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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의 추억,

월, 화, 수, 목, 이렇게 꼬박 4일 동안 몇 시간을 잤는가 생각해보니,

채 열 시간이 안 된다.

하지만 난 잠시후, 약 4시간 후에 기차를 타러 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 잠들이 몰아쳐 올까 너무 두려워 잠들 수가 없다.

 

예전에 티비에서 봤는데,

밤 열한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몸이 면역체계를 형성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래서 밤에 잠을 안 자면 다음날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뛰어드는 거라고.

코감기에 걸렸나보다.

코에서 물이 줄줄 나온다. 재채기도 계속 되고.

할머니네 가서 아프면 안되는데 걱정이다.

 

어릴 적에 나는 추석 때 심하게 아픈 적이 있다.

그 날의 기억이 아주 생생한 이유는 세 가지인데,

일 번은 감기에는 기름진 음식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한 상 가득 차려진 각종 전을 비롯한 고기, 그리고 꼬리곰탕을 먹지 못하게 하고 흰 죽을 주었기 때문. 난 아직도 그 날 내 눈높이에서 바라보던 상이 아주 또렷이 기억난다. 물론 그 때의 내 눈빛은 이글이글- 음식들을 향해 불타고 있었고.

이 번은 추석 때 문 연 병원이 거의 없어 겨우 병원을 찾아갔는데, 정말 수많은 아이들이 있어서 나는 무슨 공장 벨트에 들어간 아이처럼 줄 서서 주사를 맞고 나왔기 때문.

삼 번은 할아버지다.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시름시름 거리는 손녀딸이 안 돼 보이셨는지 할아버진, 그 날 저녁 날 업고 시장을 한 바퀴 도셨다. 내 기억으론 그 때 내가 국민학교 3,4 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 할아버진 이미 그 때 연세가 70을 훌쩍 넘기신 때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다 큰 손녀딸을 등에 업고, 추석이라 조용한 시장 골목을 가만가만 걸어갔던 거다. 이미 굽어버린 할아버지의 등이었지만, 나는 열에 들떠 정신이 없었지만, 그 등은 참 포근하고 좋았다. 두런두런 이야기 해 주시며 걷던 그 조용하던 시장 골목이 꿈길 같았다.

 

내년이면 할아버지는 아흔이 되신다.

이제 나는 나이가 너무 들어버려서, 귀여운 손녀딸도 못 되고,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업히기는 커녕 손 한 번 잡아드리기도 어려워졌다.

이번엔 최대한 기회를 노려 손 한 번 잡아봐야지,

날 업어주시던 그 손길처럼 아직도 크고 따뜻한가 몰래 잡아봐야지.

 

코감기 얘기를 하려다 예전 기억이 불쑥 떠올라 떠들어봤다.

어쨌든 명절에 아픈 건 좋지 않다는 것이 이 글과 상관없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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