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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1. 이주여성의 삶과 미래.... 당당한 여성으로 거듭났으면.....
결혼이민자인 태국 이주여성 와라펀씨가 아침 일찍부터 센터에 찾아와 다솜 어린이방 아이들과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막내가 다녀서도 그렇지만 누구보다 아이에 대한 교육에 관심이 많은 와라펀씨는 태국여성이지만 당당하고 똑 부러진 성격을 지닌 맑은 영혼을 지닌 태국이 고향이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주여성입니다.
너무 똑부러져 우리도 당혹할때도 있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입니다.
그런 그녀에게도 근심이 많습니다. 태국과 다른 한국사회... 언어로 인한 고통과 사회적으로 이주여성이기에 부당함을 당해야 하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
태국에서는 4년제 정규대학 회계학을 전공하고, 회계사무소에서 일을 하다 다른 이주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빈곤의 굴레 벗어나고, 가족들의 행복한 삶에 자그마하게 보탬이 되고자 자신을 희생시킨 여성이기도 합니다.
한국이라는 기회의 땅에서 다른 이주여성처럼 일을 하고 가족을 꾸리며 살아가고자 한국남자와 결혼하여 한국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이도 꿈에 지나지 않았음을 한국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했습니다. 지금 10년째 한국생활을 하면서 점점 그 깊이를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다문화 그리고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지원과 한국사회 정주를 위한 노력을 하지만 1세대인 와라펀씨 같은 경우는 참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와라펀씨에게 지금과 같은 기회가 있었다면 지난 10년 어두운 터널에서 혼자 외롭게 갖혀 지내지 않고, 날개를 활짝피웠을 것인데.... 지금 뒤늦었지만 그 지난 세월이 너무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와라펀씨는 가족을 이끄는 가장이기도 합니다. 늘 태국인을 위해 헌신하며, 자원봉사, 상담활동, 통역 그리고 태국 여성 공동체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와라펀씨도 가난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짬짬이 나는 시간에도 아르바이트며, 시간제 일을 합니다.
아이들 생활과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아서 와라펀씨가 돈을 모아 아이들 교육비며, 생활비로 가계를 운영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와라펀씨에게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희 센터에서 1년 2개월간 사회적일자리를 참여하였지만 이도 낮은 임금에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펼칠 기회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여성센터와 가족건강지원센터, 이주여성지원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전문적 지식을 습득하지만 정작 와라펀씨가 갈 수 있는 것은 노동부에 구직등록을 하여 다른 비정규 여성보다 취업문이 좁습니다.
여성결혼이민자 일자리를 늘린다고 정부는 발표하고, 다양한 사업에서 창업지원이다. 사업이다 이야기를 하지만 결혼한 이주여성에게는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센터에서 하는 취업이다. 교육프로그램이다 살펴보지만 이러한 사업은 생색내기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이주여성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우리의 눈높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 센터에 있는 오목사님은 와라펀씨가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미래를 위해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였으면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복지사 공부와 보육교사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였으면 합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오목사님은 향후 이주민 자녀의 어머니로서 이주여성의 선배로서 언니로서 당당히 한국사회에서 이주여성이 살아갈 수 있는 길잡이로, 안내자로, 교육자로 삶을 이끄는 당당한 여성으로 어머니로 거듭났으면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보다 자신을 가꾸는 이주여성으로 와라펀씨가 한국사회에서 당당한 여성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단 와라펀만이 아닙니다. 모든 이주여성이 교육과 취업과 삶을 가꾸는 소중한 존재로 인식이 보편화 되기 위한 방향으로 다문화라는 키워드가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시혜가 아닌 동정이 아닌 우리와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고 정책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반쪽짜리 이주여성이 아닌 당당한 여성, 어머니로 대우받았으면 합니다.
와라펀씨와 같은 이주여성이 가족이 전부가 아닌 일부고, 자신을 가꾸고, 자신을 위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당당한 여성으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울타리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이주여성에게 한국사회는 하나의 장막입니다. 장막과 편견 그리고 배타성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국수주의로 자리매김되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혜와 동정 포용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주여성이 당당한 여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자리 그리고 교육... 전문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니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와라펀씨가 사회복지를 전공하여 이주여성을 위한 사회복지사, 아시아 문화를 위한 다문화 교육자, 이주여성을 위한 상담사, 이주여성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가족 컨설턴트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를 위한 교육이 이주여성들에게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더디더라도 저희는 조금 욕심을 내봅니다. 와라펀씨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물질적 지원은 어렵지만 정신적이고,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저희 또한 한걸음 뛰어보고자 합니다.
