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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차 희망텐트촌 노동자 참가단을 다녀와서

  • 등록일
    2012/02/08 20:44
  • 수정일
    2012/02/11 13:19
2월 1일부터 7일까지 연차휴가를 사용하여 쌍차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에 참가하였다.
작년 1차 노동자 참가단에 참여하였고, 2차 경향신문 광고 조직화, 3차 전일정을 참여하지 못하였지만 7일간 함께 전국의 투쟁사업장과 민주노조 사업장을 참여하였다.
 
전국순회투쟁을 진행하면서 민주노조 사수 투쟁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였다.
조합원의 언어와 지도부의 언어 그리고 행동이 다르다는 99년 국제노동미디어 행사에서 세기말현장보고서(Lan)이 제시한 현대자동차 현장에서 벌어진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평조합원과 지도부 언어아 통이라는 주제의 워크샵 발제문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과연 민주노총과 산별노조가 평조합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노동자 단결 투쟁으로 민주노조 사수한 조직도 있지만 무수히 이름없이 사라져야 했던 민주노조들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 많던 민주노조는 과연 그들이 투쟁력이 노동자 단결력이 사회적 연대가 없어 사라져야 했던 것인가? 라는 물음을 해보았다.

87년부터 시작된 조직노동자운동이 지금 시대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화두와 지금 민주노총과 산별노조가 민주노조를 위한 조직적 활동으로 매진하고 있는지 등등 무수한 의문이 머릿속을 꽉채워 주체할 수 없었다.

쌍차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 전국순회투쟁을 하면서 만난 민주노조와 전국 투쟁사업장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질문은 민주노조는 노동자 단결과 투쟁으로 이루어진다는 간명한 진리를 다시금 각인시켜주었다.
노동자 투쟁 하나하나가 한진이고 쌍차이다. 그리고 자본의 무능으로 빚어낸 경영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종을 위시한 산별노조는  민주노조 활동가에게 너마나 먼 당신으로 단위사업장에 다가오고 있다. 투쟁을 전개하고 있지만 사회적 파급력이 작은 장기투쟁사업장과 투쟁 시일이 적기에 투쟁이 전국적으로 알리지 못하다. 사회적 투쟁으로 의제화 되고 있지 못한 현장 노동자 투쟁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 텐트농성장에 전기장판 침낭을 의지해 자본과 정권에 맞선 노동자 투쟁은 눈물겨운 투쟁이다. 장기 투쟁하는 사업 곳곳에 자본은 돈을 앞세워 노동자를 회유와 협박을 하여 이를 견디지 못하고, 민주노조에서 조합원 탈퇴하는 현실.....그래도 노동자 자존심과 깡다구로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는 자신의 심신이 다 소진하며 깡다구로 버티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조 깃발을 부여잡은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는 지방이 갈 수록 조직률이 적을 수록 노동자 단결투쟁은 어려운 현실임을 목포 보워터코리아 투쟁현장을 방문하면서 더욱더 크기  느낄 수 있었다.
 
쌍차 해고자 동지들이 오히려 저희들이 연대투쟁을 해야 할 곳이라도 이야기할 정도로 지역 민주노조 활동은 미미하였다. 특히 현대삼호중공업 노동자의 연대가 간간히 이루어져 있다. 현대삼호중공업 또한 민주노조 깃발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 버거운 현실과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자본은 이리도 일치단결되어 노동자와 민주노조를 탄압하는데 민주노조는 자본에 맞설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하기 보다는 어려운 현실과 상황에만 안주하여 몸짓 불리기와 탁상에 앉아 관료화 되어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전국순회단을 진행하는 쌍차와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 모두가 공감하고,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힘을 복돋아 주었다. 그리고 3차 행동에서 보워터코리아 투쟁 상황을 전국의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에게 알리고 연대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 노동자 연대의 기초가 다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쌍차 문기주 정비지회장님이 직접 지부에 이야기하여 만들었다.
 
한진과 쌍차투쟁을 시발로 문제시 되고 있는 사업장들이 모두가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쌍차 희망텐트촌 투쟁을 통해 사회적 희망투쟁 사업장을 확대시키고 전국의 노동자 민중에게 알려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쌍차투쟁이 이를 위한 계기가 되어 쌍차투쟁에서 사회적 연대가 미약한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연대가 3차 쌍차 희망텐트촌 투쟁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  
 
민주노조의 현주소가 무엇인지.... 복수노조를 시발로 기업노조를 앞세운 자본의 민주노조 파괴 공작이 일어나는 사업장과 정리해고 분쇄를 위해 장기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사업장들이 민주노총를 위시한 각 산하 산별연맹을 버티는 힘임을 각인하였다.
노동자 단결 투쟁이 무엇인지 조직된 노동자들이 이제는 나설 때이고,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과 노동해방 세상을 간명하고도 어려운 화두를 이제 실타래 풀어가듯 단사를 넘는 노동자 투쟁의 힘을 자본가들에게 이제는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1. 1월 31일(화)   저녁
사무실에서 오후 9시에 퇴근하여 집에 들려 순회투쟁 물품을 배낭에 집어넣고 평택으로 향했다. 1월 31일 함박눈이 내리는 늦은 저녁 쌍용차 희망텐트촌에 오후 11시 40분에 도착하였다.
희망텐트촌 마을회관 화로 주변으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쌍차지부와 연대단위 동지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간단한 인사 그리고 주변에 모여 내일있을 출투와 전국순회투쟁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었다.
 
