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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언론윤리 준수하는가?

거짓말보다 더 나쁜 게 있다. 반쪽도 안되는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2012.3.18뷔르셀 발 연합뉴스 기사  <새 독일 대통령에 선출된 요아힘 가우크>가 이런 나쁜 짓을 하고 있다.

1.    „선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

요아힘 가우크의 아버지가 배타는 사람(„선원“)이었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평범한 선원이 아니었다. 나치 상선대의 선장이었으며 예비역 중위였다. 요아힘 가우크의 부모는 각1934년, 1932년 나치당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에 입당했다.  (참조: http://de.wikipedia.org/wiki/Joachim_Gauck#Herkunft_und_Nachkriegskindheit_in_der_DDR_.281940.E2.80.931951.29/  미주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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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부활절: 나치 점령하의 폴란드 그디니아(독명:그딩엔)에 주둔한 아버지를 방문한 가우크, 여동생, 그리고 엄마. 참조: 독일 보수 일간지 디 벨트 .http://www.welt.de/politik/article13877996/Die-privaten-Bilder-des-Joachim-Gauck.html)


2.    „ 선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동독 정부에 의해 체포돼 러시아 군사법정에서 25년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그 자신도 1950년대에 소련 강제노동수용소에서 3년여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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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크의 아버지가 시베리아에서 만들어 보낸 엽서. 디 벨트는 가우크의 아버지가 첩보행위를 했다는 빌미로  1951년 체포되어 25년 형을 받았으나 1955년 석방되었다고 한다. (참조: 디벨트 http://www.welt.de/politik/article13877996/Die-privaten-Bilder-des-Joachim-Gauck.html)


가우크 아버지는 1951년 6월 27일 체포되었다. 2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55년 석방되었다. 요아힘 가우크는 감옥생활을 한 적도 없고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생활한 적도 없다.



3.    „로슈토크시의 반체제 운동 단체인 `새 포럼'의 대변인을 맡아 활동한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이듬해 통일될 때까지 동독 비밀경찰에 의해 철저한 감시를 당했다.“

가우크의 아들 크리스티안과 마르틴은 1987년 서독으로 이주했다. 근데 그들이 조부 금혼식 참여차 동독에 입국할 수 있었다. 당시 동독 출입을 슈타지가 통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슈타지의 허락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당한 특혜다. 가우크가 슈타지 끄나풀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근거를 제시하는 그런 주장도 있지만]. 단지 가우크가 동독에서 상당한 특혜를 누렸던 사람이었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참조: http://www.spiegel.de/spiegel/print/d-172695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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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2.2 마르틴 가우크의 동독 출국 허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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