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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더린 - "Hälfte des Lebens"에 관한 몇가지 단상 3

2.3 Und trunken von Küssen

Und trunken von Küssen  
Tunkt ihr das Haupt           
Ins heilignüchterne Wasser.

보통 이 시의 1연은 목가적인 풍경을, 2연은 이에 대조되는 아픔과 쓰라림을 노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
앞 행 „Ihr holden Schwäne“의 소리가 목가적이지 않다. 밝은 모음 i-o-e에 시작했지만 ä-e 어둔운 모음으로 끝난다. ‚ä’는 비운을 느끼게 한다. 뭔가 기대하면서 백조들에게 말을 걸었는데 기대했던 것을 받을 수 없다는 비운을 느끼게 한다. 이런 느낌은 이 행의 흐름을 주관하는 약강 혹은 단장(Iambus) 음보(音步)가 마지막에 가서 한 걸음 빠져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완성된 음보라면 ‚Ihr holden Schwäne da’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뭔가 허전하다. 뭘 기대했는지 알 순 없지만 말걸기(Anrede)에 대답하는 말받기(Gegenrede)가 없을 것을 예상하게 한다. „Schwäne“라고 부르고 뭔가 허전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런 허전함에 이어지는 다음 행 „Und trunken von Küssen“은 음율의 속도가 빨라진다. 느릿느릿 오르락 내리락 했던 잔잔함이 서둘러 앞으로 나가는 박자로 바뀐다. 행진곡에 쓰여지는 약약강(Anapäst) 음보가 5,6 행의 경우 중간에서 속도를 높이고 있다. 6행에서는 또 상박없이 바로 강/장으로 들어가는데 허둥댄다는 느낌까지 준다 (Karl Eibl: Der Blick hinter den Spiegel. Sinnbild und gedankliche Bewegung in Hölderlins „Hälfte des Lebens“ (20.02.2004). In: Goethezeitportal. URL: http://www.goethezeitportal.de/db/wiss/hoelderlin/haelfte_eibl.pdf, 2012.2.3 참조). 여기 진보넷 블로거 Daydream님이 이 시를 읽으면서 전쟁을 연상하기도 했는데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백조님들이 하는 짓이 우아하고 사랑스럽지 않고 행진하는 군인과 같이 무지하고 꼴 사나운 면이 있다. 기계적이다.

그리고 „und“가 이해하고 번역하기 어렵다.

고트프리드 벤(Gottfried Benn)은 이 시를 읽으면서 5행의 „und“가 눈에 거슬린다고 했단다 (Ulrich Knopp, 같은 곳 참조).


이런 경유를 생각해 보자.

„나는 죽어라고 일했는데 넌 뭐했어? 잠만 퍼 잤잖아!“

이 표현을 독어로 번역해 보면 이 정도 되겠다.

 „Ich habe mir den Arsch aufgerissen und gearbeitet. Und du? Was hast du gemacht? Du hast nur gepennt.“

이 시 5행의 „und“도 und의 이런 사용법이 아닌가 한다. 기대했던 것과 어긋나는 행위, 그리고 기대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행위를 이 „und“가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시와 관련해서 이야기되는 비운은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백조의 행위에서 나타나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시의 마지막 3행의 „Die Mauern stehn/Sprachlos und kalt, im Winde/Klirren die Fahnen“의 시제가 현재형임을 봐서도 비운은 겨울이 오면/되면 다가오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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