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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더린 - "Hälfte des Lebens"에 관한 몇가지 단상 2

2.2 Ihr holden Schwäne

‚hold’의 의미도 쉽지 않다. 요새 쓰지 않는 말이다. 좀 아이러니하게 가미하지 않으면 느끼하기 때문이다. 횔더린이 살던 당시에는 안 그랬단다 (Ulrich Knopp, 같은 곳 참조). 그냥 ‚사랑스럽다’란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루크레티우스 „De rerum natura/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첫 줄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Aeneadum genetrix, hominum divomque voluptas,/alma Venus“/’에네이스 가문의 시조이시며, 인간과 신이 모두 군침 흘리며, 젖 가슴이 풍부한 비너스여’. 근데 이 표현에서 „alma Venus“/’젖을 주는 비너스’를 독어로 흔히 ‚holde Venus’로 번역한다. 이에 기대어 ‚hold’의 의미엔 젖 먹이면서 아이를 굽어 살펴보는 엄마의 자세가 스며있다고 짚어보자.  
 
헛다리 짚은 것일까? 어원사전을 보니 안 그런 것 같다. ‚hold’은 (광산이나 채석장 등에서 석탄 혹은 돌을) ‚비스듬하게 높이 쌓아 올린 더미’란 의미가 있는 ‚Halde’와 어원을 같이 한다. 이런 어원에 기대어 롤프 쭈버뷜러(Rolf Zuberbühler)는 ‚hold’가 백조가 머리와 목을 비스듬히 하고 있는 것을 표현한다고 한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 다. 그리고 1793년 요한 크리스토프 아델룽(Johann Christopf Adelung)이 편찬한 사전 „Grammatisch-kritisches Wörterbuch der Hochdeutschen Mundart, mit beständiger Vergleichung der übrigen Mundarten, besonders aber der Oberdeutschen“은 ‚hold’를 „Geneigt, des anderen Glück gerne zu sehen, Liebe gegen denselben zu empfinden/다른 사람이 행복해 하는 것을 즐겨 살펴보고 애정을 느끼는 쪽으로 기울어진 [그런 disposition이 있는]’이라고 설명한다 (Ulrich Knopp, 같은 곳 참조).

„Ihr holden Schwäne“하면서 백조를 부르는 말걸기(Anrede)에는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 말걸기로  시적 주체가 등장하다. 근데 한가지 눈에 띄인다. 주체가 주체로 등장함과 동시에 아무런 형태없이 사라진다.

시적 주체(poetisches Subjekt)는 보통 강력한 창조자(poietes)로 등장한다. 시적 주체가 등장하는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 호라티우스가 „반두지아의 원천/fons bandusiae“을 노래하는 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 네번째 연, 2행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me dicente“. 문장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고 따로 우뚝 서 있는 소위 ‚ablativus absolutus’격으로 시적 주체가 등장한다. 해석해보자면 반두지아의 원천이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가 노래하기/말하기 때문이다’란 것이다.

근데 여기선 그렇지 않다. 백조에 말을 거는 시적 주체가 대려 객체가 되어 ‚날 좀 봐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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