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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짜임새는 건축물과 비교될 수 있다. 건축물은 꼭 지붕이 있다. 그리고 지붕을 받쳐주는 기둥이 있다. 기둥은 지붕을 지탱할 수 있도록, 지붕은 기둥에 맞게 계산되고 설계된다. 글에도 이와 같이 기둥과 지붕이 있다.
근데 어찌된 일인지, 글에서는 지붕과 기둥이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아이의 글에서 그런게 아니라,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글에서 그렇다. 기둥 하나는 동쪽 끝에, 다른 하나는 서쪽 끝에 세우고, 손바닥만한 지붕을 그 위에 올린다. 그리고 보란듯이 내놓는다. 건축물이라면 건축계에서 영원히 쫒겨날 짓을 서슴없이 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임금님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레기를 먹고 사는 글쟁이들이 “임금님 옷 참 멋있다”하듯이 “훌륭한 집이네” 한다.
“Bundesstiftung zur Aufarbeitung der SED-Diktatur”(보통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독재 청산재단”으로 번역되는데 “Aufarbeitung”의 개념을 살펴보고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겠다.)와 우드로우 윌슨 국제센터가 공동 저술한 “Coming to Terms: Dealing with the Communist Past in United Germany”가 이런 유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여기 ☞ 영어 원문, 한글 번역본, 중국어(중국 본토/대만) 번역본, 그리고 스페인어 번역본을 내려 받을 수 있다.
우선 원문의 들어가는 부분과 한글 번역본을 비판해 보려고 한다.
해당 부분 원문은 아래와 같다.
“During the course of the 20th century Germany experienced two different dictatorships, the twelve years of fascist Nazi Germany’s “Third Reich” between 1933 and 1945 and the 40 years of communist rule in East Germany between 1949 and 1989 (the latter preceded by Soviet military occupation of Eastern Germany and East Berlin since 1945 when German communists were guided in building up dictatorial structures).
Both periods of dictatorships had some structural elements in common while they also displayed obvious contrasts. Both dictatorships started and ended very differently, with Nazi Germany resorting to a global war of aggression resulting in millions of war dead and the genocide of European Jewry. Respective crimes committed by the two German dictatorships differed vastly in scope and geographical range.”
여기서 주제화된 문제는 독일 정치지형에서 매우 현실적인(aktuell) 문제다. 독일연방대통령이 지난 9월 1일 폴란드 그단스크에 있었던 2차대전 발발 기념식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 푸틴을 히틀러와 동일시하는 연설에 이어서 최근 튀링엔주의 좌파당 주도 연정 구성의 가능성을 앞두고 (사민당 당원들의 찬반투표를 앞두고) 좌파당이 아직 동독 통일 사회당과 결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등 동독체제와 나치체제를 “불법국가”(Unrechtsstaat)란 개념을 적용해서 동일시하는 경향이 팽배하다.
이건 오래전부터 다듬어진 인식이다.
참조한 글에서 나치독일과 동독이 어떻게 비교되고, 또 한글로는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1.
나치체제와 동독체제를 “two different dictatorships”라 한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이성인가? 아니라고 한다. 최근류(genus proximum)와 종차(differentia specifica)를 따지는 전통적인 정의 방식을 동원해서 둘 다 한통속이라고 은근슬쩍 주장한다. 최근류로는 “some structural elements in common”(공통의 몇몇 구조적 요소들)을, 종차로는 “obvious contrasts”(자명한 차이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structural elements”(구조적 요소들)의 질적 정체를 밝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some”(몇몇의)이 10개 중 하나인지 둘인지, 100개 중 둘인지 셋인지 그 양적 정체도 밝히지 않는다. 양과 질이 밝혀져야 비교가능한 게 아닌가?
구조적 요소를 들먹이면서 나치체제와 동독체제가 같은 속성이라고 전제한 다음, 차이는 그 속성의 현상화에 있다고 한다. “obvious contrasts”(자명한 뚜렷한 차이)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당연히 각 현상의 시작과 끝은 다르다. “obvious”한 것이다. “길에 오르는”((라)ob viam = obvious)데 있어서는 각 현상이 다른 건 자명하다.
