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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만에 터져나온 건설플랜트 노동자들 인간선언

  • 등록일
    2005/06/20 01:30
  • 수정일
    2005/06/20 01:30

위기의 노동운동 /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양준석 / 울산노동자신문 대표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해 온 ‘산업수도’ 울산. 그 울산의 성장을 상징하는 것은 단연 자동차·조선·석유화학 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국가산업단지다. 국내 최고는 물론이요 전세계적으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그 수많은 공장과 산업설비들을 건설하고 유지·보수해 온 노동자들이 있다.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다.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바로 그 울산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지난 3월 18일부터 두 달이 넘도록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파업에 나선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내건 요구는 잠깐 우리의 눈과 귀를 당혹스럽게 한다.

 

“밥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
“휴식공간을 만들어 달라!”
“화장실을 제공하라!”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 달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OECD가입국으로 성장하기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유지·보수하며 누구보다 피땀 흘려 일해 왔던 ‘건설역군’들이 21세기 한복판에 외치고 있는 ‘믿기지 않는’ 요구들이다. 그러나 너무나 기본적인 인간적 요구들을 내건 그들의 파업은 의외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장기화되고 있다. SK(주) 등 원청 발주회사를 비롯한 사용자들이 성실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고, 울산광역시와 노동부가 관리·감독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으며, 검찰과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70m 정유탑 고공농성 - 또다시 벌어진 울산의 파업전쟁

30여 년 만에 터져 나온 인간선언의 절규마저 철저히 무시당하자,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갈수록 극한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5월 1일 노동절 새벽에는 세 명의 조합원이 SK(주) 울산공장 내 70m 정유탑(베셀타워)을 점거하여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SK(주) 측은 1급 국가보안시설이라는 정유탑 기습 점거에 큰 충격을 받고 경찰에 강제진압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지만, 경찰은 강제진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잠정적으로 포기한 상태다. 정유탑이 너무 높아 농성자와 진압요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데다가 자칫하면 대규모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공농성만이 아니다. 구속 22명에 수배 7명, 심지어 825명의 무더기 연행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겪었지만,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여전히 매일같이 1천여 명의 조합원들이 산업단지와 울산 시내를 행진하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 전국에서 모여든 수천여 명의 전경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파업대오와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 울산은 또다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파업노동자들과 전경들이 맞붙는 울산 특유의 파업전쟁이 또다시 벌어진 것이다. 다만 그 주역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제조업 노동자들이 아니라 건설플랜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의 주체로 나섰다.

 

인간 이하 취급 받는 노동자들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한 울산의 중화학공업 발전은 많은 노동자들을 울산으로 불러 모았고, 한국 최대의 노동자 밀집지역으로 자리 잡은 울산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도화선이 된 이래 자연스럽게 전국 노동자 투쟁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울산의 노동운동은 한국 노동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이들 울산의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당한 정도로 사회경제적 권리를 획득하였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일정한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울산의 모든 공장과 산업설비를 건설하고 유지·보수해 온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최근까지도 완전한 무권리 상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남아 있었다. 울산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최소 1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사회전반에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광풍으로 계속적인 실업위험과 저임금 중노동의 상황을 강요당해 왔다.

 

“일을 하다 작업장에서 도시락을 먹으려 하면, 밥은 싸늘하게 식어 딱딱하게 굳어있고, 반찬은 돼지고기가 있으면 다 식어서 기름기가 허옇게 떠 있는 걸 볼 수 있다. 가끔 도시락 업체가 바빠서 오전 10시쯤 미리 가져다 놓기도 하는데 한여름엔 콩나물이나 시금치는 더운 날씨 때문에 상해서 못 먹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다 시어빠진 김치쪼가리와 함께 국에 밥을 말아 먹고 치우고 만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비를 맞지 않기 위해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서 밥을 먹게 되는데 비바람이라도 치면 밥에 온통 빗물이 들어가게 된다. 또한 그라인더에서 튀는 돌가루와 쇳가루가 날아와 밥에 들어가 그나마 도시락도 먹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20년째 건설현장에서 기계 일을 해 온 플랜트 노동자 박모씨의 증언)

