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5/05/29 10:55

어느 분야나 그렇하듯

밖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요즘 보육 주변은 시끌벅적이다.

그런데 그 시끌벅적에는 뭔가 '복잡해서 명쾌하지 못함'으로 인해 누군가는 지치고, 누군가는 헷갈리는 와중에 머리온도만 올라가고 있는 상태라는 느낌이 강하다.

 

보육노조나 보육운동가들 역시 이래저래 머리 굴리고 몸 굴리면서 고민을 많이 하고있다.

그중 요즘 (내가) 발견한 것들을 중간정리한다는 심정으로 주저리주저리 적어볼까 한다.

 

물론 여기 적힌 얘기는

온전히 나의 목소리도 아니었고,

온전히 남의 목소리도 아니었으며,

어느 집단의 정리된 목소리도 아니다.

다만 내가 내 손으로 적고 있는 걸 보니,

내가 한 말이든 남이 한 말이든을 넘어서 내 맘에 드는 내용들인 건 분명한 것 같다.



보육이 왜 복잡해졌을까?

 

 - 소비층의 확대 : 저소득 -> 맞벌이 -> 보편 서비스

 - 공급자들의 개념(이념)의 확대 : 복지 -> 교육 -> 장사

 

따지고 보면 보육의 시작은 '복지'에서 출발한 게 분명하다.

늘어나는 도시빈민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내지는 노동력의 효율적 착취를 위해),

그들의 자녀가 적어도 인간으로서 보살핌받을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탁아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작점에 (저들이 아닌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형평성에 의해 '누구나 보호와 교육받을 권리'를 성취하기 어려운 계층을 우선 고려한다는 입장에서 보육은 태생적으로 복지의 개념을 내포할 수 있다.

 

그러다가

한때는 여성의 노동권, 사회참여 권리의 주장을 통해,

더 넘어간 한때는 실상 부부가 함께 벌지 않으면 가정 유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현실속에서 여성 노동권의 주장이 정당한 권리나 순수성을 넘어서 조금은 역이용되면서

맞벌이 부부 시대가 도래하였다.

최소한의 돌봄을 넘어선 보다 향상된 돌봄과 교육의 욕구가 생겨났고, 이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수요층에 대비한다는 것이 규제의 너무 심한 완화로 외화되었다.

현재 민간시설이 90%가 넘는다는 통계는 몇몇 신심에서 우러나온 비영리, 공동체형 시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리 목적의 보육시설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때부터 시작하여 집안에서 보호자가 있어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소위 '보편적 서비스'가 된 현재까지, 보육은 이미 영리로 머리가 찬 장사치들이 진입할 대로 진입해있는 상태이다.

 

 

(노동조합을 시작한) 보육노동자들이 가질 수 있는 2가지 컨셉 - 복지 + 여성

 

그동안 보육(운동자)은 태생적 위치속에서 본의아니게 복지쪽에 강세를 보여온 듯 하다.

아이 이야기만 하면 그냥 껌뻑 죽는 걸 보니...

이 두가지 컨셉을

이제 노동한답시고 비비적대는 입장으로 끌고 들어오면

결국 보육노동운동자는 일정 정도 복지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운동을 해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제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내지는 굳이 노동이 아니라 보육 자체의 입장에서도)

우선 순위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운동의 목표와 방향이 약간은 틀릴 수 있을 것 같다.

 

 

(돌봄노동자 입장에서 바라본) 복지노동자를 품은 보육

 

보육을 복지로 한정해서만 보면,
대부분의 복지가 그러 할 듯싶은데 복지서비스의 대상자(여기서는 ‘아동’)에게 관심과 운동적 목표의 초점을 집중하게 된다.

