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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이주여성이 함께 일하며 살아가요,

  • 등록일
    2008/11/16 00:41
  • 수정일
    2008/11/16 00:41

 

필리핀, 태국 이주여성이 함께 나눔과 상생을 위한 녹색가게와 외국인 서포터즈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와라펀은 현재는 태국국적이며, 한국인으로 귀화를 하여 국적 취득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입니다. 결혼한지는 6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태국이주노동자 여성결혼이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외국인 서포터즈로 태국이주노동자 상담활동과 여성결혼이주민자 통역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화성, 평택, 용인지역에 많은 태국이 고향인 여성결혼이주민과 태국에서 이주해온 이주노동자 그/녀들을 위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한국의 법체계를 잘 몰라서 상담을 진행하는데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와라펀씨가 있어서 많은 태국이주노동자들이 상담을 신청하거나 산재, 사업장이동, 여성결혼이주민들의 어려움들을 해소해 주고 있습니다,

글로리아씨는 고향이 필리핀이며, 결혼하지 10년된 여성입니다.  

글로리아씨는 막내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여, 정신적 충격이커서 약간의 우울증증세를 보였습니다. 이전 활달한 성격으로 필리핀에서는 베이비시터를 하며, 영육아를 돌보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막내아들이 죽기전까지는 동네 분들과 어울리는 멋진 아주머니였지만 아들의 사망의 충격으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그래도 매사에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늘 남에게 얻는게 있으면 배품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저희가 지역에 있는 요양기관에서 자문을 얻어 글로리아씨가 일을 하면 약간의 우울증세가 호전되며, 차차 대인관계가 나아질 것이라 조언을 들었습니다. 이에 저희 녹색가게에서 일하며, 아주머니들과 수다도 떨며, 함께 일을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큰 아들 인철이 또한 저희 협력기관이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에서 방과후 지도를 받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답니다.

요근래 함께 일하는 녹색가게 동료인 선배 아주머니로 부터 많은 이쁨을 받고 있답니다.

 

푸타맛씨는 고향이 태국입니다. 남편과 이혼을 하였습니다.

저희센터에 찾아와 비자연장을 위하여 법무부 혼인파탄사유서를 작성하여 이혼사유가 남편에게 있음을 상담을 통하여 저희가 공증을 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으며, 아이를 키울 능력과 경제력이 없어 현재 아들을 태국 외가집에 보냈습니다.  

오른쪽 손 장애가 있어 많은 일을 하지 못하지만 새롭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시작하는 다솜어린이방 도우미로 일하고 있습니다. 와라펀씨가 추천하여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외국인서포터즈로 함께 일하고 있답니다.

****참고로 결혼이민자여성(F-2-1-국민의 배우자)은 일반 사회적일자리창출사업에 참여를 할 수 없어 주요하게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만이 참여합니다. 국민의 배우자는 한국인으로 인정을 하지 않아 사회적일자리창출사업에 참여를 할 수 없고, 현재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부처연계형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외국인 서포터즈사업만이 사회적일자리사업이지만 여성결혼이주민(F-2-1, F-5영주권자)만이 참여할 수 있답니다.*****

 

사라 또한 고향이 필리인입니다. 

한국에 결혼으로 입국한지는 6년이 되었으며, 영찬이라는 5살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 센터에 필리핀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을 10년간 지원활동을 한 존스갈랑이 와 있어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전남 보성에서 있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무작정 상경.... 오산에 일을하게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사라씨가 돈을 벌어 자그마한 전세금의 보금자리를 5년내에 마련한다는 소원을 간직한 꿈만은 우리내 아주머니입니다. 아이 또한 똘똘하게 키울려고 잔업이 없는 저희 녹색가게에 취직시켜 달라고 몇번을 졸라서 이번 새로 추가배정받은 7인에 포함되어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라씨의 꿈이 열매를 맺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세핀씨는 고향이 필리핀입니다. 한국에 결혼으로 입국한지는 10년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정답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한번의 유산 그리고 계속해서 아이를 낳고자 노력을 하였지만 아직 자녀가 없습니다.

아이를 볼때면 늘 부럽다고 시셈하는 조세핀씨......

너무 부지런하여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지만 돈을 법니다.

활달한 성격으로 주위를 리드하고, 서슴없이 나가서 끼를 발휘하는 조세핀씨.... 사라씨와 함께 녹색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답니다.