 

울산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유지·보수 공사를 해야 하는 남구의 석유화학공단이 주된 일터가 되어 있는데, 하루 종일 유해한 화학물질을 뒤집어쓰고 땀에 흠뻑 절어도 샤워는커녕 손조차 씻지 못하고 퇴근해야 한다. 탈의실이 없으니 공장 담벼락 밑에서 혹은 출퇴근길 비좁은 차량 안에서 작업복을 갈아입어야 한다. 화학물질이 내려앉고 시멘트가루 쇳가루가 날리는 속에서, 비를 맞아가며 밥을 먹어야 한다. 화장실조차 제공되지 않아 풀숲에서 눈치껏 해결해야 한다.

     
걸핏하면 사망사고, 10년 동안 뒷걸음친 실질임금

건설플랜트노동자들의 서글픈 현실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들에게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등은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쓰거나 취업규칙이라도 구경했을 리가 없다. 나오지 말라면 그만두어야 한다.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도 작업보호구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 사고가 나서 다쳐도 산재처리는 기대할 수 없다.

지난해 4월 삼양제넥스 수소저장탱크 폭발사고로 세 명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10월에는 한국바스프 유화공장 폭발사고로 조합원 다섯 명이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중화상을 입었다.

이렇듯 상시적인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작업환경이 개선되기는커녕 실질임금조차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이들은 대부분 10~30년 동안 이 분야에서 일해 온 숙련공들인데, 경력 20년차의 숙련된 조합원 일당이 11만원 정도다. 언뜻 보면 많은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른바 ‘포괄임금제’ 형식으로 이 일당에는 퇴직금·주휴수당·년월차수당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4대 보험에 심지어 안전화, 작업복, 점심식사 비용까지 개인이 부담하기도 한다. 게다가 하루 9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하며, 공휴일 구분도 없다. 그나마 이런저런 사유로 일할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20여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경력 20년 이상인 조합원의 연간 임금이 2천만원을 겨우 넘기는 정도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부실공사의 뿌리, 다단계 하도급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인간 이하의 노동조건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건설업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급이란 일정한 기일 안에 완성해야 할 일의 양이나 비용을 미리 정하고 그 일을 한꺼번에 맡기거나 맡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을 통째로 하청을 주는 것인데, 최소 4~5단계에 걸쳐 재하도급을 주는 게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를테면 SK(주) 삼성정밀화학(주) 한화석유화학(주) 등은 건설공사 도급을 주는 발주회사들이다. SK건설(주)와 같은 일반건설업체가 1차 도급업체라면, 이들은 도급받은 건설공사를 다시 제이콘 등과 같은 전문건설업체에 2차로 하도급을 준다. 이 업체는 다시 더 작은 업체나 소장·공사과장·반장 등 하수급인에게 재하도급(3~4차)을 주고, 이들이 다시 여러 명의 모작반장에게 재하도급(4~5차)을 준다. 모작반장이 비로소 시공에 참여할 노동자들을 직접 모집하여 건설공사를 시공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4~5단계를 거치는 동안 이윤확보를 위해 무리한 공사기일 단축, 부실공사, 저임금 장시간 노동, 주·월차 수당 떼먹기, 심지어 밥값 떼먹기까지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산재 은폐 및 세금 포탈도 기본으로 동원된다.

다단계 하도급은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을 끝없이 쥐어짜는 흡혈구조일 뿐만 아니라 다단계로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4월 21일 시공 중이던 문수구장 수영장 천정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앞서 울산건설플랜트노조는 파업에 나서면서 문수구장 수영장 천정이 작업을 수월하게 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설계대로 시공하지 않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경고를 한 바 있었다.