이럴 경우 복지노동자는 복지제공자와 노동자라는 은근히 배치되는 구분점에서 (주로 돌봄을 담당하는 경우엔 백발백중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복지제공자로 기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서비스가 거세될 경우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운 돌봄의 대상자를 상대로 한 복지서비스의 제공과 휴식시간, 노동시간, 임금과 같은 자신의 생존권이 충돌할 때, 아마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일정 정도 자신의 생존권의 침해를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조가 임단투로 많은 시간을 보낼 때 경인사회복지노조가 유독 시설비리 투쟁으로 지난한 역사를 이루는 걸 보면 복지노동자에게 있어서 노조는 권리 신장의 계기 이전에 복지기관의 비리관행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열혈 노동자들의 외침인 것이다.

 

그래서 간혹 생각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열혈 노동자들이 그들의 열기를 조금씩, 또는 왕창왕창 소진해나가고 있을 때,
심지어 언젠가 심신의 위태로움을 호소하며 하나둘씩 복지의 울타리 밖으로 내몰려질 때
그 피해는 과연 누가 받게 되는 것인가?

 

결국 민중 모두의 몫으로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솔직히 복지노동자의 싸움은 그들만의 리그로는 절대 불가능하며,
이제 더 이상 노조만의 시설 비리 관장의 목 날리는 싸움이 아닌
전 민중의 복지 구조 전반의 변혁을 꿈꾸는 싸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하다보니 노동조합이라는 입장에서의 문제는 복지노동자의 생존권이 구조 자체의 변혁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마어마하다.
그들이 노동시간단축 투쟁한다고 누구도 욕할 수 없겠지만, 그들 스스로 알 수 없는 죄책감(?)속에 요구를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아예 시작도 엄두 못 낼 수도 있고.)
그렇다면 이 싸움에선 안팎의 공조가 필수다. 복지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복지의 혜택을 누리는 모든 민중들도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모두의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노동자를 품은 보육

 

실제 사회 전반에 걸친 육아의 책임을 지고 있는 여성들의 비율과
보육노동자의 99%이상을 여성이, 원장마저도 92.5%를 차지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이라는 건 현실적 상황이다.
(물론 현실 상황의 타개와 이상의 관철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이렇듯 보육에는 크게 2가지군의 여성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즉, 아동의 보육에 보호자로서 존재하는 여성노동자/민중들,
그리고 보육이라는 노동을 행하는 직업군의 여성노동자들.

 

육아를 포함한 돌봄의 문제는 그 어떤 물질적, 심리적 보상도 없이 주로 여성에게 부과된다는 점에서 여성의 불평등한 삶에 매우 기여하는 영역중 하나이다. 따라서 돌봄의 하나인 보육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은 여성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시에 비교적 사회화되었다고 보는 보육노동자라는 직업군 역시 돌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의해 최저의 물질적, 심리적 보상으로 근근이 유지되고 있다. 근속연수 2년 반이라는 현실은 보육시설과 노동조건의 열악함, 여성에 대한 낮은 사회적 지위를 그대로 반영하는 현상이다.
결국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보육노동자와 보호자로서의 여성 민중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동일한 문제와 괴로움에 봉착한 존재들이다.

 

때로 이 2가지군의 여성들은 자칫 외부의 이간질로 서로간의 모순에 빠지기 쉽다.
이를테면 아이를 1시간만 더 봐줬으면 하는 보호자와 정규근무시간을 지키고 싶은 보육노동자 사이의 마찰은 존재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좀 더 인식의 확장을 꾀하자면, 큰 틀에서 2가지 군은 결코 2개가 아니며 결국 ‘여성’이라는 틀 속에서 동일한 조건의 향상이 꾀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호자가 원하는 보육시간 1시간 연장은 기존 보육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확보되는 것이 매우 원시적인 방식이라면,
교대제 도입 등 보육노동자들의 인력 확충으로 해소할 수도 있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비정규직 70%에 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근무형태 변화와 근무시간 단축으로도 해소 가능한 것이다.(물론 이 속에 보육노동자 8만도 속해있으리라 본다.)

