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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트가르트 근방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 독일 서남부지역 슈바벤엔 종종 간다. 비행기에서 내려 친구가 살고 있는 동네에 가면 아주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뜻하고 정돈된 길과 집들. 허허벌판 길거리에도 과일나무를 심어놓은 배려(?) (아니면 땅 놀리는 것을 볼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거기에 가면 뭔가 근질근질한 베를린의 분산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던 중 몹쓸 병에 걸려 슈발츠발트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이 지방 특유의 억양과 여성에 푹 빠진 기억, 그리고 오후 한나절 산야를 걷다가 선술집(Kneipe)에 들려 덜 빠개진 밀알로 만든 짙은 밤색의 <검은빵>에 슈발츠밸더 쉰켄을 두툼하게 잘라 올리고, 또 그 위에 싱싱한 양파를 둥글둥글 썰어 올린 간식, 밀알이 입안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씹히는 맛 등 이 지역은 나에게 항상 훈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지역이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그 지역사람에 대한 글을 써봐야지 하고 있다. 늘 그러듯이 생각만 하고 있다가 오늘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런 글이 있다. “슈바벤에대한 이미지– 한 지역성격의 구성”제하 튀빙엔 대학 실증(경험?)문화학과 프로젝트그룹이 진행한 연구결과를 묶어 편찬한 책이다. 거기에 프리데만 슈몰(Friedemann Schmoll)의 “천천히 먹고 오래 씹어라 – 루리제 하러(Luise Haarer)가 지은, 그럴 의도로 쓰지는 않았지만 슈바벤을 대표하는 토양요리책이 된 역사”란 논문이 눈에 띄고 재미있어 보인다. 요리는 좋아하고, 잘하고(), 또 매일 해야 하니까() 뭔가 건질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읽어보았다. 소개해 본다.
“기본요리법에 따른 요리와 [빵/케이크]굽기(Kochen und Backen nach Grundrezepten)”란 제목으로 1932년 처음 발간된 이후 지금까지 27번이나 재발간 되어 백만 권 이상 팔린 이 요리책을 슈몰은 이제 재대로 된 슈바벤의 부엌이라면 빠질 수 없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그 발간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1932년 루이제 하러가 이 요리책을 처음 선보였을 때는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는 장르의 책이 붐을 일으키기 시작할 때였다. 그리고 이런 붐은 독일에서 살림하는 일이 폭 깊은 변화에 처하게 됨을 알리는 것이었다. 보살핌을 주역으로 하는 여성이미지가 밖에 나가서 취업하는 여성시대가 시작되면서 통째로 흔들리게 되었고, 기술혁명은 세탁기로부터 시작하여(1870년부터 수동세탁기 사용), 전기오븐(1891년 이후), 진공소재기(1906년 이후) 등 차쯤 살림살이를 정복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의 지식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자연적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싱크대와 광 사이를 오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길잡이란 매체가 필요해 졌다. 지속되는 현대화 바람에 빠지게 된 살림살이는 전통적인 일상생활지식으론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끝없이 보이던 엄마와 할머니의 지식창고에 더 이상 기댈 수가 없게 되었고, 일목요연하게 체계적으로 정돈된 요리책이 요구되었다.
근데, 이런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시대의 유행에 따라서 멋있게 보이는, 이것이 좋다네 저것이 좋다네 하는 식생활습관의 어지러운 변동에 따라 많은 요리책이 발간되었는데 살아남은 책은 몇 권 안 된다. 그 중 하나가 이 요리책이다. 그 이유를 슈몰은 이렇게 설명한다.
루이제 하러의 요리책이 아는 사람들 사이엔 아직도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이유는 아래와 같은 마법공식에서 기인할 것이다. 알쏭달쏭한 요리법을 거추장스럽게 늘어놓는 대신 간단명료한 기본요리법을 요리기술의 왕도로 가르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개개인이 창조력과 기발한 착상을 착착 쌓아 나갈 수 있게 하였다. 이런 기본요리법의 원칙은 간직과 갱신의 맛나는 밸런스, 전통과 변화의 적절한 믹스, 잘 닦여진 것으로 전해 받은 것과 새로운 창조의 공전을 담보하고, 검증된 것을 바탕으로 한 주체적인 이니시어티브를 장려하는 원칙이었다.
1958년 판, 루이제 하러의 말을 들어보자.
