타버린 살의 내음새


햇살이 선명한 낮에 달콤한 너의 살 냄새


벚꽃이 흩날릴 때에 모든 게 멈추면 좋겠네


달콤한 인생 빛에 바랜 망자의 하루


당신은 기어이 아무런 대답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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