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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5/07 17:03

* neoscrum님의 [< Seeing > 서평] 에 관련된 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에서 단 한 사람을 뺀 모든 사람이 눈 멀면서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다.

그 소설이 가장 가슴 치게 만드는 점은

어떤 도시라도 전 민중의 눈이 멀면 묘사되는 상황처럼 되지 않을까하는 

매우 현실적인 인지, 사실주의적 감각이다.

 

눈먼 자가 사회의 일부일 땐

우리에서 '너'와 '나'의 분리가 명확해진다.

격리 수용되고, 다가온다는 이유만으로 총살당하고, 먹을 것도 제때 지급되지 않고...

아이러니하게 격리된 와중에도 배급되는 음식을 독점하여 사람들의 재산을 뺏고 강간하는 매우 조직화된 -그러나 인간의 집단 형성 본능의 실체를 의심하게 할만한 매우 사악한- 집단체가 생기고...

 

모두가 눈이 먼 시점에선

인간의 창조물 도시는

- 누군가는 몇백년 몇천년 이어갈 거라 착각할지도 모르나-

신기루와 같이 단 1주일간의 인류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는 곳이며,

이미 자연과 너무 멀리 떨어진 인간이란 존재들은

먹을 것을 약탈하고 약자를 폭행하고 함께 살기 위한 어떠한 규칙과 합의도 이루지 못한채 낱낱으로 흩어지다가

시체가 되면 개들에게 뜯어먹힌다.

 

여기서 작가는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인을 배치함으로써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폭풍우 속에서 독자를 위한 작은 숨구멍 하나를 열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일한 희망인 양

눈먼 자들의 사이에서 유지할 수 없는 정신을 유일하게 유지하며

가까스로 생존한 -더불어 주위 사람들을 함께 생존시킨 - 한 여인은 그러나,

후속편격인 [눈뜬 자들의 도시] 속 '권력에 눈먼 자'들의 사이에선 끝내 생존할 수 없었다.

 



지자체 선거가 있은 다음날, 어느 나라의 한 수도에서 투표자의 80%이상이 백지투표를 했다.

투표 결과의 무정부주의적 성격에 흥분한 정부는 같은 선거를 다시 한번 치렀으나 백지투표자의 수를 더욱 늘려주었을 뿐이다.

 

이런 극악무도할,

어쩌면 -결코 그렇지 않았으나- 국제적 거대 무정부조직의 나라 흔들기라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이 투표 결과에 대해 정부는 수도 민중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기로 한다.

 

공식적으로 행해진 처벌은 계엄령 선포와 모든 행정, 입법, 사법기관의 이전.

그러나 경찰도 정치인도 사라진 수도에서 예상된 대규모 폭력이나 약탈 사건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행한 처벌 중 하나였으나 무정부주의자의 행위로 규정지워진 지하철역 폭파사건이 있었을 뿐이다.

 

정부가 아무리 시민들을 감시해도 그 뒤에 숨어있어야 할 악독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개입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도시의 민중들은

비록 폭압적 계엄령 속에서 입밖에 내지 못하지만

모두들 '시켜서 한게 아니예요. 내 의지대로 백지투표를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처음부터 정부가 민중의 소리에 귀 기울여 항복을 선언하게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우연히 4년 전 모두 눈먼 사태 와중에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한 여인을 찾아낸 정부는 그녀를 백색투표 사태의 주동자로 지목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끝내 암살시키고 만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정부의 장난질에 놀아나거나 한 것 또한 아니다.

정부의 조작을 드러내려는 한 경찰과 어떤 언론사의 노력으로 새벽시간 아주 잠시 가판대에 나왔던 신문기사는

-비록 단기간에 가판대에서 사라졌지만-

시민들의 손에 의해 민주화 찌라시 마냥 서로 복사하고 서로에게 나누어주고 서로 읽어나가면서 퍼져나갔다.

 

 

민중의 찬란한 단결을 믿고 민중의 분열에 좌절했던 사람이라면 이번 소설에서,

민중이 여전히 분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줌도 안되는 권력집단의 영원한 쳇바퀴 속에서 놀아날 수 밖에 없는 사회라는 색다른 좌절과 패배를 맛볼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속에 나타난 긍정주의는 사라지고

노작가는 빠져나올 수 없는 인간 사회의 사슬에 갇혔다.