기본요리법과 기본법칙이란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바탕으로 하여 [소개된] 요리에 변형을 주고 더 개발하는 수단이 모든 지각있는 여성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이런 책을 쓴 사람이 어찌 목사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겠는가. 루이제 하러는1892년 헤르츠펠트(Härtsfeld)에서 태어난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우라흐(Urach)로 이사해 여성가사학교(Frauenarbeitsschule)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한 영국인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는 일을(Haustochter) 한다. 약혼남이ㅜ1차 대전에서 전사한 후 독신으로 살다가 나중에 수(手)작업 교사 헬레네 뢰쉬(Helene Rösch)와 동거한다. 1917년 고향으로 돌아와 25세에 슈트트가르트 소재 슈바벤 여성단체의 가사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가사학과 교사 자격증을 딴 후 1923년부터 에쓰링엔(Esslingen)에 있는 직업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중 위 요리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의 영향으로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문화부에서 가사학교에서 교육되어야 할 내용과 교사교육 및 재교육을 담당하는 고급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57년 은퇴한다. 그리고1976년 헤렌베르크(Herrenberg)에 있는 양로원<저녁쉼터/Abendruh>에서 별세한다.
슈몰은 루이제 하러의 요리책이 단순한 요리책만이 아니라고 한다.
루이제 하러의 요리책은 단순한 레씨페 모음집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 루이제 하러는 맛나게 하는 요리법들을 하나로 엮는 가운데 우리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책을 선사하고 덕과 몸가짐을 교육한다. 실용성, 깨끗함, 검소, 열심, 절약, 그리고(…) 허풍이 들어가진 않은 참신한 맛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이런 여성타입은 이젠 뷔르템베르크지역 개신교 여성동아리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런 여성타입을 만들어내는데] 루이제 하러도 한몫한 것이다.
그러나 쌀이 나무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고, 슈퍼에서 사시사철 야채와 과일을 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 요리책은 신선한 충고를 준다.
서구 공업화된 나라라면 사시사철 어떤 식품이라도 사 먹을 수 있게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루이제 하러는 잃어버린 계절의 리듬을, 예전에 논밭에서 계절 따라 나온 것으로 차린 반찬의 바뀜으로 맛볼 수 있었던 계절의 리듬을 다시 갖다 준다. 루이제 하러에게는 모든 것에 자기 시간이 있다. „항상 시장에 뭐가 나오는지 고려하라. 그리고 과일과 야채를 살 땐 잘 익은 시기를 기다리고, 생선을 살 땐 잡는 시기를 기다려 사라.“라고 충고한다. 루이제 하러의 요리나라는 유행을 따라가는 맛, 휘황찬란한 뭔가를 보여주려는 스타일이 지배하지 않고 자연이 다스리는 나라다.
뿐만이 아니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쌀독에 쌀이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넘쳐나는, 가난과 풍부함의 교차를 기억하라고 한다.
„살림살이할 돈이 부족할 경우, 누룩으로 과자를 만들어라. 누룩으로 만든 과자는 버터와 달걀이 들어가지 않아도 부스러지지 않고 맛있다.“
그리고 같은 요리에 약간의 변화를 줌으로써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일생생활과 특별한 날간의 미소한 차이를 느끼게, 하늘의 향한 일요일과 그저 그런 평일을 구별하게 한다.
루이제 하러의 요리책은 „단순한“, „정성들인“, 그리고 „좋은“ 애플케이크를 구별하고, 구겔호프(혹은 구겔후프/모자모양의 카스텔라)의 경우 심지어 „단순한“, „좀더 낳은“, „정성들인“ 그리고 „아주 정성들인“ 등으로 세분한다. 요리 대가 루이제 하러는 버터를50그램 더 넣거나 아니면 평소보다 달걀 한 개를 더 넣어 오늘이 쉬는 날인지 아닌지를 미소한 맛 차이에서 느끼게 한다.
목사가정에서, 그것도 모든 것을 하는데 있어서 성서에 근거를 두는 (예컨대16세기 이 지방에서 일어난 농민전쟁의12가지 요구도 복음서에 근거를 두고 제기됨) 이 슈바벤 지역에서 태어난 루이제 하러가 청교도적인 절약을 언급하지 않고 지나갔으랴.
„시장을 볼 때 항상 식품의 가격과 그 영양가치를 비교하여라.“ (…) 가스오븐의 불은 반듯이 요리준비를 다 마치고 솥을 올려놓은 다음에 켜라.“ 그리고 „불이 솥 밑에서 옆으로 나오지 않게 주의하라.“
이런 청교도적인 절약이 지배하는 살림살이의 최고봉은 남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하는데 있다. 슈바벤 부엌엔 물론 남은 음식을 버리는 쓰레기통이 있을 수 없다.