건설플랜트노조는 또한 현재 진행 중인 SK의 shutdown 공사(석유화학 계열 업체가 일시 휴업을 하며 진행하는 정기보수공사)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불법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미숙한 작업자들 때문에 결함이 많이 생기는데도 쉬쉬하며 감추고만 있다는 것이다. SK같은 정유공장에 이런 부실공사로 폭발사고라도 생긴다면 어찌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다단계 하도급은 명백히 불법이다. 그러나 발주회사 및 건설업체들에 대한 허가권을 갖고 있으며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울산광역시는 지금껏 어떤 제재도 행하지 않고 있다.

     
교섭회피에 취업방해· 노조 탈퇴강요까지

“어렸을 때는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대접받고 사는 거라고, 일당에 만족하고 살았는데 이제 아니다. 일용직 노동자도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서 싸운다.”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고립적인 작업환경과 지속적이지 못한 고용조건은 ‘조직화’를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최소한의 조직화를 이루지 못한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권리로부터도 완전히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선도했다는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마땅한 자부심은 최소한의 설 자리가 없었다. ‘일당쟁이’ ‘노가다’ ···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최하층으로 취급받았고, 그렇게 30여년을 억눌려 살았다.

그러나 지난해 2004년 1월 6일 울산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마침내 노조를 설립해 냈다. 1월 19일 시청 근처 종하체육관에서 열린 노조설립보고대회에는 1천여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모였다. 포항과 여수의 건설플랜트노조들이 먼저 성공적인 조직화를 이룬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건설플랜트노조는 지난해 6월 59개(나중에 70개로 확대) 건설업체에 근로조건 개선, 산업안전 보장,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내걸고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2005년 2월까지 9개월 동안 “조합원이 없다” “조합원 명부를 제시하라”며 한 번도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단체교섭을 위해 조합원 명단을 제시하면 오히려 공사중단 등을 내세워 해고시키거나 조합원들에게 노조탈퇴확인서를 제출하도록 강요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노조간부들은 SK(주)와 삼성정밀화학(주) 내 현장에 평소 1년에 2~3개월씩 취업해 왔으나, 노조 결성 이후엔 단 하루도 취업할 수 없었다. 블랙리스트를 통한 취업방해가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SK(주) 현장에서 일하던 조합원 60여명이 한꺼번에 노조탈퇴확인서를 받아가기도 했다. 또 삼성정밀화학(주)는 임시총회에 참여하는 조합원을 사찰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노조가 요구하는 교섭에는 전혀 응하지 않으면서, SK(주) 등 원청회사들의 지휘 아래 건설플랜트노조를 말살하기 위한 비열한 탄압이 전개될 뿐이었다.

 

쌓이고 쌓였던 분노의 폭발

마침내 쌓이고 쌓였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지난 3월 17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쟁의행위를 결의하고 다음날 18일 곧바로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일당쟁이, 노가다로 불리며 사회 밑바닥 인생을 강요받아왔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에게 파업은 그 자체로 해방의 희열이었다. 파업돌입 이후 매일같이 1천여 명을 넘나드는 파업대오가 강고하게 형성되었다. 너무나 어렵게 시작한 파업인 만큼,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강렬한 의지들로 넘쳐흘렀다.

 

그러나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바로 노조간부 9명에게 출두요구서가 날아 왔고, 5일 만에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5천여 명의 경찰 병력을 투입해 조합원들의 현장접근조차 원천봉쇄했다. 노조사무실 압수수색, 차량수색,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진압 및 검거 과정은 계엄 상황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4월 8일에는 울산시장 면담을 요청하는 825명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을 집단 연행하여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어 끌고 가는 기가 막힌 사태가 발생했다. 이들을 범죄자로 몰아 반성문과 서약서를 강요하고 폭도로 취급하는 등 인권유린을 서슴지 않았다. 이날 9명의 노조간부들이 구속되고, 불구속 입건된 조합원만 110명이었다.

