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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아주 규칙적인...

고3때, 나는 참 부지런한 자취생이었다. 아침 6시쯤에 자명종 소리에 깨어나서는 연탄불(여름에는 석유곤로, 곤로 아세요?^^) 위에 밥냄비를 얹어놓고 주로 국어책을 읽었다.

아직도 구절구절 기억하고 있는 시와 수필 나부랭이들은 그 때 반복해서 읽다가 보니 그냥 비석에 글자 새기듯이 머리에 새겨진 것들이다.

 

도시락을 두 개 싸서 학교에 갔다. 시골 엄마나 대구에 사시던 이모님이 해다 주신 밑반찬이나 내가 서둘러 만든 감자볶음이나 콩자반 따위가 도시락 반찬들이었는데, 친구들은 내 반찬들을 맛있다며 집어 먹곤 했다. 본고사 세대라서, 종로학원이나 대성학원 문제지들을 얼마간의 돈을 내고 받아다가 모의시험을 치르곤 했지만, 나머지는 거의 수업에 충실한 모범생이었다. 가끔, 시내버스에서 자주 보곤 하는 이웃 여고의 이름모를 여학생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뿐이었지만-

 

그 고3 이후로 내가 얼마간이라도 규칙적으로 생활한 날을 떠올려 보면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문무대 입소 9박 10일, 농촌활동 9박 10일 정도 여러 차례, 약사면허시험을 준비하던 대학졸업 직전 약 15일동안, 신병훈련소에서의 4주 훈련기간, 지금 기억하기로는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특히 작업반장으로 농촌활동을 했을 때, 새벽까지 평가회의며 분반회의를 빌미로 잠도 안재우고 다시 이른 아침에 들로 산으로 강행군을 했더니, 1학년 후배들이 발바닥마다 매직으로 내 이름을 커다랗게 써넣고는 아침저녁으로 보란듯이 밟아대며 불만을 표출하곤 했다. 그 후배들의 장난기어린 표정들이 생생하고, 지금도 가끔 그립다.

 

그것 말고는 대체로 불규칙한 생활 그 자체였다.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야간당직약사로 근무하던 시절, 하루는 처방전에 따라 조제하고 병동에 약 대어주느라 잠을 설치고 다음날은 술마시느라 잠을 설치면서, 48시간 주기의 생활을 1년 반이나 했었는데, 낮 생활은 오늘과 내일이 일치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터에 들어와서도, 퇴근 이후 시간은 그렇게 불규칙할수가 없었다. 그 시간들을 사람을 만나고 떼지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술을 퍼마시면서 보냈다.

 

 

 



2005년 1월 3일부터, 내 생활리듬이 크게 바뀌었다. 공공연맹 사무처장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한마디로 대단히 규칙적인 패턴을 띠게 된 것이다. 적어도 아침시간만 보면 특히 그렇다.

 

아직 나흘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앞으로 얼마든지 변화무쌍하게 흘러갈 수도 있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고3 이후로 아침 6시에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오, 96년에 처음 위원장 노릇을 하면서 건강을 챙긴다고 꼬박꼬박 아침 7시에 수영장을 간 적도 있긴 했다.

 

일어나자마자 전기압력밥솥에 밥을 한다. 밥이 되는 사이에 세수를 하고 가방을 간추리고 아침거리(이번주는 토마토 계란탕 2번, 생식 2번)를 장만해서 먹고, 보온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넉넉히 챙겨넣고, 잠깐 컴퓨터를 켰다가 7시가 되면 집에서 나온다. 이 시간에 대전역까지는 승용차로 20분쯤 걸린다. 내가 늦어도 타야 할 KTX는 7시 33분에 출발한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이용할 수 있는 주중정기권은 자유석 요금의 50%를 할인하지만 편도 9400원꼴이다. 자리를 잡고 수첩을 펼쳐 하루 일정을 미리 살펴보고 간밤에 빠진 메모들을 간추리고, 관련한 자료들을 대충 읽어본다.