 

이런 측면에서 여성노동자로서의 마음가짐은 복지노동자보다는 보다 자신의 권리에 집중하는데 용이해 보인다. 이는 개개인의 세세한 노동권에 집중하는 행위가 전체 여성들의 권리에 집중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며, 결국 대사회, 대민중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머리속이 멍하다.
복지로 맞추든 여성으로 맞추든 일정 정도 - 내지는 상당 정도- 사회구조의 변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거대하다, 안팎의 공조가 필요하다, 쉽지 않다’ 등의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개인의 힘으로 안 될 것 같아서 노동조합으로 뭉쳐봤는데, 이게 그저 시작이었나 보다.

그래도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고민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육에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할 수 밖에 없다는 정당성을 확보한 것 같은 기분이... 음훼훼(어느 분야는 안 그러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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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9 10:55 2005/05/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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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5/05/24 23:01

어제 울산건설플랜트 노조 조합원들이 경찰서에 연행된 후

조금씩 풀려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24일 오후 8시 30분 문화제 시작 전 이고요.

디카 배터리가 닳아서 겨우 한 장 건짐.

 

보육노조 조합원이 가족대책위에 있습니다.(남편은 고공농성에 단식중...-_-;;) 얼굴이 반쪽입니다.

어서 단체협약 쟁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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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4 23:01 2005/05/2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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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5/05/24 22:50

중 재미있었던 대동한마당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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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4 22:50 2005/05/2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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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05/15 16:59

* 달군님의 [지금 가장 갖고 싶은 능력] * 레니님의 [거짓 웃음] 에 관련된 글.



♪ 말썽쟁이 동물 ♪

 

누구가 갖고 싶은 몽땅 다의 능력과 누가 가지고 있는 거짓웃음,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가지세용~!

(미안해. 적당히 하라고 해서리..^^ 그래도... 적당히들 하란 말이쥐~!)



얘들아!
'말썽쟁이 동물' 시작할 시간이야!


공부에 젬병이고
달리기는 꼴등이고
보기좋게 차인다해도

매일같이 매일같이
숙제를 까먹고서
학교에서 선생님께 야단맞는대도
어때, 어때! (어때, 어때!)
요리가 서툴러도
청소가 서툴러도
자동차를 갖다박아도

매일같이 매일같이
데굴데굴 굴러가며
낮잠만 퍼질러 잔다고 해도
어때, 어때! (어때, 어때!)

쓸데없는 노력도 담뿍이 해봤지만
거울 속에서 난 찾아냈다구
그 해답을
'케세라세라'의
마법의 주문을 소리내어 외우면
신기해,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해
항상 똑같은 모습
하나도 변하지 않은 나 그대로 있어도
그걸로 좋은 거야
세상에서 제일로 난 내가 좋아!
세상에서 제일로 친구가 좋아!
HEY!!

----------------------------------------------
「세상에서 제일로 난 내가 좋아」
 (노래 : 신타니 료코)
----------------------------------------------
번역 : 守辰사랑
http://happyspell.ivyr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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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5 16:59 2005/05/1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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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5/05/11 23:51

* 쭌모님의 [룰루] 에 관련된 글입니다.


하하하~. 룰루 보면서 쭌모님의 다양한 생각의 나래가 느껴져요~!

전 단순해서 '여남관계'밖에 안보이던데... 다시 봐야 겠다.



난 공포영화에 약한데, 아마도 언제나 약자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릇해서 그런가보다.

그러다보니 [룰루]를 보다가 토끼인 톰에게 감정이입 만빵 해버린 것이다.

 

물론! 토끼라는 이유만으로 약자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

그러나 어떻든  '룰루가 늑대'라는 사실을 권력의 문제로 접근할 때, 다소 일반적 감성에 기댄다면 대략 수긍가능하지 않을까나? 토끼보다 늑대가 있어보이잖아?

 

그렇게 몇장 넘겨가면서 끝끝내 룰루가 톰을 놀이로 겁주는 장면을 대하게 될 때에 이르니,

어느덧 약자가 실제 권력이나 폭력에 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갖게 되는 사회적 위축효과의 발현까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득 룰루에게는 -비록 부모에게 '토끼는 잡아먹는 것'이라는 세뇌를 받았다할지라도 - 토끼를 잡아먹는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게 혹시 톰과 화해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요즘 운동이 힘(power)을 가지려는 맥락의 측면에서

여성운동이 여타 운동과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하는 것과 짬뽕~!