5월 15일 현재 구속 22명에 수배 7명. 이처럼 검·경찰은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을 폭도로 몰고 폭력을 휘둘러 노동조합의 파업을 무력화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노동부와 울산광역시 역시 철저히 SK(주) 등 원청 발주회사와 건설업체 사업주 편에 서 있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뿐 아니라 원청회사와 건설업체들이 온갖 불법을 자행해도 눈감아 온 이들은 오히려 일당쟁이 노동자들의 피 마르는 파업이 두 달이 넘도록 수수방관하고 있는 공범자들이라고 할 것이다.

 

노동부가 지난 11개월 동안 한 일이라고는 현재 70개 교섭대상 업체 중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더니 고작 12개 업체에 행정지도를 내린 것이 전부다. 노동부 또한 그동안 ‘조합원 명부를 제출하라’는 등 교섭을 회피해 온 사업주들과 똑같은 행보를 보여 왔을 뿐이니, 12개 업체와도 교섭이 잘 될 리가 없다. 대상 업체에 대한 추가확인조차 하지 않고 시간 끌기로 노동조합의 파업이 무력화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 고공농성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처절한 절규인 ‘파업’마저 처참하게 짓밟고 있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길은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 싸우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을 살인적으로 탄압하는 배후이자 실질적 책임자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통한 실제 사용자들인 SK(주) 삼성정밀화학(주) S-OIL 등 원청회사들이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말이다.

 

울산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일하는 가장 큰 현장이자, 노조탄압과 단체교섭 거부를 주도하고 있는 SK(주). 상경투쟁단이 서울 SK(주) 본사 앞에서 무기한 노숙투쟁을 전개하는 데도 꿈쩍도 하지 않자, 결국 울산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SK(주)를 상대로 목숨을 건 고공농성에 잇달아 돌입한다.

4월 30일 서울 SK건설 공사현장 45m 타워크레인에 세 명의 조합원들이 무기한 단식 고공농성에 돌입한 데 이어, 노동절인 5월 1일 아침 다시 세 명의 조합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뚫고 SK(주) 울산공장 70m 정유탑 점거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노조탄압 중단하라!”
“단체협약 체결하라!”

인간다운 삶이냐 죽음이냐, 그 갈림길에서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절규와 분노의 함성이 갈수록 거세게 울려 퍼지고 있다.

 

울산의 파업전쟁, 그 선두에 선 건설플랜트 노조

울산의 파업전쟁은 점차 확산일로에 있다. 울산광역시가 야심차게 준비해 온 IWC(국제포경위원회) 제57차 연례회의가 개막될 예정인 오는 5월 27일, 민주노총은 울산지역 총파업을 단행함과 동시에 울산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여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파업을 강력하게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조만간 본격적인 대중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과 건설플랜트 파업투쟁이 맞물릴 경우 2005년 울산의 파업전쟁은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번질 수도 있어 보인다. 지난 1월 18일부터 시작된 현대차비정규노조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파업농성이 네 달을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5월 16일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공동 교섭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6월 중하순이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본격적인 대중투쟁으로 발전하리라 예상되고 있는데, 만일 그때까지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파업이 타결되지 않는다면 울산 전역이 파업전쟁의 거센 물결 속으로 휘말려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2005년 울산의 파업전쟁은 예상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민주노총까지를 겨냥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채용비리 수사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야흐로 울산에 새로운 파업전쟁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으며, 그 주역들이 새롭게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대공장 노동운동의 힘을 상징하는 울산에서마저도 ‘비정규직’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파업전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얼마나 직접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코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처절한 절규는 표면적인 승리 이상으로 강력한 성과와 파장을 남길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파업이 보여준 위협적인 파괴력은 어떠한 단체협약보다 강력한 힘으로 노동조건의 실질적 개선을 강제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강력하게 자극할 것이다. “저들 일당쟁이 노가다들도 저렇게 당당하게 일어서는데,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주어진 대로 체념하며 수동적으로 살아갈 것인갚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점점 더 많은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 당당한 노동자로 일어서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 머지않아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으로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바라본다면,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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