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의 장편 소설이되 잭 런던만의 장편소설이라하기엔 좀. 쓰다 만걸 후대의 로버트 피쉬가 완성시켜놓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뒷 부분은 스릴러일 뿐이다. 사실 이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앞부분에 촘촘히 다 짜여져있다.
그가 -비록 완성하지 못했으나- 썼던 이 소설은 꽤 의미심장하다.
내용은 간단하다.
옛 맑스주의자들이 만든 암살단.
주로 들어오는 의뢰는
뭔가 꾸미려하지만 항상 어설퍼서 실패하고마는 아나키스트들 대신 사회의 악을 처단하고,
'아나키가 한 일'이라고 떠들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 많다.
이들은 처단할 대상에 대해 실제로 '사회의 악인가?'라는 점을 냉정한 평가를 통해 판단한다.
평가 후 처단이 결정되면 1년 안에 처리하는데, 혹시 못하게 되면 의뢰인에게 대가를 다시 반환한다.
어느날 그들의 존재와 방식은 그릇되었다고 생각한 한 젊은이가 암살단의 지도자를 만나 지도자의 목숨을 의뢰한다.
젊은이는 그들의 존재 자체의 모순과 암살이 주는 사회의 위기에 대해 수준높고 열띤 구라구라를 통해 풀어나가고, 지도자는 결국 그의 논리에 굴복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젊은이는 '이제 암살단이 해체되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지도자는 스스로를 처단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온 조직망을 동원하여 자신의 처단을 명한다.
갑작스레 지도자의 대리가 된 젊은이.
그가 만나게 되는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학문에 능통하고 고상하고 순수하고 논리적인 이성을 지닌 지식인들이다.
그들의 이치에 맞는 한 무슨일이든 충실하게 따르는 조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이치에 너무 충실하여 조직원들과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된 지도자.
보기엔 그냥 '미친놈들!'일 뿐이다.
그러나 이 고지식함의 사슬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동네에서 '빨간약을 먹었다'며 좌절하는 네오의 후예들을 몇명 보긴 했어도
솔직히 운동의 역사도, 계보도, 계파도 하나도 모르니
'네가 뭘 안다고?'라고 한마디 들을 수 있겠으나,)
마치 원리원칙에 갇혀 끝내 자멸해버리는 일군의 좌파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진정성이라면
충분히 그들과 공명할 수 밖에 없는 측은지심이 발동할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게 누구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말이다.
여자 캐릭터는 남자들 이어주는 물건에 지나지 않아 살짝 기분 나쁘지만
어떻든 소설로써의 박진감 자체도 만만치 않은 글.
* 그림출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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