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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시도: 파울 첼란 - Zähle die Mandeln (살구씨를 세어라) 2

첫 질문에 대한 답이 어렵다. 누가 누구에게 청원하고 있는가?

 

우선 뭘 청원하는지 보자. 살구씨를 세는 일. 똑같이 반복되는 손동작이다. 시간은 흐르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 뭔가에 붙잡혀 그만 둘 수 없는 일 같다. 마치 공장에서 그저 흐르는 시간에 맞춰 같은 손동작을  반복하듯이. 걷어 차버리고 일어 섰으면 하는 바램이 굴뚝 같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의 배경은 쇼아(홀로코스트)다.  시적 주체가 말을 건네는 사람은 쇼아를 살아남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쇼아의 ‘경험’(여기서 경험이란 말을 적합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이 어쩜 시간을, 인간이 본원적으로 향유하는 시간을,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합성된 시간을 파괴하여 순차적으로 그저 흐르기만 하는 선형시간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선형시간의 지배아래 그저 순차적인 시간을 모방하여 하나, 하나 세기를 반복하는 멜란콜리아의 지배아래 있는 쇼아 생존자가 시적 주체가 말을 건네는 사람이 아닌지.

 

그렇다면 청원이 아니다. 청원하는 일이 이미 현실이다. 청원이 아니라 최소한 안쓰러운 마음이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라. 그게 달램이 된다면...’      

 


그래, 살구씨를 세어라 [일일이]
그래, 널 갈기갈기 찢고 잠못이루게 했던 걸 세어라 [반복해서]
나도 그래, 같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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