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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청안한 삶

  • 등록일
    2011/03/22 22:47
  • 수정일
    2011/03/22 22:47

애기똥풀꽃이 노랗게 피었습니다.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가장 늦게 잎이 나오는 대추나무도 이파리를 쏘옥 쏘옥 내밀었으니 모든 나무가 다 푸르게 벋어 오르는 오월입니다. 녹음 속에서 진종일 새들이 웁니다. 새들의 우짖는 소리를 들으며 꽃창포가 활짝 몸을 열고 서 있습니다.

오늘도 여여합니다. 이 말을 하기가 참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그렇습니다. 여여합니다.
제 집에 오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습니다.
“여기서 하루 종일 뭐 하고 지내세요?”
저는 대답합니다.
“그냥 지냅니다. 백수가 뭐 특별히 할 일이 있나요.”
“백수요? 아니 글 쓰시잖아요?”
“네, 뭐 글도 쓰고 그러지요.”
“심심하지 않으세요?”
“심심하지요.”
“심심하면 어떻게 하세요?”
“심심한대로 그냥 지내요.”  
그러면 재미가 없어서인지, 실망스러워서인지, 기대한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러는지 물음을 던진 사람도 피식 웃습니다.
“외롭지는 않으세요?”
“외롭지요.”
“그럼 어떡해요?”
“외로운 대로 지내지요. 살면서 외로운 시간도 필요해요. 저는 이런 고적한 시간이 내게 온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렇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도 복 받은 거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또 피식 웃습니다. 이 웃음은 아까 웃은 웃음과는 다른 것도 같습니다. 조금은 수긍을 하는 듯한 웃음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물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전기는 이상 없고 물 저장 탱크를 점검해 보아도 이상이 없는데 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을 끌어올리는 모터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전 내내 혼자 고쳐보려고 오르내리다 안 되어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설비회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오후 늦게나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물이 나오지 않으니 밥도 지을 수 없고 끼니를 해결할 길이 없어 궁리를 하다가 며칠 전에 부추밭에서 부추를 뜯어다 부추전 만들어 먹고 남은 반죽이 있는 게 눈에 뜨였습니다. 다행히 아직 상하지 않아서 그걸 프라이팬에다 한 국자 떠 얹어 부추전을 하나 부쳐 끼니를 때웠습니다. 프라이팬에 남아 있는 기름을 종이로 닦아내니 점심 설거지 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단순하게 하루가 가고 있습니다. 조촐하게 봄 한 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좀 심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거나 일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힘에 부칠 정도로 많은 양의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동시에 몇 가지씩 일을 하면서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전력투구하여 일을 하고 나서도 시간이 있었으면 더 잘했을 텐데 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소진하는 삶입니다. 있는 걸 모두 다 써버리는 삶입니다. 바닥까지 긁어내 탕진하는 삶입니다. 정신도 에너지도 아이디어도 체력도 있는 대로 다 써버리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삶입니다. 채우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육체적 에너지와 정신적인 힘이 고이도록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채워지기도 전에 닥닥 긁어 써버리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목으로
젖은 발 말리러 갈까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러 갈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비 오시는 날
늘어진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 보다가
늙은 부처님께 절도 두어 자리 해바치고
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없는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민화투나 칠까
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
긴 긴 장마        ---김사인 「장마」


김사인 시인의 시 「장마」입니다. 긴 긴 장맛비 속에 갇혀서 참 심심해 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심심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화자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보내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는 화자 옆에 나도 말없이 누워서 빈둥거리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씩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할 일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누굴 불러 화투를 칠까, 누구네 집으로 누룽지 얻어 먹으로 갈까 이런 궁리나 하면서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습니다.

글 쓴 시간보다 생각한 시간이 더 많고 말로 떠든 시간보다 오래오래 책을 읽은 시간이 몇 십 배 더 많던 날들은 절절한 시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사유한 시간보다 글 쓴 시간이 더 많고, 공부한 시간보다 강의한 시간이 더 많으면서는 제대로 된 시를 쓰지 못하였습니다. 한 말 또 하고 한 이야기 또 하면서 밥 벌어 먹었습니다.

충분히 사유할 시간 없이 쫓기던 삶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스쳐지나갔던 시간들을 바라봅니다. 민망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삶의 속도를 늦추고 내 삶을 바라봅니다. 내실이 없는 허세와 과장이 많았습니다. 평온한 속도를 만나야 합니다. 평온한 속도로 걸어가야 다시 청안(淸安)해지는 삶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즘 저는 청화스님이 쓰신 이 말을 인사말로 자주 씁니다.
“늘 청안하시길 바랍니다.”
청안이란 말이 마음에 듭니다. 맑고 평안해지는 삶. 잠시 비 내린 다음 숲이 더 맑아졌습니다. 그대도 늘 청안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 도종환 시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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