 

과연 이 책의 그후,

4년 전 눈이 멀지 않았던 그녀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통해

민중은 무언가를 촉발시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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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17:03 2007/05/0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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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4/3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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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30 12:44 2007/04/3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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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3/19 20:26

오~ 은근히 기대했었나보다.

생각보다 재미없다.

뭔가 재미있긴 한데 뭔가 조금씩 빠진 기분이 들고, 반복도 많고, 작품도 적다.

그래서인가?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요렇게 추가하면 어떨까?', '이런 컨셉이라면 좋지 않을까?'하면서 구경했다.

어떻든... '꼭 봐라'는 못 하겠다.

어쩐지 인터넷 전시가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기도 하고...

 

작가들이 나랑 연배가 비슷한가비?

현대 대중문화의 우상들이라는 캐릭터가 태권브이, 이소룡, 배트맨, 엘비스 뭐 이렇다.

왠지 '현대'가 맞긴 한데 다소 진부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음...

가장 최신은 '비'와 '제시카 알바'정도?

다들 아직 '우상'까지는 못되어서 그런가?

같은 연배라도 안젤리나 졸리나 장동건 정도는 어때? 괜찮지 않나?ㅋㅋ




물론 그 와중에도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다.

내 키만한 크기의 배트맨 패러디 작품이 천장에 매달려있는데,

잡지를 0.5cm 정도 두께로 잘라 붙였기 때문에 저리 나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작가가) 지대로 편집증 환자인 게지.

이 작품은 사실 그냥 스쳐지나갈 법도 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얼굴을 나타내는 살색 부분의 0.5cm 종이 하나마다 전화번호, 주민번호, 이메일주소 등 온갖 종류의 개인 정보가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시장에서의 이 작품의 제목이 [배드맨(bad man)]이었던 점과 완전 남발된 개인정보들을 보면서, 왠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신종 판매업자의 구체적인 상을 보여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대빵 귀여운 얼굴:몸통 = 1:3 엘비스.ㅋㅋ

 

아... 태권브이 시리즈, 진짜 아쉬운 작품들이다.

(작가의 엄청난 의도에 대해 잘 모르는 관계로 그냥 막 얘기한다...-.-;)

'한산도 달 밝은 밤'에 태권브이의 탈을 쓴 이순신이 무심결에 던진 '광'이라...

이 정도 되면 왠지 태권브이 이마에 식은탐이라도 몇개 그려줘야 '리얼리티'가 사는 게 아닌감?ㅋㅋ


 

수묵 모란 꽃마다 피어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얼굴들.

사실 가운데 빨갛고 파란 모란꽃은 반짝이를 사용해서 굉장히 화려하고 눈에 띈다.

왠지 수묵에 이런 화려한 기운을 더욱 불어넣었다면,

엘비스를 반짝이게 했더라면 더욱 재미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이 작가는 주로 이소룡(왼쪽)과 작가 자신(오른쪽)이

나쁜 무리(?)들을 무찌르는 내용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 그림의 경우 엘비스가 가세하여 '지옥의 불길과 죽음의 늪 한가운데 악마의 세력에 맞서 환상의 연주'를 하는 중이다.^^;;

물론 내 눈엔 멋들어진 붉은 벽지에 빌로드 빨의 청록색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연주하는 표정으로 보이지만...ㅋㅋ

 

 

사진이라 착각할 만한 이 그림들.

실제로 봐도 왠만큼 가까이 가지 않으면 사진 확대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교하다.


 

 

 

* 그림출처 : 충무아트홀(http://www.cma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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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9 20:26 2007/03/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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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3/12 11:42

현실의 생생한 묘사를 담은 글이 내 마음에 닿을 때,
그 묘사의 상황은 어느덧 내 눈 앞에 드넓은 벌판처럼 펼쳐지고,
나는 반경 수미터,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공간을 재창조하기 시작한다.

 

표현이 사실적일수록 나의 머리가 수용 가능한 것일수록
재창조된 공간은 신뢰감을 얻고 사실성을 획득한다.

 

보통은 그러할 진데...

 

무협에 당도하면
수십, 수백을 단칼에 쳐도,
수백, 수천년을 뛰어넘어도,
수천, 수만리를 단숨에 넘어도
모든 상황이 생동감있게 펼쳐진다.