인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한 후 출발을 위해 모인 동지들 각자가 마음회관, 쌍차 거점으로 향해 기나길 순회투쟁을 위해 숙면을 취했다.
 
 
2. 2월 1일(수)
아침 6시 기상 전국순회투쟁을 위해 쌍차지부동지들과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 동지들이 울산공무원노조에 빌려온 차량에 순회투쟁 농성물품을 챙겼다.
아침 눈이 많이 내려 도로는 온통 염화칼슘을 뿌려서 얼음빙판이 되었다. 추위도 한몫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힘차게 모여 아침 7시 30분 첫 방문지인 유성 영동지회 사무실로 향하였다.
설레인 마음을 주체하고 차량에 타면서 주변 풍경을 보았다. 온통 하얀색의 눈꽃들로 주변이 휜색 일변도 였다.
 
도로는 새벽 재설작업을 하였는지 고속도로 상황은 국도에 비해 괜찮았다.
 
첫 도착지 유성영동공장 재설작업을 하지 않아 국도상태는 눈길이었다. 길을 해치고 찾아온 영동공장 공장 입구 문이 활짝 열려 있었으나 전국순회투쟁단이 방문하니 급작스럽게 정문에 바리케이트를 관리자의 지휘하에 정문 통제를 하고 있었다.
총회를 하다 나온 유성 영동지회 간부들이 정문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노동조합 방문한 전국순회단이 조합사무실에 올 수 있도록 바리케이트를 철거하고 관리자에게 항의를 하며 짤막한 언쟁과 몸싸움을 하였다.
 
유성 영동지회 도착 총회를 마치고 나온 동지들과 조합사무실에서 간담회를 하고, 유성 영동지회 상황을 공유하였고, 전국순회투쟁단 활동과 쌍차지부 상황을 서로 나눌 수 있었다.
첫방문한 유성 영동지회에서 자본의 복수노조를 활용한 기업노조활동으로  민주노조 말살하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였다.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유성 영동지회는 조합원의 일치단결된 투쟁으로 민주노조 깃발을 사수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뜨거운 노동자 동지애로 맞이해주었다.
다음 일정이 울산이라 짧은 만남을 아쉬워 하며,  울산 효성 공장으로 향해 나왔다.
 
오후 2시 울산 효성플랜트 석유화학 공장에 도착하였다. 식사를 하지 않아 일단 울산지역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 동지들이 마련해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바닷바람이 부는 플랜트 현장에서 밖에서 바람을 맞으며 먹는 밥 또한 노동자투쟁의 현실이 무엇인지 공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늘 편안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동지들과 술한잔 기울이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호희호식하고 있음을 느끼기게 해 주었다.
 
울산지역동지들이 먼저와서 출근 선전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근 선전전과 울산 효성위원장이었던 박현정 열사의 1주기 추모제도 있었다. 박현정 열사의 추모 분향소는 참으로 조촐하였다. 간단히 차려진 분향소에 열사 영정과  국화꽃이 눈에 들어왔다.
 
동지 옆을 지키고 있는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함께한 동지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효성동지들에게 지인이고,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박현정 열사에게 술한잔 따라줄 것을 효성노동자에게 호소하였다. 출근집회를 진행하는 내내 사측은 무엇이 두려웠는지 집회 엠프 소리보다 크게 확성기를 크게 틀고 투쟁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차단하였다.
 
박현정 열사 추모 1주기 효성 자본의 극악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울산 효성플랜트 사업장을 뒤로하고, 울산 현차 앞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울산 현대차 민투위사무실에 쌍차 후 처음을 본 함동지를 만났다. 간만에 만남이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추위로 언 몸을 녹였다. 
 
현차 울산 민투위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한 후 일정 체크를 위하여 울산 현차 비지회 사무실로 이동하였다. 비지회 사무실에선 지역 쌍차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 동지들이 유인물 작업을 하고 있었다. 유인물 작업을 하는 동지를 보고, 현차 비지회 사무실로 들어가 향후 일정을 공유한 후 비지회 수요집회를 위하여 현차 울산공장 정문 앞으로 갔다.
 
