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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이야기

1. 편집실.

밤샘 작업은 때로 마음에 이상한 시간적 여유를 준다.

아직도 아침이 되려면 멀었어,

같은.

회의 뒤에 가벼운 뒷풀이

그리고 이제는 커피 한 잔 후닥 먹고

편집본을 들여다 보다가 어느새 블로그에.

 

2. 요즘 가끔씩 챙겨보는 드라마 중

하이에나라는 게 있다.

드라마는 오지게 선정적인 거 말고는

그것도 조낸 남성 중심적인 마초적인 성적 농담 말고는

마땅히 매력이 없는데

난 소이현 때문에 매번 그 드라마를 챙겨본다.

왜 그렇게 예뻐보이지?

 

너무너무 귀엽기도 하고 가끔 섹시하기도 하고

여하튼 그렇게 되고 싶다 ㅋㅋ

아님 그런 여자친구를 갖고 싶은 건지도 모르고.

 

어젠가, 소이현의 나레이션은

단순하고 유치하고 무슨 파페포포메모리즈스러우면서도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맹글었다.

 

"사랑은 타이밍라고들 한다. 그럼 사랑에 적절한 타이밍은 언제일까.

고민하고 있는 바로 지금"

 

ㅋㅋ 써 놓고 보니 더욱 유치하구나.

 

+ 사실 그 드라마를 보게 된 건 신성록이라는 배우가 나오기 때문인데

드라마 속에서 게이로 나오다가 소이현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양성이 된

역할이다.

그의 대사도 심금을 울렸다..

 

"너는 미로 같아. 널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아."

 

캬캬 이건 더 유치하다. 하지만 유치할수록 더 기억나는 거 같다. 쿱

 




3. 마음이 답답하니 계속 노래를 듣는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노래를 듣다가

가사를 들여다보곤

 

좋다.

 


 

 

왜 그렇게 겁이 많은 거야 왜 그렇게 겁이 많은 거야
한 손엔 총을 들고서 한 손엔 꽃을 들고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나는 어쩌란 말이야 이 바보야

아무도 널 다치게 하지 않아 바보야 널
아무도 마음 아프게 하지 않아 이 바보야

왜 그렇게 잠을 자는 거야 왜 그렇게 잠을 자는 거야
작은 별들 사라지고 다른 별을 쏘아 올리고
다시 빛나지 않으면 나는 어쩌란 말이야 이 바보야
예쁜 별을 다시 보고 싶단 말이야
구름같은 꿈속에서 외로운 별을 불어 줘야해

 

4. 어제 배철수 음악캠프에서 들었던 이야기.

 

가톨릭 미사에는 신도들의 평화를 빌어주는 시간이 있다.

앞과 뒤와 옆에 있는 사람들은 아는 사람일 때도 있고 생전 처음보는 사람일 때도 있다.

평화는 물건처럼 앞에서 뒤로 옆으로 반대 방향으로 전달되어 간다.

 

평화는 히브리어로 샬롬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사로 쓰인다.

오래 전 평화는 물건처럼 생각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선물한 평화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것을 다시 자기의 평화로 되돌려 받는다고 여겼다.

친구집에 가면서 친구가 좋아하는 홍시를 선물했는데 아무도 없어서 도로 가져와 자신이 먹는 것과도 같다.

 

철수는 오늘 덕담이나 격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남에게 복을 빌어주고 성공하기를 기원해 주는 일은 상대방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그런 복과 성공을 누릴만하면 그것은 이루어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헉수고는 아니다 , 상대방에게 행복을 비는 마음은 자신에게로 돌아와 맑은 향기를 풍길테니까.

누군가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은 평화로워진다.

누군가에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복되게 한다.

누군가에게 성공을 빌어주는 사람은 이미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대강 이런 내용, 뒤에 수능 시험을 치는 친구들에 관한 응원? 성공 기원 메시지도 있었는데

난 저 말이 참 좋아서 버스 속에서 급하게 수첩을 꺼내

마구마구 적어댔다.

 

누군가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은 평화로워진다.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금세 내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그래서 사실,

슬프지만은 않았다.

나는 누군가의 평화를 빌어줄만큼

어찌됐든

성장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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