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바뀌지 않은 노동현실....

  • 등록일
    2004/09/18 18:48
  • 수정일
    2004/09/18 18:48

세월이 흘러도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바뀌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열사들 동지들에게 투쟁을 부탁하는 절박함이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세상이 서럽도록 서글프게 만든다. 난 눈물을 흘린 자격도 없기에... 가슴쓰림과 죄스러움만 스며든다. 노동운동을 지향한다고 말만 했을뿐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고 가꾸지 못해 현장에서 이번 사건같은 것을 목도만 해야하기에... 죄스럽다. 최소한의 희망이라는 것이라도 남아 있게... 주변에서 그래도 단한번 승리를 위해 수많은 패배를 감내하자라는 노동운동내 공감대 형성을 함께 일구어 나가지 못했기에.... 노동운동의 위기나 이론의 위기 그 온갖 수식어를 장식하던 노동운동하기 힘들다고 술주정 부리던 나 자신은 과연 그만한 용기나 있을까? 배짱도 용기도 없다.


말보다는 실천하라는 지극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친다. 그러나 이런 지극한 진리를 알면.... 또 시간의 흐름속에 그 진리는 다른 관성으로 잊혀질텐데.... 열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을 난 정말 바라지 않는다. 열사를 목도하고 망각으로 잊혀버리것 자체가 힘들고 죄스럽다.

 

열사의 죽음앞에 고개 숙여 명복을 비는 것도... 눈물을 흘리며 나는 아직 순수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행위... 그리고 누군지 모를 또다른 열사를 추모할 준비를 해야하는 현실이 무섭고 서럽다. 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눈물을 흘릴 자격이나 있는지 나에게 되물어 본다.



노동자들의 세상 즉 노동해방을 만들고자 노동운동을 한다고 말하는 내가 노동자의 절규와 절망 그리고 분신으로 이르게 하는 현실에 무엇을 그리 대단히 했기에 명복과 절을 하며 절규할수 있단 말인가? 누군지 모를 노동자를 위해 이후 열사들의 명복을 빌 준비를 해야하나라는 의구심을 이 시대가 나에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열사투쟁이 민주노총의 주요 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난 열사를 잊을 준비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건 지금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나보다 단위사업장과 연맹 및 노동조합 관계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시간이 오래 끌지 아니면 단기전으로 끝낼지 그건 예측과 알수 없지만... 열사의 추모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아마 난 이전 순수성과 헌신성 없이 운동을 지향해 와서 그런가 보다. 슬픔을 이겨낼 자신도 없다.(학생운동 시절 후배가 군에서 의문사를 당해 죽음을 목도하였지만 난 그 슬픔을 채 5년이 지나지도 않은 지금 그냥 잊고 살고 있다. 간혹 후배들이 전화를 해주면 그때서야 알 수 있을 정도이니 나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이 없는 열사는 얼마나 쉽게 잊으랴.. 그래서 열사력을 보면서 열사들 이름을 하나둘 확인하면서 열사들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영원한 노동자라는 전태일 열사이외에 노동열사중 이름을 외우는 열사들이 없다. 그래서 열사들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슬퍼할 자격도 없다. 곧 잊어버리고 일상에 무덤덤히 살겠지....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것 만큼 서글픈게 없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도 잊혀진다. 사람들로 부터... 그게 안타깝게 느껴진다. 

열사들의 숭고한 뜻만이라도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모두들 시대는 변했다고 한다. 분명 시대는 군부독재에서 문민/민주 독재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독재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름이 군부에서 문민과 민주로 변모했을 뿐이다.

 

혹자들은 임금/생활의 질이 높아졌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생활의 질 높아졌다는 것은 상대적 생각일 뿐이다. 80년대는 생활이라는 것 자체는 공장에서 없었다. 90년대 민주노조 건설과 노동조합활동이 대중적 확산으로 임금이 최저생계비 수준에서 조금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을 뿐 그 당시와 전혀 변한게 없다. 오히려 물가인상폭이 임금인상의 폭을 추월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여가시간이나 있나 거의 없다. 월차와 생리휴가가 있으면 무엇하랴... 낮은 임금으로 월차와 생리휴가는 하루 일당에 몇 % 더 엊어주는 돈으로 대체하고 잔업에 특근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 인터넷 생중계를 할때 한 조합원이 술 한잔하면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빠는 왜 다른 아빠들과 다르게 밤에 일가?...그리고 매일 왜 내가 잠자고 있을때 나가도 일어나기 전에 일을가" 아빠를 보는 시간이 없잖아 그리고 다른 아빠들은 토요일 일요일 나들이 가는데 아빠는 왜 회사에 나가야해" 이 말을 듣고 아무말을 해주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해 꼭 켜않고 울음만 흘렸다고 한다. 돈을 벌기위해 아버지 자리는 없다. 아마 노동자들 대부분들이 그러할 것이다.

 

80년대 민주노조 쟁취를 위해 분신으로 자본과 정권에 항거한 열사가 21c 들어서도 변함없구나... 분노가 치밀면서도 나의 나약함 또한 함께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운동 활동을 지향한다고 말만 했던 나 자신이 과연 노동운동을 알면서 지껄이지 않았는지... 그 현장의 자본의 삭풍을 느끼지 못한 내가 열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으랴.... 투쟁하라고 외침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망각으로 잃어버리고 일상의 무딤에 그냥 담담하게 열사력을 펼치며 다 외우지 못할 열사들 이름만 그냥 무덤덤 바라보겠지... 그래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래도 그 망각이 잊혀질세 없이 열사들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는 이 상황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것이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 사실 난 열사들 처럼 죽을 용기도 없는 놈이다. 관성과 타성에 사로잡혀 운동이라는 것을 요식행사 처럼해오지 않았는지 나를 다시금 되돌아 본다.

 

장애의 처우 개선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신 어느 여성 장애인활동가의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고 노점상의 생존권을 위협하여 분신으로 절규하다 분신하신 열사들...386들의 노풍 그리고 개혁에 거는 기대.... 그러나 노동해방이 되지 않고선 위 문제는 누가 정권을 잡던 문제가 될 것이다.

 

잘가요 그대 노래를 들으면서... 2003년 신년 노동자투쟁 희망의 새새벽을 기대해 봅니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