 




빙판에 매장했다가 다시 꺼내고도 동상에 걸리지 않고,
함께 묻어두었던 쇳덩이로 칼을 만들면 그 칼이 주인 옆에 붕붕 떠다니고,
심법을 쓰면 마치 거울인양 자신의 '자아'가 아닌 타인의 자아만을 비추는 얼굴이 되고,
평범한 초식 하나만 그어도 그의 숨은 내공을 눈치챌 수 있고,
뿜어져나오는 살기만으로도 죽을 듯 숨이 막히고...

어쩐지 현실에서도 존재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머리 속에 가득 채워준다.

 

7편의 무협단편을 담은 진산무협단편집에는
정파와 사파의 대서사나 각종 검법의 세세한 설명은 없다.
다만 읽어나가다보면 왠지 '강호에서 산다'는 것, '강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 '강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단편이라는 짧은 문장들 속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수많은 내용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아무런 거부감이나 비약없이 자연스레 넘어가는 감정선을 느끼면서 작가의 수려한 문장에 감탄하게 된다.

 

일찌감치 강호를 벗어난 자는 인간의 삶을 얻었고 평범한 주검이라는 선물이 덤으로 기다리고 있다.
강호에 남은 자 중 너무나 살리고 싶은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주검이라는 알지 못하는 검은 나락에 빠진 듯 쓰러져간다.
그러나 그들의 주검은 강호에 꽁꽁 묶인 자들에 비해 훨씬 담담하게 선택할 수 있는 어떤 선택지와도 같은 느낌이다.
다소 비열한 듯, 냉혹한 듯 보이는 자가 끝까지 살아남은 그 곳은 더이상 벗어날 수 없는 '강호'라는 철조망 속의 고독 뿐이다.

 

강호를 살아가는, 한때 강호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모든 것을 바쳐 깨닫게 되는 삶의 마음가짐과,
사랑이든 증오든 때로는 알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이든 생생하고 애달픈 마음의 이야기를 진하게 읽은 기분.

 

고요속에 가슴에 손이 얹어지고 눈이 감겨지는,

심박동이 마구 뛰다가도 평정을 찾게 되는,

행복한 순간이다.

 

* 사진출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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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2 11:42 2007/03/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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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3/04 19:17

오랜만에 외국화가도 아닌, 신인화가도 아닌, 중견작가들의 비교적 최근 작품을 구경했다.

그림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시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의외로 그림을 보면서 '이런 모양일까? 저런 이야기일까?' 상상을 많이 하면서 본 것 같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인생의 한 호흡을 쉬어가는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

나는 -재론의 여지없이- 정말 하라는 대로 말 잘 듣는 범인의 한사람이다..ㅋㅋ

(그림은 스캔받은 거라 화질 대빵 안좋음을 이해해주삼)

 

윤명로의 [숨결]과 [조망]시리즈는

붓터치가

때론 상하로 때론 좌우로 뻗어나가는 산맥자락같아보이고,

옅은 파스텔 톤의 단색 배경이 

마치 구름과 안개가 되어 산수를 살짝 감추었다가 살짝 보여주었다가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색감이 참 좋다.

 

아래 작품은 [조망 MIII-207](2003)인데 역시 언뜻 보기엔 굵은 산맥 느낌이다.

그러나 계속 보다보면

조망되어지는 풍경이 아니라

조망하고 있는 사람들 여럿이 둘러모여 '조망하고','두런두런 이야기나누는' 인상이다.

그림 속에서 여러 사람 얼굴이 보인다.

 



석철주라는 작가는 [생활일기(신몽유도원도)]라는 이름의 작품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그중 2007년도작들은 배경 자체에 상하의 붓터치가 들어가 있는데,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풍경화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왠지 불안감도 느껴지는 역동성이 보인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반면 2006년도작들의 배경은 단정하고 흐름이 없고 그 위에 산수를 얹어놓은 느낌이 강하다.

같은 산수를 소재로 했어도 1년 전에 비해 배경과의 일치감을 획득한 대신 불안정을 동반하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강소의 [섬으로부터]시리즈는 묘한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래의 작품의 경우 마치 한자의 낫획이거나 한글의 자음, 모음인양 떠있는 문양들이 보이고 그 뒤로 문양과 매치되진 않지만 흐릿하게 그림자들이 배치되어있다.

(그림자 부분은 스캔받은 거라 잘 표시는 안보이지만)

 

이 문양들은 하나같이 유기체인 듯 역동적이기 이를데 없다.