 

예를 들어 노동운동과 노동자가 힘을 가지려는 맥락은 자본가와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하고, 그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을 만한 민중의 힘을 배양하기 위한 것이라면?

물론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뜻은 권력의 평등적 분배를 고려할 때 자본가를 노동자로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 지 모른다.

솔직히 자본가는 가진게 많았던 지라 다소 괴로운 것 뿐이지 결국 평등한 권력을 누리는 상태가 되겠지.

한편 요걸 그대로 여성운동에 등치시키면 상대적으로 남성과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매우 관건이 될지도...

물론 결과적으로 평등 분배를 원한다면 그건 여타운동과 동일한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겠지만...

 

한때 남성을 가상의 적으로도 놔보려고 했다가 잘 안되던데, 

원하는 결과가 권력을 평등분배하고 싶다는 거에 수긍이 가는 반면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이 힘의 관철로는 잘 해결이 안 날것 같다는 냄새가 폴폴 나서이다.

좀 추상적이지만 일상적 관계성의 예민한 관찰 등과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물론 이것 역시 여성이라는 민중들이 뭉쳐 발휘하는 힘이 관철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만.)

 

다시 룰루한테 돌아가보면,

그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또는 있는 지점'이

(룰루처럼) 혹시나 경험의 완벽한 거세로 이루어지는 거라면

태어나서부터 본의아니게 남자라는 권력자가 되는 이 사회 구조를 어찌해야 하나

기운 빠지는 고민을 하다가...여기서 STOP~!

 

정말 생각이 커지는 (건지 많아지는 건지 난잡해지는 건지)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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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1 23:51 2005/05/1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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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05/07 01:28

 

6회나 되었다는데 나는 올해 처음 본 인터넷 영화제이다.(아마도 그런 것 같다...^^;;)

 

몇 편 보진 못했지만 아직까지는 [4계절]이 가장 황홀~!

흩날리는 영어들을 읽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봄의 산들거림도, 여름의 역동성도, 가을의 서늘함도, 겨울의 포근함도,

저렇게 흩날려주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렌다.

 

[초혼]은 스토리는 맘에 안들지만 관절인형같은 캐릭터들과 그것보다 훨씬 돋보이는 배경 처리가 멋지다.

 

 

[제1막2장]은 무쟈게 기분나쁘지만 약간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스토리. 장면 장면 넘어갈 때마다 아이디어의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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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7 01:28 2005/05/0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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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05/05 01:22

따뜻한 봄날,

서울 시립미술관 야외에선 happy happy 봄 나들이 전시중!

 

나름대로 조경 잘된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작품들이 재미있지만,

전시물이 너무 적어서 매우 아쉬움.

아무런 설명도 작품제목도 없으니 마음껏 감상하고 상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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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5 01:22 2005/05/05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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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5/05/01 22:43

오후 1시 30분부터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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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1 22:43 2005/05/0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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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5/04/30 22:38
이주노조 노래


깃발들

 

 

재미있는 홍보물

 

 

풍물

 

 

요구를 담은 깃발들

 

 

붉은 깃발 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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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30 22:38 2005/04/3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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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5/04/26 23:50

[1] 사촌의 집들이

 

얼마전 사촌이 집들이를 했다.

어릴 때부터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살던 모습을 좀 알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들어보니 이건 완전 딴세상이다.

 

이 날 집들이 참가자는 우리집의 3남매와 올케, 작은 아버지네 2남매와 올케.

그 멤버중 하나는 학창시절 학업은 접어두고 햄버거 알바부터 자장면집 알바까지 두루 섭렵한 건 알고 있었지만,

또 다른 녀석이 동네 자장면집 배달부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니며 물건 훔치기를 일삼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만만치 않은 가출 경력들과 도둑질, 각종 야비한 작태들, 거기에 큰소리 한번으로 이내 수그러들었던 비굴함의 기억까지...

