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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목포행

2002년 7월 8일에 목포에 간 적이 있다.

한국화학노동조합 창립 4주년 기념식과 집행부 이취임식에

연맹 대전충남지역본부장의 자격으로 위원장을 대신해서 달려갔었다.

 

그리고 꼭 3년이 되는 어제(7월 8일),

이번에는 연맹 사무처장으로 다시 목포에 갔다.

(그 때 나는 정말 연맹에 와서 일할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옛 기억이 떠올라서

그 때의 기록을 찾아 보았다.

 

[잡담] 목포에 가다

 

낮 12시 40분 대전 출발, 호남고속도로로 정읍까지, 정읍에서 22번 국도타고
흥덕(선운산)까지 가서 서해안고속도로, 목포까지 내리 달려서 목포 시내를
오른 편에다 두고 영암군 소재 대불산업단지로, 낮 3시 40분 도착, 2시간여
거기 머물다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옴.

난생 처음 간 목포에는
장맛비 혹은 또다른 태풍을 예고하는 가는 비 내리고
목포항도
유달산도
세발낙지도
모두 표지판이나 간판으로만 내걸렸네.
눈내리던 겨울날의 당진이 그러했는데
오늘도 혼자서 가는 길 그대로 밟아 돌아왔으니
당진 밤바다를 가리던 방파제
목포 앞바다를 가리운 영산강 하구둑
그렇게 다녀오고도 기억에 남는 것이 신기할 따름.
그래도
123명 조합원을 가진 노조에서
극단 "갯돌"이라고 액맥이 한번 건드러지게 해불고
학생노래패 "울림소리"까지 열띠게 축가를 불러제끼는데
구조조정 민영화 싸움 한다고 넉달을 목포역에서 버틴
야근조 뺀 절반의 조합원들 목소리가 힘차고 굳세고 신명넘쳐서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도리어 힘을 얻어 왔지.
안그러면
어떻게 혼자서 6시간씩 마구 운전할 수 있겠어, 아암, 못하지.
거기다가
노조 행사의 뒷풀이에 허영게 삭힌 홍어회와 묵은 김치 나오는 거 봤남?
그렇게
목포 한 번 다녀왔네그려.
언제 또 갈런지 기약없는.
(2002년 07월 09일 01시 14분 54초)

 

언제 또 갈런지 기약없다고 했는데,

오후 4시 행사가 오전 11시로 바뀐 것 빼고는

3년만에 다시 가고 오는 길도 똑같았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크게 변함이 없었고

(위원장, 사무국장 연임, 조합원 123명 -> 조합원 112명)

오는 길에 약간의 비를 만난 것,

한국화학 말고는 다른 아무데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까지

그대로 되풀이했다.

 

어디 목포 뿐이랴,

혼자서 가는 출장길에서

일탈의 충동을 가끔 느끼기는 해도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주저앉은(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떠는구나')

쳇바퀴같은 일상은 10년째 변함없다.

(가령, 이전에 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타면

대전을 지나쳐 부산까지 그냥 가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었는데,

술에 취해서도 대전역을 지나쳐 가지는 못했다-.-)

 

참,

한 가지 깨달은 것,

이즈음의 노조 행사가

대체로 관성적으로 대충대충 지나가는데 비해

조합원 112명의 그리 크지 않은 노동조합이

남들과 같은 통상적인 식순을 갖고도

참 성의있게 준비하고 진지하게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본'에 충실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늘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모든 일에 치열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더냐.

 




누가 썼을까...

 


미남이지, 박창윤 위원장...



연맹 하태성 국장(가스공사노조 전 수석부위원장)이 보낸 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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