군지 오래된 검은빵(Schwarzbrot)은 야채와 함께 쉽게 먹을 수 있는 국으로 변화고, 딱딱해진 브뢰챈[주먹만한 빵. 보통Brötchen이라고 하는데 지역에 따라Weck, Semmel, Schrippen 등으로도 불린다.]은 갈아 반죽해서 크뇌델을 만들고, 김빠진 맥주는 싱크대 구멍에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라, 녹말분과 계란 몇 개를 넣어 걸쭉하게 만들고 그 위에 개피가루 뿌리는 둥 마는 둥 해서 먹는, 옛날 남독 아침식탁에 늘 등장하던 맥주국이 된다. 그리고 가이스부르크(Gaisburg)이란 슈트트가르트 변두리에 있는 노동자거주 도시의 이름을 따 만들고 뷔르템베르크주 군인들이 즐겨 먹던 „가이스부르거 행진(Gaisburger Marsch)“이란 수프 역시 이렇게 낡은 것을 새롭게 하는 창조적인 남은 음식 재활용에서 나온 것이다. 어제 먹고 남은 스페쯜레(Spätzle – 반죽을 강판에 밀어 만든 길이 짧은 국수, 멀게 우리 수제비와 비슷함.)를 그저께 먹고 남은 듬성등성 썰은 감자와 함께 육수에 섞어 만든 – 가계부가 허락하면 수프용 고기를 더하고, 허락하지 않으면 관두어도 괜찮은 – 국이다. 예전엔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으로 노동자와 농부의 살림살이 부엌 밖으론 나오지 못하다가, 지금 들어선 소위 미식가식당의 메뉴판에까지 올라가고 고급 문화유산으로 취급되고 있다.
루이제 하러의 요리책은 우리 머리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요리법을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려준다. 그리고 이 요리책은 이렇게 토양에 기반하기 때문에 몇 번 시도했지만 다른 지역에선 거의 판매되지 않았다. 사가는 사람은 어김없이 슈바벤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토양적인 요리, 지역주의, 그리고 가정주부문학간의 복잡한 상호영향관계를 파헤쳐보는 것이 음식민속학에서 해볼만한 연구과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빌헬름 하인리히 릴(Wilhelm Heinrich Riehl)이 일찍이 관찰했듯이 „여러 족속을 두고 볼 때 입과 위에 대한 것보다 더 보수적인 것은 없다.“
1871년 독일 제국이 선포되고 이듬해 독일 전국에 무게와 길이를 재는 하나의 잣대가 도입되면서 부엌문학부분에도 역시 획일화가 시도된다.
„담백하고, 좀더 우아한 시민식탁을 위한 대형 그림요리책“의 지은이 마틸데 에르하르트(Mathilde Ehrhardt)는 빌헬름[제국]시대의 요리책이 수행하는 목적이 제국의 부엌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있다고 한다.
„다수의 요리책에서 노출되는 취약성을 찾아내는 것에 발행인은 주목하였다. [이젠] 어떤 가정주부라도, 동서남북 어디에서 살든지 독일언어권내에서 생활하면, [요리에 관하여] 뭔가 궁금한 일이 생길 때 이 책을 열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제국이 선포되고 난 이후부터 토양적인 요리책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요리책은 아마 국민국가(Nationalstaat)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역의 정치적 주권이 중앙정부로 넘어가는 상황에 맞서 부엌과 함께 맛을 음미하는 목구멍이라고 지켜야 한다는 움직임의 산물이 아닌가 한다.
이어 슈몰은 루이제 하러 요리책의 성공 비결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루이제 하러의 성공비결은[요즘 유행하는 슈바벤 하이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 기술발전으로 야기된 변화를 합목적이라면 받아들인다는 열린 마음과 막 전개되는 여성취업노동시대에 들어와 전통적인 여성의 자기역할이해에서 점진적이고 끈끈한 변화를 이야기한 이 요리책의 양면적인 모더니티에 있을 것이다. (…) 루이제 하러는 토양적으로 각인된 요리와 살림살이를 받아들이고 보살핌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여성역할에 대한 전통이데올로기를 여성취업시대로 이행하는 보수주의를 고집했다. 일상생활에 관한 지식이 점점 더 과학으로 둔갑하는 시대에 [요리와 같이 다양한 작업이 동시에 아니면 줄지어 진행되어야 하는] 복합적인 일의 기본구조를 알게 하는데 성공했다.
아무튼 루이제 하러가 소개하는 요리는 요즘 들어 유행하는 소위 덜 가공화 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영양학자들이 재발견해내는 음식들이다. 그리고 루이제 하러의 성공은 체르노빌사태, 광우병, 몸매관리, 다이어트, 콜레스토롤 등 음식에 관한 조언이 난무하는 시대에 어떤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정언적 명령과 같은 엄격하지만 친절한 명령에 대한 향수에 있을 수도 있겠다.
루이제 하러는 „밥을 먹을 땐 필요 없는 온 갓 잡음, 격렬한 대화, 그리고 독서, 라디오와 같은 정신 사납게 하는 여타 행동을 삼가라. 이 모든 것들이 소화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친절하고 지시하고 여유를 갖고 밥을 먹으라고 한다. „천천히 먹고 오래 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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