반면 실제 유기체인 오리들이 화면에 '靜'을 일으켜 그림을 끌어잡아줌으로써 전반적으로 안정감이 실린 것 같다.  

 

[꿈으로부터]라는 같은 이름의 사진작품들도 몇점 전시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매우 오래된 옛꿈, 원초성을 갈구하는 듯한 감정을 들게 한다.

 

 

오수환의 [변화]시리즈는 그동안 내가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 탓인지

떠있는 붓터치들이 하나같이 로봇의 부품이나 인간의 움직임같이 보인다. 특히 저 강렬한 빨간 색과 파란 색들은 그런 느낌을 더해준다.

 

작품중에 흰 바탕에 검정 붓터치가 몇작품 있었는데,

무언가에서 빠져나오려는 매우 작고 매우 힘겨운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거대하고 깨끗하나 약간은 탁한 세상에 맞서

아직은 시커먼 존재일 뿐이지만 조금씩 빠져나오려는 숨찰 것 같은, 그러나 반드시 해야할 것 같은 움직임.


 

* 그림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리플렛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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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4 19:17 2007/03/0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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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2/19 19:46

유난히 머리 속이 복잡하던 어느 날.

꽤나 오래 영향을 미칠 일에 대해 꽤나 단시일 내에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

누군가와의 대화가, 누군가의 상담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필 재수없게 걸려든 그날의 그 '누군가'는 미술관 관람을 제안했고,

쏟아내야할 말이 많아 썩 내키지 않았던 나는 거절의 미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관계로 - 게다가 미술관 못 간지도 상당 기간 된 관계로 - 일단 가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 나타난 단순함에 구원받았다고나 할까?

'뭐 그리 조급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좀 우스워보이기까지 했다.

어떻든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초현실주의 르네 마그리트.

그가 표현하는 초현실은 우리가 늘상 봐왔으나 낯설게 배치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감촉이나 느낌과 전혀 다르게 표현된 사물 등을 통해

우리를 현실 너머의 세계로 인도한다.

 

[보이지 않는 선수](1927)는 운동 중인 인물의 배치에서 느낄만한 역동성보다는 육중하면서도 정적인, 우울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마도 나무의 기둥인양 두터운 체스 모양 기둥의 빼곡함이 화면 전체를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분이다. 나무 기둥 형상이었다면 훨씬 가볍게 태양을 향해 하늘로 뻗는 기분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상자에 갇힌 boxing helena 같은 저 여성. 그림을 가까이에서보면 저 락카같은 상자안에 하반신이 없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헉-_-;;; 입과 하반신이 소거된 그녀, 그녀야말로 진정 안보이는 선수일까?





[중세의 공항](1921)은 원근감을 무너뜨림으로써 르네 마그리트의 또다른 초현실주의 기법을 선보인다. 머리없는 삐에로나 귀족들. 붉은 벽, 창문으로 추락할 것 같은 사람.

갑자기 1920년대의 시대상이 궁금해지네.

 

[꿈의 산물](1927)이라는 작품은 보고만 있어도 정말 암울했다.

뭔가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어두움을 느꼈는데, 이는 칠흑같은 어두움이 아니라 오히려 적당한 배치와 완전 검정이 아니라서 더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어둠이었다.

 

[벨기에 섬유노동자센터를 위한 포스터] 시리즈는 멀리서 볼때부터 노동조합 내지 노동자 냄새가 확~ 났다.

붉은 깃발, 마주잡은 손과 손. 너무 전형적이다보니 할 말을 잃을 정도..^^;;

 

 

[보물섬](1942). 붉은 홍토에서 돋아난 잎, 그리고 그 잎은 새이기도 한 그런 풀이 자라는 섬. 제목만큼이나 소중한 것을 품고 있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위대한 유산](1940)

작가는 도시에서 주로 살았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화면에 자연을 품고 있는 듯하면서도 한편 탁 트인 자연은 없어보인다.

위의 [보물섬]도 그렇고 [위대한 유산]도 그렇게 생각된다. 어두운 밤에 보이는 거대한 나무들, 그러나 숲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 어둡지만 매우 안심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야수파를 패러디해서 '바슈'('암소'를 뜻함)시기를 만들었다는 르네 마그리트.

