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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모든 것을 다 꿰어놓은] 전체다[1] .[2] 그래서[3] 전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개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본질이다. 절대적인 것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는 본질적으로 결과로서 끝에 가서야 비로서 그가 참으로 무엇인지 드러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절대적인 것의 속성, 즉 자기모습을 갖춰가는 것으로[4] 존재함으로써 실재적인 것 또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담겨져 있다.[5] 절대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결과로서만 온전히 인식될[6] 수 있다는 점에는 [절대자의 개념에 대한] 자체 모순이 있는 듯이 보이고 그 점을 계속 우길 수야 있겠지만 이점을 약간만 검토하면 이런 터무니 없는[7] 생각을 금방 바로 잡을 수 있다. 시초, 원칙, 절대적인 것 등 [학문을] 시작하자 마자 곧바로 내세워지는 것은 단지 보편적인 것일 뿐이다. 모든 동물이라는 표현이 동물학을 대신하는 말로 통용될 수 없듯이 신,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 등의 낱말이 그것이 포함하는 것은 말하고 있지 않는 것 또한 분명하다. 낱말을 단지 이와 같이 [외연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사실 직관 또는 직접적인 것을 표현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낱말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에는 매개작용이[8] 따르는데, 낱말이 비록 아주 간단한 문장으로 넘어가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달리 됨을[9] 내포하고 있으며, [이렇게 뭔가 다른 것이 되는 과정에서 낯설게 된 것은] 매개작용을 통해서 다시 자기로 회수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매개작용을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꺼린다. 그 이유는 매개를 절대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또 절대적인 것 안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매개를 이런 것 이상으로 이해하고 허용하면 바로 절대적 인식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 원문
[2] 원문 어쩔 수 없이 견디다 못해 토해내는] 표현에 뱉어내는 것의 뒤를 따라간다. 주시해야 한다. 고통에 혀를 빌려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요구가 모든 진리에 전제되는 조건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개별자를 압박하는 객관성이다. 개별자가 가장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 즉 표현은 객관적으로 매개된 것이다.“ („Sie folgt dem Ausdrucksdrang des Subjekts. Das Bedürfnis, Leiden beredt werden zu lassen, ist Bedingung aller Wahrheit. Denn Leiden ist Objektivität, die auf dem Subjekt lastet; was es als sein Subjektivstes erfährt, sein Ausdruck, ist objektiv vermittelt.“ (같은 책 29쪽)
[3] 원문
[4] 원문
[5] <… zu sein>을 약간 하이데거식으로 번역했다.
[6] 원문
[7] 원문
[8] 원문
[9]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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