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나를 위한 한 시간

  • 등록일
    2005/03/17 10:27
  • 수정일
    2005/03/17 10:27
* 이 글은 갈막님의 [새벽에 걸려온 전화..] 에 관련된 글입니다.

** 도종환 선생 사이트(도선생도 훔쳐온 글임.)에서 글중에 훔쳐와 트랙백 걸어봅니다. 글 읽다 갈님의 게시판 글과 매치가 되어 트랙백 걸어봅니다.(자중해야 하는데 목련이 필때까지는...) 바위 위에 고요히 눈을 감고 앉아 있습니다. 고요 속에서 나도 없고 생각도 없이 있습니다. 내가 멈추자 시간도 멈추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냥 바위의 일부가 되어 앉아 있습니다. 바람이 골짜기를 따라 내려와 남쪽 언덕을 넘어 갑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나도 머리칼을 바람에 맡기고 앉아 있습니다. 바람이 아무런 막힘이나 걸림 없이 나를 지나갑니다. 내가 있다는 걸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나를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나는 빈 밭처럼 있습니다. 갈지도 않고 일구지도 않고 씨를 뿌리거나 농사를 짓지도 않습니다. 몇 해에 한 번씩은 그냥 밭을 밭으로 놓아두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나도 나를 그냥 빈 밭처럼 놓아두고 있습니다. 이 흙의 몸속에서 계속 무언가를 수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도 밭을 풀어주고, 잠시도 멈추지 말고 거두어들이고, 거둔 것을 나누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에서도 나를 놓아줍니다. 화엄의 숲에서 나와 해인의 초막으로 갑니다. 나무가 되어 다른 나무들과 함께 숲을 이루고 그 숲 안에 대동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지난 몇 십 년 가슴 벅차고 힘들고 기뻤으나, 심신에 병이 들어 쫓기듯 해인을 찾아 갑니다. 해인. 바닷물에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까지 다 비쳐 해인이려며 풍랑이 가라앉아야 합니다. 번뇌의 물결, 지나친 욕심의 파도, 끝없는 밀려오는 소유에 대한 집착, 헛된 명예와 허영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의 밀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고요하고 고요해진 바다에 맑은 내 얼굴이 초승달처럼 비칠 때 그 해인의 삼매에서 다시 화엄의 세상을 향해 몸을 돌려야 합니다. 본래 화엄의 큰 눈을 뜨기 직전 가장 깊은 순간이 해인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해인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화엄의 문을 열고 나와 해인을 향해 길을 나섰으나 해인에는 이르지 못하고 이렇게 산중턱에 앉아 있습니다. 나뭇잎을 쓸고 가는 바람소리가 물결소리 같습니다. 바람소리가 철썩이며 숲 위를 지나갑니다. 나무들도 버려야 할 것이 있는 걸까요. 그래서 저렇게 철썩이고 있는 걸까요. 나무들도 탐욕스러운 데가 있을까요. 나무들도 살기 위해 분노하고 다른 나무들을 해치고 그럴까요. 저만 살려하다 제가 먼저 쓰러지는 어리석은 짓을 할까요. 그렇다면 나무들도 업의 윤회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칡넝쿨을 치렁치렁 매달고 있던 나무, 다래넝쿨에 감겨서 자유롭지 못하던 나무, 으름덩굴을 제 열매처럼 달고 잠시 허영의 계절을 살아가던 나무들은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바로 그 넝쿨을 버리지 못한 것 때문에 넝쿨그물 위에 눈덩이를 짊어지고 있다가 그 무게에 눌려 가지가 부러지거나 꺾이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 걸 보면 나무도 다 저마다 두터운 제 업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나무가 욕심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사람처럼 탐욕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나무들이 어리석다 할지라도 사람들처럼 어리석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잘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모함도 술수도 모략도 폭력도 다 동원하는 사람들처럼 모질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도 고요히 돌아와 앉아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하루에 한 시간씩만 갖는다면 부끄러움도 알고 뉘우칠 줄도 알 겁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지게 하기 위해 하루에 한 시간씩만 투자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넉넉해진 사람이 되어 하루를 살 수 있을 겁니다. 지금보다 내적으로 충만하고 값진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자 합니다. 몸을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하루 한 시간 내적인 풍요로움을 위해 나는 이렇게 나를 고요 속에 맡겨 둡니다. 그러면 바람이 나를 맑게 씻어주고 부드럽게 매만져 줍니다. 햇빛이 내려와 내 안을 가득 채우고 따듯하게 합니다. 바람 속에 햇빛 속에 나는 지금 고요히 멈추어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