뭣 모르는 분석일 지 모르지만 [지성](1946)을 보면 작가가 왠지 패러디를 즐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녀 3총사 촛대, 뭔가 사상 무장용 모자를 썼으나 가면으로 은근슬쩍 가린 얼굴의 남자들, 왠지 그림의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조합이다. 동시에 지성의 본래 모습이란 게 '결국 이런 것'이라는 느낌도 들게 하고...

 

[대화의 기술](1950).

거대한 돌무덤 아래 선 개미만큼 작은 두사람, 왠지 대화의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기억](1948)

석고 두상 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선명한 붉은 자국. 왠지 기억은 기억이되 '상처'의 기억을 나타내는 듯 하다.

 

[신뢰]l(1964~65)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중절모와 파이프 담배대같은 아이템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하지만 중절모를 쓴 말끔한 신사 얼굴 위에 파이프 담배대라, 신뢰보다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광활한 바다](1951)는 자연이되 자연답지 못한 느낌의 극치라고 생각되는데,

액자 속에 갇힌 하늘과 구름에는 심지어 구 모양의 장식까지 되어 있다.

 

 

[여행의 추억](1952)은 그 화석화된 정물로 인해 마치 그 여행이 전쟁이었거나 지진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림이라는 게 다 그렇겠지만 찍힌 파일그림보다 실물이 훨씬 색의 깊이가 더한 것 같다.

 

[심금](1960)에서 보이는 거대한 투명 와인전에 산뜻한 구름은 왠지 심금을 울리기엔 너무나 가벼울 것 같은 거대함을 선사해준다.

 

[백지]는 내 상상력의 부족으로 제목과 이미지의 상관관계가 유추되진 않지만 꽤나 깊이가 느껴지는 좋은 그림이었다. 어두운 밤 속에 불편하게 떠있는 잎들과 달이지만 어쩐지 거부감 없고 자연스러운게 더욱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번 전시에서 느낀 건데 화가란 건 생각보다 단순한 존재인 것 같다.

작품이 모두 이해가 되었고 수준이 낮았고 ... 뭐 이런 얘기가 아니다.

별볼일없는 상상력 때문인지 처음부터 제목에 얽매여있다가 곧 포기하고 작가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이 내 맘대로 감상해버리기로 했다.

다만 작가 스스로 밝힌 '자신의 과거도, 남의 과거도 규칙도 싫고 싱그러운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가 좋다'는 어록의 느낌이 내게도 전해지는 기분,

그러니 초현실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 사진출처 : http://www.renemagrit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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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9 19:46 2007/02/1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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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2/03 03:28

오토코요님의 유희, 숨바꼭질.

'참가한 아이들은 도시에서 사라진다.'

 

높이가 아닌 깊이를 알 수 없는 도시의 밑바닥으로 카메라가 내려가는 동안,

아이들은 입에서 입으로 즐겁기만 해야할 비밀의 숨바꼭질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7명이 모이면 시작하는 숨바꼭질.

그러나 어느새 모인 8명의 여우 가면 아이들의 숨바꼭질은 결코 즐길 만하지 못하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도 일말의 기대라할 해피엔딩은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절대 변하지 않은 결론, 아이들은 사라진다. 아니 소모된다, 그것도 비참하게.

그저 잠시동안 도시의 어둠을 밝히기 위한 에너지원이 되기 위해...

7명이어야할 숨바꼭질 멤버가 8명인 이유조차도 서글프기 그지없다.

남은 한명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깨질 수 없는 숨바꼭질의 고리.


 

 




 

25분의 단편. 짧지만 꽤 강렬하다.

캐릭터도 아이들, 소재도 숨바꼭질.

언뜻 보기엔 가볍기만해야 할 구성과 스토리는

적절한 속도와 완성도 높은 영상 속에서 한층 긴장감과 비장미를 높힌다.

비록 아이들의 에너지로 도시를 밝히는 건 매트릭스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듯 보여도...

 

2005년도 SICAF 때 상영되었다던데 그럼 2004년 아니면 2005년작인가? 앞으로 SICAF 잘 챙겨 봐야겠는걸?

2005년에 나온 [Karas]도 그렇고, 엄청난 2D의 토대를 기반으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3D를 만났을 때 보여줄 수 있는 환상의 세계에 제대로(!) 본 기분이다.

 

* 그림 출처 : 씨네21(http://www.cine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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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3 03:28 2007/02/03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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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1/05 23:48

꿈에서 본 것 같은, 꿈에서 있을 것 같은...

꿈이란 건 정말 양가적이다.

