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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림][ 우리가 지나온 길에

  • 등록일
    2004/10/19 21:03
  • 수정일
    2004/10/19 21:03

불기 없는 판자 강의실에서는

교수님의 말씀보다

뒷산 솔바람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을지로 사가를 지나는 전차 소리는

얼음이 깨지는 소리처럼 차고

서울에서도 겨울이 가장 빠른 교정에는

낙엽보다 싸락눈이 먼저 와 깔렸다.

 

그래도 우리가 춥고 괴롭지 않았던 것은

서로 몸을 녹이는

더운 체온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가당 앞 좁으 뜰에서

도서관 가파른 층계에서

교문을 오르는 돌 박힌 골목에서

부딪히고 감싸고 맞부비는

꿈이 있어서 다툼이 있어서 응어리가 있어서

겨울은 해마다 포근했고

새해는 잘 트인 큰길처럼 환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길에

붉고 빛나는 꽃들이 핀 것을 본다

우리는 꿈과 다툼과 응어리가

부딪히고 감싸고 맞부비는 속에

화려하게 피워놓은 꽃들을 본다

 

                                                    신경림 전집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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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공장생활....

  • 등록일
    2004/10/18 22:41
  • 수정일
    2004/10/18 22:41

참 언제 가도 정겹고 힘이 넘치는 공간 공장이다.

이 공간에 잠시 머물렀고 노동을 하였고 땀을 흘렀고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늘상 접하던 선진노동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참 노동자라는 사실을 나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조직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 비록 민주노총 사업장 소속의 노동자들은 아니다. 그리고 전태일 정신이니 민주노조이니 하는 말들과 담벼락 쌓고 사는 이들이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누구보다 정직 근면 성실하게 여지껏 삶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너무나 순박해 노동조합 결성을 못하고 주어진 직업이 천직이라 생각하고 사는 이들이다.

그들에겐 민주노조라는 말보다 월급날 월급명세서에 적힌 숫자가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먹고살기에 버겁게 살지만 자신의 육체를 팔아 번 돈으로 당당히 살아온 우리내 형제요 어버이들이다. 그들이 비록 민주노조라는 깃발은 세우지 않았다. 너무나 순박하고 정직하기에....

 

우리가 앞으로 조직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그러나 나는 다만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이들이 부당노동행위와 고용불안의 먹구름에 들게 하지 말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찗지만 내 집처럼 편한 공장... 이곳은 치열함이나 분노는 없지만... 정직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르쳐 주는 공간이다.

 

앞으로도 이 곳에 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오늘 짧은 5일간의 공장에서 용역으로 근무를 마감하였다.

 

다들 일 못한다구 구박은 주었지만 헤어질 마당이 되어서 고생하였다는 한마디가 얼마나 고맙던지... 근육이 땡치는 고통이 다 치유 될 정도였다.

 

이 공간을 빌어 고맙다는 말을 남겨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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