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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강신주의 노숙자대하기 4 - 인간의 존엄성에 손찌검

강신주의 글  "수치심은 정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역겹다.

 

글의 출발점(termininus a quo)은 밝히면서 도착지(terminus ad quem)는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뱀꼬리가 사라지듯 흐지부지 어디론가 사라진다. 몰라서 그런다면 멍청한 일이고 알고도 밝히지 않는다면 사악한 짓이다.

 

강신주 글의 도착점은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이다. 그게 공권력에 의해서 혹은 공권력을 위임받은 사적 권력에 의해서 강제로 이루어지든 아니면 도덕담론을 통해서 강제된 자발성으로 이루어지던 도착점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 이런 도덕담론은 공권력투입에 용이한 여론 조성에 유익하다.

 

문제는 모두에게 열린 (도시)공간이며, 이런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게 인간의 기본권리인가 그렇지 않는가에 있다. 기본권리란 인간존재 그 자체, 즉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여기에 어떤 전제조건도 있을 수 없다. 그게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내적 반성력, 혹은 외적 몸가짐이라 할지라도 전제될 수 없다. 이게 현대의 사상이다. 20세기의 비극을 경험한 인류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근데 강신주는 이걸 건드리고 있다. 근대이전의 사상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가 중앙일보로 간 건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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