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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와 폭력

  • 등록일
    2009/05/10 08:57
  • 수정일
    2009/05/10 08:57

자유는 개인의 존엄이 전제되지 않으면 자주 폭력으로 변한다. 가학적이든 피학적이든 존엄이 실종된 상태에서는 혁명조차 줄곧 파괴하고자 한 그것을 닮아 버리곤 했다는 게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그럼 좋다. 존엄이 지켜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거두절미, 그건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다.

 

이 관점에서 '가족'이라는 집단을 돞아 보자. 이 집단은 무엇보다 '정서적'(pathetic)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가족적 정서라고 불리워지는 걸 열거하자면, '화목', '사랑' , '이해' 등이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집단을 떠올릴 때 소위 '가슴 훈훈한', '한 둥우리 같은' 감정을 체감한다는 건 정말이다. 이상하게도 '정서'라고 하는 건 개별적이고, 개개의 인격마다 그 체감의 강도가 상당히 다르거나 아예 극단적으로 대립할 수도 있을텐데 '가족적 정서'라는 건 이 정도로 동질적이다. 희한한 일이다.

 

더우기 봉건주의에 대한 자생적 면역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 필수적 코스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를 훌쩍 뛰어 넘어 버린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식의 정서가 상당부분 강화되어 있다. 심지어 유력 정치인들이나 그를 지지하는 다수의 국민들이 '가족'과 '국가'를, 나아가 대통령과 가부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처해 있기도 하다. 심각한 것은 이런 유아적 발상이 이데올로기로까지 치장되어 '우익'이라는 집단을 형성할 때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이 사회의 오른쪽 집단은 '민족주의'라든지 '합리적 보수'라고 불리워질 수 없게 된다. 이들은 봉건적 잔재를 일소하지 못한 그저그런 수구세력이거나 뭐라 개념지을 수도 없는 '꼰대집단' 정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프레임과 뒷골목 건달들이 '형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별 차이가 없다(건달들은 목숨을 걸고 의리를 지키기라도 한다).

 

이렇게 '가족'과 '국가' 또는 '봉건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착시현상이 대개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곳에서는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다. 하긴 논리나 펙트에 대한 존중보다는 '니편 내편'이 더 중요하고, 솔직한 의사개진보다는 '윗선'이나 아버지, 어머니, 언니, 누나, 형 등등 온갖 것들을 살펴 보는 비굴한 더듬이만 발달한 인격들끼리 모여서 무슨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겠는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그려지는 '가족잔혹사'들을 살펴 보면 몇몇 유형이 있다. 우선 가족들 간의 구질구질한 원한 관계가 있고, 거기에 희생당하는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플롯이 전개되는 보다 고전적인 형태가 그 중 하나고,  또 다르게는 가족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가족들이 모두 몰락하거나 만고의 웃음거리나 패악질의 원형이 되거나 하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가족주의가 가지고 있는 '파괴적 본질'을 드러낸다. 사실 가족이라는 집단 자체가 정서적이고 보수적인데 이것이 더 '애틋해'지고 '흘러 넘치게' 된다면 문제가 이만저만 심각해 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런 예들이 참으로 알기 쉽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사람이 자유롭게 살려면 필요한 것이 '거리의 파토스'라고 했다. 그런데 과연 이 '정감어린 가족주의' 안에 이것이 있는가? 피상적으로는 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든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so cool'해 질 수 있다고 자신한다. 재우쳐 묻는다. 정말? 스스로도 물어 보라. 내가 가족문제에 관해 그토록 '거리'라는 걸 취할 수 있는지 말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거리'가 내면화되어 있어야 합당하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도대체 어떤 '후레자식놈'이 '우리' 어머니를 모욕했는데 흥분하지 않겠는가? 설혹 어머니'께서' 먼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모든 사단이 여기서부터다. '우리' 가족을 중심에 놓고 '다른' 가족이나 인격을 보다 보니 '거리의 파토스'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원한'에 기반한 배제와 우월의 욕구가 앞선다. 그리고 가족내에서의 자기입지가 어떤가에 따라 '권력'이 형성되는데, 이게 또, 다른 가족 구성원 중 서열이 밀리는 인격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게다. 게다가 이 서열이라는 것이 천박한 자본주의 정신과 결합할 때는 (당사자들이 아무리 거부하더라도 제삼자가 볼때는 분명한데) 구역질나는 금전관계나, 경제적 독립의 정도에 따라 매겨지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긴 아무리 '가족'이라도 금전적으로 얽매여 있으면 제대로 발언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사실 이렇게 놓고 보면 '비둘기 처럼 다정한 가족'이라는 것도 말짱 허구라는 걸 알아야 하겠다. 그리고 가공할만 한 것은 이 모든 게 '사랑'이라는 명분 하에 저질러진다는 것이다. 가히 '잔혹사'라 할만 하다. 하긴 이런 일로 서로를 죽이고 괴롭다 못해 스스로를 죽이거나 다 같이 연탄가스 마시고 죽자는 경우도 생기는 게 요즘 세상이다.

 

가족주의라는 건, 따라서 아주 지독한 허구다.  그리고 많은 경우 다양한 방식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다른 가족을 억압하기 위해("저 쌍놈의 집안", "돈 없는 것들" 등등 다양한 버전), 그리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존엄을 짓밟기 위해("동생이 어디서!", "아버지 말이 말 같지 않니?",  "이 결혼은 반대다." -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반대' 따위를 한다는 건지 알 수 없다 - 등등 또 다양한 버전) 말이다. 하나의 허구가 물리적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참으로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그게 어떤 실체를 가지고 우리 앞에 서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힘이라는 건 대개가 우리조차 감염된 경우가 많다. '권력의 발에 짓밟혔던 자는 그 권력의 세균에 감염된다'고 했던가. 그래서 '난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이 참으로 덧없어진다는 거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거나 "우리가 남이냐?"는 생각을 무시로 한다면 스스로를 의심해볼 일이다. 쓰레기더미 속에 있다 보니 자기 몸에 그 냄새가 베어 있다는 것조차 모르게 되면 매우 심각하다. 그 냄새가 바로 스스로의 존엄을 더럽히고, 다른 집단이나 조직에 해악이 되며, 나아가  부지불식 간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존엄에 먹칠을 하고 그(녀)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든다는 걸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녀/들)에게 거리를 부여하자. 서로 평등하게, 그렇게 바라 보는 것, 그게 자유의 시작이고, 공동체 내에서 자신과 타인 모두를 고귀하게 만드는 길이다. 가족? 가족주의? 그런 건 개나 주기 바란다. - REDBRIG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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