진짜 자면서 꾸는 꿈은 우연으로 주어진 것 같고,

내가 희망하는 꿈은 필연으로 조성된 것 같다.

하지만 자면서 꾸는 꿈 역시 무의식이 필연으로 조성해놓은 것의 발현 뿐 일지도...

 

 

한지선의 [길]은 게임 속 한 컷같다.

인공지능인 것 같기도하고,

고성의 끝없는 계단 같기도 하고,

환타지 애니의 한 배경같기도 하다.

적절한 2찬원과 3차원의 조화가 입체미를 더한다.

 

 

 



영상은 확실히 꿈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해준다.

김민정의 [유연한 정물]은 그야말로 '그대로 멈춰진 한 순간'의 기억인 정물을 영상화함으로써 움직임의 부여를 시도하고 있다.

 

김민정의 [숨쉬는 문] 역시 그러한데, 영상으로 만들어진 벽면의 문이 숨을 쉬 듯 팽창했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 (심지어 숨 쉬는 소리까지 들린다!)

 

김시연의 [Barricade]는 거대한 합판위에 소금으로 만든 그물망이 보인다.

이런 작품을 보면 화가들은 모두 편집증 환자라는 걸 알 수 있다..^^;;

철망 칠 때 사용하는 벌집 문양인데, 철망은 강한 반면 소금은 그냥 불면 날아갈 듯하다.

허상의 바리케이트.

 

이 작품 옆 벽면엔 디지털로 뽑은 프린트 작품 두점이 있는데 방 안에 소금으로 바리케이트 친 모습이다.

희한하게 설치물은 조금만 흩트러뜨리면 날라갈 것 같더니, 

프린트 작품은 사진이라 그런지 일상을 가두는 -평소에는 안보일 것 같은- 희한한 망과 같은 느낌이다. 일종의 심령사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권종환의 [뿌리깊이 인식된 장소의 기억]은 꽤나 진부하거나 꽤나 사실적이다.

옛 시골학교 모습. 책상과 난로, 오르간, 액자가 모두 솜으로 이루어져있다. 구성된 내용물만 보면 나이가 좀 있는 작가같다.

한편, 꿈을 꿀 때는 현상의 뚜렷함보다는 뭉실뭉실함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지.

솜으로 표현한 건 꿈에 대한 '그야말로' 사실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을 지도..

 

 

남경민의 [5개의 병이 있는 실내 풍경]은 2,3차원을 살짝 넘어서는 세계를 2차원 캔버스에 나타내주고 있다.

캔버스 안에는 식탁 위 5개의 투명한 유리병이 마치 사람인양, 주빈인양 놓여있다.

병 안에는 붓, 수첩, 거울 등이 들어있는데 왠지 작가의 일이나 일상, 지향 등을 상징하는 것 같다.

식탁 위로 흰 나비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데, 걸려있는 액자를 통과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2차원 세계에서 2,3차원을 넘어서는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

 

남경민의 [두개의 새장]도 비슷한다.

거울에 비추는 새나 창문의 열린 정도, 의자의 모습 등이 거울 안과 밖에서 매우 미묘한 차이를 나타냄으로써 동일한 듯 하지만 서로 다른 세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남경민의 [창과 캔버스 틀] 역시 그러하다.

벽에 난 창 사이로 보이는 바다풍경, 그러나 같은 벽면에 난 문 안의 풍경은 일상적 방일 뿐이다. 그리고 그 방 안 캔버스의 풍경화는 바다가 아닌 숲이 그려져있다.

 

 

박소영의 [창문 안에는 하늘이 있다]는 그야말로 창문안에 하늘, 밖에는 일반적인 도로 풍경이 있다.

의자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이 내 방안에 하늘을 품고 있다는 느낌을 더해준다.

 

이 작품과 대구를 이루는 박소영의 [창문은 하늘을 담는다]는 [창문 안에는 하늘이 있다]의 야외 버전과 같다.

칠흙같이 어두운 건물의 밖에서 보는 건물의 안은 창문마다 투명한 하늘과 깨끗한 구름 풍경을 가득 담고 있다.

 

김산영의 [엄마, 나 놀이터 갔는데]

'엄마, 나 놀이터 갔는데', 서커스단이 와있더라? 상당히 오래된 동심이다-_-;;;

 

김산영의 [숨바꼭질]이라는 작품은 가장 오른쪽에 술래가 있는 매우 긴 작품인데, 누가누가 숨어 있나 찾아보기하면 재미있을 듯.

