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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잊혀진 뜨거움에 대해..

추석 연휴 마지막날, 책 한 권을 읽었다.

달의 제단,

안동 어드메 조씨 집안의 종갓집인 효계당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그 곳에서 발견한 오래 된 언간이 이야기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데

책의 얘기는 우선 제쳐두고 - 별로라서가 아니라 꽤나 괜찮았기 때문에 미뤄두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제일 앞에 있던 작가의 말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슴의 뜨거움조차 잊어버린 쿨한 세상의 냉기에 질려 버렸다.

맹렬히 불타오르고 재조차 남지 않도록 사그라짐을 영광으로 여기는 옛날식의 정열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것이 요즘 유행하고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라 해도."

 

그냥 '척'이든 아니면 진짜 잊은 것이든 나는 그 쿨한 세상에 있었다.

소설도 영화도 그림도 음악도 뜨겁게 타오르는 것보다 세상에 냉소적이고 차갑기만한 것들을 좋아했다. 무엇이든 극으로 향하는 것은 촌스럽다고, 적당히 세상을 비꼬아대는 '쿨함'을 좋아했었다. 사랑도, 영원도 믿지 않는다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비웃어왔다. 나는 얼마나 그 뜨거움과 멀리에 있었던 걸까. 맹렬히 불타오르고 싶은 욕망은 언제 사라진 걸까.

 

 



오늘 '너는 내 운명'을 봤다.

작정하고 신파를 만들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눈물을 쪽쪽 짜냈고, 어쩌면 이제는 없을지도 모를, 그런 '영원한 사랑' 따위에 찬사를 보냈다.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다른 다방 아가씨들과 옆을 스치는 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순진한 시골 노총각과 세상의 풍지풍파를 다 겪고 이제야 자신만을 사랑하는 '오빠'를 만난 그녀. 그런데 그 세상 때문에 그녀는 에이즈에 걸렸고, 사랑하는 그녀에게 죽을 때까지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을 꿈꾸고.

설정부터 너무나 뻔했다. 근데 이 뻔한 이야기는 심지어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 되었'단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물음에-이 영화 속에는 이 연인이 함께보는 영화로 '봄날은 간다'가 등장한다- 당연히 모든 건 변한다고 말하던 그녀는 결국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믿는다. 죽을 때까지 사랑할거냐는 물음에 죽은 후에도 계속 사랑할거라고 대답하는 남자 덕분에 말이다.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믿지 않던 그녀다운 말버릇이 하나 있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진정?' 하고 다시 묻는 것. 그를 믿고 사랑을 믿고 의지하게 되면서 그녀에게 그 되물음은 점점 사라져간다.

 

나는 아직도 그 되물음에 익숙하다. 그리고 아직도 내 모든 걸 다 던져 볼 만한 '무엇'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을, 영원하다는 무언가를 믿고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이 혹여 망가질까 대단히 열심히, 차가운 방어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뜨겁고 때로는 유치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 그나저나 전도연이 참 귀엽다. 어쩜 저럴까, 저런 아가씨람 나라도 폭 빠지겠네 싶을 정도로. 그리고 황정민의 빨개진 얼굴은 참말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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