나치체제의 시작과 끝을 이렇게 설명한다.
“Nazi Germany resorting to a global war of aggression resulting in millions of war dead and the genocide of European Jewry”
“나치 독일은 수백만명의 전쟁사망자와 유럽 유대인의 인종청소로 귀결되는 지구적 침략전쟁을 일으켜”
그러나 동독체제의 시작과 끝은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표현은 “war dead”란 표현이다. 이 표현에는 전쟁에서 어쩔 수 없이, 불가향력적으로 발생하는 사망자란 의미가 농후하다. 이건 역사 왜곡이다. 나치의 전쟁범죄로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주로 동유럽 슬라브 민족과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디터 폴(참조: Dieter Pohl: 1939-1945 나치 시대의 핍박과 대량살상, 2003 다름슈타트/위키에서 재인용http://de.wikipedia.org/wiki/Kriegstote_des_Zweiten_Weltkrieges#cite_note-5)에 따르면 나치전쟁범죄로 학살되 민간인은 1천 3백 37만명으로 집계된다. 그리고 인명피해가 가장 많은 국가는 2천 7백만명으로 쏘련이었다 (같은 곳 참조)
이런 ‘차이’를 말소할 수 없었는지 필자는 아래와 같이 결론한다.
“Respective crimes committed by the two German dictatorships differed vastly in scope and geographical range.”
“이 두 독일 독재체제가 자행한 범죄들은 그 규모와 [범죄현장] 지역의 크기에 있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차이”(differ vastly)가 나치체제와 동독체제를 비교불가능하게 하는 게 아닌가?
Vast의 어원은 (라) vastus로써 (라) immanis와 거의 함께 쓰인다. 측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치체제의 범죄와 동독체제의 범죄 간의 차이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벌어져 있다. 나치체제와 동독체제를 비교하려면 그 차이를 메워주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공허하다 (vastus).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시편 103편 12절) 서로 뚝 떨어져 있다.
이렇게 서로 뚝 떨어져 있는 곳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이데올로기 공세가 주조한 손바닥만한 지붕을 올렸다. 말이 안되는 걸 스스로 인식하면서 억지로 집을 짓는다.
2. 공식 한글번역
“통일 독일에서의 과거 공 산주의자 청산문제
20세기, 독일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간 파시스트 나치(제 3제국) 독재역사와 더불어 1949년부터 1989년에 걸친 동독 공산주의 독재역사를 경험했다. (1945년 소련군의 동독과 동베를린 지역 점령이래로 동독의 독재체제가 구축되었다.)
이와 같은 두 독재기간은 구조적 요소간의 공통점들을 가지는 동시에 시작과 몰락에 있어 큰 차이점을 보인다. 나치 독일은 세계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살상하였고 유럽 내 유대인 대량학살을 자행하며 독재정권을 이어갔다. 이 두 독재체제로 인해 발생한 범죄들은 그 성격과 지정학적 범위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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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원문에 충실하므로써 원문을 해체하는 능력이다. 윗 글의 상음은 나치체제와 동독체제를 동일시하는 거다. 그러나 원문에 충실하면 그 상음이 해체되고, 사실을 억지로 끼어 맞추는 'falscher Zungenschlag'이 드러난다.한글 번역에는 지적할 것이 많다. 가장 핵심적인 지적 대상은 "millions of war dead"와 "differed vastly"의 번역이다. "많은 사람들"과 "큰 차이"로 번역되었다. "많은"과 "큰"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 머무르는 표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에 대한 사람의 상상력은 만 단위를 넘지 못한다. 만 단위를 넘어가면 셀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만인(萬人)이라 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망자를 희랍사람들은 'myrio-nekros'라고 표현한다. myrios는 만(萬) 단위다. 'vastly'는 위에서 설명했다.
이걸 "많은" 그리고 "큰"으로 번역하므로써 원문의 논리전개를 해체할 능력을 상실한다. 그래서 나치체제의 범죄와 동독체제의 범죄를 둘 다 상상가능한 걸로 만든다.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는 상상을 초월하는 "유일"(Singularität - 다니엘 골드하겐)이다. 다른 것과 비교될 수 없을 뿐더러 다른 것과 함께 언급될 수도 없는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다.