 

작품들의 내용이 내가 꿈꾸는 세계라기보다 내가 꾸는 꿈의 세계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꽤 단편적으로 끊어지는 느낌도 많아서 그다지 풍성한 기분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한두번 정도 저런 꿈을 꾸지 않을까?

마치 이 나라가 지겨워 해외로 나가고 싶어지듯,

이 차원이 지겨워 4차원 이상의 세계를 가보고 싶은 꿈.

 

* 사진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꿈속을 걷다] 리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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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5 23:48 2007/01/0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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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12/20 22:59

우연히 다시 보고만 [The Five Star Stories] 1권.

인터넷에서 급검색한 결과 현재(아직까지) 11권...-_-;;

 

87년에 처음 나왔고, 우리나라에 1권 번역되어나온건 97년인 듯싶은데

03년 이후 작가가 또 손놓고 있나보다.

 

너무 오래 전에 봐서 가물가물하지만

5000년을 왔다갔다하면서 메카닉을 가장한 사랑 타령을 하는 듯해도

그놈의 메카닉 대잔치의 포스에 압도당함은 어쩔 수 없는 일.

 

순간 11권 세트 판을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엄청 고민된다.

당췌 읽으려면 손에 쥐어야 하겠고,

일단 손에 쥐면 일이고 뭐고 전폐하고 5000년 속을 헤집고 다닐 판이다.

 

나가노 마모루가 그랬다지?

'난 이 만화를 죽을때까지 그리겠노라'고.

그래, 다 죽었어~!

 

* 참고로

인터넷서점에 붙은 펌글 중에 -여러가지면에서- 다소 리얼한 내용이 있더만.

궁금하면 '계속보기'함 꾸~~욱 눌러보삼.ㅋㅋ




언젠가 나이가 먹어 벽에 똥칠을 하면서 방바닥을 죽죽 기어 댕길때쯤에..

이미 장성한 나의 손자가 정신이 혼미해진 나의 손을 붙잡고 한마디 하겠지.

 

"할아버지!! 파이브스타 스토리 21권 나왔습니다. 마도대전이 끝났어요..이제 새로운 에피소드
입니다 마모루 나가노jr가 이번달은 특별히 6페이지나 그렸네요"

 

그럼 갑자기 정신을 차린 난 조용히 만화책을 읽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면서 한마디 하겠지.


"설정 또 바꿨네 개색히"

 

-DCINSIDE 만화갤러리 스네이크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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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0 22:59 2006/12/2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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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12/18 20:17

옛날 옛날, 20C초라하니 한 100년쯤 전,

설치 미술의 원조격인 다다이스트 쿠르트 쉬비터스가 'Merzbau'(Merz's Room)라는 설치작업을 하였다는데...

21C 상당 최근,

이 이름을 본 따 설치와 영상매체가 어느덧 주류가 된 현대미술의 모습을 관조해보는 전시회에 다녀오다.

 

19C, 사진기앞에서 미술의 진정한 의미를 번민하던 화가들이 있었다면,

21C, 뉴미디어 시대 각종 technology 의 표현력과 확장성 앞에 경악해마지않을 화가들은 좀더 다른 차원의 고민이 배가되었으리라.

그들이 보고 있는 미술의 풍경, 사회의 풍경, 세상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데비한의 [생각하는 비너스]

왠지 '비너스'라는 이미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당당히 선 것이 아니라 쭈그려 앉은 비너스.

여성성의 대명사인 '비너스'가 남성미와 지성미를 두루 갖춘 '생각하는 사람'의 오마주를 어설프게 뒤집어 썼을 때 우리가 갖게 되는 당혹감이란,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분법에 잘도 길들여진 우리의 머리 속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과도 같다.




 

문경원의 [passage:cityscape - Seoul & Pyongyang]

두 개의 스크린에 비친 서울과 평양, 두 도시의 풍경. 그러나 어느새 두 스크린을 관통하며 다니는 차들이 생겨나고 차가 지나다닐때마다 화면은 총 천연색으로 덧칠되어진다.

결국 사라지는 구분들, 심지어 나중엔 어느 쪽이 어느 도시였는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정진아의 [분예기]

수많은 예쁜 똥들.^^

대체로 두번 다시 쳐다보고 싶지 않아야 할 것을 다시 돌아보고 미소짓게 만드는 작품이다.