물론 '나 잘났어!'와 개구쟁이들의 괴롭힘을 퇴치해준 기억도 만만치 않게 섞여있다.

 

난 거의 기억이 안 난다! 아니 들은 바도 없는 것 같다!

사실 기억력도 별로 안좋아서 대학교때 일도 기억에 별로 없다.

하지만 꽤 생뚱맞은 지라 나만 혼자 딴 세상에 산 기분이다.

동생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난 주로 자기들을 많이 도와준 존재였던 모양인데,

하긴 그게 부모에게 부여받은 첫째의 역할이지.

동생들의 인생역정을 듣다보니 너무 티미하게 살았다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동네에서 발견한 괴이한 친구의 무용담처럼 떠들어댄다.

만약 현재의 이야기라면, 이미 어른이 되었는 데 행한 엽기행각이라면, 이렇게 손쉽게 떠들어댈 수 있을까?

 

이렇게 무용담식으로 말하는 모습에서 아래의 2가지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어른 스스로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 할 지라도- 어린이 시절의 모습을 타자화시키는 것. 즉, 이미 내가 아닌 존재로 인식 내지는 단정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탁월한 기억력으로 인해 당시의 행동은 기억이 나지만  일상을 지내던 감성과 문화를 잃게 되는 것. 따라서 매우 관찰자적 서술을 하는 방식이 가능하게 된다. 물론 몇가지 충격적인 감정은 그대로 머리속에 남아있겠지만...

 

간혹 어린이를 어른의 미숙한 단계이거나 어른으로의 발전 단계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것은 어른인 나조차도 자신의 어린 시절과 심각한 단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저 세월의 무게일까?

어떻든 적어도 지금은 어른과 완전 다른 객체라는 생각이 든다.



[2]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최기숙 지음, 책세상), 이건 책의 이름이다.

대체로 동화, 특히 전래동화를 분석한 책을 보면 결론이 비슷하다.

 

대략의 뉘앙스는 다음과 같다.

'동화는 어린이에게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동화는 어른의 이야기일 뿐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전래민담도 원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차피 100% 완벽한 스토리는 없기 때문에 동화를 잘 고르는 것보다 어린이들이 이를 통해 토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책 역시 이러한 대략의 기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집었을 때, '과연 진정한 어린이의 꿈은?'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는 상당히 많이 무너졌다.

 

대신 예상치 못한 것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어른의 일상과 꿈이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뛰어난 아이는 부모로부터 '역적의 집안이 될 것이 두려워' 죽임을 당하게 된다. 행태는 어른의 아동 살해지만 실제 어른 자신의 변혁의 가능성을 제단하고 스스로 자해한 꼴이다.

시아버지의 먹을 것이 줄어드는 것을 아들의 탓으로 돌리고 아이를 죽이려한 부모는 효사상의 억지스러운 사회지배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남동생보다 힘이 더 장사였으나 '남자의 기를 죽일 수 없어' 일부러 씨름에 져주고 끝내 죽임을 당하는 누이는 남녀차별사상의 희생양이다.

아버지보다 권력 높은 이를 자신의 꾀로 응징하려는 아이를 보면서 어른스러운 기만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아이들은 남다르거나 뛰어나거나 매우 순진한 천사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

바로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의 꿈이다.

 

어린이가 바라는, 어린이에 맞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어쩌면 어른들에겐 불가능한 프로젝트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어떠한 이야기를 접하든, 어떠한 현상에 맞닥뜨리든,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에게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싶은 추천 동화가 몇가지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어린이의 세계는 꽤 미지의 세계이다.

 

* 사족 - 해님달님에서 어둠이 싫다며 여동생이 해님이 되었고, 그런 여동생이 얄미워 오빠가 여동생에게 모래를 뿌리는 바람에 해는 눈부시게 되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26 23:50 2005/04/2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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