오후 5시 울산 현차 정문 잎 추위는 가실 줄 모르고, 강추위 속에서 현차 비지회 수요집회를 개최하였다. 현자 비지회 조합원, 민투위, 현차 노조, 쌍차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 지역동지들이 함께 수요집회를 전개하였다. 수요집회를 마치고 난 후 현차 울상공장 노동조합 사무실에 방문하여 언 몸을 녹이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후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현차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식사를 마치고 야간조 출근 선전전을 위해 정문으로 이동하였다. 정문 앞에서 출근선전전을 지역동지들과 전개하였다.
울산지역 선전전 겨울철 들어서 가장 춥다는 날씨에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그래도 쌍차 투쟁을 통하여 전국지역의 투쟁하는 동지들을 만나면서 노동자 연대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출근선전을 마치고, 울산지역동지들과 현차 민투위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개최하고, 뒷풀이를 하며 현차 비지회 투쟁 쌍차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이 전국순회를 하면서 느낀 소회를 나누면서 오후 11시 40분 이틀날 일정을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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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도입, 그리고 이주노동자 꿈과 미래

  • 등록일
    2012/01/31 13:06
  • 수정일
    2012/01/31 13:06
과연 이주노동자 도입은 누가한 것일까요?
값싸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한국정부(현 고용노동부)가 각 아시아 국가 노동부와 협약(MOU)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초기 산업연수생제도라는 노예적 노동의 문제점이 있었고, 현행 고용허가제 또한 사업장 이동의 자유, 단기순환제, 이주노동자 자유로운 노동권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헌법재판소에서는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 제한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보면서, 우리사회 성숙되지 않은 이주노동자 그리고 이주노동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브로커에 속아 전재산을 탕진하여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중국동포에게 한국에 가면 돈을 벌게 해준다고 접근하여 브로커 비용만 챙기고 도주한 한국인 브로커가 많습니다. 이주노동자 한국 입국을 미끼로 이주노동을 부추긴 것 또한 한국인입니다.

지금 시간이 지나 자국에 브로커가 생겼지만 2000년도 초중반까지 한국인 브로커에게 이주노동자가 송출비용을 지불하여야 한국에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중국동포 3,000여명이 한국 브로커에 속아 빚을 갚을 길이 막혀 자살하거나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산업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매년 300여명이상이 산업재해를 당하고, 10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하여 질병, 자살로 망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경제발전으로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이주노동은 엊그제 한국 현실입니다.
이주노동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사회 또한 이민과 이주노동을 하고 있는 유입국이자 송출국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에 한국 이주노동자가 70만명이 있습니다. 일본사회 차별을 받고 있는 재일동포를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한국사회가 이제 아시아를 통해 전세계를 바라보는 시야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국사회 경제발전은 한국사회만의 노고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수한 아시아의 경제협력과 지원으로 이루었습니다.

아시아 각 나라들은 한국사회가 함께 걸어가야 할 파트너입니다.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에게 손을 내밀고, 더불어 살아가기를 통해 한류를 넘어 아시아 아니 세계속 한국을 만들어가는데 일조해야 할 것입니다. 


이주노동자 꿈과 미래....
이주노동자는 가족의 삶을 책임지는 가장입니다.
한명의 이주노동자 자국 8촌의 경제생활과 교육, 의료를 책임집니다.
이런 현실은 이주노동자가 무섭고, 고통스러운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합니다.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미래만을 짊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가족의 삶을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그/녀들 어깨는 늘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다문화사회라고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낮설고, 시혜 대상으로 밖에 여기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이주노동자 그/녀에 대한 인식의 무지를 벗어던지도 한국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주노동자는 앞으로 더욱더 늘어날 것입니다.
한국사회에 도래한 저출산 고령화 사회 이 사회의 노동을 책임질 이주노동자 우리와 함께 살아갈 친구요., 동생이며, 언니, 누나, 형, 오빠입니다.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소망은 간단합니다.
한국에서 가족의 삶을 이끌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일자리와 체류자격을 부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삶을 영위하고 자녀들을 한국교육현장에 차별받지 않고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작은 소망이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 바램하는 미래입니다.
늘 불안한 삶에서 단속이 되지 않게 기도하는 초등학생 자녀의 기도를 직접 이야기 들어보세요. 우리와 같이 숨쉬고 생각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이주노동자 그/녀들과 자녀의 모습을......



한국사회 이주노동자를 통해 아시아를 바라보기....
이제 한국사회가 말만인 글로벌 시대 리더가 아니라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가깝게 다가온 이주노동자 그/녀들과 아시아 속의 한국이라는 미래지향적 고민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유목민의 역사에 의해 진화해 왔듯 우리 또한 잠재된 이주노동자입니다.

과거 조선말기와 일제식민시대 더 낳은 삶을 찾기 위해 하와이,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과 만주와 연해주 동토의 땅을 일구며, 독립운동을 하였던 것이 한국사입니다. 또한 60년대 탄광현장과 간호사로 독일에 갔고, 70년대부터 중동의 작열하는 태양속에 구슬땀 일구기 위해 이주노동을 간 역사가 우리 근현대사와 현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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