화장실에 갔더니 온통 '똥'마크가~

 

 

 

이희명의 [변형식물시리즈]는

사람의 신체들을 하나씩 분절해서 심어놓은 화분 모양을 하고 있다.

귀동냥해서 들은 바로는, 작가는 특히 여성이 갖는 육체에 대한 두려움과 낯설음을 표현한거라고.

 

 

 

 

조은경의 [emptiness]는

여성용품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명한 속옷 전시대에 화려한 분위기의 여자 속옷들이 걸려있다.

속옷들은 모두 여성의 그것들이며,

실제 몸을 따뜻하게, 몸을 보호하는 기능보다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대상화된 여성이 이 사회에 존재하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이민호의 [휴대용 풍경 : 우리가 사는 이곳]은

꽤 알기 쉬운 주제를 가지고 있다.

벽에 걸린 스크린 속에선 공장 굴뚝에서 끊임없이 매연이 뿜어져나오고, 그 아래 작고 검은 상자안에는 하얀 꼿들이 가득하다.

우리 스스로에게 보내는 추모의 꽃들.

 

김지윤의 [Red Applause]

전시관이 옛 벨기에영사관 건물이었던 관계로 고풍스러운 벽난로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작가는 벽난로 안에 연극 무대를 마친 후 박수 갈채받는 배우들의 장면만 모아 영상을 비췄다. 마치 작은 사람들이 펼치는 작은 연극 무대에 온 기분이다.

 

데비한은 비너스를 가지고 한 작품이 꽤 많은데, [미의 조건II]의 경우 입술, 코, 바라보는 각도, 눈 등이 서로 다른 비너스 두상들을 살펴볼 수 있다.

과연 美의 조건은 무엇일까? 美에 조건이 있긴 한 걸까?

 

 

이배경의 [Video Chapel]

벽면 하나 가득 넘실대는 파도가 세로로 조각난 영상프레임에 담겨있다.

내가 발을 움직이면 바닥에 붙은 센서를 통해 화면이 변형된다.

아주아주 예전, 광주비엔날레에서 천정과 바닥에 거울이 붙어 무한한 공간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작품도 만약 사방에 설치되었다면 격정적인 바다 속에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데비한의 [적자생존시리즈]는 수술대 오르기 바로 직전과 같이 비너스 얼굴에 성형수술 시 사용하는 싸인펜 자국이 그려져있다.

 

 

최수앙의 [The Test Mice]는

햄스터 키울 때 쓰는 아크릴 통 안에 톱밥이 잔뜩 깔려있는데,

그 안에 있는 건 인간의 형상에 쥐의 꼬리를 한 것들이다.

어떤 것은 아픈 듯 축 늘어져있고, 어떤 것은 밖을 향해 외치고 있다.

 

한효석의 [불평등의 균형]과 [Uncanny]도 최수앙의 작품과 비슷한데,

인간 얼굴에 돼지몸, 배가 갈려 곧 죽을 듯 한 모습이라던가, 살코기로 구성된 인간의 얼굴을 표현한 것 등이 그러하다.

 

 

한효석은 [인간은 생각해야 한다는 저주를 받았다.]는 작품에서,

거대한 목석 위에 앞뒤로 얼굴인 사람의 목을 걸어놓았는데,

이러한 모습- 특히 동물과 치환된 모습-을 통해

인간은 죽음, 죽임, 존재에 대해 사고해야한다는 점에서 과연 저주를 받았다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게 만드는 한효석과 최수앙의 작품은 다소 끔찍하지만,

바로 우리들이 매일 저지르는 일들이다.



* 사진 출처 

데비한 그림 출처
http://www.debbiehan.net/
http://cafe24.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43X5&fldid=3wq7&contentval=000Uzzzzzzzzzzzzzzzzzzzzzzzzzz&nenc=RP5gYe6kqIPO7ggBUQLz_Q00&dataid=1921&fenc=Zx.nje4_rX50&docid=CDe1Hf4D


이희명 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wpffldlsej/70006530706
http://blog.naver.com/11track/90011621456

 

정진아 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bodmin422/120015723259


 

*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에서 (안타깝게도) 17일까지 있었다.

연장할 지 않할 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가봤는데 아담, 깔끔.

 

한참 내린 눈에 즉석해서 생긴 눈사람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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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8 20:17 2006/12/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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