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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림][ 우리가 지나온 길에

  • 등록일
    2004/10/19 21:03
  • 수정일
    2004/10/19 21:03

불기 없는 판자 강의실에서는

교수님의 말씀보다

뒷산 솔바람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을지로 사가를 지나는 전차 소리는

얼음이 깨지는 소리처럼 차고

서울에서도 겨울이 가장 빠른 교정에는

낙엽보다 싸락눈이 먼저 와 깔렸다.

 

그래도 우리가 춥고 괴롭지 않았던 것은

서로 몸을 녹이는

더운 체온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가당 앞 좁으 뜰에서

도서관 가파른 층계에서

교문을 오르는 돌 박힌 골목에서

부딪히고 감싸고 맞부비는

꿈이 있어서 다툼이 있어서 응어리가 있어서

겨울은 해마다 포근했고

새해는 잘 트인 큰길처럼 환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길에

붉고 빛나는 꽃들이 핀 것을 본다

우리는 꿈과 다툼과 응어리가

부딪히고 감싸고 맞부비는 속에

화려하게 피워놓은 꽃들을 본다

 

                                                    신경림 전집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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