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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얽힌 옛이야기(1)

* 이 글은 행인님의 [취했을 때는 지하철 타지 않기]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1.
몇번이나 써먹었던 얘기인데, 난 옛날 옛적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거친 마지막 세대이다.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가 총 맞았다고 했을 때 우리는 11월 7일로 예정된 예비고사가 혹여 늦추어지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를 하기까지 했다.(젠장, 시험날이 연기되는 것은 그 다음해 대학교에 와서야 처음 경험했지. 5월 17일부터 휴교를 해서는 9월 12일인엔가 13일에 1학기를 연장해서 시작했고, 9월 하순에야 1학기말 시험을 봤으니까)

 

본고사 날짜가 1월 16일쯤이었던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암튼 예비고사를 끝낸 이후 그 결전의 날을 앞둔 두달여 동안에 나는 독서실에서 주로 머물렀다. 그러다가 좀이 쑤시면 몇 친구들과 어울려 하룻저녁 술을 마시는 것으로 갇힌 수험생의 스트레스르 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본고사를 아마 1-2주일 남겼던 날이었는데, 하룻밤 친구집에서 거나하게 술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 갔더니, 독서실이 텅 비어 있었다. 사람만이 아니라 책상이며 각종 시설물들이 몽땅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황당함이라니. 곧바로 수소문을 해보았더니, 그 독서실은 전날에 이사를 했고, 우리만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 당시 본고사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수학이었는데 아마 1천페이지를 넘어갔던 해법수학II를 포함한 몇 권의 수험용 교재들을 그 바람에 몽땅 잃어버렸다. 감히 새로 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다른 책으로 공부했다. 고3때,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물컵에다가 한잔씩 소주를 덜어서 팔던 대구백화점 뒤 허름한 술집들이 아련한 풍경화로 남아있다.

 

2.



2.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주로 움직이던 공간은 명동 카톨릭회관(동아리 모임장소)과 혜화동, 이대입구, 그리고 신림동과 봉천동 사이였고, 142번 버스와 25번, 95번 버스가 그 공간들을 서로 연결해 주었다. 대학교 와서 새로 사귄 동아리 친구들은 전공은 다 달랐지만 술에 관한 한 거리낄 것이 없었던 지라 이내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오늘의 주인공들은 지금 부산에서 대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ㅊ, 대전의 어느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ㅈ, 그리고 현장에 투신했다가 제적된 후 옥살이까지 하고서 10여년 노동운동에 열심이다가 13년만에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늦깍이 의사가 된 ㅇ, 이렇게 3명이다.

 

주말 수련회(MT)에서 꼬박 밤샌 다음 날은 다들 피곤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던지 평소의 나답지 않게 오전에 바로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는데, 다른 멤버들은 아침에 새터에서 나와서 이대입구로 몰려가 술을 마셨다. 그 날 오후, 심심해진 나는 ㅊ의 방을 여러번 찾아갔는데, 밤이 이슥하도록 녀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타 해서 다른 친구들을 찾았더니 모두 아무 일 없이 잘들 있었다. 이윽고 자정이 임박해서야 ㅊ은 기숙사로 돌아왔다. 야, 너 대체 어떻게 된 거고?

 

ㅊ의 사연은 이렇다. 아직도 해가 벌겋게 남은 대낮, 밤새 마신 술에 오전에 또 술을 마셨으니 얼콰하게 취했어. 일행과 헤어져서 곧바로 신림동으로 오는 142번 버스를 탔거든. 출입문쪽 맨 앞자리가 비었길래 그 자리에 앉았다 아이가. 몇번이나 우당탕쿵탕 버스 바닥으로 나딩굴어서 쪽 다 팔았다. 그러다 종점에 왔다길래 내려보니 수색이데. 다시 출발하는 버스를 탔어. 다시 종점이라고 해서 내렸더니 또 수색이더라. 아이고. 밤은 늦었고, 그래서 택시타고 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142번 버스는 노량진에서 신대방 삼거리, 신림동을 지나 서울대 정문에서 봉천동 고개를 넘고 상도터널을 지나서 수색 종점으로 가는데, 서소문으로 나와서 광화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8자형 노선도를 버스 천장에 붙이고 다녔다. 수색 종점에서 나와 다시 돌아가는 시간은 대략 3시간 이상이니까, ㅊ은 적어도 6시간 이상을 버스에서 보낸 것이다.