한글 번역은 이데올로기 상음에 충성.충실은 다한다. 80년 중반 서독의 이른바 "역사학자 논쟁"(Historikerstreit)에서 에른스트 놀테(Ernst Nolte)가 주조한 이데올로기다. 나치는 쏘련의 "아시아적인 짓"(asiatische Tat)을 모방한 거라는 것.
그러나 원문의 몸체(Textkörper)에 충실하면 상음=이데올로기는 해체된다. 한글 번역은 글의 몸체에 충실하기는 커녕 대려 그 몸체를 이데올로기기에 맞게 뜯어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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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Coming to Terms: Dealing with the Communist Past in United Germany”을 “통일 독일에서의 과거 공산주의자 청산문제”로 번역했다."과거청산"의 개념적 문제점은 안병직이 "과거청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서 명쾌하게 지적한다. (http://past.snu.ac.kr/admin/upload/data/%EC%84%9C%EC%84%A4%EA%B3%BC%EA%B1%B0%EC%B2%AD%EC%82%B0.hwp)
" 1. ‘과거청산’의 의미
‘과거청산’이란 잘못된 과거사를 정리하고 극복하려는 시도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하는 것이지는 하지만 학술적인 측면에서 그 타당성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 엄격히 말해 과거 혹은 역사와 관련하여 ‘청산’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역사적 사실로서 과거사 그 자체를 사후(事後)에 마치 없었던 것처럼 하거나, 처벌과 보상 등의 방법으로 온전하게 교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미 일반화되어 익숙해진 이 용어를 굳이 회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을 내용적으로 좀더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과거청산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우선 그 하나는 ‘과거규명’인데, 이는 은폐, 축소, 왜곡 또는 금기 시 된 과거사의 진상을 밝혀내고, 그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시행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 과거규명은 사건의 진상과 아울러 이에 대한 책임의 규명, 가해자의 처벌, 피해자의 보상과 복권, 명예회복 등을 포함하는데, 그 점에서 그것은 사법적 또는 정치적 측면에서의 과거청산이라 할 수 있다.
과거청산의 또 다른 의미는 ‘과거성찰’이라 할 수 있다. 과거성찰은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의 차원을 넘어 그에 대한 비판과 반성, 애도와 치유의 노력을 의미한다. 과거성찰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청산은 단순히 죄와 벌, 처벌 및 보상과 관련된 사법적 혹은 정치적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식과 역사인식, 가치와 윤리, 문학과 예술의 문제이자 동시에 기념일, 기념물 등 공식, 비공식적 기억과 기념문화의 문제이다. 아울러 과거성찰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청산은 단지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과거사에 직접 연루된 특정 당사자 개인이나 일부 집단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 국가나 한 사회 구성원 전부, 나아가 후속 세대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과거청산은 내용상 과거규명과 성찰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용어 그 자체가 그런 의미를 함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점에서 이 용어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용어의 문제점은 우리말 뿐 아니라 외국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사를 정리, 반성하려는 시도와 관련하여 영어, 스페인어, 독어, 불어, 러시아어 권에서는 각각 ‘대면(confronting, facing)’, ‘청산(liquidación)’, ‘극복(Bewältigung)’, ‘숙청(épuration)’, ‘복권(трудоустрбйсво)’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나, 그 어느 것도 규명과 성찰의 의미를 함께 포괄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사 처리 문제가 대단히 복합적인 측면을 지님에 반해 이를 총괄하는 학술적 개념은 아직 정립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점에서 국내학계뿐 아니라 국제학계의 차원에서도 과거청산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아직 매우 미흡한 수준이라 할 것이다."
스페인어로는 "Evaluación"으로 번역되었는데 (영) "coming to terms" 또는 (독) "Aufarbeitung"이 갖는 의미에 못 미친다. 대만 중국어로는 "面對、接受真相: 統一的德國如何處理共產的過往"으로 번역되어 있다. 다움 중국어 사전에 기대어 파악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말하자면 가장 적합한 번역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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