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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17

 

(§17) 내가 제대로 꿰뚫어 보고 있다면, 진리를 단지 실체로만 아니라 실체에 못지않게 주체가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표현해야만 비로서 지금까지 이야기된 다툼을 해소하는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1] 물론, 이러한 나의 시각은 체계의 서술을 통해서만 자기 정당성을 부여 받게 될 것이지만 말이다. 실체성을 [사유하는데 있어서]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실체성이란 보편적인 것인데, 이런 보편성은 달리 [더 정확히] 표현하면 지의 직접성뿐만 아니라 이와 함께 동시에 지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있는 존재를 또한 내포한다는 점이다. 일정한 시대에 들어와 신을 유일한 실체로[2] 파악하는 생각이 질서 정연하게[3] 표명되었는데 이 생각은 당대의 분노를 야기했다. 그 이유는 한편으론 그와 같은 실체 안에서는 자기의식이[4] 단지 소멸될 뿐 유지되지 안는다는 [생존]본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사유를 사유로서 사수하는 입장을 취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유는 단지 보편성에 멈추는 것으로서 결국 위와 똑같은 단순함, 달리 표현하면 아무런 구별이 없는 부동의 실체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째로 [사유의 이런 면을 보완하여], 실체의 존재를 사유와 결합하고 직접성, 달리 표현하면 직관이[5] 곧 사유라고 파악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런 지적직관이[6] 과연 나태한 단순함으로 다시 떨어지고 실재 그 자체를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서술하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중차대한 일이 아직 남아있다.



[1] 원문 alles darauf an, das Wahre nicht als Substanz, sondern eben so sehr als Subjekt aufzufassen und auszudrücken.>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주장되는 것은 아주 간단히 이야기해서 실체=주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체를 아리토텔레스의 본질>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으로 이해하면, 본질이 바로 주체(Subjekt)가 된다는 것인데, 뭔가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 같다. 실체=주체하는 것은 문장에서의 주어(Subjekt)와 존재하는 본질, 즉 우유(偶有)적인 것(accidens)의 바탕(Hypokeimenon)이 되는 것을 짬뽕한 것이 아닌가? 헤겔 당시의 실체에 관한 논쟁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야 이 문장을 이해할 것 같다. 데카르트부터 한번 살펴보자. 데카르트는 실체를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존재의 근거를 자기 안에 (causa sui) 둔다는 이야기다. 실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스피노자도 역시 이 점을 강조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 안에 존재의 근거를 갖든지 아니면 다른 것에 존재의 근거를 둔다(Omnia quae sunt, vel in se, vel in alio sunt. 스피노자, 윤리학 1, 공리 1). 자기 안에 존재의 근거를 갖는 것 실체가 될 수 있고, 이런 실체를 인식하는데 있어서는 다른 것이 전제되거나 어떤 매개도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참고: 스피노자, 윤리학 1부 정의 3. Per substantiam intelligo id quod in se est et per se concipitur hoc est id cujus conceptus non indiget conceptu alterius rei a quo formari debeat.). 이렇게 존재의 근거를 자기 안에 두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제한되지 않는 것은 필연적으로 본질과 함께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 된다 (참고: 스피노자, 윤리학 1, 정의 1. Per causam sui intelligo id cujus essentia involvit existentiam sive id cujus natura non potest concipi nisi existens.). 그래서 스피노자는 실체를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 아무런 규정이 없는 그 무엇으로서, 규정 짖는 모든 부정을 (omnis determination est negatio.) 앞서가는 신이라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라이프니츠는 실체의 절대적인 무제한성 대신에 실체를 신이 창조한 우주의 기본요소로서의 단순실체, 혹은 단자라고 한다 (les Monades ou substances simples. 라이프니츠, 인간오성에 관한 새로운 에세이/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서설 참조). 이 단자는 개별적으로 규정된 통일성이며, 능동적인 자기행동성을 (Car je soutiens que naturellement une substance ne saurait être sans action. 같은 책, 서설 참조) 갖는 것으로서 존속하는 개별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다(같은 책, 2, 27장 참조)라고 라이프니츠는 말한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헤겔이 뭐라고 하나 보자.

[2] 역자주 1) 참조

[3] 원문 . 기하논리학적으로 정연한 스피노자의 윤리학.

[4] 원문

[5] 원문

[6] 원문 . 데카르트에서 출발해서 스피노자를 둘러보고 칸트의 거점을 통과하고 야코비, 피히테, 쉘링을 넘어서 <실체>를 몇 문장으로 정리하는 헤겔을 여기서 바로 이해할 수가 없다. 염두에 두고 우선 넘어가자. 그리고 뭐라고 하는지 계속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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