 

다음 ㅈ과 ㅇ의 이야기. 둘이 어느 날 신촌에서 미팅을 한다고 일찌감치 학교를 나갔는데, 그 날 밤 둘 다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에도 세상 걱정은 혼자서 짊어졌던 나는 몇 번이나 그 친구들 방을 들락거렸다. 다음날 아침 식당에 가고 있는데 ㅈ이 저만치서 후줄그레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야, 무언 일이고?

 

그 당시만 해도 통금이라는 것이 있었다. 밤 12시 사이렌이 울리면 삼라만상이 정적에 파묻히고 그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순찰을 도는 경찰들의 이따금 부는 호각소리 정도, 그 호각소리에 걸리면 즉결심판으로 넘어가서 벌금인지 과태료인지를 물어야 했다. 미팅(아, 미팅이라고 하고 보니 그냥 꼭 미팅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에서 만난 짝들과 어울려 신나라 하고 술을 마시던 이 친구들, 통금시간이 임박하자 서둘러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총알같이 달려서 전철승강장으로 갔는데, 다행히도 전철이 아직 남아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통금이 임박한 시간이라 인천행 전철은 러시아워를 방불할만큼 사람이 꽉찼는데, ㅈ만 타고 ㅇ이 타려는 순간에 그만 문이 닫혀버린 것이다. 의리의 사나이 ㅈ은 남영동에 내려서 고민했다. 이게 필시 막차인데, 저 친구를 혼자 남겨두어서는 안돼. 빨리 되돌아가서 ㅇ과 고락을 함께 해야겠다. 마침 서울역으로 가는 전철이 한대 남아 있었고, ㅈ은 급하게 서울역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그 시간에 서울역에서는 마지막 전철이 남아있었고, ㅇ은 별다른 고민없이 노량진역에 내리면 ㅈ이 기다릴 것으로 생각하고, 그 막차를 탔다. 

 

지하 서울역에 내린 ㅈ은, ㅇ은 감쪽같이 사라졌지, 전철은 끊어졌지, 통금이 있으니 노숙자도 있을 수 없지, 택시비도 없지, 하릴없이 서울역 주변을 서성이다가 통금직전에 작심을 한다. 서울역 화장실에서 밤을 지내기로. 사람들 모두 사라지기를 기다려 남자화장실에 가서 문을 잠그고 쪼그리고 앉았다. 이윽고 불은 꺼지고 사람도 차도 다니지 못하는 새벽 4시까지 좌변기도 아닌 그 변기 옆에 앉아서 억지로 잠을 청한다. 새벽녘에 청소부들이 왔다 갔지만, 굳이 잠긴 문을 부수어 그를 발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침해가 뜰 때까지 그렇게 자다가 버스타고 기숙사로 들어오다가 우리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ㅇ은 안왔냐?

 

ㅇ은 그 날 오후가 되어서야 어떤 아저씨와 함께 나타났다. 막차를 타고 혼자서 노량진역에 내린 그, ㅈ이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 나서, 버스도 끊어진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노량진에서 상도동과 봉천동 고개를 넘어서 학교 기숙사까지 걸어가겠다고 결심한다. 쥐새끼도 얼씬하지 않는 밤길을 걷는데, 순찰차가 나타났다. 당신 누구야? 대학생인데요, 차가 끊겨서 기숙사까지 걸어서 가는 중입니다. 조심해서 가셔.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또다른 순찰차가 나타났다. 당신 누구야? 대학생인데요... 야, 대학생이면 다야? 빨리 타. 순찰차에 타서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으로 직행했다. 거기에서 팔자 늘어지게 자고 나서 곧바로 즉결심판장으로 갔더니, 4천원,땅땅땅! 돈 한푼 없던 이 친구, 함께 즉결에 넘어간 어떤 아저씨에게 4천원을 빌어서 내고, 그 아저씨에게 돈 갚는다고 학교까지 함께 온 것이란다.

 

통금. 여기에 얽힌 사건들은 이 다음에 이어가자. 오타도 나중에 고쳐야겠다. 지금 갑자기, 너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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