늘 일도 잘하고 말도 많은 조세핀씨가 있어 녹색가게 동료 아주머니들이 즐거워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니씨가 저희센터와 함께 녹색가게 헌옷 판매일을 하고 있답니다,

제니씨는 비자가 없어 저희가 사회적일자리사업으로 지원을 해주지 못하고 돈을 주지만, 한국에 온지 16년이된 모든 일에 척척인 만능엔터테이너먼트입니다. 영어강사활동도 개인적으로 많이 해주었고, 필리핀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을 위한 상담통역, 일 등 모든면에서 어디에도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사람입니다.

고생도 많이 하였고, 힘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늘 힘을 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작게하고 있는 녹색가게 옷판매 헌옷 옷 구매를 담당하여 판매를 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6명의 여성들과 저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답니다.

저희가 일을 시키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저희가 힘이 나며, 보이지 않게 세세히 배려해주는 모습에서 녹색가게와 외국인 서포터즈 사업이 하나둘 영글어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봅니다.

 

많은 수의 여성결혼이주민이 일자리를 갖고자 노력하지만 취직하기는 어려운 조건입니다. 취약계층사업으로 이주여성들이 여성결혼이주민을 돕기위한 바우처사업이나 또는 사회적일자리사업으로 취업의 기회와 문을 열어주어 한국사회 적응을 위한 사회적통합 활동에 적극적 주체로 참여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참고로 베트남 여성결혼이주민이 일을 하고 싶지만 취직을 하기가 다른 조건에 비해 어렵습니다. 남편과 시부모님을 도와주고 싶지만 사회적 조건이 아직 이를 뒷받침하고 있지 못합니다. 저희 또한 안타까움만을 가지고 있답니다. 사회적일자리창출사업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지만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면 국민의 배우자라하여도 취업의 문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완화되어 여성결혼이주민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참여를 위한 일자리제공사업들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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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찍힌 이주노동자 친구들 사진을 보며....

  • 등록일
    2008/11/16 00:40
  • 수정일
    2008/11/16 00:40
많은 일들이 있었고, 기억될 만한 사건들도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정리한 사진들을 모아 놓고 컴퓨터 파일들을 모아서 슬라이드 쇼로 보았다.
소소하게 지나갔던 것들이 한장의 사진으로 기억되어 그날의 일들을 되새기 한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 사진들도 있고, 내가 옆에서 보고 느꼈던 사진, 그리고 지금은 함께하지 않은 이주노동자 친구들 사진이 열거되어 있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던 작년의 사진속에 꼭 기억되는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함께하여서 즐거웠지만 함께 늘 같이 못함을 알면서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면서 붙잡고자 하였던 이주노동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잘하지 못하는 한국말이지만 그래도 또박또박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거나 함께하여서 좋았다는 말을 하는 이주노동자 친구들.... 늘 고민하지만 고국에 돌아가면 막막하다는 그/녀들....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삶을 거부하였던 그/녀들.... 이들이 있어 좋았고, 슬펐던 기억,,,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간임을 자각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투쟁이라는 것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던 그/녀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흔적이라는 이름을 빌어 내가 여기 존재하고 센터에서 새롭게 일을 하는데 자긍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늘 이주노동자 친구들은 고민한다.
고국에 돌아갈까 더 머물까? 그렇지만 센터를 믿고 남아주어 함께하면서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투쟁하였던 친구들... 각자의 마음 속에는 머뭇거림과 고뇌가 배여 있다. 수많은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에게 조금만 조금만 있어 달라고 이야기 하였지만 우리 힘은 턱없이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많은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돌아갔다. 또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것은 한국땅에서 노동자 삶이 단지 지난 시절의 추억의 사진이 아닌 현실이고, 이 시기에 느꼈고, 고뇌하였던 삶이 인생과 삶의 좌우명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즐거웠고 행복하였던 디카의 앨범사진첩처럼 즐비한 컴퓨터 그림파일들이 정겹게 눈에 다가온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녀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남는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든 그/녀들의 삶에서 난 우리가 찍은 사진 모습속에서 위안을 삼거나 힘을 얻는다.

늘 해맑은 그/녀들 그렇지만 정부는 그냥 내벼려 두지 않았다. 순박한 그/녀들을 두렵고 무서웠던 단어인 투쟁이라는 단어를 선물로 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연이 닿았지만.... 앞으로 그/녀들의 고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를 바램만 해본다. 

 

참으로 정겹게 사진속에 내가 알고 느꼈던 친구들의 환한 웃음이 들어왔다.

친구들 고국에서도 잘 지내고 있죠.... 고뇌없이.... 불안함 없이.... 우리 언제 한번 만났으면 하는데 만날 수 있을까?

보고 싶다.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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