와파런 씨 같은 여성이 당당한 여성으로 그리고 이주여성의 눈으로 이주여성, 자녀, 가족들을 마음 따스히, 맑은 영혼으로 포용할 수 있는 여성으로 거듭나 한국사회에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와라펀씨만이 아니라 우리주변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당당한 여성으로 결혼이주민의 부조리한 한국사회에 대한 외침을 당당히 펼쳤으면 합니다.
부디 올해 와라펀씨가 사회복지 공부에 한걸음 전진해 갔으면 합니다. 아마도 이전에 베트남 이주여성이 잔띠짠(한국명 진성희)씨가 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 진학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부디 용기로 다가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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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2. 빈곤화에 의한 이주와 이주여성 성폭력과 성산업 관음증에 사로잡힌 한국사회....
와라펀씨로 부터 태국이주여성이 사업장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저희보다 많이 접하였을 것입니다. 사업장에서 고용조건에 따른 체류비자를 빌미로 한국에서 20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비일비재 합니다.
이주여성 성폭력에 대한 우리는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있다.
체류비자가 있는 이주여성은 그나마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이주여성의 몫이기에 무척 난감하다. 그리고 두려움과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으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폭력의 무서움을 견디어야 한다. 미등록이주여성은 말할 수도 없다. 이런 위협이 가해지면 사업장을 무작정 나와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 이주여성은 무방비 사태에 놓여있다.
이제 조금씩 빈곤으로 인하여 아시아에서 이주한 이주여성에 대한 문제에 우리는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여성결혼이민자 다문화라는 허상은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주라는 화두 내면에 있는 빈곤과 노동력에 의한 노동자의 이동, 그리고 늘 폭력에 노출된 여성이라는 화두, 아동권에 대한 우리의 이주에 대한 고민들이 하나둘 이야기 되어야 한다.
이주의 역사를 경험한 우리 또한 이런 쓰라린 아픔을 지니고 있다. 조정래 대하소설의 아리랑에서 감골댁의 2째 딸 중국으로 이주한 수국이가 당해야 했던 괴로움이 남의 일이 아니다, 남성으로 부터 당해야 했던 성폭력의 무서움과 그 괴로움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우린 언젠가 잊어버렸다. 남의 일로 치환된다.
지금도 미국 클럽, 어느 바에서 이주여성이 남성의 성노리개로 전락한 현실에 우리는 막연히 침묵하고 있다. 아니 한국에 있는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 또한 그러하다.
가난하기에 돈을 벌어야 하기에 성산업으로 유입된 여성노동자.... 그녀들에게 다른 길은 없는지.... 아마도 사회적 윤리규범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이를 찾는 관음증에 걸린 남성이 존재하는 한 이 고리는 끊이질 않지만 이주여성이 이제 점차 성산업으로 유입된 여성의 자리를 치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주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안정망은 부재하고, 이주여성 인권센터,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들이 있지만 접근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한 사회적 의제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이주여성에 대한 성폭력... 관음증에 굶주린 남성들이 존재하는 한 여성의 성폭력과 여성의 성산업 유입은 차단이 아닌 확대재생산 될 것이다.
이주와 여성의 성폭력과 관음증에 사로잡힌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개선노력과 사회적 의제화 그리고 이를 위한 실천방안들이 주요하게 모색되고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이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이주여성 또한 겪고 있다. 단지 빈곤에 의한 이주가 그/녀들을 우리와 다른 이도 차별과 편견을 부추기고 있다.
시혜와 동정을 통한 포용이 아닌 우리가 힘껏 끌어않아야 하는 이주한 이브임을 우리는 상기하여야 한다.
이제 감추지 말고 여성의 성폭력과 이주여성의 성폭력을 맞선 연대와 지원이 본격화되고 이에 따른 활동들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의 외침에 우리도 귀기울이고, 연대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 그리고 치유가 아닌 범죄를 예단하여야 한다. 혼자 그 고통에 괴로움에 떨고 있는 이주여성 그/녀들을 우리 사회가 품어야 한다.
빈곤에 의한 여성의 이주화, 이주여성, 성폭력, 소외, 차별이라는 단어들이 머리를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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