 

그것도 잠시, 천안역과 광명역 사이 어디쯤에서는 잠들어 있는 내가 있다. 그러면 서울역에 금세 도착하고, 지하 서울역으로 종종걸음으로 내려간다. 서울역에서 시청앞으로 1호선을 타고 가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뚝섬역에 내려 공공연맹 사무실까지 가는데는 35분 남짓 걸린다. 그러니까 9시 10분쯤이면 나는 대전에서 서울로 훌쩍 날아가 있는 것이다. 물론, 9시 회의가 있을 때는(매주 목요일) 7시 19분차를 타야 안심할 수 있고, 아침 8시에 회의가 있는 날은(매주 월요일) 아침 6시 20분 차를 타야 넉넉하게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다.

 

날마다 다른 도시를 전전하던 과기노조 위원장 시절과는 달리 주로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무처장 노릇은 나로서는 심신의 부담이 덜하다. 아직은 사적인 전화를 걸 틈도 없고 문자 메시지가 와도 제 때 답장하지도 못할 정도로 초보 사무처장 업무에 바쁘고, 담배를 피지 않으니깐 그 시간쯤의 휴게시간에도 인색한 처지이지만, 새로운 일들에 대한 흥미로움과 호기심으로 날마다 즐겁다.

 

일과가 끝나면 다시 서울역으로 가서 아침과는 역순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되지만, 이 부분은 날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주만 하더라도, 월요일은 집으로 오는 KTX에서 도시락을 까먹었고, 화요일은 산오리, 술라, 스머프님들과 더불어서 소주를 한잔 마시고 기차를 탔고, 수요일은 월요일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오늘은 퇴근하고서 과총지부 조합원간담회에 갔다가 동지들과 술 한잔 마시고 함께 승용차로 대전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에는? 하루를 건너뛰면서 내 도시락 반찬과 아이들 아침 반찬을 만드는 시간이 주로 새벽 1시를 전후한 즈음이다. 오랜만에 도시락을 싸들고 나가 보니까 맨날 사먹는 밥과는 또다른 편안함과 맛깔스러움이 있어서, 특별한 일(수련회, 외박 등등)이 없으면 도시락은 꼭 싸가려 하는데, 그럴려면 반찬만들기가 늦은 밤이라도 중요한 일거리임에 틀림없다.

 

잠은? 대체로 2시와 4시 사이 어디메쯤에 잠자리에 든다. 4시를 넘기면 그냥 밤을 홀딱 새고 곧바로 출근해야 하지 않을까 충동에 휩싸인다. 지난 연말에는 서울 집회를 앞두고 그러다가 까무룩히 잠이 들어 지각을 한적도 있었지.

 

앞으로 2년동안 이래저래 변신을 거듭하겠지만, 적어도 늦은 밤과 아침 일정은 크게 달라질 상황은 없을 듯하다. 남은 문제는, 그 사이 어떤 시간에 내 몸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것이냐 하는 것이겠지. 오늘 집에 와서 아내에게 들은 얘기가 다시 생각난다. 서울 본청에 근무하는 아내의 직장 선배가(나보다 나이가 한두살 많은) 부고를 냈길래, 지방청까지 부고를 내다니 참 부지런하군, 하면서 그냥 넘겼다가 오후에 봤더니 그 선배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이더라고...

 

화요일 시무식에서 참석자들이 가장 많이 했던 덕담이 건강에 관한 것이었고, 나는 사회를 보면서 끝무렵에, 다들 건강을 가장 강조하는데, 개인이 건강해야 실천력이 생기고, 실천을 통해서 이 사회를 건강하게 바꾸지 않겠냐고,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지금 몸이든 마음이든 건강함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 지키고자 하긴 하는지, 모르겠다. 생각없이 쓰다보면 글이 꼭 엉뚱한 곳으로 치닫는단 말이야. 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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