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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상병]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

  • 등록일
    2004/09/18 00:43
  • 수정일
    2004/09/18 00:43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

-尹東柱論

 

1

깊은 밤

멍청히 누워 있으면

방안은 캄캄해도

지붕 위에는

별빛이 소복히 쌓인다

그 무게로 살짝 깨어난 것일까?

그 지붕 위 별빛 동네를 걷고 싶어도

나는 일어나기가 귀찮아진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일까?



지붕 위

별빛 동네 선술집에서

누가 한잔 하는 모양이다.

궁금해 그를 쭈빗하면

주정뱅이 천사의 소리 같기도 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요절한 친구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닐 게다

저놈은

내 방을 기웃하는 도적놈이다.

그런데 내 방에는 훔쳐질 만한 물건이 없다.

생각을 달리해야지.

지붕 위에는 별이 한창이다.

은하수에서 온 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느 겁이 안 난다.

놈도

이 먼데까지 와서

할일없이 나를 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들어오라 해도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뚜렷한 우리말로

한마디 남기고

놈은 떠났다.

"아침 해장은 내 동네에서 하시오"

건방진 자식이었는가보다.

 

2

비칠듯 말듯

아스름히 달아오는

저 별은

은하수 가운데서도

제일 멀다.

이억광년도 넘을 것이다.

그 아득한 길을

걸어가는지

버스를 타는지

택시를 잡는지도 몰라도

무사히 가시오.

 

                                        천상병 시인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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